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6일 토요일

Was Jesus a Buddhist disciple? - the birth of Mahāyāna Buddhism 2

추가적으로 앞 편의 내용은, 매일종교 신문에서 현대 세계불교태국승가의 보수파와 진보파 로 이어집니다.
 
중국으로 전해진 대승불교는 사상면이나 승가의 형태나 공동체 조직이 조금은 다르게 변화되어 왔다. 이미 중국에 전파되기 전에, 이른바 대승불교란 이름으로 변화를 겪은 불교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변화란 변용된 개혁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원형불교가 인도 북부 또는 북서부로 북진 하면서 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 변화를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부처님이 주로 활동했던 마가다 지역은 갠지스 평원이다. 하지만 인도의 북부지역은 히말라야의 산악지형이 시작되는 카슈미르 간다라 지역이다. 이 지역은 기원전부터 일찍이 페르시아-그리스 문명과 충돌하면서 인도-그리스왕국이 존재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인도-그리스왕국을 밀어내고 들어선 것은 쿠샨왕조(기원후 30-375)이다. 쿠샨왕조는 타지키스탄, 카스피 해, 아프가니스탄, 갠지스 강 상류를 가로지르던 제국으로 월지 민족이 세웠는데, 원래 타림분지의 초원에서 살다가 흉노에게 밀려서 그리스왕국인 박트리아를 물리치고 자리를 잡았으며, 중국, 로마 제국,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등과 교역을 했다

흔히 대승불교하면 쿠샨왕조의 카니슈카 대왕을 떠올리는데, 그가 제4차 경전결집을 후원했기 때문이다. 부처님 열반 이후 지금까지 6차 경전결집회의가 공인되고 있는데, 3차는 아소카 대왕의 후원으로 이뤄졌고, 4차는 두 곳에서 개최됐는데, 남방 상좌부는 실론에서, 북방은 쿠샨제국에서 개최되었다. 중국으로 전해진 불교는 쿠샨제국에서 개최된 제4차 경전결집에서 채택된 텍스트였다

실론에서 개최된 결집회의는 빨리어가 그대로 경전어였다면, 쿠샨제국에서 열린 결집회의의 경전어는 빨리어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전개된 불교는 산스크리트(梵語) 텍스트에서 한역(漢譯)되었는데, 주로 월지출신이나 페르시아 계 승려들이 역경(譯經)에 참여했다

위에서 북방 대승불교의 탄생에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전제했는데, 그것은 지리환경적인 요인이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페르시아 문명과의 접촉에 의한 변화를 의미한다. 당시 쿠샨제국은 인도-그리스왕국 플러스 페르시아 문명권을 접수했기에 다언어 다종교사회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쿠샨제국의 초기 공용어는 그리스어였는데, 기원후 127년까지였다. 기원후 127년부터 박트리아어(이란계)가 공용어로 대체되었다

월지족은 쿠샨제국을 세웠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그리스인과 박트리아인(이란계)이였다. 비공식 종교언어는 간다리어(산스크리트어계), 소그드어(이란계), 이란계방언과 산스크리트어였다. 종교는 불교, 힌두교, 샤머니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와 기타 박트리아(이란)와 인도계의 소수 종교들이었다

종합해서 정리한다면, 쿠샨제국은 다언어 다종교사회로서 국제성을 띤 다문화 국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는 이런 다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촉발된 개혁성향의 새 불교였던 것이다.
 
이 정도 선에서 대승불교 흥기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고 태국불교 이야기로 돌아가겠지만, 한마디만 더 첨언한다면 이런 다문화에 의한 대승불교의 배경을 가진 쿠샨-이란계의 승려들이 실크로드 무역 루트를 타고 장안과 낙양에 진출했던 것이다. 초기 중국 불교의 역경가로서 지()자 돌림의 지루가참(支婁迦讖=로칵세마(Lokaksema), 지량, 지겸과 지둔 등은 쿠샨제국 출신의 월지족 들이다. 또한 안()자 돌림의 안세고는 안식국(이란계) 출신인데, 이들을 그레코-불교계의 승려들로 보는 것이다


그레코-불교(그리스-불교)는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 까지 현대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의 영토에 해당하는 박트리아와 인도 대륙 사이에서 발전한 그리스주의 문화와 불교의 문화적 혼합주의를 의미한다. 그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서 인도에 그리스인 진출로 시작되고, 인도-그리스 왕국의 설립에 의해 추가로 실시하고 그리스화한 쿠샨 제국의 번영 동안 연장된 상호 작용의 긴 일련의 문화적 결과로 탄생한 불교를 말한다. 그리스-불교는 결과적으로는 인도불교를 뼈대로 했지만, 대승 불교의 예술과 대승사상에 철학적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고 보며, 궁극적으로 중국, 한국, 일본, 필리핀, 시베리아, 베트남으로 확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태국의 현대불교를 논하면서 기원전까지 그것도 인도 북부지역으로 소급되었는데, 이런 글쓰기는 이미 현대세계불교를 연재하며서두에서 밝힌바 있다. 동서고금 남북을 가로지르지 않으면 불교란 종교의 정체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의 시각을 갖고 태국불교를 보면 동아시아의 불교인 중국, 한국불교와는 뿌리는 같을지라도 사상과 외형이 다르고 타종교처럼 이질감까지도 느껴지게 되는 이유이다.



이상의 불교 학자가 진술한 역사를 통해서 대승불교는 그리스 철학이 뼈대를 이루고 그 위에 불교의 껍데기를 입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불교 교리가 붓다가 깨달아서 쓴 게 아닙니다. 그냥 그리스 철학을 그대로 갖다 베낀 것입니다.
 

Was Jesus a Buddhist disciple? - the birth of Mahāyāna Buddhism 1

본론 2 - 불교의 방대한 철학은 어디서 왔는가?
 
1. 대승 불교의 연원과 역사 - 그리스 식 불교
 
불교는 그리스 철학과 종교를 그대로 다 베껴놨습니다. 그 이유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서북부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기 때문에, 수 많은 그리스 인들이 인도에서 그리스 문화와 철학을 심고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불상또한 그리스 인들의 간다라 미술 발전 이후에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넷 사이트 해동세계 불교 연구원에서 [실크로드기행비단길의 역사와 주요 루트 - 그리스 철학 사상과 인도불교, 중국과 페르시아 사상 등 혼합문명이 형성되기까지] 라는 제목으로 이치란 박사가 쓴 내용입니다.
 

기원전 그리스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실크로드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개척되었다. 기원전 329년 그는 타지키스탄의 페르가나 입구인 동쪽 끝에 알렉산드리아를 세웠는데, 고개를 넘으면 중국의 신장성이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였던 대원(大宛)이오니아(그리스)인들 이란 뜻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파미르와 힌두쿠시 사이와 북부 인도에도 알렉산드리아도시를 건설했다. 알렉산더 대왕(356323 BC)은 고대 그리스 북부의 왕국 마케돈의 아르게아다이 왕조 제26대 군주였다.
그리스인들은 이후 300년간 중앙아시아에 남아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 가운데 헬레니즘을 계승한 왕국인 셀레우코스 제국(312-63BC)을 세웠고, 제국의 최대 영토는 아나톨리아 중부와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투르크메니스탄, 파미르, 인더스 계곡을 포함한 광대한 지역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계승 왕국 중에서 가장 영토가 넓었다.
 
다음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그레코-박트리아 왕국(250-125BC)을 세웠고, 나중에는 지금의 타지키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 인도-그리스왕국(180BC-10CE)을 세웠다. 이 기간 그리스 왕국들은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타운과 교류했으며, 중국과는 기원전 200년경 처음 접촉했다고 한다. 박트리아 왕국의 에우티데모스 1((230-200BC 재위 223-200BC)는 현재의 신장성인 카슈가르까지 진출했었다고 한다. 이런 접촉으로 그리스의 헬레니즘문명(323-146BC)과 고대 그리스철학이 동양철학(페르시아와 중국)과 혼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로 인하여 그레코-불교란 통합(혼합)주의 불교가 탄생하게 된다. 그레코-불교의 탄생을 알아야 대승불교 탄생의 배경을 알게 되는데, 우리에게 이 부분이 전혀 연구되어 있지가 않다. 그레코-불교란 결국 그리스 철학 사상과 인도불교가 만나서 혼합한 것을 말하고 고대 페르시아 사상까지도 섞여진 혼합문명인 것이다. 결국 이런 배경을 가진 그레코-불교를 계승한 쿠샨제국의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혼합주의에 대해서 개념을 정리하고 그레코-불교를 알아보자.
 
혼합주의(싱크리티즘 syncretism 混合主義)는 본질적으로 상이하거나 혹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러 믿음을 조화롭게 공존시키고 다양한 학파의 사상들을 융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신학과 종교적 신화의 영역에서 근본이 전혀 다른 몇 개의 전통을 하나로 합하고 유추하여 조화시키려는 시도로 흔히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각 도시와 지방의 신과 신화, 신학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강력한 신앙을 만들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서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 시대에 각지의 다른 종교들이 서로 결합되었다.

기원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 융성하였던 나스티시즘(영지주의 그노시스주의Gnosticism)은 고대의 대표적인 혼합주의 종교 운동 중 하나이다. 3세기에 페르시아의 마니는 기독교·조로아스터교·불교의 요소를 혼합하여 나스티시즘의 일파인 마니교를 창시하였다.

16세기에는 무굴 제국의 구루 나나크(시크교 창시자 1469-1538인도)가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요소를 혼합하여 시크교를 창시하였다. 종교 분쟁의 역사가 곧 인류 역사 자체였다는 반성 위에서 세계 종교 통합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19세기에 일어난 바하이 신앙(페르시아인 바하올라1817-1892)가 창시한 종교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혼합주의적 경향은 문학, 음악, 그리고 문화의 표현양식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스-불교는 기원전 4세기와 기원후 5세기 현대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의 영토에 해당하는 박트리아와 인도 아 대륙 사이에서 발전한 그리스주의 문화와 불교의 문화적 혼합주의를 의미한다. 그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서 인도에 그리스인 진출로 시작되고, 인도-그리스 왕국의 설립에 의해 추가로 실시하고 그리스화한 쿠샨 제국의 번영 동안 연장된 상호 작용의 긴 일련의 문화적 결과였다. 그리스-불교는 불교, 특히 대승 불교의 예술과 어쩌면 영적 개발에 영향을 주었다. 불교는 후에 궁극적으로 중국, 한국, 일본, 필리핀, 시베리아, 베트남으로 확산, 기원후 1세기 중앙 및 동북아시아에서 채택되었다.

Was Jesus a Buddhist disciple? - Buddhism copied the Christian scriptures 2

숫타니파타
 
숫타니파타에서 '숫타(Sutta)'말의 묶음()', '니파타(Nipata)''모음()'을 뜻한다

나무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다수의 운문과 소수의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운문이 많은 이유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석가 사후에 제자들이 구전으로 전했기 때문이다. 총 사품(蛇品), 소품(小品), 대품(大品), 의품(義品), 피안도품(彼岸道品) 5장으로 되어 있으며 1,149()의 운문 및 산문으로 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숫타니파타 판본은 불교를 옹호했던 인도의 아소카 왕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데, 아소카 왕이 남긴 캘컷타 바이라트(Calcutta-Bairāṭ) 비문에 숫타니파타의 내용 중 일부가 실려 있다. 다만 현존 빠알리 삼장은 후대에 첨삭된 흔적이 보여 100% 석가모니의 설법 그대로는 아니다. 문헌학적으로도 빨리 삼장은 오랫동안 구전 되다 기원 전후에 문자화 되었고, 그 이후에도 수정, 보완되었다.
다시 설명하면, 불경이 아무리 많아봐야 1,149 구절의 글로 돼있으며, 84천경이 아니며, 수타니파타 그 자체도 점차 후대로 갈수록 사람들이 덧붙여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불교의 원전으로 유일한 근거가 되는 수타니파타라는 경전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시대에 문자화 됐으므로, 오히려 기독교를 베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불경이 다른 종교를 베껴서 덧붙여왔음을 알 수 있으며, 84천 경이 모두 다 부처가 한 말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지어내서 쓴 글이라는 뜻입니다.
 
요약하면, 수타니파타에는, 위에 성경과 비슷하다는 불경의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불교 경전이 기독교를 베꼈습니다.



재림신문사의 <863> 법화경이 신약성경에 영향을 미쳤다?의 글을 보면,
불경 중에 유명한,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무량수경』 『유마경 등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석가 사후 500여년이 지난 후에 대승불교가 등장한 이후에 기록된 책들이다.
 
문희식 박사는 신약성경이 법화경을 베꼈다고 주장하기 위해 법화경의 결집 시기를 기원전 550년경으로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불교관련 출판물들은 법화경이 기원 후 100년경에 결집되었다는데 일치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신약성경이 법화경을 베꼈다고 주장하는 문 박사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실크로드를 통해 기독교와 접한 불교가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불교가 기독교적 내용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은 붓다의 몸을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삼신으로 보는 삼신설 교리도 기원 후 4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불교 교리의 발전과정에서 석가를 잉태한 마야 부인이 남편과 동침하지 않은 채 석가를 잉태했다는 등 석가를 신격화하는 일도 대승불교에 와서 이뤄진 변화들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가 아무리 늦어도 2세기입니다. 325년 니케아 회의는 역사에 분명히 기록돼있습니다. 앞서 글에서는 불교의 삼신설이 4세기라고 적었지만,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면 5세기라고하는 곳도 있습니다. 즉 불교가 기독교 신학교리를 200년 뒤에 베껴서 써먹고 있음을 역사적 고증과 현존 유물 자료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승비불설(大乘非佛設)
 
다음 블로그 [법의 수레바퀴는 계속 구른다][대승비불설에 대한 단상]이란 글에서 불교 경전의 현실을 밝혔습니다.
 
이미 4~7세기 인도에서 불교 경전 상당수가 부처가 말한 게 아니라는, 대승비불설이 나왔습니다. 기존의 부파 불교 교단이 새로이 나타난 대승불교는 사이비 이단이라고 단정짓다가 생긴 논리입니다. 동시기에 중국에서도 서역(중앙아시아)에서 쏟아지는 불경들이 실제로 부처가 말한 게 아닌, 다른 종교를 베끼거나 사람들이 후대에 만들어낸 경전인 것을 밝혀냈습니다. 4세기의 도안 스님, 6세기의 승우 스님이 대표적 인물입니다.
 
인왕반야경, 부모은중경, 우란분경, 대불정수능엄경, 관세음삼매경, 고와관세음경, 점찰선악업보경, 천지팔양신주경 등 지금도 상당히 인기있는 경전들이 그 당시에 부처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들거나 다른 종교를 베낀 가짜 경전임을 밝혀냈습니다.
 
근대 시대에는 능엄경, 원각경, 대승기신론 등이 가짜임이 드러났습니다.
 
일본에서는 도미나카 나카모토(1715~1746)가 출정후어라는 책에서, 대승경전은 소승경전에 새롭게 첨가된 것으로 부처가 말한 게 아니다 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이제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대승비불설은 100%로 확실한 것으로 규명됐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보살 사상 또한 본래 불교에 없던 것으로, 훨씬 후대에 불교가 이방 종교들을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사상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성경으로 판명난 불교 경전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불광미디어, 오윤희 저]를 보면, 일본의 대정신수장경에서, 7세기 당나라 장안에 정착한 기독교의 네스토리우스파의 성서들이 들어있음을 현대에 발견했습니다. 서청미시소경(序聽迷詩所經), 경교삼위몽도찬(景教三威蒙度讚) 등은 공식적으로 불교계에서 기독교 경전을 베꼈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다음 편으로

Was Jesus a Buddhist disciple? - Buddhism copied the Christian scriptures. 1

2. 불교 자체가 기독교 경전을 베꼈다!
 
불교에는 84천여개의 경전들이 있고, 이 심오한 경전 속에 이미 다 있던 내용을 기독교에서 베낀 것이라고 불교도들이 떠들어 댑니다. 로이 아모르, 류시화<성서 속의 붓다>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기독교와 불교 경전 내용이 같다고 비교를 올려놨습니다.


 
누가복음과 불경의 비교
1)누가복음
2)관련된 불경의 내용
 
1)2:8 ~14
목자들이 천사를 보다
2)본생경
아시타가 천사들을 목격
 
1)21~24
할례와 이름짓기
2)이름 지어주기 의식
 
1)25~35
시므온의 예언
2)아시타의 예언
 
1)4:1 ~13
유혹, 금식, 사탄과의 대화
2)불본행집경
고오타마의 금식과 악마 마라와의 대화
 
1)6:20~22 
팔복의 가르침
2)간법165~68
진정한 행복
 
1)27~36
분노하지 말라
2)280~81
분노하지 말라
 
1)37~38
판단하지 말라
2)271~72
판단하지 말라
 
1)39
장님의 인도와 개천에 빠짐
2)무문 9.7
사기꾼이 인도하면 개천에 빠짐
 
1)43~45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
2)간법 258
어리석은 자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46~49
잘 지어진 집과 나쁘게 지어진 집
2)간법 219~220
지붕이 잘된 집과 좋지 못한 집
 
1)7:36~38
예수의 발아래 엎드린 여인
2)불본행집행
고오타마의 발 아래에 엎드린 여인
 
1)9:28~29
모습의 변화와 얼굴의 빛남
2)장아함경 16
고오타마의 피부가 밝게 빛나다
 
1)57~62
집 없이 사는 것이 좋다
2)법구경 91~2
집없이 사는 생활
1)10:1
칠십 명의 선교 사업
2)율장
육십 명의 사명
 
1)11:34
눈은 등불이다
2)무문 22.5
등불을 든 현명한 사람
 
1)37~39
내면의 사악함
2)간법 2
내면의 사악함
 
1)12:16~21
하늘의 보물을 갖지 못하다가 갑자기 죽은 부자
2)무문 1.20~22
하늘에 보물을 간직하지 못한 부유한 바보는 죽을 수밖에 없다
 
1)22~31
걱정하지 말라
2)법구경 92~3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
 
1)33
도둑맞을 염려가 없는 하늘의 보물
)무문 10.11
도둑으로부터 안전한 하늘의 보물
 
1)15:11~32
탕자의 비유
2)법화경4
탕자의 비유
 
1)16:13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2)무문 13.5
니르바나와 재물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이상의 내용들을 보면, B.C. 6세기에 태어난 부처, 즉 예수 그리스도보다 600년 전에 태어난 붓다에게서, 기독교가 성경을 다 베껴서 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불경 중에서 기독교가 생기기 전에 불교에 있는 경전은 기원전 280년 즈음에 숫타니파타 한권만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Was Jesus a Buddhist disciple? - Jesus, No Tibet

본론 1 - 서론의 불교계 주장을 실증적 반박
 
1. 예수가 티벳에 가서 배울 게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확히 B.C 4년의 사람으로서, 티벳에 가서 불교를 전혀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티벳에서 불교가 전해진 때는 7세기 송첸감보왕의 때(?~649)인데, 네팔의 암슈르바르만 왕의 딸인 티첸 공주, 중국 당나라 공주인 문성 공주와 정치적 이유로 결혼을 했다가, 그녀들이 불상, 불교를 티벳에 전했습니다. 왕도 불교에 관심을 가졌었지만, 그가 죽고나서 결국 불교는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반세기 후에 타데축첸 왕에게 중국 당나라 금성공주가 시집오면서 열성적으로 불교를 발달시켰습니다. 그 아들 티송 데첸왕 때에는 적극적으로 불교를 도입했습니다. 이후에 인도에서 샨타라크시타라는 이름을 지닌 승려와 서역 돈황에서 당나라가 돈황을 정복한 이후, 마하연이라는 승려가 각기 다른 학파의 불교를 도입했습니다.


1세기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가 7세기 이후에나 불교가 간신히 소개된 티벳 불교를 만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서 러시아, 프랑스를 포함한 각국의 반기독교 인들이 티벳 불교로 기독교의 정통성을 훼손할 때, 8세기가 되야 정착을 간신히 하는 티벳 불교의 역사를 들이대니 반기독교인들은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티벳 불교에서 예수가 뭘 배워왔다는 말이 사그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출판했던 그 많은 책들이 지금까지 베스트 셀러로 남아있지 않고 모두 숨어들었고 마침내 폐간까지 했습니다.
 
한 마디로, 티벳 불교에 있던 경전과 장황한 그림들은, 결국예수 그리스도가 티벳에서 뭘 배운 게 아니라, 신약 성경을 그대로 베껴쓰고,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티벳 불교에서 예수가 자기네에서 배웠다고 자랑하던 이사 전은 훨씬 더 오래 전에 쓰여진 토마스 복음서의 필사본이 발견되면서, 이사전이 도마 복음을 베껴서 각색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토마스 복음서 - 출처 다음 카페 봉은사 달마7연등 | 성서와 예수의 인도·티벳 불교 유학
 
1945년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34세기에 만들어진 13개의 그노시스파 성서 사본과 콥트어로 번역한 주석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고대(220) 필사본 "토마스 복음서"가 나왔다. 토마스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는 너희들 마음 속에 있다."는 말씀은 불교의 불성(佛性) 내재(內在)의 가르침과 같다.
 
이상의 자료를 보시면, 도리어 불교가 기독교 이단 그노시스 학파를 베낀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예계는 시한부 인생 14 - 연예인들이 제대로 잘 살려면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