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vites in the Gentiles united by GOD /
the meaning of church name : Nations! Peoples! praise Jesus Christ! /
Presbyterian Protestant Christian in South Korea /
Genre : Prophecies in English, CCM, Entertainment, Histories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은 과거의 일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두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역사에서 나와 우리의 체험이 되야 한다. 성경에서 나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는가? 하나님이 행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행위를 통해 어떤 이익을 얻었는가?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 스토트의 주장대로라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실제적으로 우리 삶 속에서 증거돼야 하며, 성경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므로써, 성경 기록이 사실임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유럽과 한국의 신학계는 하나님을 찾는 자나 만난 자들을 모두 이단정죄해오고 있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서인천 주님의 교회, 덕정 사랑의 교회, 사랑하는 교회, 아시아 교회 새생활 훈련원, 데이빗 오워 목사, 티비 죠슈아 목사 등등.
물론 신사도 운동과 베레아 교단처럼 이상한 주장과 마귀에게 속은 교리를 주장을 고집하므로 이단정죄를 불러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위험성을 핑계로 성령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모든 활동을 이단으로 몰아붙여서는 안됩니다. 이단은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사람과 아예 버려진 사람으로 섞여 있지만(이사야55:7), 성령사역을 훼방하는 사람은 회개조차 불가능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태12:32
예수님께서 “은사 사역자들이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외침이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게 하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부르짖는 기도에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라고 제게 말씀(이사야55:10~11)하시며 다음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받을 보복에 대해서 절대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전달을 확실히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근거 말씀은 마태복음 10:28에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환상은 이미 다른 숙제에 제출했습니다. 아래 그은 줄 안에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선언에 국한되지 않는다. 복음은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것도 확언한다. ..... 행동도 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야 하는 것이다. ...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셨으며, ..... 죄로부터의 구원이었다. 이 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오신 주된 이유이다.”
이 문구는 인간의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며 구해달라는 성도에게는 더더욱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는 뜻입니다.
1997.12~1998.2 사이에 제가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귀신에 들려서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낮에 하나님께서 제게 나타나셔서 자기 말을 따라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를 살려주시는 분에게, 그가 누구든지 상관없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그리고 제가 따라하자마자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네가 불교 신자로서 그렇게 싫어하는 존재란다! 너는 이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종이 돼야 한다!”
저는 처음에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주화입마走火入魔로 머리에 뜨거운 피가 거꾸로 치솟고 몰려들어서 두통을 끊임없이 장기간 앓고 있던 제게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피가 몸 아래로 내려가고 머리가 시원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불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해야 되나?’하는 고민 중에 어느 날 밤 귀신이 제게 자살하라며 현충원 국립묘지로 끌고 갔습니다. 그 컴컴한 밤중에 온통 밝은 빛을 뿜어대므로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스스로 태양(太陽)같은 존재의 사람 형상이 제 앞에 나타나서 자살을 말렸습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성경말씀들(다니엘 10:6~11, 마가복음 9:3, 요한계시록 1:10~20)이 펼쳐지고,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23~25의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졌는데, 그와 동시에 현대 한국 전역의 기도 동굴, 기도원, 작은 개척교회, 중대형 교회 할 것 없이 목사와 성도, 신학생들이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즉 출애굽기에 적힌 상황이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나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열렬히 부르짖어 찾는 이들은 은사자들이다. 이 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은사자들에게 이단판정을 내려서 기독교계에서 생매장을 시키고, 신학교와 개신교단들이 은사자들을 받아주지 않고 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 성령의 종들을 구해주려고 한다. 출애굽의 역사를 한반도에서 다시 재현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완전히 우리의 이해 차원을 넘어선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의 지성이 다른 과학 영역에서는 아무리 놀랍고 효과적인 도구라 하더라도 이 부분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성에 이르지 못한다. 올라갈 사다리가 없는 것이다.욥11:7”
존 스토트의 주장은, 우리 인간의 이성, 지성을 통한 추론과 판단력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이단과 이방 종교까지 포함해서 너도 나도 뭔가를 봤다면서 거짓말을 지어내므로, 다 믿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이 이성적으로 기억, 연상, 추론 등의 사고과정으로 만들어낸 교리는 엉뚱한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이며,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나셔서 보여주신 계시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학은 다른 학문처럼 객관타당성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주관적 개인의 체험을 다 배제한다면, 결국 손에 잡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장님이나 식물인간처럼 실체 파악에서 전혀 동떨어진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 계시 중에서 성경에 적힌 계시를 특별계시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 존 스토트는 27쪽에 아래처럼 말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아직 이보다 더 친밀하고 실제적인 계시가 필요하다. ..... 이 것은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 특별한 민족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특별 계시라고 한다. ........ 성경이 이 계시를 설명하고 기술하는 방법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고 하는 것이다”
존 스토트의 이러한 서술은, 일반 개신교 조직 신학에서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일반 개신교 조직 신학이 도로 전세계의 일반 개신교단을 다시 찌르는 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개신교는 성경의 66권을 믿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전해지는 성경은 외경과 위경을 포함해서 일백권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신구약 시대에 채택되지 못한 이유는 성경을 쓴 언어가 히브리어가 아니기 때문에, 혹은 당시 바리새인들의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신약시대의 경전에 엣세네 파 및 헬라 철학, 그 밖의 이방 종교의 교리가 혼재됐기 때문에, 혹은 유명인의 이름을 빌려서 다른 교리를 삽입, 광고, 홍보하기 때문에 뺐습니다.
거기서 구약 성경의 39권은 구약시대 유대인 바리새인들이 정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발생한 기원은 느헤미야, 에스라 시대에 복귀한 유대인 자손 가운데에서 유다 전국에 율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자원, 착출된 사람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이 부족, 족보의 불분명성으로, 수가 너무 적어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바리새인은 구약 성경에 아무 근거도 없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정경 결정 또한 성경적으로는 정통성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아론 자손 중 사독 제사장의 자손인 사두개인들이 정통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 시대에 만들어진 모세 5경만을 정경으로 치고 나머지 선지서와 다른 경전들은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두개인들은 오늘날 개신교단과 같이 자신들의 입지가 세워지기 전에 지어진 경전만 인정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개신교를 비판하는 비수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경 결정의 주체자가 구약 성경에 아무 근거없는 사이비적 존재인 바리새인이거나, 구약성경에 근거있는 정통성있는 사두개인은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이 전한 하나님의 생생한 시대적 음성을 이단시해서 망해버린 과거 전력이, 모두 개신교에서 재현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단이 현재 성경 66권만을 인정하고 나머지 하나님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과거 사두개인들도 모세5경만 인정하고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유다는 멸망했고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선지서들을 대거 정경에 편입합니다.
더 나아가 가나안 지방이 로마에 항거하다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성전이 불타 무너진 이후, 성전에 근거해서 지위가 보장받았던 사두개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최후에는 신약을 이단으로 보는 바리새인들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서는 버려졌습니다. 마태8:11~12
존 스토트는“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선지서의 말씀을 인용했는데, 오늘날 전세계 개신교단은 그 말을 예언은사자, 입신체험자들이 쓴다고 이단판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이 다 완성됐고,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 시대를 끝내고 예수님을 통해서 다 완전히 말씀하셔서 계시를 완성시켰는데, 왜? 더 성경이 필요하냐?”
그런데 그 주장은 사두개인들이 똑같이 써먹으면서 모세 5경 밖에 더 필요한 경전이 없다고 주장하며, 선지자들을 핍박한 논리와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서 바리새인이 주축이 돼서 구약 39권을 대략 완성했습니다. 신약 교회에서 긴 성경을 상, 하로 나누고 시가서와 몇 개 역사서를 쪼개므로, 바리새인들이 정한 구약 성경 숫자만 달라졌을 뿐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선지자를 인정하지 않았어도, 결국 바리새인들이 선지서를 복원하고 인정했듯이, 바리새와 사두개, 서기관들이 예수를 부정했어도 신약성경이 쓰여졌습니다. 그와 같이 성경 시대가 끝나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계시를 부으시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존 스토트가 27쪽 하단부에 써놨습니다.
“하나님이 생각을 말로 표현해 주시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예언자에게 ‘주의 말씀이 임하셨고’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리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5경을 주셨음에도 활동을 끝내지 않으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습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부활시키셨음에도 하나님께서는 활동을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께서 오심을 예언하셨고, 그 성령님이 미래 성도들을 통해서 장차 일을 예언하실 것과 더 큰 일을 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2~17
그래서 사도부터 초대 교회 성도와 지도자들, 중세 교회를 거쳐 현대 지금까지 삼위 하나님을 만나고 천국과 지옥을 갔다오며, 성도들이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많은 말씀을 듣고, 기적이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고 행하셨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말씀하셨고 무엇인가 행하셨다. 이것은 기독교가 단지 경건한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종교 사상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규칙이나 일련의 도덕적 훈계들을 모아 놓은 것도 아니다. ...... 이는 인간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보내온 초대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것에 대한 최고의 선언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복음서에 적혀 있는데, 그는 십자가 구속뿐만 아니라, 치유, 축사, 예언, 능력으로 먹이시는 기적과 천국에 들어가는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 선언이 성경 시대로 끝나고 이 시대에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인도와 보호하심을 우리 시대에는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직무유기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존 스토트의 주장은 이 시대 개신교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복음주의를 표방하며, 은사주의와 신비주의를 반대하는 목사들의 상당 수는, 주로 설교를 통한 사람들에게 감성팔이나 인생의 교훈, 세상과 타협한 도덕적 덕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가르치면서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만을 받고자 합니다.
그렇게 경건한 체하는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모아서 각종 헌금 이름을 만들어내서 돈 뜯고, 큰 건물 만들고, 그 건물로 다시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자기 자식에게 세습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상기 서술은 은사주의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복음주의만을 거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가 병이 들거나, 귀신들리거나, 사업이 파산하거나, 가정이 깨지거나, 자식이 탈선하는데, 이에 대해서 전혀 손을 써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병원, 정신병원 등에 가라고 하거나 상담이 아무 도움이 안되고 힘도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얘기한다고 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기적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비판만 하므로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가정이 회복된 뒤에는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기적을 이단시하므로, 도움받은 성도들이 입 다물거나 은사주의 교회로 갈아타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 사상과 성경책 속에서 도덕적 훈계만을 뽑아서 강의만 한다면, 유대교의 바리새와 사두개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가르침에 젖은 유대교는 종교적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는 말라기 선지서 기록이 있습니다. 말라기 1:6~13
우리 개신교가 카톨릭과 달리, 성경만을 믿고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존 스토트의 지적을 피할 수 있을까요? 당장 장 칼뱅과 마르틴 루터 같은 종교개혁자들과 아브라함 카이퍼, C.S 루이스 등의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을 신주(神主)단지 모시듯 하니, 우리는 바리새 파처럼 사람이 세운 종교 사상(마태15:3)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개신교에서 입신 체험자들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들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며, 환상과 계시를 부정함을 자랑하는 것은, 같은 논문 6쪽에 있는 사두개인의 특징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최초에 기록된 유대 모세 5경 이외에 다른 경전은 인정하지 않아서 구약의 선지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유대와 이스라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의 예언도 그 국민들이 이단, 사이비로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두개인은 그 전통으로, 구약 선지자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과 예수님 앞에서도 똑같이 저지르므로, 예수님께서 마태11:20~24에서 그토록 저주를 하셨던 것입니다.
바리새, 서기관, 사두개인 모두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사도, 전도자의 말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실질적으로 전해주지 못하고, 단순히 도덕, 교훈, 사상 강의만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특징은 존 스토트가 절대로 기독교가 아니라는데, 오늘날 개신교단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학검증(1)] 기적중지론은 사이비 신학이다
오늘날 개신교단에서 뭔가 은사와 기적만 나타나도 학(虐)을 떼고 이단판정을 내리고, 여론몰이로 마녀사냥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교회에 성도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기껏해야 빈말에 가까운 상담과 기도를 해주거나, 돈을 모아주는 것 뿐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시행했던 권위있는 실질적 도움(사도행전 3:6)은, 정통 개신교단이라고 자처하고정통신학을 자랑하는 교회와 목사는 줄 수 없을뿐더러, 이단취급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통 신학을 자랑하는 개신교회나 과거 은사주의로 시작했지만 개척교회 시절의 창립자와는 다른 무능한 2세 목회자가 운영하는 대형교회는 인간에게 줄창 돈과 시간, 노동력만을 요구했지, 존 스토트가 말하는 삼위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언을 경험하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이 “교회가도 별 거 없다”면서, 교회 권위를 땅 바닥에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그분은 계시에서도 주도권을 잡아 자신의 본성과 뜻을 인류에게 알리셨다 (히1:1~2). ...... 그분은 또 구원에서도 주도권을 잡으셔서 인간을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다 (눅1:68).”
저자가 위에서 적은 이야기는 현대 역사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통치되기 때문에, 세계 역사의 흐름은 하나님 뜻대로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 미래 일들을 과거 기독교 성도들에게 다 알려주셨는데, 그 근거 말씀은 아모스서 3:7입니다.
예언은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고린도전서를 포함한 각종 신약성경에서 장려되는 은사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이 미래를 예언하는 게 아니라는 현대 신학의 주장에 대해서도, 성경(이사야 41:21~23, 44:7 / 행21:8~11)이 반박합니다. 사도 바울조차, 한국 개신교단이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환상과 음성을 듣고 예언하는 직통계시 예언자였습니다.행27:9~11, 22~26
종교개혁시기로 넘어가면, 노스트라다무스는 자신의 예언서 [제세기]의 서문과 본문 내용에 자주 자신의 예언 출처는 삼위 하나님이며, 성령님께서 예언을 부어주셨다고 적어놨습니다. 그는 차기 교황이 될 떠돌이 사제(펠리체 베리티, 식스토 5세)에게 무릎 꿇어 입 맞추며 경배하는 행위를 벌이면서 자신이 비록 유대인이지만,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개종했다고 늘 강조했습니다.
현대의 예언자 에드가 케이시 또한 성모 마리아를 만난 뒤에 성령의 도움으로 예언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에드가 케이시와 성모 마리아의 만남
단지 세상에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예언이 압도적이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안에 나오는 삼위 하나님과 기독교를 부정해야 하므로 감출 뿐입니다. 거기에 개신교 목사들도 속아서 동조할 뿐입니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일은 현대 음악사에도 저지르고 있습니다.
신상언 목사는[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책을 저술했고, 뉴에이지 음악과 음악가들을 자기 마음대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마음대로 뉴에이지라고 낙인찍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루마, 조지 윈스턴, 카톨릭 신자인 엔야, 정교회 신자인 야니와 반젤리스는 분명히 자기 정체성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한국 언론사에 항의까지 했으며, 전세계적으로 이들 음악가들이 문제를 제기한 후에, 신상언 목사는 사회에서 잊혀졌습니다.
이러한 기적과 계시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이뤄진 것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비록 카톨릭이라서 자기 예언 속에 장 칼뱅과 루터에 적대적인 묘사를 해놨지만, 그 노스트라다무스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프랑스에서 개신교단인 위그노가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생시(生時)에 프랑스의 발루아 왕조가 씨가 말라가므로, 차기 왕가는 카톨릭의 수호자이자 최대 유력가문인 기스 집안이 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공주 중에 마르그리트는 기스 가문과 사귀고 있었는데, 이를 막고 부르봉 귀족 가문에 시집 보낸 이는 프랑스 여왕 카트린 드 메디치였습니다.
그 이유는 노스트라다무스가 프랑스 여왕에게 부르봉 가문의 소년(나바르의 앙리, 앙리 4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이 차기 프랑스 왕이 될 것입니다.”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부르봉 왕가는 개신교로 개종한 귀족 집안으로서, 그 영지에서 프랑스의 위그노들을 대거 수용하며, 장 칼뱅의 직업교리에 따라 상공업을 발전시켜서 부르봉 가문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기스 가문과 발루아 왕조가 프랑스에서 주도하는 처절하게 벌어지던 개신교 탄압이, 부르봉 가문이 왕실이 된 덕에 루이 14세 시대까지 저지될 수 있었습니다.
루이 14세 시대에 재개된 박해에서 하나님께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를 준비하셔서, 위그노들을 대거 보존하셨습니다. 루이 14세가 쫓아낸 위그노들을 프리드리히 2세가 프로이센으로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는데, 프로이센은 개신교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8] 독일 베를린 한복판 우뚝 선 프랑스 교회… "관용을 베풀라" 하네
요약하면, 개신교 신학자들이 극적으로 묘사하는 구속사 속에서, 종교개혁의 발발과 개신교도들의 생존, 부흥조차 예언사역자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별로 없으며, 그 예언의 영향력은 개신교도 존립자체를 결정지을 만큼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께서 활동하시기 때문이며, 성령님의 사역인 9가지 은사와 기적은 역사 속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역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