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9일 화요일

근현대교회사 15주차 1 - 교회 세속화의 뿌리인 복음주의

근현대교회사 15주차

복음주의

1943년에 NAE가 태동한 모임이 1947년 풀러 신학교, 1949년 빌리그래함 목사가 복음주의에 가담했다. 신학적 뿌리는 웨슬리에서 찰스 피니로, 헤럴드 옥켕가와 칼 헨리, 빌리 그래함으로 이어진다. 우파로는 ICC, 좌파로는 칼 헨리로 연결된다1960년대부터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이 복음주의를 기반으로 가르쳤다. 1989년에는 풀러 신학교가 오순절 교파에 잠식돼서 은사주의로 방향을 바꾼다

21C의 문턱에서 마크 놀, 베빙턴과 같은 신학자들이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다시 세웠다. 자유주의에 반대해서 근본주의가 나타났고, 근본주의에 반대해서 복음주의가 나타났기 때문에, 복음주의는 세속화에 취약하다.


넓은 의미에서는 18C의 영적 대각성의 신앙 전통을 복음주의로 보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NAE의 후손으로 본다. 코넬리우스 반틸은 1960년부터 현대 복음주의를 신복음주의로 불렀고, 1980년대의 프란시스 쉐퍼가 신복음주의라고 명명함. 21C부터는 그냥 복음주의라고 말한다

데이빗 베빙톤은 복음주의에 신학이 없음을 간파하고, 4가지 외형적 형식만 갖추면 복음주의로 퉁치기로 했다. 알미니안과 칼뱅주의를 따지지 말자고 했다. “1. 회심 2. 성경 3. 평신도 사역 4. 그리스도의 죽으심 만 말하면 복음주의이다. 그런데 이 안에 세부적으로 제한속죄, 일반속죄를 포함한 신학적 논쟁은 묻어둔다.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 함께 자유주의자들과는 대항하지만, 근본주의와 달리 성경을 세상학문으로 해석하고, 실용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리처드 큐베득스는 "복음주의자들은 세상기준으로 존경받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복음주의는 세상에 문을 열어서 사회참여와 과학수용을 강조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조지 말스덴은 장로교의 신학파의 신학적 전통인 세미 펠라기안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복음주의를 평가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효과적 잔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성령의 일하심을 간과하게 됐다. 근본주의자들과 달리 초교파적, 포괄적 자세를 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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