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노예제도
여기서는, 잠깐 기독교에서 관점을 빼서,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다루고자 합니다.
일반적 로마인들은, 노예는 자연상태로서 처음부터 노예라기 보다는, 빈곤, 전쟁으로 인해 추락한 운의 결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노예라는 신분제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보지 않은 자유로운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리스인들은, 육체노동을 경시했으며, 노예에게 생산 노동의 대부분을 맡기고, 그 자신들은 정치와 에술, 학문에 매진을 했습니다. 게다가 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 학문과 과학, 수학의 발달로 헬라인들은 우월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본래 호메로스의 문학에서는 신(神)조차도 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신들의 가정일 뿐만 아니라,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대장간 일, 헤르메스는 전령의 일을 합니다. 판은 목축을 합니다. 헤시오도스가 말했습니다. “노동에 몸 바친 자만이,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5세기부터는 야만인과 그리스인이 구별되고, 육체노동은 야만인에게 적합하다고 플라톤이 주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하다면 모두가 하층이고 천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 고 말했으며, 노예로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들을 헬라인들이 노예화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예제는 생물학적, 도덕적, 우주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그리스 사람들은,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철학의 기반에 따라서 노예 경제 체제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더 나아가 노예에 대한 인권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즉, 그리스는 노예를 자연적, 당연한 것으로 봤기에 노예를 인간적으로 대우하지 않았고 가축과 소유처럼 대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노예를 운이 나빠서 노예로 전락한 것으로 봤기에 보다 인간적으로 대우해주고 법적 보장도 해준 면이 있습니다. 이 책의 P.175에서 보면 로마의 노예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서 초창기에는 인권보장이 없었습니다. 로마는 공식적으로 자신들이 그리스의 한 나라인 일리움(트로이)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 문명권이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라틴족이 처음 로마를 세울 때는, 이탈리아 반도 남부는 그리스 인들의 식민지라서, 그리스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P.166, 176으로 넘어가면, 점차 노예는 신분과 인격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점차 자유인과 차이가 사라져갔습니다. 심지어 자유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보복하셨는지, 이 책 내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P.188에 네일은 언어 사용으로 신분을 밝혔습니다. “최초의 로마 교인들은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됐다. 백년이 넘는 동안 교회는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생략~ 상위 계급의 로마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했는데, 그리스 어는 가난한 계급과 노예의 언어였다.” 다시 말해서, 노예제를 강력히 주장하며, 그리스인들의 야만 지배 및 야만인들은 그리스 인의 노예가 돼야만 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상을 가진, 그리스 인 본인들이 노예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됐습니다.
시편 9:15 저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덫에 자기 발이 먼저 걸리는구나.
P.189로 가면, 세상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던 그리스는 노예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 이름을 가진 자는, 그리스 출신의 노예로서 누구나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 인의 언행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그리스 인들은 스스로 그리스 철학을 쉽게 버리고, 거부감없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P.190에서 첼수스는 “기독교는 노예의 종교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 출신 및 동방 출신의 노예들은 의학, 수사학, 야금 기술을 포함한 상당히 높은 문화와 문명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높은 신분의 노예가 됐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받아들인 기독교를, 그들이 로마 상류층에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 알렉산더 시대부터, 가나안 지방은 헬레니즘 세계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헬레니즘 철학은 이후부터 유대교를 위협했으며, 구약 외경 마카비 서는 이 항전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 탄생 당시와 이 후 사도들에게까지 헬레니즘 철학은 끊임없이 믿음에 도전했고, 심지어 기독교와 혼용이 돼서 수 많은 이단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를 몰락시키고, 그리스의 노예제 찬성 철학에 징계를 주심으로써, 그리스인들이 스스로 그리스 철학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마침내 기독교의 적이었던 그리스인들이 로마의 노예가 돼서,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전역에 전도하는 첨병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 신약성경의 원전은 헬라어로 작성이 됐습니다.
오늘날 무신론자들은 말합니다. “종교는 마약이다. 로마 교황이 농노들에게 신앙을 이유로 구체제를 강요한 것을 봐라! 그들은 백성의 편이 아니다. 귀족의 앞잡이에 불과하다! 제도가 바뀌어야만 한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개인을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구조적 문제 해결,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사회 근원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로마를 뒤집어 엎지 않으시고도, 얼마든지 로마 사회를 바꾸셨습니다. P.207 이후부터 노예 신분 상승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노예들이 노예 해방 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인데, 이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황제와 원로원 귀족들의 대립은, 점진적으로 로마의 노예 해방과 신분 상승을 일으켰습니다. 로마 황제 가문과 원로원 귀족 가문들은, 광활한 영토확장으로 얻어진, 라틴푼티움이라는 대농장 경제를 기반으로, 수 많은 노예들을 자신들의 가문에서 가신(家臣)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그 노예들은 낮게는 허드렛 일 하는 사람부터, 농사꾼, 심지어 가문(家門)을 위해서 싸우는 군인과 수사학, 법률, 행정 자문 가신으로 활약을 했습니다. P.209~212가 그 내용입니다. 결국 군인으로 활동하는 노예들은 기사(騎士)계급이 되며, 대농장 경제 제도와 함께 중세 유럽의 봉건(封建)제도로 이어집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로마의 귀족들의 대농장은 준독립적 자치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한, 로마에 속하는 작은 나라 다름이 없었습니다. 마치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가 이미 고대로마제정 시대에 다 확립이 된 것 같습니다. 이를 토대로 원로원 귀족들과 군인 가문들은 서로 싸울 수 있었습니다.
황제 가문이 정치 체계 전반을 장악해서, 원로원을 견제 해야 했기 때문에, 행정, 사법, 군대 모든 분야에서 황제 가문의 가신들인 노예들이 직책을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P. 209에서 로마 해군의 함대원들은 모두 자유인이어도, 함장은 황제의 노예였으며, 대농장의 소작인들은 자유인이었어도, 소작 관리인은 대농장 소유주의 노예라는 기록이 남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시지만, 다시 또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마치 사사 시대처럼, 악한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께 죄를 짓고나면, 크게 매를 맞은 뒤에, 하나님께 회개한 뒤에, 다시 회복시켜주는 순환을 이방에서도 되풀이 하셨습니다. 그리스 인들이 노예제와 헬라 철학으로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노예로 전락한 뒤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는 첨병이 됐고, 마침내 하나님을 통해서 점진적인 노예 해방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책 내용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예수님께서 제게 나타나셔서 보여주시며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들아! 사람들은 민주 자유주의를 이룩한, 프랑스와 영국 혁명을 보고서, 제도와 체제, 사상에 목을 맨단다. 그러나 아들아! 그 지혜를 부어주고, 그들이 혁명을 이룰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국민의 의식을 향상시켜준 것은 하나님이시란다. 그 전에도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수천년간 실패했었단다. 아들아! 나,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내 이름으로 구하거라! 그럼 당장은 답답하고 느리고 안되는 것 같지만, 마침내는 그 기도대로 바꾼단다!”
그 때 로마에 노예로 잡혀와서, 로마 군함 아래 바닥에서 사슬로 묶여서 노를 젓던 노예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발각돼 붙잡혀 온, 노예로 전락한 시민으로부터 예수님을 전도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노예제가 점차 느슨해지고 해방되는 것과 마침내 서로마제국이 멸망해서, 혼란통 속에서 신분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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