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적으로 앞 편의 내용은, 매일종교 신문에서 현대 세계불교⑧ 태국승가의 보수파와 진보파 로 이어집니다.
중국으로 전해진 대승불교는 사상면이나 승가의 형태나 공동체 조직이 조금은 다르게 변화되어 왔다. 이미 중국에 전파되기 전에, 이른바 대승불교란 이름으로 변화를 겪은 불교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변화란 변용된 개혁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원형불교가 인도 북부 또는 북서부로 북진 하면서 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 변화를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부처님이 주로 활동했던 마가다 지역은 갠지스 평원이다. 하지만 인도의 북부지역은 히말라야의 산악지형이 시작되는 카슈미르 간다라 지역이다. 이 지역은 기원전부터 일찍이 페르시아-그리스 문명과 충돌하면서 인도-그리스왕국이 존재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인도-그리스왕국을 밀어내고 들어선 것은 쿠샨왕조(기원후 30년-375년)이다. 쿠샨왕조는 타지키스탄, 카스피 해, 아프가니스탄, 갠지스 강 상류를 가로지르던 제국으로 월지 민족이 세웠는데, 원래 타림분지의 초원에서 살다가 흉노에게 밀려서 그리스왕국인 박트리아를 물리치고 자리를 잡았으며, 중국, 로마 제국,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등과 교역을 했다.
흔히 대승불교하면 쿠샨왕조의 카니슈카 대왕을 떠올리는데, 그가 제4차 경전결집을 후원했기 때문이다. 부처님 열반 이후 지금까지 6차 경전결집회의가 공인되고 있는데, 제3차는 아소카 대왕의 후원으로 이뤄졌고, 제4차는 두 곳에서 개최됐는데, 남방 상좌부는 실론에서, 북방은 쿠샨제국에서 개최되었다. 중국으로 전해진 불교는 쿠샨제국에서 개최된 제4차 경전결집에서 채택된 텍스트였다.
실론에서 개최된 결집회의는 빨리어가 그대로 경전어였다면, 쿠샨제국에서 열린 결집회의의 경전어는 빨리어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전개된 불교는 산스크리트(梵語) 텍스트에서 한역(漢譯)되었는데, 주로 월지출신이나 페르시아 계 승려들이 역경(譯經)에 참여했다.
위에서 북방 대승불교의 탄생에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전제했는데, 그것은 지리환경적인 요인이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페르시아 문명과의 접촉에 의한 변화를 의미한다. 당시 쿠샨제국은 인도-그리스왕국 플러스 페르시아 문명권을 접수했기에 다언어 다종교사회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쿠샨제국의 초기 공용어는 그리스어였는데, 기원후 127년까지였다. 기원후 127년부터 박트리아어(이란계)가 공용어로 대체되었다.
월지족은 쿠샨제국을 세웠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그리스인과 박트리아인(이란계)이였다. 비공식 종교언어는 간다리어(산스크리트어계), 소그드어(이란계), 이란계방언과 산스크리트어였다. 종교는 불교, 힌두교, 샤머니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와 기타 박트리아(이란)와 인도계의 소수 종교들이었다.
종합해서 정리한다면, 쿠샨제국은 다언어 다종교사회로서 국제성을 띤 다문화 국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는 이런 다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촉발된 개혁성향의 새 불교였던 것이다.
이 정도 선에서 대승불교 흥기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고 태국불교 이야기로 돌아가겠지만, 한마디만 더 첨언한다면 이런 다문화에 의한 대승불교의 배경을 가진 쿠샨-이란계의 승려들이 실크로드 무역 루트를 타고 장안과 낙양에 진출했던 것이다. 초기 중국 불교의 역경가로서 지(支)자 돌림의 지루가참(支婁迦讖=로칵세마(Lokaksema), 지량, 지겸과 지둔 등은 쿠샨제국 출신의 월지족 들이다. 또한 안(安)자 돌림의 안세고는 안식국(이란계) 출신인데, 이들을 그레코-불교계의 승려들로 보는 것이다.
그레코-불교(그리스-불교)는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 까지 현대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의 영토에 해당하는 박트리아와 인도 亞 대륙 사이에서 발전한 그리스주의 문화와 불교의 문화적 혼합주의를 의미한다. 그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서 인도에 그리스인 진출로 시작되고, 인도-그리스 왕국의 설립에 의해 추가로 실시하고 그리스화한 쿠샨 제국의 번영 동안 연장된 상호 작용의 긴 일련의 문화적 결과로 탄생한 불교를 말한다. 그리스-불교는 결과적으로는 인도불교를 뼈대로 했지만, 대승 불교의 예술과 대승사상에 철학적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고 보며, 궁극적으로 중국, 한국, 일본, 필리핀, 시베리아, 베트남으로 확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태국의 현대불교를 논하면서 기원전까지 그것도 인도 북부지역으로 소급되었는데, 이런 글쓰기는 이미 ‘현대세계불교를 연재하며’ 서두에서 밝힌바 있다. 동서고금 남북을 가로지르지 않으면 불교란 종교의 정체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의 시각을 갖고 태국불교를 보면 동아시아의 불교인 중국, 한국불교와는 뿌리는 같을지라도 사상과 외형이 다르고 타종교처럼 이질감까지도 느껴지게 되는 이유이다.
이상의 불교 학자가 진술한 역사를 통해서 대승불교는 그리스 철학이 뼈대를 이루고 그 위에 불교의 껍데기를 입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불교 교리가 붓다가 깨달아서 쓴 게 아닙니다. 그냥 그리스 철학을 그대로 갖다 베낀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