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9일 화요일

근현대 교회사 기말과제 2 - 초기 한국교회는 복음주의랑 상관없다!

보수주의적 복음주의

한국을 사랑한 신학자 선교사 간하배 교수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을 보수주의적 복음주의로 해석하는 신학자들도 많다

간하배의 주장에 따르면,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와 대치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그는 그래샴 메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 (1923)]에서 사용하던 보수주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은 고등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을 위험한 이단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전천년설을 보존할 진리로 여겼다고 간하배는 주장했다.

 


간하배는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이 보수적, 복음적인 근거를 들었는데, 선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철저히 믿는 것이다

또 다른 근거는 네비우스 원리를 채택한 점이다. 네비우스 원리는 성경을 모든 기독교적 사업의 근본으로 삼고, 신자 마음에 적용하도록 세밀한 방법을 갖췄다. 그 원리는 성경을 중심적으로 강조해서 한국 복음화에 목표를 두고 있다

한국 선교의 복음주의적 메시지와 성경을 굳게 믿으며,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라는 사무엘 마펫의 말도 한국 장로교회 신학의 뿌리가 보수주의적 복음주의라는 또 다른 근거가 된다.

 

사무엘 오스틴 마펫 선교사(S. A. Moffet 1864-1939)

홍치모도 같은 방식과 관점으로, 메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에 근거한다복음주의라는 광의적인 용어 속에는 근본주의 신학 사상과 칼빈주의 신학 사상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가 말했다

그도 간하배와 똑같이 브라운 총무의 말을 언급했다.그들이 청교도적인 선교사들이었으며, , 담배, 카드놀이를 죄악시 했고, 전천년설을 믿었으며, 고등비평주의와 자유주의적 신학을 이단으로 삼았다그 밖에 여러 가지 논거를 들었는데, 대체적으로 간하배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했다.

 

호남신학원 설립자 브라운 선교사 '소천'

김의환의 주장에 따르면, 1907년 한국 장로교회가 [12신조]를 채택한 근거를 삼았는데, 그는 김영재의 주장에 따라서 [12신조]는 칼빈주의 특색을 갖기 보다, 복음주의 영향을 받아 개혁주의 내용이 다분히 희석됐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19세기 말 미국 장로 교회가 복음주의와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수정 칼빈주의 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용규는 앞서 나온 브라운 박사의 말, 마펫 선교사의 [50년 선교대회 보고서], 곽안련 선교사의 보고, 간하배의 주장, 민경배의 주장을 인용하여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뿌리를 보수적 복음주의라고 규정했다

한가지 덧붙여서 개혁파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다시 구학파의 칼빈주의 전통을 선교사들로부터 발견하여, “구학파 복음주의라는 용어로 바꿨다. 19세기 복음주의 운동으로써, 무디와 그의 영향을 받은 학생자원운동으로 봤다.

 

총신대 박용규 교수, 총장직무대행으로 선임




이상에서 정리되는 공통점이 있는데, 보수주의라는 개념을 그래샴 메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 가져온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주의 논쟁처럼 신학사조를 시기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적용하는 무리점이 있다

장로교 선교사들의 초기 구한말 사역은 자유주의 신학 사조가 미국 교회를 휩쓸기 이전에 한 것이다. 복음주의 용어를 사용한 것도 서정운이 워필드와 핫지의 방식으로 대변되는 프린스턴 신학이라고 피상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초기 한국 장로 교회의 전도책자와 신앙고백, 회심 기록을 보면 다르다

민경배가 이 부분을 잘 정리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 이유는 청교도의 회심신학이 미국 장로교회에서 신학적 전통으로 내려와서 한국에 전해졌기 때문에 한국에서 청교도 용어들이 쓰였기 때문이다. [중생지도, 1893], [장원량 우상론, 1894], [천로역정, 1895] 등이 있다.

 

존 리빙스톤 네비우스

북 장로교 선교부가 주축이 돼서 그리스도 신문을 발행했는데, 당시 한국 장로 교회 신자들의 신앙고백이 가득 하다. 이런 전도 책자와 신앙 고백은 19C 말 미국에서 유행했던 복음주의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복음주의 입장에서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청교도적 개혁신학과 언약신학이 무시되고 있으며, 복음주의와 개혁신학이 뚜렷이 구별됨에도 그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초기 한국 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 사역을 하더라도, 각 교파마다 전도책자는 분명하게 구별해서 썼다

네비우스 원리의 목적이 단순히 자립만이 목적이 아니며, 위선자를 배제하고 진정한 회심자에게 교회 회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 근거로써 낡은 제도로는 그가 설교자로서 참된지 거짓된지 혹은 교회 회원으로서 참된지 거짓된지 판단하기 어렵다.” 라는 기록이 있다.

 


사무엘 마펫의 언급또한 보수적 복음주의라고 판단하는 것은 피상적인 오판이다. 그는 성령의 나타남과 성령의 역사를 중시했고, 성령님이 시키시는 회심의 역사를 강조했다

함께 동역했던 라부열은 마포 삼열의 선교원리를 7가지로 요약했다. 그 중 7번째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성령의 감화에 의지하여 개인의 중생과 교회의 지도발전을 도모할 것인데, 이는 복음주의와 입장이 다르다

즉 초기 한국 교회의 복음전도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추구하며, 중생과 회심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이는 개혁신학이고, 언약 신학에 근거한 것이지, 복음주의는 아니다복음주의는 19C에 찰스 피니로부터 시작했으며, 하나의 신학 학파이다

찰스 피니
초기 한국 장로 교회는 찰스 피니의 방식으로 전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배격했다. 1890년에 번역출판된 [성교촬리] 라는 전도책자의 마지막 부분 기록은 다음과 같다

믿겠다는 결심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진리의 도를 더욱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교회의 성경공부로 나가라!” 

1898.1.27. 그리스도 신문에는 성급하게 믿겠다는 사람들에게,우선 성경을 보고 그 뜻을 깊이 깨달아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의 죄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성령의 감화를 기다리고, 그 이후에 회개와 믿음이 있다는 주장들은 찰스 피니의 주장과는 정반대이다.

근현대 교회사 기말과제 1 - 한국 장로 교회의 신학적 뿌리는?

근현대 교회사 기말과제


한국 장로 교회의 신학적 뿌리에 대한 논쟁들 - 김홍만 교수

이상을 요약정리

서문

김의환 전 총신 총장, "교회 개척해 목회"

한국 장로 교회 총회 설립이 100주년을 맞은 가운데, 그 신학적 뿌리를 찾고자하는 시도가 있어왔다. 다수의 중론은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이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김의환 박사가 {한국 교회의 신학의 역사적 조명}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초기 한국 장로교회는 미국 북 장로교와 남장로교, 호주 장로교, 캐나다 장로교가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 이유는 선교사 숫자와 사역범위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신학을 살펴보므로써 한국 장로교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 장로교 신학의 뿌리는 근본주의와 보수적 복음주의라는 관점, 미국 장로교회 19세기 역사 중 구학파와 신학파의 분리, 청교도 개혁 신학 등 3가지 관점이 있으나 한국 신학 교수들의 신학적 논문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유는 자신들의 신학적 영향, 원자료를 사용하지 않거나 무시, 당시 역사와 신학을 정확히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정확한 역사적 자료를 추가해서 신학적 뿌리를 밝힌다.

 

본론

근본주의

함북 경흥 출신 장공 김재준(1901~87)

김재준 박사는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이 미국의 근본주의라고 말했는데, 선교사들은 이에 따라 교리 제일 주의를 강조했다

그리스도교를 제대로 믿으려면 무엇보다도 교리, 신조를 시인해야 한다!” 

1. 예수의 동정녀 탄생

2.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3. 피로써의 속죄

4. 성경의 절대 무오성 

이상이 그 내용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김재준은 선교사들의 신학적 태도가 일방적,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다

서정운은 김재준의 의견에 대해서 한국 장로교도 편협하고, 고집스럽고, 반계몽적이며, 교파주의적인 것으로 돌리기 위함이라고 비평했다. 서정운은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초기 선교사들의 활동시기에는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초기 선교사들은 신학 사상 논쟁이 아닌 한국의 복음화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정운

미국에서 근본주의 운동은 개신교 그룹들이 성경적 근거를 둔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서 1909년도부터 시작한 운동으로써, The Fundamentals라는 소책자를 발행했고, 근본적 5개 교리를 변호했다. 미국 장로교는 1910, 1916, 1923년 총회에서 5개의 교리를 근본적 교리라고 했다. 한국 초기 장로교회의 신학은 1910년 이전에 이미 형성됐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근현대교회사 15주차 3 - 인본학문이 된 복음주의

 리처드 큐베득스는 신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 임에도 1976년 [세상적인 복음주의라는 책에서성공지상주의세속 물정에 능하고과학에 문을 열어제끼고세상 문화 수용세속적 성향 수용내세보다 현재를 더욱 중시하나님을 세속적으로 이해보편주의자유주의자들과 협력넓어지는 신학으로 비판했다

예컨대 복음주의에서 구도자를 위한 예배를 만들어냈는데원래 성경에서는 좁은 길과 문을 찾으라고 하는 가르침을 떠나서인간 감정을 부추기고흥미위주로 바꿔버렸다오락 전도는 사람을 찌르는 회개를 말하지 못하게 됐다.


내적치유는 영적 치유가 아닌 심리치료로 바뀌어서마이클 호톤은 복음주의는 구원에서 자기 존중으로 바꿨다라고 지적했다.디지 하트도 복음주의는 사회과학이 복음주의 신학의 뼈대에 살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복음주의는 선동과 경영학마케팅에 능한 목사만을 내놓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그런데 이런 방법론이 성경 말씀에서 많이 벗어나기 때문에비성경적 수단을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초자연적 역사를 하실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결과적으로 복음주의는 시장경제원리에 빠져서 교회론이 무너졌다고남침례교 신학교의 학장인 알버트 몰러가 지적했다.

"한국교회, 자본주의적 복음주의 수용"

데이비스 내쉬는 거룩윤리가 실종한다고 지적했다

설교는 세속 가르침(인문학)을 흉내내고전도는 외판원을 흉내낸다목회 상담은 사회보장 상담원을교회의식은 법정의 형식적 절차를교회 프로그램은 세속 조직의 경영방식을 흉내낸다실질적으로 목회자가 하는 모든 일은 세속의 사본이다.” 

데이비드 웰스는 다음처럼 지적 했다

"교회는 회중의 느낌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비즈니스가 시장에서 소비자의 니즈를 발굴하고 상품을 팔 듯이 한다교회 활동과 경험문화적 설비교회의 메시지가 상품이 돼서교회를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구원이 아니게 만든다

전도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사라지고교회는 취미 동호회의 부수적인 형태로 무너졌다자유주의자들의 문화적 성공을 복음주의가 그대로 배워서 교회를 성공적 기업으로 바꾼다교회는 개인적 웰빙과 직업화로 바뀌었다."

 


칼 트루만은 복음주의가 정통 교리를 버리고 느낌과 감상에만 초점을 맞추고초교파 운동을 벌여서 신학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지적했고복음주의가 자유주의랑 결국 똑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개혁 신학에서는 복음주의 신학을 인본주의적 바벨탑 쌓기로 본다왜냐하면 하나님이 끼어들 틈이 없이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놓고하나님 이름만 빌리기 때문이다

개혁 신학에서는 복음주의를 개신교 신학으로 교리는 비슷한데뭔가 끝이 다른 이단(異端)의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자본자유주의가 공산주의에게 심판받는 이유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근현대교회사 15주차 2 - 성공만능을 부추긴 복음주의

 오켄가는 개혁신학을 공부했지만라디오 전도자로 유명한 찰스 풀러를 만나므로써 신학방향을 바꿨다. 돈은 아무 걱정 말라당신은 신학교 세우는 데에만 집중하라!”는 찰스 풀러의 말에 오켄가는 수락했다찰스 풀러는 라디오 선교와 재정을 모으는 은사가 충만해서 가능했다

1947년 풀러 신학교를 오켄가와 풀러가 공동설립했는데교수들은 프린스톤 신학교와 정통의 맥을 같이 하고 싶었다그러나 말스덴이 프린스톤은 구학파이지만풀러는 신학파라고 정체성을 천명했다근거는 신학파는 부흥을 추구하고전도를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구학파는 개혁신학을 추구했으나 신학파는 세미펠라기안을 따랐다그럼에도 풀러 신학교는 특정교단에 한정되지 않았다프린스톤 신학교는 PCUSA 장로교이다그럼에도 PCUSA 목사생도 상당수는 풀러신학교를 선호하며한국은 장로교 통합측이 풀러를 선호한다.

 

미국장로교 (PCUSA), 동성결혼 법안 승인 발효

1947년 풀러 신학교의 교장이 된 칼헨리로 인해 자유주의 색채가 짙어졌다

빌리 그래함의 사역은 풀러신학교가 있는 파사데나의 근처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됐다따라서 풀러 신학교는 빌리 그래함과 함께 성장했고빌리 그래함을 풀러신학교의 채플 설교자로 자주 초대한 오켄가 또한 유명해졌다

칼 헨리는 사회주의 운동으로 가려고 했으나오켄가가 영입한 빌리 그래함이 풀러 신학교를 대중적 전도 집회로 방향을 바꾸므로써칼 헨리는 변방으로 밀려났다.


1965년 도널드 맥가브란이 교회 성장 연구소를 풀러신학교로 옮기면서교회성장운동이 복음주의의 핵심위치를 차지했다그 영향으로 1974년 로잔 언약에서 교회성장이 강조되게 했다.보다 효과적으로보다 빠르게 전도가 일어나게의 모토는 찰스 피니의 실용적 전도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맥가브란은 전도와 선교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교회성장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교회성장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봤고성장되지 않음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사회학을 교회 성장에 중요한 도구로 간주했고그는 이를 거룩한 실용주의라고 불렀다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항상 사회학적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실례로 문화인류학을 중요시 했고선교가 문화 인류학에 끼워맞춰지기 시작했다.

개신교 선교 인물사(4) 도날드 A 맥가브란(1897-1990)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전도시키기 위해서 피플 무브먼츠라는 것을 개발했다개개인을 강조하지만상호작용을 통해서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집단 개종이 된다고 봤다

집단 개종은 AD.315~AD.500 년대에 유행하는데이는 통치자가 개종을 하면 딸린 백성은 강제 개종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역사신학자들은 폐해가 심각했다고 본다왜냐하면 다수의 백성은 이방종교를 믿는 상태에서 아무 생각없이 기독교로만 종교생활을 바꿨기 때문이다그래서 로마 카톨릭에는 이방종교의 색채와 풍습이 그대로 들어와서 혼합주의가 지배적으로 바뀌었다

피터 와그너는 동질성 단위 이론을 피플 무브먼츠에 이식하므로써 이론적 토대를 더욱 성장시켰다간단하게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예부터 내려온 지혜를 교회 성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신사도운동’ 이끌던 피터 와그너 박사, 21일 별세

근현대교회사 15주차 1 - 교회 세속화의 뿌리인 복음주의

근현대교회사 15주차

복음주의

1943년에 NAE가 태동한 모임이 1947년 풀러 신학교, 1949년 빌리그래함 목사가 복음주의에 가담했다. 신학적 뿌리는 웨슬리에서 찰스 피니로, 헤럴드 옥켕가와 칼 헨리, 빌리 그래함으로 이어진다. 우파로는 ICC, 좌파로는 칼 헨리로 연결된다1960년대부터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이 복음주의를 기반으로 가르쳤다. 1989년에는 풀러 신학교가 오순절 교파에 잠식돼서 은사주의로 방향을 바꾼다

21C의 문턱에서 마크 놀, 베빙턴과 같은 신학자들이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다시 세웠다. 자유주의에 반대해서 근본주의가 나타났고, 근본주의에 반대해서 복음주의가 나타났기 때문에, 복음주의는 세속화에 취약하다.


넓은 의미에서는 18C의 영적 대각성의 신앙 전통을 복음주의로 보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NAE의 후손으로 본다. 코넬리우스 반틸은 1960년부터 현대 복음주의를 신복음주의로 불렀고, 1980년대의 프란시스 쉐퍼가 신복음주의라고 명명함. 21C부터는 그냥 복음주의라고 말한다

데이빗 베빙톤은 복음주의에 신학이 없음을 간파하고, 4가지 외형적 형식만 갖추면 복음주의로 퉁치기로 했다. 알미니안과 칼뱅주의를 따지지 말자고 했다. “1. 회심 2. 성경 3. 평신도 사역 4. 그리스도의 죽으심 만 말하면 복음주의이다. 그런데 이 안에 세부적으로 제한속죄, 일반속죄를 포함한 신학적 논쟁은 묻어둔다.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 함께 자유주의자들과는 대항하지만, 근본주의와 달리 성경을 세상학문으로 해석하고, 실용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리처드 큐베득스는 "복음주의자들은 세상기준으로 존경받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복음주의는 세상에 문을 열어서 사회참여와 과학수용을 강조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조지 말스덴은 장로교의 신학파의 신학적 전통인 세미 펠라기안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복음주의를 평가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효과적 잔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성령의 일하심을 간과하게 됐다. 근본주의자들과 달리 초교파적, 포괄적 자세를 취하게 됐다.

근현대교회사 14주차 2 - 음란과 방탕의 WCC

 1961년 뉴델리에서 3차 WCC 회의가 열렸는데이들은 영혼구원을 버렸고대륙별 토론을 해서 유럽은 샬롬을 선교의 목적으로북아메리카 그룹은 인간화를 목적으로 뒀다

성경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왜곡와전하므로써전도와 교제를 혼동하고개인들을 우상귀신 및 이방종교에서 구원해내지 않고 똑같은 친구로 전락시킨다

고전2:4에서 복음의 가르침을 전달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이 있는데이를 깡그리 무시하므로코넬리우스 반틸은 이렇게 말했다불신자와 다른 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불신자를 감명전도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속된 말로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도 술담배 하고바람 피는 그저 그런 놈들이여세상사람보다 교회사람들이 더 해뭐하러 교회가?” 라는 주장을 낳게 된 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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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사역을 경제적 자유에 목표를 두게 해서 돈에 노예가 되게 만들고인간의 존엄성에 목표를 둬서 인간 스스로를 우상화시켰다그 결과 교회를 세속화인본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신본주의에서 등 돌리게 만들었다

인간의 소외에서 연대를 추구하는 게 구원이라고 말하므로써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교회를 부패한 인간성의 바벨탑으로 바꿔버렸다

실망한 개인을 소망으로 이끌겠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못하게 만들고 다른 소망을 찾게 만들었다그런데 이러한 활동은 신칼빈주의도 맥을 같이 하며이 들의 구원관은 성경 말씀에 전혀 뿌리를 두지 않고 있다이 들은 전도하는 교회가 아닌정치적 세력이 돼버렸다.


WCC를 반대한 복음주의자들도 로잔대회에서 그닥 다른 것을 주장하지도 않았다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며절대 원죄를 말하지 않고문화와 교양학습복지 기관으로 바뀌었다고전2:4를 복음주의 교회가 믿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복음을 인간적 방식으로 전달하려는 그 순간부터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이끌 수 없다.” 라고 코넬리우스 반틸이 지적했다즉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교회를 보면거기 가봐야 특별히 좋게 바뀔 것도 없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교회에 더욱 안가고전도가 더 안된다는 뜻이다. WCC나 그에 반대한 복음주의나 교회를 세상에 물들어버려서 그저 그런 시시껄렁한 교회로 전락했다.


칼 바르트는 젊은 날에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말했지만그는 훗날 시간이 지나서 교의학이라는 책에서불신자와 이방종교인들 중에도 다른 구원의 빛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하므로써 변절했다. 1962년 카톨릭이 주최한 이방종교를 포용하기 위한 바티칸 II 회의에 초대받은 유일한 개신교 신학자가 칼 바르트이다.

WCC는 계속 꾸준히 회의를 했다. 1971년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에서 회의를 가졌는데세계 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그것을 설립하여 세계 모든 종교들과 평화롭게 살자며다른 종교들을 위해서 기독교의 종교 자원들도 기꺼이 내줄 것을 결의했다

1975년에는 케냐 나이로비와 1977년 태국의 창마이 회의에서 전세계적인 공동체로 확장시켜서종교를 문화의 범주로 떨어뜨리고 생명과 구원의 시각을 제거했다마침내는 다른 종교를 창조한 것도 하나님이라고 핑계를 대고타종교인들을 동반자로 보게 됐다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이 아니라고 말하게 됐다.

교회 헌금으로 운영되는 한신대, 불당에서 신입생에게 불교체험으로 오리엔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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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게 어린 시절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원인 
  1. 신학자들이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도외시 하므로말로써 다른 종교와 언쟁으로 이기지 못함
  2. 식민지 사람들이 제국주의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서구제국주의의 유산인 교회에 말 안들음
  3. 서구의 목사들이 겸손히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고, 인본주의적 방법 동원을 하므로, 정치적해결을 추구
  4. 많이 배운 목사와 신학자들이, 길 거리와 일상생활에서 낮은 자세로 전도하는 것을 부끄럽고 귀찮게 여김.
  5.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신학 지식만으로 구원받는다고 착각하므로, 결국 자기 꾀에 스스로 걸려넘어져서, 반역적 신학이론을 탄생시킴.
  6. 세속적 신학 이론과 전도하지 않음으로 서구에서 교회가 무너지는데, 약화되는 사람의 인기를 모으기 위해서 탈종교화라는 그럴듯한 교리를 갖고서 다른 종교들과 연대
  7. 전도하기는 창피하고, 기도하기에는 믿음없어서, 계속 회의만 추구.

연예계는 시한부 인생 14 - 연예인들이 제대로 잘 살려면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