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3일 일요일

Renaissance and Reformation - Geographical Discovery and Chosun

31. 지리상의 발견과 유럽의 확대
14~15세기에 구면삼각법 발명으로, 지도와 해도의 표기법과 천체의 관측법이 증진되므로 항해술이 발전됐습니다. 원반형으로 알았던 지구가 본래 공모양임을 확립했고, 나침반과 선박 건조 기술의 발달로 먼 바다 항해를 가능케 했습니다. 이러한 과학 발달의 기반 위에, 투르크 제국의 무역 규제, 아랍 해적들의 난립으로 새 항로 개척이 필요했습니다.
 
1460년대에 포르투갈에서 헨리는 아프리카 대륙을 바다를 통해서 한 바퀴 돌았습니다. 디아즈는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발견했고, 바스코 다가마는 더 나아가 인도 서부 캘리컷 항구를 개척했습니다. 보석과 향신료 무역으로 포르투갈은 큰 부를 얻었습니다. 바스코 다가마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점령에 영향을 받아 현재 브라질을 개척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도 뒤늦게 신항로 개척에 동참했으며, 북 아메리카를 각자 개척했습니다.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유럽의 중심바다가 바뀌었고,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투르크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향신료와 귀금속, 원료가 유럽에 쏟아져 들어오므로써 물가의 폭락과 인플레이션을 요동치듯이 경험합니다. 상업의 발달, 탐험모험의 위험분산을 위한 보험업 발달이 금융업과 금융기술을 고도로 발전시킵니다.
 
 
어우야담(於于野譚)
이 문단의 글 또한 책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는데, 칼뱅 교리에서 선택과 유기에 관한 간접적 글이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이유를 담고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임한 환상입니다. 그 환상은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1500년대 말엽 즈음에 회자되던 사건 중에 김위(金偉)의 아들이 유괴된 사건은 그 내용이 무척 이상하다. 김위는 개성에서 살고 있는 선비 였는데, 어린 아들이 유괴 당한다. 아이를 유괴한 범인은 아이를 이런저런 술수로 속이고 유인해서 끌어 들여서 같이 길을 나섰는데, 언덕과 비탈을 넘어서 깊은 산속으로 아이를 데려 갔다. 그곳에서 범인은 아이를 어느 캄캄한 바위굴 속에 가둬 두었다. 아이는 나가고 싶어 울부짖었지만, 바위굴은 나갈 수 없게 막혀 있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서움에 울고 떨고 소리를 지르면서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깊은 산 속의 숨겨진 바위굴은 사람은 커녕 짐승들도 알아볼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혼자서 한참을 그렇게 두려움에 떨던 아이는 계속해서 그렇게 했다가 지치게 되고, 점차 배고픔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가 배고픔을 느끼게 되었을 무렵. 바위굴의 통로로 누군가 그릇을 하나 가져다 주었다. 그릇 안에는 달콤한 단술과 비슷한 죽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배고픔에 떨던 아이는 본능적으로 그 죽을 마셨다.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서 아이는 갇혀서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아이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아이에게는 그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음식 그릇 하나가 들어왔다가 나갈 뿐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견디기 어려운 날에는 풀을 엮어 만든 이불 같은 것이 들어오는 변화가 있을 뿐, 아이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말한마디, 빛 한 줄기 보지 못하고 갇힌 채로 계속 매일을 지냈다. 그런 날들이 끝없이 계속 되었다.
 
아이가 발견된 것은 재령의 장수산에서 철광을 캐기 위해 광산을 개발하고 있던 사람이 광산 개발을 위해 굴을 파다가, 우연히 아이가 갇혀 있던 바위굴을 뚫게 되면서 였다. 굴을 파던 사람은 깊은 바위굴 속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아이를 구조했고, 수소문 끝에 아이의 아버지인 김위는 아이를 되찾게 되었다. 아이를 되찾고 나서 보니, 아이가 아무것도 없는 굴 속에 갇혀서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채 오직 매일 죽 한그릇씩만 먹으면서 계속 지냈던 시간은 무려 6년이었다. 아이는 몸은 그런대로 멀쩡해 보였지만, 정신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김위는 온힘을 다해서 아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집에서 노력했지만, 2년 후 아이는 죽었다.
 
도대체, 범인은 무엇 때문에 김위의 아들을 유괴해서, 6년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 가둬둔 것일까? 그리고, 6년 동안 도대체 무슨 사연인지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고 그 어떤 외부와의 접촉도 없이, 하루 하루 끝없이 죽을 먹는 다는 행동만 반복하며 살았던 아이가 끝없이 생각하고 느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성호사설(星湖僿說)
이 문단은 앞서 적은 어우야담의 이야기에서, 아이가 납치된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다른 책 성호사설에 실린 글입니다.
 
1700년대 초반에 기괴하고 섬뜩한 이야기로 항간에 돌았던 소문 중에는 속칭 염매(厭魅)라고 불리우는 끔찍한 물건에 대한 것이 있다. 이 무렵 한 흉악한 범죄자들이 이상한 대나무 통을 하나 매고 다니는 것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부유한 집을 찾아가서 그 대나무 통을 열어서 안쪽을 보여주는데, 그러면 그 집 사람들은 왠갖 정신병을 일으켜 발작하는가 하면, 귀신이나 마귀에 관한 이야기에 미쳐 돌아가게 되고, 그러면 이 범죄자들이 적당한 술수로 돈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대나무 통안에 무엇을 넣어 놓는가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 자들은 우선 남의 집에서 몰래 어린아이를 훔쳐 온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깊은 곳에 어린아이를 가두고 우선은 굶긴다. 그러면 아이는 점차 말라가게 되는데, 아이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매우 맛있고 중독되어 빠져들만 한 음식을 아주 조금만 먹인다. 그러면 아이는 점차 배고픔에 괴로워하면서 음식을 극도로 원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점점 더 온몸이 바싹 마르고 몸이 줄어 들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주 맛있는 음식을 아주 조금씩만 계속 먹인다. 그러다가, 아이가 죽기 직전까지 버틸 수 없을 만큼 흉칙할 정도로 마르게 되면, 조금씩 먹이던 음식을 한웅큼 대나무통 한 중앙에 넣어서 아이에게 준다.
 
그러면 아이는 그 음식을 먹으려고 사력을 다해 대나무 통속으로 기어들어 오는데, 아이의 몸이 매우 마른고 작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무척 작은 대나무 통속에 억지로 온몸을 구겨 넣어서 끔찍한 몰골로 대나무 통에 들어차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박혀 있게 된다. 그러면, 바로 그 순간 날카로운 칼로 번개처럼 빠르게 아이를 찔러서 그 모습 그대로 안에 들어차서 죽게 만든다. 그러면, 좁은 통속에 마른 아이가 끔찍한 몰골로 들어차 있는 "염매"가 완성이 되고, 대나무통 뚜껑을 닫아 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것을 세상에서 그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무서운 모양이라고 말한다.
 
1763년에 사망한 이익은 기록에서 비참하게 죽은 아이의 귀신을 이용해서 협잡을 부릴 수도 있는 술수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조정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로 단속을 했으므로, 당시에는 거의 소멸된 상황이라고 소개 했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이상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인터넷에 다른 사람들이 올려놔서 제가 굳이 다 기억해서 쓰지 않고 그대로 복사해서 붙였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유럽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훨씬 후대에 기록됐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이 이야기와 신대륙 발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백성의 일반적인 풍속을 여유롭게 기록할 수 있는 한글의 발명과 임진왜란 이후에 양반에 대항하는 평민 세력의 의식 성장 이후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흉흉한 조선의 민심과 생활상은 수백년 전, 고려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엉엉 울고 있었고, 예수님도 하나님께 소리쳐 외쳤습니다. 아버지, 사람들이 저를 잘 알지 못해서,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조선은 언제 쯤 저를 믿을 수 있는가요? 아버지, 조선에 추수꾼을 보내소서!”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오른 손을 살짝 들어 흔들어 보인 뒤에 말씀하셨습니다. 알겠다! 내가 콜롬버스를 보내서 길을 열겠다! 가라! 서쪽으로!” 이렇게 복음이 계속 서진(西進)하는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유럽 카톨릭 상황도 조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전도하지 않아서, 복음이 정체돼있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죄를 저지르며 살고 그 피해를 당하며 살다 지옥간다. 그렇게 해서 선택과 유기가 극명히 나타난다. 너희는 해외 선교와 국내 전도를 적극적으로 해서 불신자들의 원망이 없도록 해야 한다.” 불신자들이 지옥에 떨어지면서, 아무도 자기한테 예수 믿으란 말 안했고, 교회에 억지로라도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이들이 스페인 탐험대가 잉카, 아즈텍, 마야 등의 문명을 멸망시키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 기록물들을 모조리 없애고 사람들을 죽였다고 불평하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 답변으로 남아메리카 문명들이 주변 힘 없는 부족들을 쳐서 사람을 납치하고 사람을 제사 제물로 바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들아! 동정할 거 없다! 그들은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는 죄값을 받았을 뿐이다. 이는 사람을 죽여서 제사지내는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망한 것과 같다. 그런 신들과 종교를 기록한 기록물들은 다 없어져야 한다!”
 

Renaissance and Reformation - Intermediate age

28. 중세 말기의 변화와 봉건경제의 쇠퇴

로마 시대에 소수 부자들이 다수 자영농을 착취하며 경제 양극화로 발생한 라틴푼디움이 있습니다. 뒤 이어 프랑크 왕국에서 칼 마르텔이 이슬람을 격퇴시키기 위한 용사들을 모집하려고 만든 은대지 제도가 더해졌습니다. 이 둘은 중세 장원 제도로 이어졌습니다. 역사 속에서 소수의 부자가 다수를 착취하는 질서가 영원할 줄 알았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장원제도가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조선까지 영향을 끼쳐서 조선 북부에만 있었던 온돌을 한반도 전역으로 퍼뜨린 소빙하기가 있었는데, 유럽도 마찬가지라서 냉해로 인해 농업 생산력이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십자군 전쟁 동안에 비잔틴 제국 및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배운 상업 및 뒤이은 거래로, 도시와 상업의 발달로 화폐경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상의 이유와 동시에 지속된 전쟁으로 점차 농노가 줄어들고 장원에서 농노가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농노는 몸 값이 높아지고 의식이 상승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서 영주들은 적어진 농노에게 그간의 전쟁 빚을 몰아서 세금을 매기므로, 농민들이 폭발적으로 봉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장원해체가 가속화 됐습니다

더 나아가 원나라에서 발생한 흑사병이 몽골군의 진격으로 동유럽으로, 교역로를 타고 서유럽으로 전해져서, 유럽 인구의 1/3이 병사(病死)합니다. 그래서 농노들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어서 장원제도는 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아! 나 하나님은 부자와 힘 있는 자들을 편애하지 않는단다! 반드시 너희 약자를 해방시켜 준단다!”
 
 
 
29. 르네상스 성격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다시 살아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서술한 장원제도의 쇠퇴와 도시의 발달로 시민 계급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동방과 무역으로 부를 창출하고 자유를 누렸습니다. 이 들 도시들은 점차 영주에게서 독립하고 국가에 직속되므로, 이들이 낸 세금은 영주가 아니라 왕에게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지방영주가 쇠퇴하며 국민국가의 성장을 촉진시켰습니다. 더 나아가 비잔틴 학자들이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대거 유럽으로 피신하면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식들이 유럽에 전해졌고, 과학과 창의성이 발달하게 됐습니다.
 
르네상스는 14~15세기 유럽 사회 전반의 변혁 시기를 뜻하는데, 중세에 지속되어온 전통과 제도 속에서 새롭게 나타난 근대 의식이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과도기입니다. 종교에서 세속으로, 신에서 과학과 인본주의로, 믿음에서 이성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30. 르네상스의 유럽사회

장원제도의 쇠퇴와 농촌경제의 퇴보, 화약의 발달에 따른 기사 계급의 몰락으로 봉건제도가 무너졌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영주를 서로 견제시키며 유럽을 조종해오던 카톨릭 교회의 권위도 무너졌습니다. 종교적 전체주의에서 민족과 개인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근대적 가치관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200년간의 십자군 전쟁 속에서, 요청 당사자 비잔틴 제국이 제대로 십자군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부리지로 가까운 곳에 있던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들이 십자군의 보급기지와 병력과 자원 운송 역할을 담당하므로써 이탈리아 반도는 상업적으로 크게 발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들은 비잔틴 제국과 무역로를 트고, 그들의 기술을 지원받아서 배를 건조하는 하청역할을 도맡습니다. 그 가운데 비잔틴 제국의 적잖은 기술자와 학자들이 이주하여 정치, 경제, 학문, 예술 모든 분야가 발전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적극적인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부으십니다. 소극적인 자에게는 도리어 저주만 임하여 마침내 비잔틴 제국은 망합니다. 십자군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군인들은 대개 서유럽 군인들이라서, 서유럽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강대국이 되고 지금도 잘 삽니다.
 
이상의 이유로 이탈리아 각지의 도시국가들이 발전하며 서로 경쟁했고, 동서 양편에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왕국, 남부에 스페인 제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받아서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7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했는데, 그때 비스콘티가문이 공을 세워 북부에 밀라노 공국이 세워집니다. 베네치아는 비잔틴 제국의 함선 하청과 십자군 보급 기지로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정치제제인 통령, 원로원, 의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네치아와 밀라노는 서로 경쟁했습니다

피렌체는 금융업의 대가인 메디치가 참주정치를 행했으나 프랑스의 샤를 8세 침입으로 가문은 지배력을 잃었습니다

이탈리아 중부는 프랑크 왕국의 후원 아래 교황령이 됐습니다

남부 나폴리 왕국은 이탈리아 반도 절반을 차지하는 넓은 나라였으며, 프랑스 계 앙주 가문과 스페인의 아라곤 가문이 지배했습니다. 가장 봉건적 국가였습니다.
 
피렌체의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비잔틴 제국의 학자 마누엘 크리솔라루스 초청 이래, 그리스와 로마의 원전을 읽고 해석하는 풍토가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플라톤 아카데미 학회가 창립되고, 점차 그리스 로마의 인문주의가 회복됐으며, 타락한 교회, 성직자, 귀족들을 향해 비판의식이 성장했습니다.
 
정치학을 서술하겠습니다. 메디치가는 시민에게 복지로 마음을 끌어들였고, 이에 영향받은 카스틸리오네는 궁정인이라는 책을 저술하며, 이상적인 군주를 묘사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통일을 역설했고, 용병제도 반대와 국민군 창설을 주장했습니다

역사학에서는 신 중심의 사관을 버리고, 객관적 고증으로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렌츠 발라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진장이 가짜임을 밝혀내서, 유럽 왕들이 교황권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종교개혁의 불씨를 심었습니다. 예술은 점차 과학적, 사실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북유럽의 르네상스

15세기 말 로마 카톨릭의 콘스탄티노플 회의와 바젤 회의에 참석한 북유럽 대표들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북유럽에 소개했습니다. 이로써 인문주의가 북유럽에 뿌리를 내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실재론이 무너지고, 개개인의 가치를 중시한 유명론 사상이 활발해졌습니다. 15세기 중엽 독일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 활판 인쇄는 저렴하게 성경과 지식 보급을 하므로써, 인문주의는 불길처럼 북유럽에 번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북유럽은 이탈리아의 실용과 예술적 르네상스와 달리 종교와 정치 문제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북유럽 상업과 공업의 중심지인 네덜란드에서 먼저 르네상스가 발달하여, 토마스 아켐피스와 에라스무스는 기존의 카톨릭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라틴어 번역의 오류를 발견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번역해냈습니다. 이러한 성경 원전 연구는 독일과 프랑스로 이어집니다

영국에서는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이성적 철학 사조를 탄생시키는 베이컨, 기존 봉건질서와 상류층 부패를 지적하는 세르반테스가 등장했습니다. 천문학도 발달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및 신대륙을 발견케하는 컴퍼스 항법, 화약의 개량과 화약무기 발달로 이어집니다.

2018년 9월 22일 토요일

Renaissance and Reformation - William the Conqueror and Joan of Arc

본론

27. 봉건 제후의 몰락과 왕권의 강화

시장, 도시, 화폐 발달과 중앙정부의 행정력 증가로 봉건 영주들이 점차 설자리를 잃었습니다. 13세기에 끝난 십자군 전쟁에서 많은 기사들이 전장에서 죽었는데, 그에 더해 동양에서 전래된 화약은 기사들이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은 프랑스 100년 전쟁의 패배 여파로 장미전쟁이라는 내부분열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튜더 가문이 어부지리로 왕위를 획득합니다. 귀족들의 사병 보유를 폐지시켜서 왕권을 강화시켰으며, 그 결과 도시 상인 계급들이 귀족들을 제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정적인 세금 납부로 왕국을 안정시켰습니다.
 
프랑스는 발루아 가문이 10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에, 영국처럼 도시 상인 계급의 도움을 얻습니다. 그들이 준 세금을 통해서 상비군을 설립하고, 교황으로부터 프랑스 내부의 교회들을 독립시키는 부르주 칙령을 샤를 7세가 선포합니다. 루이 11세 때에는 영주를 무너뜨리고 왕령을 늘리는 가운데, 100년 전쟁 때 영국 편을 들었던 부르군트 제후를 꺽어 버립니다. 마침내 로렌과 알자스 지방을 프랑스 영토로 편입시키며 부르군트 공국은 프랑스에 흡수됩니다.
 
9세기 말 노르만인들이 현재 러시아 지역에 키예프 공국을 세웁니다. 10세기에는 블라디미르가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하고 비잔틴 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상업 교류로 부를 쌓아 가다가, 서유럽의 십자군과 바랑키아 족의 무역로 차단으로 다시 소국으로 전락합니다. 내분에 빠졌던 키예프 공국은 12세기에 몽골에 정복당해서 200년간 몽골의 멍에를 졌습니다. 13세기 후반에 이반 3세는 금장金帳 = 킵차크 한국을 꺾고 완전히 독립합니다. 이후 비잔틴 제국과 결혼 동맹도 맺고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비잔틴 제국을 종교, 정신, 혈연적으로 계승한 나라로 선포합니다.
 
스페인은 우마이야 왕조의 사라센 왕국에게 8세기 초에 점령 당합니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이 사라센을 격퇴하면서 프랑스를 지킬 목적으로 기독교 변경백 나라들을 스페인 북부에 남겨뒀습니다. 이 나라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데, 이 과정을 레콩퀴스타라고 부릅니다. 아라곤과 카스티야 가문이 결합해서 스페인이 됐고 이베리야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포르투갈이 서부에 독립 왕국으로 남습니다. 이 나라들은 지중해를 떠나 서부로 항로를 개척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서 아시아와 직접 무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노르만공 윌리엄의 긍정적 믿음

이 글은 책 내용과 당장은 관련없지만, 흥미를 돋구기 위해서 제가 경험한 관련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6학년 사이에, 계몽사에서 출판한 만화세계사를 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왕 윌리엄이 영국을 침공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영국에 상륙을 하는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네게 보여줄 게 있단다!” 

그러시더니 하나님께서 윌리엄이 영국 땅을 밟을 찰나에 그의 발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낚아채서 넘어뜨리셨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신하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이 건 불길한 징조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게 아니냐? 우리가 이처럼 무너지는 게 아니냐? 우리 왕이 이렇게 자빠져서 죽는다는 예표인가?’ 
 
그러자 윌리엄이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일어나 크게 웃으면서 땅을 받혔던 손을 들고 외쳤습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내게 영국 땅을 주셨도다! 보라 내 손에 묻은 흙을! 하나님께서 영국의 흙을 내 손에 쥐어주셨듯이, 영국 땅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는 예표로다!” 

그러자 얼떨결에 군사들과 귀족들은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들이 말한 정확한 대사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내가 저 얘기를 듣고 싶어서, 또 네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윌리엄의 발을 나의 손으로 걸어서 넘어 뜨렸단다

아들아! 나 여호와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해준단다

네가 커서 목회 상황 속에 일어나는 불길함과 부정적 상황 속에서, 좌절과 낙망에 빠지지 말아라! 성경 말씀을 믿고 찬송하며 나 여호와 하나님만을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나 하나님에 대해서 긍정적인 믿음의 말만을 하거라

그럼 내가 그 말을 듣고 그대로 시행해주마! 그 이상으로도 해줄 수 있다!”
 
성령님께서 17:14~20의 장면을 제게 보여주신 뒤에, 100년 전쟁의 씨앗을 심어놓으셨습니다.
 

 
잔 다르크의 최후

바로 윗 문단의 같은 시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100년 전쟁을 끝내고 정리하시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르크 지방의 작은 마을 동레미의 소녀 잔 다르크에 관한 환상 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프랑스가 오랫동안 패전하도록 놓아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한 소녀를 들어써서 프랑스를 회복시키겠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

남자들은 자신의 힘을 믿고 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나를 의지하고 진심으로 나를 찾는 소녀를 들어 쓰려고 한다. 사람의 힘과 지혜가 아니라, 나 여호와 하나님이 나라와 사람을 장기(將棋) 말처럼 들어쓰는 존재임을 알게 하려 함이다.”
 
성당에서 기도할 때, 양을 칠 때, 소녀 잔에게 성령이 임하여 속삭이고 그 소녀는 쓰임을 받는다는 약속을 듣습니다. 잔 다르크는 겸손하고 순박하며 동시에 현명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에는 카톨릭 사제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 자리에 올라선 줄 믿어서 늘 겸손히 사제들을 떠받들었습니다. 사제들이 병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겸손하게 병사들 사이에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와중에 그녀는 천사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사제, 영국의 사제들과 주교들이 교만과 시기로 잔 다르크를 모함하고, 영국에 붙잡혔을 때에도, 잔 다르크는 하나님의 간증을 그 들이 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솔직하게 모든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재판국에서는 그녀의 말을 모두 악마의 말로 몰아붙였고, 화형을 언도했습니다. 대신 그녀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인정하고 회개하면 사면해주겠노라고 말을 들었습니다

잔다르크는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카톨릭 내부에서 그녀를 믿어주지 않자, 죽음의 위협 속에서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사제들의 말대로 순순히 따라주며 자신이 잘못 알았던 것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기도를 하며, 자신에게서 마귀를 걷어달라고 소리쳤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잔 다르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딸아! 내 영광을 위함이란다. 나의 더 큰 영광을 위함이란다

너는 수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렸구나! 내가 너를 받기 어렵구나. 난 네가 순결히 내게로 오길 바란다. 너의 죄가 모두 씻겨지길 원한다

딸아! 내가 네게 온 것은 진짜다. 그러나 너는 말로 비난하며 네게 내려준 축복과 상급을 모두 허물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성령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떠돌며 하나님을 비난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늘에서 무너지고 있는 잔 다르크의 집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용서해주세요! 이제 모두 끝난 건가요?”

아니다. , 내 딸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 날 부인하지 말아라. 불평하지 말아라.”

예수님께서 소녀 잔을 품에 안으시고 말씀하셨고, 소녀 잔은 품 속에서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며 위로받으며 울면서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주님, 다시는 부인하지 않을게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거예요.”
 
그 뒤에 성사 고해를 담당하는 사제는 잔을 위로하고 감옥에서 빠져나올 것을 기대하며, 잔을 만났습니다어차피 순진한 사제와는 달리 주교 지도부에서는잔다르크가 어떤 고백을 하던 상관없이 그녀를 암살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때 잔은 교황청에서 요구했던 모든 거짓 자백을 부인했습니다
"내게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며, 화형언도를 하던 말던 상관없다."
화형식 날 잔다르크는 쌓아올린 장작 더미 위에 세워진 나무에 묶여서 나지막히 되뇌였습니다.
주님, 다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게요. 그 동안 제가 지은 죄를 모두 용서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잠깐만 참자! 고통은 잠깐이야. 이 고통이 끝나면 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거야.’

불 속에서, 오직 이를 악물고 고통에 힘겨워하면서 주님만을 외쳤습니다

주님! 예수님!”

정말로 잔 다르크의 맞은 편 하늘에는 예수님과 천국의 성도와 천사들이 잔 다르크를 맞이 하기 위해서, 화형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잔 다르크가 처음에 주교들 앞에서 계시를 부인하지 않았다면, 바로 연기에 취해 질식사를 해서 천국으로 데려가셨을 것인데, 부인했기에 그 죄로 인해서 좀 더 오래 불 속의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제게 많은 장면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여자들이 제자 교회 버전의 가르침에 빠져서 목사 우상화에 빠지는 모습, 목사들의 비행에 대해서 단 하나도 지적하지 못하고 모두들 감싸주기 바쁜 장면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을 비롯한 번영신학에 빠져서, 자신의 상태는 바라보지 못하고 좋은 조건의 신랑감만 찾는 장면, 아무도 교회의 타락에 눈과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잔 다르크처럼 내가 불러 쓸 수 있는 딸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누구를 들어쓸까? 진정 나 하나님을 위해,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쓰임 받고자 하는 딸이 있다면, 내가 막강한 권능과 기적으로 들어쓰리라!”

못 믿으시면, 역사책을 뒤져보시기 바랍니다. 잔 다르크는 화형식에서 오직 주님만을 목 놓아 외쳤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을 겁니다

현재 제 어머니가 구국 기도회를 열심히 다니시고 교회를 내팽개치셔서 화가 나지만, 이 글을 쓰고 보니 어머니가 잔 다르크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앞으로 불평하지 말고 제 나름대로 교회를 잘 운영할 길을 기도하며 찾아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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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