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9일 화요일

근현대교회사 14주차 1 - 교회를 세속화시킨 WCC

근현대교회사 14주차

WCC

WCC는 자유주의신학의 구원론과 교회론을 따라가며, 복음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연합했다. 이에 견줄 수 있는 또 다른 복음주의 연합은 NAE, ICCC 등이 있는데, 이 셋은 서로 충돌한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이 분리된다. WCC는 공산주의와 함께 하는 연공주의라고 ICCC에서 밝혔다.

wcc 종북

Missio dei를 성경신학에서는 아서 그라서가 구약과 신약에서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반대로 WCC는 호켄다이크의 선언을 통해서보면, 3:16을 어그러지게 해석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한 것을, 교회의 세속화로 연결지어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정치이념적인 활동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1:2를 포함한 세상에 대한 부정적 정체성에 대해 서술한 성경 말씀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다. 15:19를 포함하며, 하나님께서 세상 자체를 사랑하신 게 아니라, 세상에서 우리를 선택해서 구원하심을 알아야 한다. 알미니안 주의의 보편구원론이 불러들인 문제이다.

(3신)‘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세속화와 물질주의’


현대 복음주의자들이 WCC를 따라간 결과, 교회에서 십자가를 떼고, 예배당이 친목 모임으로 바뀌고 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아첨을 하기 때문이다. WCC는 교회는 개인적 사회학을 가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이용한 세상 모든 것을 사용하라며, 교회의 개인의 개별적 구원을 부정한다

세상을 섬길 일을 찾으라고 말하므로, 진보좌파 교회에서 교회이길 포기하고 정치적 선동가로 바뀐 목사들이 많다. 세속화가 극단화돼서 교단, 교파 이름을 빼버리고 교회가 커뮤니티 센터로 바뀌게 됐다.

 하이퍼 칼빈주의를 거쳐 신칼빈주의로 오면 아브라함 카이퍼에 이르러, 알미니안 주의의 반대편에서도 똑같이 인본주의 철학화되기 시작했다. 신학을 철학으로 바꾸고, 특별은총보다 일반은총에 더 비중을 둔다

서유럽 기독교인 세속화 ‘위험 수위’

자유주의 신학은 영원한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믿지 못하고, 현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목표로 한다. 샬롬이라는 세상에서 평화를 이루는데 목표를 둔다. 그 평화는 하나님 중심의 평화가 아니라 인간 사이에 담합적 평화이므로, 인간의 죄악과 이방종교, 공산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성 회복을 추구하느라 인본주의에 빠지고, 세상의 의제를 심각하게 채택하므로 좌경선동가들의 온상이 됐다. WCC의 한국지부는 KNCC (NCCK)인데, 통합, 기장, 기성, 기감, 하예성이 가입됐다

순복음교회는 통합에 이단으로 지정이 돼있었다. 그런데 통합이 이단해제 조건으로 순복음교회를 KNCC에 가입시켰다. 통합의 한경직 목사가 WCC를 한국에 안착시키는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반역자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한국교회!


근현대교회사 13주차 - 자유주의 신학

근현대교회사 13주차

자유주의 신학

19C에 진화론이 등장하여 과학주의가 주도권을 잡게 되어, 신학에서 고등비평이 나타났다. 알버트 리츨이 신칸트주의를 주장하고, 종교는 체험이라는 주장하는 슐라이마허가 나왔다. 사회주의가 혼합돼서 사회복음도 등장하고, 이단인 유니테리언 주의가 등장했다

이들이 복합적으로 형성되어 1905년 미국에 자유주의 신학이 태어났다예수그리스도의 기적과 동정녀로부터 탄생을 부정하는데, 1974년 월남전 패망 때까지 미국에서 대유행을 했고, 미국 장로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침내 미국 장로교는 다원주의를 받아들이게 됐다

Old School(개혁신학 칼빈주의)은 약해지고, New School(찰스피니, 알버트 반즈, 리만 비철의 실천적 펠라기우스 주의를 수용)이 강해져서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개정하고, 공식적으로 개혁신학을 포기하고 알미니안 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1990년 이후, 미국 장로교는 동성애, 종교 다원주의, 여성신학을 포용하여, 교회답지 않는 교회로 바뀌었다.

 

한국 장로교단 중에도 이 영향을 받은 교단이 있는데, 기장, 고신, 통합 이다. 1924년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선언에 1200 여 명의 목회자들이 가담했다. 이들은 프린스턴 신학교를 중심으로 했기에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사람들이 떠나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다

1935년 존 맥케이 프린스턴 학장이 칼 바르트 신학을 받아들여서 1967년에 새로운 신앙고백서를 작성했고, 김재준 박사가 이 학교에서 유학한 결과 한국에서 기장 교단을 세웠다. 한경직 목사도 바르트 신학에 영향을 받아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서 장로교단을 분리시켜서 통합 교단을 세웠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신사참배가 가능한 신학적 탄력성의 배경이 됐다

하지만 초창기 한국의 1884년도 선교부흥은 올드 스쿨이 중심이다. 한국 선교사들을 보낸 프린스턴 신학교가 뉴욕대부흥의 영향을 받았었는데, 뉴욕대부흥의 신학은 올드스쿨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자유주의에 반대해서 근본주의가 일어났지만, 신학적 틀에 박혀 있는 게 아니라서,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가 협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근본주의에 반발한 운동이 신복음주의 운동으로 다시 일어나 과학에 대한 개방성을 추구했다. 그 결과 사회 인문 과학이 신학 안에 방법론으로 들어와 현장중심의 신학으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의 공동의 적이 되므로,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는 같은 성질을 갖게 됐다

미국은 구학파와 신학파의 무조건적 통합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대거 흘러들어왔고, 교단 안에서 이단시비가 들끓게 됐는데, 특별히 고등비평이 화제거리가 됐다.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독재로 보고, 인간의 가치와 영적 능력에 확신에 강조를 둔다. 인간의 이성과 자율성,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따라서 불교, 이슬람, 유교 등 이방종교를 믿든간에 길이 다를 뿐 결과는 같다는 식으로 말한다. 때문에 교회에게 신사참배의 핑계를 부여해준다.

 


알브레트 리츨을 포함한 독일 신학은 19C에 이미 좌경화됐고, 하나님의 사랑을 핑계로 보편적 사랑만 강조하고 공의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을 부정한다. 1902년 미국 장로교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의 해석 및 10:3의 유아기에 죽은 자에 대한 해석을 포함한 상당 수의 신조를 개정한다. 그 밖에 로마 교황을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누락시켰다

다시 말해서 개혁주의, 칼빈주의를 버렸다는 뜻이다. 따라서 1884~1907년에 활약했던 한국 선교사로 온 미국 사역자들은 이러한 미국 본토의 신학 변질 이전 사람들이라서 자유주의에 감염되지 않았었다.

 


1924년 어반 선언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찬동하는 1200명의 목회자들이 등장하고 프린스턴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변경되므로, 1929년 메첸은 프린스턴을 떠났다. 1936년 존 멕카이가 프린스턴의 교장이 되고 여성 장로 안수를 가능케 했다. 메첸은 1936년에 장로교를 떠나서 새로운 교단 OPC를 세웠다. 1938년 김재준은 조선신학교를 자유주의 신학으로 물들어서 기장으로 바꿔버렸다.

유럽대륙은 과학주의에 기반을 둔 고등비평이 휩쓸어서 교회 안에 자유주의자들이 많아졌다. 뉴욕시 제일 장로교회의 헤리 포스딕은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하며, 동정녀 탄생, 성경무오, 그리스도의 재림 등의 교리가 기독교의 근본교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초자연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에 대해서 그래샴 메첸이 격렬히 투쟁했다. 게알더스 보스는 메첸에 동의했지만, 현실적 이득 때문에 프린스턴의 자유주의 신학에 순응했다.

 


근현대교회사 12주차 2 -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에 있다!

 164쪽에서 ‘1901년부터 찰스 파람에 의해 오순절 운동이 더욱 본격화되는데, .. 능력세례를 성화 다음에 세 번째 은혜의 단계로 놓는다에서 그의 주장은 확실히 성경에 근거없는 잘못된 것임은 확실합니다.

 능력세례의 표적으로 방언을 말하였고 이 것은 실제적인 외국어로 확인돼야 한다.”’라고 말한 부분이 틀렸음을 더욱 짚어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수업 동영상에서 성경 시대의 방언은 외국어 방언이고, 현대 방언은 외국어가 아닌 알 수 없는 가짜 방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주장은 바로 위 사도 바울이 성경에서 쓴 진술과 틀립니다. 만약 방언이 모두 외국어로만 돼있다면, 사도 바울이 글을 쓴 대로 알아듣는 자가 전혀 없을 수 없습니다

한국 성도가 일어 방언을 한다면 1억이 넘는 일본인들이, 중국어 방언을 한다면 12억이 넘는 중국인이 들을 수 있겠지요. 알아듣는 자가 없다는 뜻은 오늘날 현대 방언과 같은 방언이 초대 교회에 성행했다는 뜻입니다.

 


같은 책 164~165쪽에서 오순절 운동의 태동으로서의 방언 운동은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에서 사역하였던 윌리엄 세이무어에 의해서 더욱 확산되었다. ... 그리고 오순절 운동은 다른 성령의 은사들로서 예언, 지혜, 지식, 신유를 강조하였다.’ 이 부분은 가장 성경적입니다. 아래 말씀들은 사도 바울이 교회에서 은사를 더욱 구하고 장려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더 나아가 같은 장에서 방언과 은사를 반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라고 분명히 써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은사 중단론을 주장하고 방언을 부정하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벤자민 워필드 및 그와 뜻을 같이하는 자들은 모두 아래 고린도전서14:21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14: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바로 위 22,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니, 사도 바울이 전도를 위해서 교회에 장려한 은사입니다. 그럼에도 현대 개신교 신학자들이 방언을 금기시 한다면, 39의 성경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며, 동시에 사도와 사도를 쓰신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같은 책 165쪽에 쓰인 문구는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신적 치유 운동이 일어났고, 신적치유가 하나님의 구원의 부분이라고 말하였다. 오순절 운동은 육신의 치유가 영적인 치유와 함께 속죄에 포함된다고 가르쳤다

누가복음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바로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르면 신적 치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구원에 직결된 것입니다. 아래 말씀에서, 신유가 바로 죄사함에 직결됨을 예수님의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5: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신유은사가 하나님의 죄사함과 관계없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대적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제자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죄악을 저질러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 하나님의 권능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의 언변에 의지하는 교리는 더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큰 상관관계가 없음을 사도 바울은 분명히 성경에 적어놨습니다.

고린도전서 4: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교리에 있지 않고, 오직 초자연적 기적으로 나타나는 권능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구원을 받았는지를 사도 바울은 교리가 아닌, 능력을 행하느냐 못하느냐로 분별한다고 19에 분명히 써놨습니다

20을 토대로 장로교 구원론을 해석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유기, 버림받은 것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히 이단, 오류입니다. 그래서 현대 개신교 신학이 성경 말씀을 대적하고 이단의 가르침을 펴므로, 기독교가 진보좌파 = 공산주의, 무신론, 이슬람, 페미니즘, 이방종교, 세상철학, 이단 등등에게 심판받도록 하나님께서 설계하셨다고 어린 날에 보여주셨습니다.

근현대교회사 12주차 1 - 오순절 주의 비판자들에게 선지자 학개가

근현대교회사 12주차

오순절주의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박용규 목사님을 만나서 나눴던 대화를 설명하셨습니다

자네, 자네 신학은 맞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맞지 않네!” 박용규 목사가 교수님께 이렇게 말하자, 교수님께서 맞는 신학이라면, 맞는 신학을 따라야지 왜 틀린 신학에 가느냐?”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대화에 대해서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인, 1989~1990년 사이에 꾼 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들아, 박용규 목사가 잘못 말했고, 치명적인 말실수를 했다. 그는 그 대학교수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그의 신학에 대해서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맞다고 말했으나, 실상은 아니다. 그 교수의 신학은 다 틀렸다! 네가 훗날 그를 만날텐데, 그에게 내 말씀을 전달해라!” 

교수님의 신학이 전부 다 틀렸다는 근거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성경 말씀으로 증거하겠습니다.

전도서 10:1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성경 말씀에 아무 근거없이 인간이 만들어낸 신학을 주장하므로 어리석은 것이며, 그 적은 우매로 지혜와 존귀를 떨어 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면,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만 틀리다고 할 수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교수님의 신학을 다 틀리다고 말했을까요? 그 것도 이미 성경말씀에 적혀 있다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학개 2: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잘못된 교리의 가르침이 섞여 있기 때문에 전체가 다 부정한 가르침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무엇이 부정한 가르침인지, 일일이 책 내용과 성경 말씀을 대조 비교해서 밝히겠습니다. [솔로몬 사, 영적 바이러스를 치료하라, 김홍만] 책의 163쪽에서 얼윈은 성화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서 성령의 완전한 지배에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지극히 성경적이며 근거 말씀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도 행전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이미 사도행전 18:24~28 에서 아볼로의 예수 증거가 고린도에 퍼졌고, 요한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아볼로는 24에서 오늘날 신학교수와 같은 사람인데, 사도 바울은 그의 가르침을 부족하다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줬습니다. 사도 바울의 행위는 기독교에서 재세례 금지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현행 개신교 신학교에서 지식과 교리의 가르침이 전부 다 인양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아볼로의 가르침에는 성령이 없으므로 완전치 못하다며, 2의 질문을 했습니다. 즉 성령을 받아서 6에 적힌 대로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는 완전한 세례도, 그리스도인도 아닌 것입니다.

더욱이 6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뒤에 성령이 임하므로 방언과 예언을 한다고 했습니다. 즉 세례 받아서 방언과 예언을 받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 반박하는 자는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밖의 다른 복음, 저주받을 복음을 전하는 거짓교사입니다 (1:8~9)



그 아래 말씀에서 침례 요한은 분명히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요한 자신의 세례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행 교회에서 물로만 세례를 베풀고 끝내는 것은 세례 요한의 세례만 베푸는 것입니다.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받아야 진정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세례를 완전히 받은 것이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연예계는 시한부 인생 14 - 연예인들이 제대로 잘 살려면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