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교회사 4주차
장 칼뱅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이 이뤄지므로, 그에 대한 감사로 예정론을 완성했다. 이는 로마서의 구성에 따른 것이다. 베자는 장 칼뱅의 제자이고, 그의 생애를 다뤘기에 장로교에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장 칼뱅과 달리 신인협력설에 조금 빠졌다.
베자는 예정론 도식에서 스콜라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방법론에 빠졌으며, 성경보다는 이성의 논리로 증명했다. 그런데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반발심을 불러들이는 율법 교리로 전락하는 우를 범했다.
장 칼뱅은 하나님의 은밀한 선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거듭난 자가 뒤돌아 봤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해서 구원받은 것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베자는 연역적 논증을 시도했고, 장 칼뱅은 이에 대해서 반대한 적은 없다. 베자는 선택과 유기의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에 유익을 주는 지 논증하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복음이 모두에게 선포돼도, 듣고 내적 동의에 이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선택의 경험적 증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파악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의 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베자는 불신자들에게까지 이 선택과 유기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장 칼뱅의 교리가 베자에게 순수하게 이어지지 않은 것처럼, 마르틴 루터의 교리도 필립 멜랑히톤에게 이어질 때는 전혀 순수하지 않았으며, 스콜라 신학처럼 그리스 철학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 둘다 신인협력설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필립 멜랑히톤은 더 나아가 로마 카톨릭의 성례전을 인정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로마 카톨릭은 스콜라 신학을 낳은 조직체였고,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이용한 것이므로, 베자나 멜랑히톤은 다시 스콜라주의로 돌아간 것에 불과했다.
이상의 잘못은 현대 신학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논리만을 추구한 결과 이성주의, 그리스 철학의 인문주의에 물든다. 신 칼빈주의가 그 사례
베자이후에는 신학이 성경보다 대중을 중심으로 삼았고, 신학을 구체적 역사적 사건의 성경 중심에서 일반원리로 무게가 옮겨갔다. 루터와 칼뱅은 성경주해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들의 후계자부터는 대중을 향한 이해의 방법론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간 것이다.
그 결과 신학은 이성주의에 빠졌고, 베자의 제자 야코부스 알미니우스가 칼뱅의 예정론에 반대하게 됐다. 그는 구원의 결정권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죄를 부정하고 자유의지로 선행을 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 주장했는데, 5세기 이단인 펠라기우스가 이미 발표한 내용이다. 인간의 사고와 논리에 호소하면 결국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원죄에 관한 논쟁 연구>
로마서 7:14이하를 알미니우스 주의자들은 회심 후에도 이뤄진 것으로 보고, 로마 카톨릭이나 개혁신학자의 경우는 회심전으로 보는 것으로 교리가 갈렸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 구절이 회심전인지 후인지 성경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형교회와 신학교에서 목사님들이나 이사장, 교수님들이 각종 공금횡령, 이단에 학교와 교회매각, 성범죄 등등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연세대와 총신대 사유화 사건
안양대와 대한신학대학원을 이단에 매각 중
[“세습보다 ‘목회자 성문제’ 더 심각” 뉴스파워]
더 나아가 어린 딸을 두들겨 패죽인 아버지도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들어온 신학교수입니다. [백골 여중생사건, 서울신대 교수로 밝혀져 NewsM] 이 사람들이 죄를 저지른 것은 회심 전입니까? 아니면 회심 후입니까? 저는 성경 말씀을 아무 근거없이 인간의 상상과 추론으로 함부로 해석하는 것은 알미니우스나 장 칼뱅주의나 모두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초자연적 부흥을 경험한 조나단 에드워즈가 교만하게 성령의 활동인 은사와 기적을 함부로 판단한 이유는, 역시 인간의 오만한 이성중심신학교리인 알미니우스 주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며, 이들은 도르트 회의에서 이단판정을 받았다. 현대에도 성령을 철저히 죽었다고 주장하는 은사중단론, 계시중지론, 기적중단론이 주류가 된 이유와 감리교가 좌경화 된 이유도, 이러한 오만한 이성중심주의가 복음주의로 이름만 바꿔 달고 세계 기독교계를 주무르기 때문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