2021년 2월 7일 일요일

선교와 문화 12주차 1 - 11강 미완성 과업

선교와 문화 12주차

11강 미완성 과업

 

책에서 저자는 기독교 선교 중심지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유럽으로, 남유럽, 영국, 미국 등등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썼다. 복음 전도의 정신을 잃어버리면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다른 나라로 이동시키신다고 결론을 맺었다하지만 저자는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다. 기독교 국가 로마가 왜 게르만 족에게 망했는지를

로마 사람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믿었어도, 부패 타락한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소수의 부자들이 로마 땅 대부분을 차지했고, 로마의 평민들에게 매일 잔인한 경기 관람과 빵을 주는 것으로 달랬다기독교를 믿어도 부패타락음란폭력방종의 정치 사회 제도가 전혀 바뀌지 않고 여전했던 서로마제국은 훈족과 게르만족에게 완전히 망해버린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이 무색한 폭력과 음란이 더욱 더 번성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대신에 이방 게르만 족으로 하여금 경건한 믿음을 잇게 했다.

 

[책마을] 포퓰리즘 상징된 고대 로마 '빵과 서커스'

마치 현재 미국에서 미국의 민주당이 흑인들에게 일자리가 돼주는 공장을 세우지 않고 죄다 중국이나 아시아로 옮긴 뒤에, 회사에서 벌어들인 세수입을 복지란 명분으로 보조금이나 주는 것과 같다

현재 미국 민주당이 공산주의를 부활시켜서 과거 부패했던 로마제국의 계급제도와 복지제도로써 소수가 대다수의 국가자원을 독점하고, 다수의 국민을 농노로 전락시키려고 한다

미국은 현재 언론, 문화 연예, 학계가 좌경화돼서 민주당지지 일색으로 바뀌므로, 로마제국처럼 민주정이 독재정으로 바뀌고 내부에서 썩어들어가다가 언젠가 외부 세력에게 몰락할 날이 올 환상을 어린 날에 봤다.

그 과정의 첫걸음이 바로 현재 미국과 한국 두 민주당이 중국 공산당 외세의 힘에 휘둘려서 부정선거를 조작해낸 것이다.

 

美 부정선거 증거 끝도 없어, "이쯤되면 계엄령도 가능"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흑인들이 보조금 정책에는 인색했는지 모르지만, 흑인 스스로 일해서 가정을 운영할 수 있게끔 외국으로 도망간 공장과 기업들을 미국으로 도로 불러들였다. 그 결과는 흑인 스스로가 더 큰 자부심과 만족감, 안정된 가정과 평안한 흑인사회를 이룰 수 있게 됐다.

 


폴 히버트는 선교사회에서 당면한 수 많은 문제들을 잘 정리해서 책을 썼지만, 정작 그 문제들에 대해서 뚜렷한 해결책은 전혀 없다인구성장, 도시화, 문화위기 안에 폭력 및 가난과 기근 그리고 억압과 정의, 민족주의, 타종교의 부흥. 그런데 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한 곳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그는 테오도르 베델의 난파선 구조자들의 제도 비유를 들어서 더욱 미궁으로 빠뜨렸을 뿐이다. 바닷가에 하도 난파선과 조난자들이 많아서 동네 사람들이 구조해줬다. 경륜과 아이디어가 쌓여서 구난시스템을 발전시킨 결과, 너무 방만해진 조직운영으로 오히려 본 목적인 구조작업을 못하게 되는 조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본 목적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또 소수가 분열해서 나오고 다시 발전하고 또 방만해져서 본업을 포기하고, 다시 분열하는 악순환의 쳇바퀴 반복을 써놨다. 즉 인간의 제도는 불완전하다는 게 진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타종교의 부흥 하나를 갖고 서구 기독교 신학에게 질문을 하겠다. 역사학자 토인비 이후부터 꾸준히 서양의 철학자들은 서구의 신학은 한계에 다다랐고 더 이상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니, 아시아의 다른 종교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그 대안책으로 불교, 유교, 도교 등의 동양종교와 철학이 유럽과 미국 학계에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에 대해서 이미 서구신학은 사신신학을 내놓으며, 신은 죽었다!” 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렸고, 교회를 당장 떠나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아라!” 라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장이 현대 유럽과 미국의 유명 신학교에서 내놓는 답변이다

그리고 신학자들이 도리어 자발적으로 불교와 힌두교, 도교, 참선을 앞다투어 연구한다. 그래서 종교개혁과 개신교 신학의 본고장 유럽은 주일출석 성도가 전체 인구의 1%아래로 떨어졌다.

선교와 문화 11주차 - 10장 선교사의 역할

 선교사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에 신경을 써야 한다. 교사의 위치에서 현지인들을 강압하거나 선진국 국민으로서 오만감으로 대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기 자신을 먼저 극복하고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세워가야 한다. 현지에서 통용되고 상호 예측가능한 질서를 따라, 현지 사회에 이바지하는 역할과 지위를 맡아야 한다. 그래야 현지 사회에서 선교사는 불확실성과 혼동의 원인이 되지 않으며, 정체성과 자존감을 형성하고 안착할 수 있다.

 

4살 아이 납치해 제물로 바쳐…잔혹한 종교 의식
출처 : SBS 뉴스

선교사는 서로 다른 양국의 문화 속에서 관계를 새롭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지에 범죄적인 문화인, 식인, 과부를 산 채로 불 태우는 관습,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 등등 악한 관습들을 철폐해야 했다. 그러나 유럽의 제국주의 시절에 비유럽권의 식민지 국가들의 현지 주민 앞에서 압제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현지인들의 신망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 식민지들이 독립한 이후에는 기독교가 현지에서 극소수로 전락했다. 지금까지 현지 정부에서 복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선교사는 현지 파견 지역에 학습자로 들어가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 문화와 관습을 배우고, 1~2년의 단시간 머무르고 말 게 아니라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가족의 개념으로 현지인과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면, 현지인이 위험, 필요할 때 물질, 재정적인 도움도 줘야 한다.

선교와 문화 10주차 1 - 9장 이중문화의 가교

선교와 문화 10주차

9장 이중문화의 가교

문화의 벽을 넘어서 복음이 전달되려면,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에 달려 있는데, 두 가지 영향을 받는다.

  1. 다른 두 문화 사이를 번역하는 선교사와 현지 지도자의 능력
  2. 복음전달을 담당한 사람들이 맺은 관계의 수준

 

캄보디아 선교

이중문화 공동체는 타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 역할을 하며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사회를 뜻한다. 자국 문화를 가져온 선교사와 현지 문화를 가진 현지 지도자와 성도들이 서로 융합하는 가운데에서 만들어진다

이 때 선교사와 현지 지도자는 문화중개인의 역할을 맡아서, 선교사 본국의 파송 교회와 현지 성도 및 불신자들 사이를 연결해주는데, 종종 이 양극단에 위치한 단일문화권 사람들은 문화중개인을 불신하기도 한다. 동시에 이 문화중개인은 이 두 문화권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와 양 문화권의 접경부분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어서 주변인으로 밀려난다

우리 기독교인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하고 그 문화와 가르침을 세상 속에 펼치고 있어서 이미 주변인의 삶을 살고 있다. 이 주변인은 내부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조언과 지적을 할 수 있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이스라엘과 유다 내부의 위정자, 종교인, 백성들에게 그렇게 했고 핍박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선교사들과 현지 지도자 사이에 세대 중심주의를 소개하는데, 그 세대를 정하는 순서가 우리 한국인들과 달리, 해외 선교지를 개척한 횟수에 근거하고 있다. 1세대는 해당 불신 국가에 맨 처음 개척할 경우를 뜻하고, 2세대는 선교사역을 재차 방문하는 경험을 갖고 있는 경우, 3세대는 오랜 선교사역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된 원로들을 뜻한다.

 

1세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세대인데, 병원, 학교같은 건물까지 짓고 온다는 필자의 설명은 상당히 거창하게 보인다

맨처음에 개척하기 때문에 역량도 상당히 크고 법과 제도, 전통을 만들어 후임 선교사와 현지 지도자들에게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는 세대이다

한편 현지 지도자 1세대는 현지의 기득권의 삶을 다 포기하고 현지의 불신자를 전도하는데에 막대한 희생을 감내한다. 그럼에도 동역하는 선교사들로부터 지도자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받지 못하기도 하여 낙심하고 따로 독립하기도 한다.

 

2세대는 2~4번째 임기를 사역하는 선교사로서, 이미 다른 문화에 적응하며, 현실에서 이상적 목표의 어려움도 받아들였다

현지에서 성경학교를 세우고 현지 지도자들을 양성해서, 4~5개의 교회를 세운다고 하는데, 이 마저도 보는 저로서는 상당히 큰 성과라고 본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족과 일상의 행복이 일만큼 중요함을 깨닫고, 일에 대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당장 눈앞의 가족과 자신의 삶을 챙긴다. 그리고 초임선교사를 도와준다

한편 현지 지도자 2세대도 선교사와 함께 숙련된 전문가가 됐으며, 현지 교회를 짊어지는 기둥과 같은 존재이다. 그들도 가족과 자신의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3세대 선교사는 제국주의, 식민주의를 경험했으며, 죽음과 희생이 당연시 됐던 선교를 한 사람들이다

3세대 현지 지도자들은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자국에서 일어나는 급진적 민족주의 운동을 불편해 한다. 그리고 젊은 지도자와 종종 갈등을 빚는다.

 

문화가 전혀 다른 두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가운데, 이중문화가 탄생한다. 그러나 이는 선교사와 같은 이방인 지도자들과 현지 지도자 및 현지 성도 사이에서 의식주 및 지도적 권위와 경제권 등 여러 제반 사항에 대한 권리와 의무, 대우 등등의 문제와 고민거리를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우선 동일화를 통해서 적응을 해야 한다. 외적 부분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현지인들을 선교사와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해줘야 한다. 마음 속에 숨겨둔 우월감이 종종 튀어나와서 현지인들을 무시한다면, 현지인들이 등을 돌리므로써 선교사역이 망가진다

그 다음에 현지인이나 선교사 모두 변화를 받아들이되, 지나친 강요와 급진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혼란한 뒤섞임 속에서 성경에 근거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동일화되면 결국 이방종교와 혼합된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답습해서 하나님 앞에 버림받을 존재로 전락한다


한편 현지 지도자들은 기독교적 생활양상을 전파하다보면, 현지 불신자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곤 하는데, 마치 우리 조상들이 기독교를 믿으면서 유교적, 무속적 전통을 버리므로써 향토사회에서 배척을 받은 것과 같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현지문화와 밀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아무 힘이 없고, 현지인들에게도 아무 의미없는 일이다.

선교와 문화 10주차 2 - 신학이 아니라 성경에 답이 있다!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라는 책의 저자 최자실 목사님이 한국에서 무속적 귀신숭배유교적 신분제와 남녀차별불교 우상숭배 문화를 뿌리뽑는 과정이 적혀 있다. 

오히려 이러한 문화충돌 속에서 초자연적 하나님의 권능이 더 잘 나타나서 현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무릎꿇게 만들었고 이게 가장 성경적이다

역사적으로도 과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당시에게르만족들이 로마인들을 대학살강간약탈하며 우습게 여겼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사제들이 그 들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초자연적 기적을 보여주며 전도했다. 그러자 그 사제들 앞에 무릎을 꿇으며게르만의 왕족장무사들이 모두 기독교 세례를 앞다투어 받았다. 또한 자민족 백성들을 도리어 강제 개종 시켰다

성 골룸바노(11,23)

그래서 로마 교회가 동로마 제국 교회에서 독립하고 교황의 자리를 차지하며 유럽 왕들 위에 우뚝 설 수 있었다이는 성경 말씀으로 보증이 된다.

시편 110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엑스칼리버의 원형인 갈가노의 검

책의 나머지 부분은 여러 행정적 모델과 대안이 적혀 있지만근본적으로 이 내용들은 하나님을 일단 빼고 인간끼리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저자의 생각과 아이디어만 적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인간의 생각과 달리 전혀 엉뚱한 곳에서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한다그래서 저자의 책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일례로 이 책 대로만 한다면선교사는 현지에서 죽도록 고생하고 쫓겨나듯이 현지 지도자에게 권한을 이양하고 아무 대책과 보장이 없는 노후를 보내야 한다아무리 명문신학교에서 공부해봐야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자멸의 길 뿐이다

아무리 청렴결백의 삶을 선교사에게 강요해봐야 무대책의 빈곤한 노후만 돌아올 뿐이다그러나 성경은 이미 길을 제시해놨고그 뜻대로 사는 사람은 교회가 선교사와 그 자녀의 삶을 보장하도록 성경말씀이 명령한다.


고린도전서 9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선교와 문화 9주차 - 8장 자신학화

선교와 문화 9주차

8장 자신학화

선교사와 현지인들 사이에서 성경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문화가 다른 만큼 같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이 문제의 중심에 서있는 개념이 바로 자율이다. 성경해석의 차이는 곧 신학의 차이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선교사의 출신국인 서구의 신학과 선교현지에서 자생하는 신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신학만큼 교회 조직과 운영조차도 크게 달라진다. 이 때 선교사는 현지 성도와 차세대 현지 사역자들에게 권한을 얼마나 이양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어차피 현지 신생교회가 스스로 서기 위해서는 자전, 자립, 자치라는 세가지 원칙을 이뤄내야만 가능함을 1861년에 루퍼스 앤더슨 선교 지도자가 발견했다. 자전은 현지인 스스로 자국의 불신자들을 전도해야 함을 뜻하며, 자립은 현지인 스스로 교회와 신학교 및 현지 선교 프로그램의 자원을 충당해야 하는 것이고, 자치는 현지인 스스로 그 조직들을 운영하는 것이다.

 

루퍼스 앤더슨

선교사 본국의 선교 단체는 자립을 이유로 지원을 줄이고자 하고 자치문제에 있어서는 권리이양을 안하려고 하며, 현지인은 자치를 이유로 보다 더 많은 지도적 권한을 가지려고 했다. 자전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지인들은 신앙 1세대로서 핍박과 멸시를 감내하며 선교사 못지 않게 현지 교회를 키워낸 장본인으로서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이들이 과거에 이방 종교의 지도자였다면, 서구의 신학과 충돌하는 새로운 개념의 신학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상의 과정에서 다원주의는 반드시 발생하며, 상대주의에 따른 진리의 훼손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신학은 성경에 뿌리를 두고 서구인들의 사고체계에서 발전한 것임에도 엄연히 성경과는 다른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에게 계시로 부어주신 직접적 말씀이지만, 신학은 그 말씀들을 평범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문화토양을 바탕으로 해석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의 이성조차 완벽한 것이 아니다. 이해력, 사고력 모두 문화적 편견에 사로잡힌 불완전한 것들이다. 따라서 기존 서구의 신학에 억지로 성경을 꿰맞추려는 것은 잘못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서구 신학의 틀린 점을 지적한다면, 겸허히 기존 서구신학을 바꿔야 한다. 기존 선교사와 기존 서구인들 사이에서 오시고 일하시는 성령님은, 선교 현지 교인들에게도 오셔서 일하심을 우리 모두 인정할 때 가능해진다.

 

신학은 순수한 학문 연구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님의 영광 및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과 아무 상관없이 신학을 하는 인간 그 자체를 위한 이기적인 잘못된 연구로 빠져들기도 하다. 진리에 의문을 품고, 성도 사이에 다툼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오히려 신학이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즉 기독교는 신학으로 대표되는 사고유형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신학은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서, 깊이 사고, 성찰하는 가운데, 밝혀진 개념과 원리가 쌓이고 서로 유기적 결합을 이뤄서 발전하는 가운데 안 생길 수가 없다. 또 우주의 변함없는 질서에 관한 공시적 틀을 제공하며,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 관한 통시적 틀을 제공한다. 이상의 이유로 신학은 세상에 대한 성경적 이해, 구체적 신학 개념으로 진리를 검증, 의심과 이단의 공격을 방어하는 변증, 성도와 사역자에게 궁극의 목표를 향한 지도와 척도를 제시해준다.

 

새로운 문화범주 안에서는 하나님과 성경에 관한 새로운 질문이 떠오르고, 새로운 세계관에 걸맞는 상황화의 필요성이 현지 초신자 양육에서 나타난다. 현지 신학자를 양성하여 초문화 신학으로 이끌어야 한다. 복음의 유일성과 진실성에 근거하여, 문화를 초월하고, 성경적 근거로 상황화를 검증, 발전시킨다.

선교와 문화 8주차 - 7장 비판적 상황화

선교와 문화 8주차

7장 비판적 상황화

저자가 인용한 이방종교가 다스리는 전통문화는 대개 그들의 정신적 사고작용과 현지 자연에서 적응이 서로 결합돼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방종교의 의식이 녹아들어있기에 기독교 신앙을 대적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인도 부족민들은 신성한 만트라를 읊조리거나 동판에 주술적 그림을 새겨서 허리나 목에 묶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 5경을 내리시면서 명백히 금지한 사항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가는 동안 아론을 부추겨서 황금송아지를 섬겼던 이스라엘 민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든 레위지파에 의해 대학살을 당했습니다. 하이다 족은 조상을 기념하기 위해서 토템을 조각했는데, 이 때문에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침략을 받아야 했으며, 기드온은 그 죄값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바알 신상을 깨뜨린 후 여룹바알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진짜 시내산은 사우디에 있다”

또한 그런 미신을 기반으로 한 전통문화는 신랑신부가 합방을 하는 게 아니라, 노인들과 첫경험을 하도록 강요되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보면 엄연한 미성년을 향한 성폭력 범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방의 행위는 호세아서에도 나타나있습니다. 부부들이 산당과 나무 밑에 모여서 외갓남자, 외갓여자와 함께 행음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이상에 따라서 선교사들은 현지 상황화를 거부하고 무조건 본국의 문화를 강요하므로, 현지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컨대 자연환경 속에서 적응한 산물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일 수도 있습니다. 푹푹 찌는 열대 우림 기후에서 성도들은 현지 사정에 맞는 맨살을 다 드러내는 옷을 입고 있지만, 북유럽과 북미에서 건너 와서 추운 기후에 적응된 사제의 옷을 입고와서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불편케 합니다. 그러면 현지에서는 본국 문화를 은밀한 곳에서 행하여 기독교적 이교주의를 낳습니다. 남미 카톨릭은 아프리카 노예출신 가정에서 비롯된 혼령 숭배가 카톨릭의 미사에 녹아들었습니다.

 

옛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문제가 생기는데, 앞서 인용한 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가나안의 농경민족들이 행하던 우상숭배를 받아들여서, 이스라엘 겨레의 두 나라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아 멸망시킨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문제는 현대에서 레바논이란 나라에서도 재현됐습니다. 레바논은 마론파 정교회의 나라였으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조건적 사랑으로 받아주기만 했습니다. 절대로 기독교로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난민 인구가 많아지자 온갖 폭동을 일으키고 여론을 선동하여서 마론파 교회들을 깨부수고,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1978년 이후부터는 이슬람 국가가 됐습니다.

 


저자는 이상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비판적 상황화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개인과 교회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경에 비춰서 살펴보고, 둘째 현지 교회 지도자와 선교사는 문제가 될 만한 전통 관습을 신자들이 일단 편견없이 파악, 분석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셋째 담임 목사나 선교사는 문제가 될 만한 사안과 관련된 성경 공부를 가르쳐야 합니다. 넷째 신자들이 새롭게 깨달은 성경의 진리에 비춰서 스스로 과거의 관습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존속, 폐기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찰스 웨슬리는 술집에서 자주 불리는 노래들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서 찬송가로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벌이는 축일과 기념일들은 본래 초대교회 성도들이 유대교 회당에서 예배방식을 자신의 신앙에 맞춰서 변형시킨 것이며, 심지어 이교도 축제일에 맞춰서 성탄절을 만들어내고 기독교 절기들을 만든 것입니다. 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예수님은 절대로 1225일에 태어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4복음서에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전에 양떼를 들판에 내어놓고 들판에 모여있는 목동의 이야기가 나타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목동이나 양떼나 모두 들판에서 얼어죽기 때문입니다.

 

비판적 상황화의 신학적 근거는 만인제사장에 따른 논리입니다. 카톨릭처럼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마르틴 루터가 주창한 만인제사장에 가장 부합됩니다.

선교와 문화 7주차 - 6장 문화 차이와 메시지

선교와 문화 7주차

6장 문화 차이와 메시지

 

문화 차이는 메시지와 이를 전하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편향적이지 않은 언어와 신학적으로 중립적인 문화는 없다. 이로 인해서 소통과정에서 복음을 오해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 문화차이가 메시지에 영향을 끼치는데, 먼저 메시지 전달자가 메시지를 받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소통방식을 취해야만, 전달이 가능하다. 그 다음에는 메시지 자체를 번역할 때, 본래 뜻하는 바를 가장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세 번째로 메시지가 전달될 지역의 문화 형태로 상황화 해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소통은 인격적 의사소통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소통으로서, 인격적 소통이 바로 선교사역의 핵심이다. 인격적 의사 소통의 특징은 발신자와 수신자 모두 지적 존재이며, 상호교환하는 메시지가 구체적 현실을 설명하고, 추상적인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생각과 감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바로 전달될 수 없으며,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형식을 바로 상징이라고 부르며, 그 핵심기능은 뜻과 느낌을 표현형식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상징은 복합적이어서, 특정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뜻과 표현형식을 연결한다. 상징은 뜻, 형식, 사람, 기능, 상황을 함께 연결한다. 문화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데, 소통이 이뤄지려면 한 집단이 공유하는 상징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징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음성-문자 언어, 신호, 기호, 냄새 등의 표현력에 의존한다. 이러한 상징 체계는 각각 특정 유형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쓰인다.

 

이러한 상징을 통해서 우리는 생각, 감정, 가치 등을 전달한다. 상징은 내포적 의미를 갖는데, 이는 각자의 문화영역에서 각자의 경험에서 유래된 명시적 표현 안에 숨어있는 뜻이다. 그래서 다른 문화에서 쓰이는 상징들의 외연적 의미는 알기 쉽지만, 내포적 의미는 알아내기 어렵다. 상징은 의식 세계 뿐만 아니라, 함축적 가정, 세계관을 반영하기에 타문화 사람들끼리 소통하기가 어렵다.

 

[만파식적]텔루구어

다양한 소통 유형에 쓰이는 상징체계는 문화에 따라 다르다. 단어에는 내포적 의미가 있고, 대부분 암시적으로 함축돼있으므로 번역이 아주 어렵다. 예컨대 이스라엘에서 목자는 양 떼를 지키는 보호자, 먹이는 인도자 등으로 쓰이는데, 텔루구에서는 방탕한 술주정뱅이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목자로서 표현할 때, 텔루구에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다.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의미의 단어는, 현실 속에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각 나라의 문화 속에서나 상정하는 비현실적 세계관, 정신작용의 산물이다. 따라서 신을 뜻하는 단어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인도 문화권의 신인 데부두는 명시적으로는 비슷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완전히 엉뚱한 뜻이 된다. 서구 사회에서 떼오스 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가 됐지만, 인도에서 신인 데부두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별차이없는 존재이다. 즉 번역할 때, 명시적으로 공유된 의미를 찾아서 단어를 선택하면, 원어의 단어에 포함됐던 의미에서 어떤 부분은 잃어버린다. 다른 한 편으로는 현지 단어에 내포된 의도하지 않은 부가적 의미를 첨가해서, 엉뚱한 해석을 낳는다.

 


[사이언스N사피엔스] 플라톤의 하늘, 아리스토텔레스의 땅

이는 초창기 유럽에서도 겪었는데, 플라톤의 이분법 세계관에 젖어있던 유럽인들이 히브리의 세계관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 천사, 귀신을 동급의 초자연적 존재로 묶어버렸다. 현실과 초자연 세계를 헬라 철학에서 구분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머지로 구분한다. 이것 말고도 두 세계관의 충돌은 무척 많은데, 그 오해 속에서 서구 신학이 발전했고, 결과적으로 초자연적 실체와 이성과학적 현실을 구분짓는 이원론적 우주관이 탄생했다.

선교와 문화 6주차 8 - 기공사와 새 환상

 어린 날 꿈 속에서 중국 기공사가 손바닥으로 장난을 치며 비둘기를 희롱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비둘기는 기공사의 손아귀에서 도망가지 못했는데, 기공사는 자기 기공술 때문이라고 언변을 늘어놓으니, 주변의 구경꾼들이 경외하며 돈을 내놓았습니다


곧이어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저것은 속임수이다!” 

그 다음에똑같은 쇼를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제게 그 새를 주시되, 날개 깃털을 찢어서 주셨습니다. 멀쩡하고 예쁜 새를 흉하게 날개깃을 찢어놓으니, 제가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아! 그 새가 네게서 도망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네가 뭐가 잘난 게 있어서, 무슨 수로 그 새를 붙들어놓겠느냐

이 새는 네게 아내를 뜻한다. 너는 나의 일을 해야 해서 아내를 붙들어 놓을 여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네게 치명적 결함이 있는 아내를 붙여놓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아! 아내를 괴롭히거나 잡아먹지 말고, 사랑해주어라!”

 

그 말씀을 듣고 나니어느새 제가 새장 속에 있는 새를 바라보며입맛을 다시며 새장에 오른 앞발을 얹은 검은 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바둑 고양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꼬리를 의자 바닥에 대고 좌우로 왔다갔다 저으면서주인 몰래 새를 갖고 놀다가 잡아먹을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고, 30여년이 흐른 후 2017년 동대문 시장에서 앵무새의 날개깃을 잘라서 파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20대 때부터 외적, 내적이든, 본인이든 가족이든, 과거경험이든, 어딘가 치명적 결함이 있어서 저를 떠날 수 없는 여자들만 40명 가까이 만났습니다그 결함 때문에 상처입어 갈 곳없는 그 자매들을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딸들을 다른 곳에서 형제들을 불러 붙이시고 위로 하시며, 그 딸들의 삶에 대책을 세워주셨습니다그 종들은 어린 날부터 예수님을 믿었기에 그 자매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모두 경험한 후 저는 뚱뚱한 현재 아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성적 불만이 가득차고 무척 불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제 아내가 날씬해질까 싶어서, 이러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선교와 문화 6주차 7 - 하나님이 아닌 변증, 철학을 믿고 의존하는 신학자들

 위 사실을 전세계 신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주라고 하나님께서 제게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보니, 그런 체험을 한 사람들이 전세계에 깔려 있습니다

웨슬레 형제는 이신칭의론과 지나치도록 하나님의 주권에 핑계를 대는 신학을 깨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알미니우스와 펠라기우스를 지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유럽 개신교를 멸종시킨 것은 웨슬레안의 신학이 잘못됐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감리교 신학이 아니다(2)

인간은 성경 말씀을 편식하고 한가지 논조로 교리를 발전시키면, 하나님께 버림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 땅에 영혼들을 내려보내십니다. 아래 근거 말씀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기독교사 이래 신학자들은 위 말씀 때문에 정말 많이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돼서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극히 적습니다. 바로 아래 말씀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기독교는 변증만 의존할 뿐,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신학자들이 성경말씀을 가지고서 말장난, 언쟁, 교단 분쟁, 성령 사역자들에게 이단판정을 일평생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유일신이시라면,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신을 증거하실 수 있지, 인간의 변증(변명+증명)이라는 치마자락 밑에 숨어 계심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뭐가 아쉬워서 인간의 변명에 기대야 합니까?

제가 교수님께 이런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이유도 교수님 이전에 목사님이기에 가능합니다. 아마 교수님이기만 한다면, 자기를 모욕하고 도전하는 줄 아시겠지요

저는 그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삶 속에서 제게 짊어진 의무를 수행하고 맘 편히 제 삶이 풀리고 천국에 들어갈 목적으로 썼습니다. 지금 당장은 저의 뚱뚱한 아내가 날씬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연예계는 시한부 인생 14 - 연예인들이 제대로 잘 살려면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