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 서기관, 사두개인의 환생
책의 24쪽에 적힌 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고 행하셨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말씀하셨고 무엇인가 행하셨다.
이것은 기독교가 단지 경건한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종교 사상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규칙이나 일련의 도덕적 훈계들을 모아 놓은 것도 아니다. ...... 이는 인간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보내온 초대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것에 대한 최고의 선언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단지 경건한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종교 사상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규칙이나 일련의 도덕적 훈계들을 모아 놓은 것도 아니다. ...... 이는 인간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보내온 초대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것에 대한 최고의 선언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복음서에 적혀 있는데, 그는 십자가 구속뿐만 아니라, 치유, 축사, 예언, 능력으로 먹이시는 기적과 천국에 들어가는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 선언이 성경 시대로 끝나고 이 시대에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인도와 보호하심을 우리 시대에는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직무유기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존 스토트의 주장은 이 시대 개신교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복음주의를 표방하며, 은사주의와 신비주의를 반대하는 목사들의 상당 수는, 주로 설교를 통한 사람들에게 감성팔이나 인생의 교훈, 세상과 타협한 도덕적 덕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가르치면서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만을 받고자 합니다.
그렇게 경건한 체하는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모아서 각종 헌금 이름을 만들어내서 돈 뜯고, 큰 건물 만들고, 그 건물로 다시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자기 자식에게 세습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복음주의를 표방하며, 은사주의와 신비주의를 반대하는 목사들의 상당 수는, 주로 설교를 통한 사람들에게 감성팔이나 인생의 교훈, 세상과 타협한 도덕적 덕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가르치면서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만을 받고자 합니다.
그렇게 경건한 체하는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모아서 각종 헌금 이름을 만들어내서 돈 뜯고, 큰 건물 만들고, 그 건물로 다시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자기 자식에게 세습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상기 서술은 은사주의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복음주의만을 거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가 병이 들거나, 귀신들리거나, 사업이 파산하거나, 가정이 깨지거나, 자식이 탈선하는데, 이에 대해서 전혀 손을 써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병원, 정신병원 등에 가라고 하거나 상담이 아무 도움이 안되고 힘도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얘기한다고 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기적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비판만 하므로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가정이 회복된 뒤에는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기적을 이단시하므로, 도움받은 성도들이 입 다물거나 은사주의 교회로 갈아타야 합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얘기한다고 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기적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비판만 하므로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가정이 회복된 뒤에는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기적을 이단시하므로, 도움받은 성도들이 입 다물거나 은사주의 교회로 갈아타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 사상과 성경책 속에서 도덕적 훈계만을 뽑아서 강의만 한다면, 유대교의 바리새와 사두개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가르침에 젖은 유대교는 종교적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는 말라기 선지서 기록이 있습니다. 말라기 1:6~13
우리 개신교가 카톨릭과 달리, 성경만을 믿고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존 스토트의 지적을 피할 수 있을까요? 당장 장 칼뱅과 마르틴 루터 같은 종교개혁자들과 아브라함 카이퍼, C.S 루이스 등의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을 신주(神主)단지 모시듯 하니, 우리는 바리새 파처럼 사람이 세운 종교 사상(마태15:3)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동철 목사❚총회교육위원회 선임연구원 ․ 샘물교회] - [배경을 알면 성경이 보인다]에서 5쪽에 서술된 바리새와 서기관의 특징과 똑같습니다.
한편 개신교에서 입신 체험자들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들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며, 환상과 계시를 부정함을 자랑하는 것은, 같은 논문 6쪽에 있는 사두개인의 특징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최초에 기록된 유대 모세 5경 이외에 다른 경전은 인정하지 않아서 구약의 선지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유대와 이스라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의 예언도 그 국민들이 이단, 사이비로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두개인은 그 전통으로, 구약 선지자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과 예수님 앞에서도 똑같이 저지르므로, 예수님께서 마태11:20~24에서 그토록 저주를 하셨던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최초에 기록된 유대 모세 5경 이외에 다른 경전은 인정하지 않아서 구약의 선지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유대와 이스라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의 예언도 그 국민들이 이단, 사이비로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두개인은 그 전통으로, 구약 선지자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과 예수님 앞에서도 똑같이 저지르므로, 예수님께서 마태11:20~24에서 그토록 저주를 하셨던 것입니다.
바리새, 서기관, 사두개인 모두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사도, 전도자의 말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실질적으로 전해주지 못하고, 단순히 도덕, 교훈, 사상 강의만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특징은 존 스토트가 절대로 기독교가 아니라는데, 오늘날 개신교단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개신교단에서 뭔가 은사와 기적만 나타나도 학(虐)을 떼고 이단판정을 내리고, 여론몰이로 마녀사냥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교회에 성도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기껏해야 빈말에 가까운 상담과 기도를 해주거나, 돈을 모아주는 것 뿐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시행했던 권위있는 실질적 도움(사도행전 3:6)은, 정통 개신교단이라고 자처하고 정통신학을 자랑하는 교회와 목사는 줄 수 없을뿐더러, 이단취급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통 신학을 자랑하는 개신교회나 과거 은사주의로 시작했지만 개척교회 시절의 창립자와는 다른 무능한 2세 목회자가 운영하는 대형교회는 인간에게 줄창 돈과 시간, 노동력만을 요구했지, 존 스토트가 말하는 삼위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언을 경험하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이 “교회가도 별 거 없다”면서, 교회 권위를 땅 바닥에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글 모음 위치 : https://blog.naver.com/jative/221640689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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