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Importance of worship Scholarship - Main subject 2 -3~4

3편 예배의 초점과 특성

프린트 [예배의 초점]에서, 예배는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며, 임마누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대화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라보길 원하시는 곳에 우리의 눈이 초점을 맞춰야 겠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10:25~37에서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성령의 9가지 열매에 대해서 써놨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도덕관념과 믿음은 아무 상관없다며 막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성경에 근거없는 것임을 깨닫겠지요? 따라서 예배에서 도덕적 단계는 중요 합니다.
 
[예배의 다섯가지 움직임]을 풀어쓴다면, 성경 안에 시편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 쏟으라고 시편과 선지서들이 고백 하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긍정적 믿음을 선포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분께 애원하여 간구하라고 신구약을 통틀어 적어놨습니다. 신약에서 헌신을 얼마나 강조합니까?
 
거꾸로 말하면 찬양을 하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피조물임을 깨닫고, 사람들 앞에 하나님인척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므로,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긍정적 믿음을 선포할 때, 우리의 유익만을 구하겠습니까? 공동체의 유익과 더 어려운 사람의 유익을 위해 더욱 애원하여 간구하지 않겠습니까? 그에 따라서 헌신하지 않겠습니까?
 
프린트 [예배의 특성]에서 예배는 개인적, 실제적 반응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겸손, , 인내, 공의, 사랑 등등 각종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요구들이 적혀 있는 성경 말씀에 따라 예배를 드린다면, 기도할수록 교만하고 거친 신비주의자들이 나타나는 현실이 잘못됨을 더욱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예배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예배에 대한 참 뜻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자기 정욕대로 기도하니까 삶이 흐지부지하고 삶에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2006년 산본 시온 기도원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에, 저는 하나님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나님, 예언 사역에서는 저 영안 열어주신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 영안훈련 안 시켜주시나이까?”
아들아! 너 지금 누구랑 말하는 거냐?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냐? 나 하나님 아니냐? 사람들이 널 인정해주지 않고, 영안사역 훈련을 안시켜준다고 화가 났느냐?”
아들아! 봐라! 네가 열렬히 기도했으나 현실에서 이렇다할 응답과 변화가 없으니, 너도 화가 나고 답답하지? 나 성령 하나님도 그렇단다. 너희가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문제가 생길때마다 해결해주면 어떻게 살겠다고 말하면서, 지키지 않으니 나도 참으로 답답하단다. 아들아! 사람들에게 전하거라. 나도 너희가 내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지 않아서 참으로 답답하다고!”
저 그런데, .......... 하나님! 그래두.....”
아들아! 이미 열린 거란다. 더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이만 마치자!”
 
이 얘기는 시온 기도원에 전해줬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전심으로 꾸준히 기도하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특이한 영성훈련 말고 일반교회 다녀도 충분합니다. 우리 윗대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새벽기도와 철야기도, 금식만으로 하나님을 다 만나고 예언하고 병 치료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니까 영적으로 안된 것 같을 뿐입니다. 교주와 조직을 놔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면서, 삶 속에서 말씀에 대한 순종을 마음껏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배학에서 말한 반응 교리를 하나님께서 지지하십니다.
 
신비주의자들이야말로 무지하고 하나님과 거리가 멉니다. 그들은 남이 영안이 열렸는지,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판별하고, 누가 더 센가 비교하며, 감시 통제 놀이하는 데에만 정신 팔려 있을 뿐입니다. 정작 본인들은 예배를 개판치고, 설교를 잡담으로 추락시키니, 삶을 막장으로 삽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마음에 상처 입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 신학을 우습게 알고 다 제대로 안 배워서 그렇습니다. 정규 신학교 들어가기 어려우면, 하나님께서 군소신학교라도 열어놓으셨으니 거기 들어가서 제대로 예배와 설교를 배워서 주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면접만으로 국가 공인 정규 신학을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주의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 앞에 합격 점수 때문에 정규 신학을 못 배운 거라고 핑계 댈 수 가 없습니다.
 
신비주의를 앞세워서 무식을 포장하고 반말 찍찍 내뱉으며, 허세 떨고 욕망만을 쫓아가니, 하나님 얼굴에 먹칠을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떠오른 잡념들을 영적 해석이라고 갖다 붙여봐야, 원어 성경으로 족족 깨지고 망신당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단들은 헬라어,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절대로 못 보게 합니다.
 
 
4편 예배의 신학
프린트 [예배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본성을, , , 사랑, 거룩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각종 제사를 폐지하므로써, 속죄 제사는 예배 속에서 이루어지며,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중심은 은혜와 언약을 베푸시는 하나님과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예배의 원동력을 부으시는 성령 안에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말씀이시니, 그 말씀을 전하는 설교를 정확히 알고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준비를 해야 겠습니다. 맨날 설교 할 거 없다고, 설교 방향을 못 잡겠다고 불평하는 신비주의자들은 예배학 안에서 길을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설교는 당대의 대화이므로, 성경 말씀 속 교훈과 가치관, 하나님의 명령을 이 시대에 생활상에 적용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 설교는 세상을 향한 증언이므로, 세상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개인 증언이므로, 자신의 죄를 돌아봐서 이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하고 이 내용을 가지고 설교하면 됩니다.
  • 설교와 예배요소는 상부상조 하므로, 기도, 찬송, 헌금, 성만찬 등등 다른 예배 형식을 망치면 안됩니다.
  • 본질적으로 설교는 예배의 한 행위이니, 설교 귀찮다고 빼먹고 찬송만 주구장창 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합리화 하면 안됩니다.

 
신비주의자들은 병만 잘 고치고, 예언 잘 하면 됐지, 도통 설교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 분들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병 잘 고치는 거 좋아하면 의사하시면 됩니다. 성도들이 병원가지 교회에 남아있겠습니까? 예언 잘 하는 거 좋아하면 통계 리서치 회사나 자산 상담가, 투자 상담가가 더 인기 많겠지요. 교회에서 하나님과 성도를 이어서, 초자연적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 보호를 받게 하고 마침내 성도가 구원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거면 교회가 뭐 하러 있습니까? 친목 단체하려면 세상 동호회가 더 재미있습니다.
 
  • 대화로서의 설교로서, 청중인 성도와 깊은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교류할 수 있습니다.
  • 선포로서의 설교는, 주님의 능력으로 성도의 어려움을 돕게 합니다.
  • 전도로서의 설교를 통해, 교회 돈 없다고 불평 마시고, 불신자들에게 예수 전해서 밥값을 하십시오. 그럼 성도가 점차 들어와서 교회에 헌금도 모아집니다.
  • 가르침으로서의 설교는, 전하는 나와 듣는 성도에게 큰 가르침이 돼서 방황하지 않고 갈 길을 알게 해줍니다.
  • 권면으로서의 설교는,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고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해주며, 교회를 강건히 해줍니다.
  • 증인으로서의 설교는, 예수님의 행적으로 우리가 증언하다보면 그 말씀의 권능이 이 시대에도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 예언으로서의 설교는, 우리가 기도하며 설교 말씀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그 선포된 말씀이 성도 누군가에게는 예언으로 작용합니다.

 
진리를, 뜨거운 열정을 갖고,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설교한다면, 말하는 나와 듣는 성도 모두에게 진정으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감동을 줍니다. 좌절한 삶을 다시 박차고 일어나게 해줍니다. 일생동안 증거하려는 마음 자세로, 빈약하고 누추하더라도 꾸준히 사역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적으로 전했으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십니다. 이단에게 속지 마십시오. 성경 그 어디에도 특수한 누구에게만 하나님께서 갇혀있다고 적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전하는 삶 가운데에서 산 증거는 반드시 따라오게 돼있습니다. 결국 솔선수범하는 사역자와 진솔한 설교를 지켜본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임을 깨닫게 되며, 결단하게 됩니다. 저는 윤석전 목사님의 연세중앙교회에서 적잖은 동성애자들이 정상인이 되는 사건들을 목격 했습니다

Importance of worship Scholarship - Main subject 2 -1~2

 
2장 예배학 기본부터 알자!
1편 예배의 의미

신비주의자들이 학문을 너무 무시해서 무체계로 살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두서없이 만드니, 기본적인 것부터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배학 프린트에 있는 것이라서, 아주 짧게 줄여 쓰겠습니다. 예배는 가치를 돌린다. 어떤 사람에게 가치와 존경을 주다는 것으로,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린다 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비주의자들이 예배를 아무 준비없이, 형식을 다 파괴하고 하는 것은, 1:6~10대로 하나님께 진노가 섞인 호통을 듣습니다.
 
저는 2006년 여름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시온 기도원에 예배와 설교에 관한 경고 예언 편지를 써드렸습니다. 2009년 이후에는 정말로 이뤄져서 성도 300명 가량의 시온 기도원은 공중분해됐습니다.
 
딸아! 제대로 준비한 설교를 하라! 네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지 말고, 성도의 영혼을 살리도록 나의 말씀을 전하거라! 단상에서 아무 말이나 막 내뱉지 말라! 그게 내 얼굴과 제단에 먹칠하는 것이다! 네가 회개치 않는다면, 화요 성령대망회 때마다 쏟아부은 축복의 예언들을 다 뺏겠다. 그리고 네가 멸시하는 남자 목사가 이끄는 영성훈련교회들에게 줘버리겠다!
 
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가 내 축복과 경고 예언을 땅에 떨어뜨렸도다! 그래서 내게 순종하는 다른 종들에게 예언을 이뤄 주므로써, 내 말씀은 단 하나도 의미없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거하겠다. 내 말씀을 거역한 너희들이나 땅에 떨어짐을 알게 해주리라!”
 
그래서 B 목사님의 GF 교회가 크게 부흥하되 시온기도원이 선포했던 예언대로 전국적으로 지교회를 세우고, 해외에도 지교회를 세우며, 수많은 해외 유명 목사들이 왕래를 했습니다. 2012년에는 B 목사님의 GF 교회에도 교만한 예배와 사랑없는 설교에 대해서 경고 예언을 써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부목사가 예언대로 성추문을 저질렀고, 교회 이름을 경고 편지 내용인 너희는 교만하고 사랑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한 대로 바꿨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들은, 네이버 블로그 [아우터레위] 안에 [원효 결서(元曉訣書) 13 - 2. 張之隱士(장지은사)권능 예시]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의 꾸짖음을 체험했다는 말없이, 아무렇게나 예배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지도 않고 있으며, 만난 체 한 것이라는 반증입니다. 그 것도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쓰겠습니다.
 
나 하나님이 여러차례 네게 말을 했으나, 네가 듣기 싫어하므로 이젠 네게 말해주지 않으마! 그리고 네 교회 안에 있는 선지자들도 네 권력으로 내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더 이상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므로 너희 교회 밖에 전혀 다른 엉뚱한 선지자를, 나 여호와가 들어써서, 그가 네게 말해주리라! 너는 너무나 많이 내 명령을 거역해서 내게서 직접 들을 자격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듣다간 네가 성령훼방죄를 저지를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네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게 되리라! 그래서 네 영성훈련 교회가 자랑하는 예언 사역자들이 내가 보낸 선지자 앞에서 무너지리라!”
 
23:25~40 말씀을 요약해서 이 단원을 정리하겠습니다. 예배의 본 뜻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사역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이 그랬다고 거짓말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썼다고 시험 들지 마시기를 이 글의 독자들에게 부탁드립니다. 1:16~19에 따라서 본래 계시는 성도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이며, 11:9~13에 따라서 구하는 모든 성도에게 성령을 부으심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교회에서 설거지하던 집사님도, 청소하시는 용역 아주머니도, 경비 보는 장로님과 목사님 차를 운전하시는 집사님도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이라면 그분들의 위치에서 교회 당회장에게 예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조차도 평소 싫어하는 정적(政敵)이 말한 예언이라도, 하나님의 진짜 지시였다면 꼼짝없이 들어야만 합니다. 실제로 저는 힘이 없으므로 그렇게 삽니다. 단지 사람의 말일 경우 정적은 심판 받아왔습니다.
 
도리어 나만 선지자다!, 나만 계시 받았다! 나만 따르라! 우리만 구원받는다!”를 외치는 신비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철권(鐵拳)으로 내려치십니다

다른 사람은 안되고 자기 혼자만 받을 수 있다니까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귀신들려서 이단되는 거란다. 다 같이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 2~3사람의 적은 수라도 모인 곳에 함께 있는 내가 올바른 말씀을 줬을 거다(마태18:20)! 혼자 욕심으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니까(18:1), 밖에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는 마귀한테 붙들리는 거란다(벧전5:8)!” 라고 경북 예천 외가댁에서 어린 시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2편 예배의 단계

프린트 [예배의 단계]는 마음의 눈을 띄우는 심미적 단계, 사람의 심성을 선하게 만드는 도덕적 단계, 영을 키우는 영적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은사주의 상당 수가 해방기 전후에 전도관의 박태선의 영향을 참으로 많이 받아서, 그 분이 쓴 어휘, 사상을 검증없이 쓰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구원파적 신앙으로 한 번 구원받고, 한번 회개하면 영원히 구원받았으니 끝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외적인 은사 현상에만 관심을 갖고 열렬히 구할 뿐, 5:22~23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7:15~27에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오직 은사와 권능만 추구하는 이들에게 경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래는 2006년 즈음에 시온 기도원 산본지원에서 목놓아 부르짖어 방언 기도하다가 하나님과 대화하던 체험입니다.
 
아버지, 기도원에서 자꾸 저더러, 목회하려면 능력 받고 은사 받아야 한 대요. 제가 나이 3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창 사회활동하면서 돈 벌고 장가갈 때에요. 어두컴컴한 기도원에서 기도나 하며 썩을 나이가 아니에요. 그러니 빨리 은사 주세요!”
아들아! 내가 네게 은사를 주겠다! 그럼 네가 말을 건, 과거있는 저 자매를 네가 받아들이겠느냐?”
아니요!”
좋다! 그 자매를 강요하지 않겠다. 네가 달라는 대로 내가 다 주마! 그럼 너는 육체적 조건이 조금 떨어지는 다른 자매를 받아들이겠느냐?”
싫어요!”
보아라! 아들아! 그럼 네가 은사와 권능을 아무리 많이 받은 들, 나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할 게 뭐가 있느냐? 나는 남보다 더 부족하고 상처입은 내 딸들을 더 사랑한다. 당연히 아버지로서 그들을 책임지고 돕고자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세상에서 버림 받은 영혼들을 모으고 살리려고 한다. 그런데 내 종들이 조건만 보고 성도들을 선택하고, 내가 보내는 곳의 조건을 따지고 가지 않는다면, 버림받은 약자들이 누구를 통해서 전도를 받고, 어떻게 예수를 만나겠으며, 어떻게 구원을 얻겠느냐?”
 
은사와 권능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나 여호와 하나님이 과연 너희에게 무엇을 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거라! 내 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내 마음은 성경에 써놨다. 마치 시험을 출제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미리 시험 범위를 알려주듯이, 나 여호와 하나님이 성경에 너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써놨다. 내 말씀에 순종해서, 내 참된 자녀가 되고 좋은 열매를 맺길 바란다.”
 
아래 말씀은 2002년 즈음에 연세중앙 교회의 흰돌산 기도원에서 본 환상과 위에서 들은 말씀을 합쳐서 썼습니다. 제가 자꾸 은사를 달라고 하자, 성령님께서 옷을 집어넣을 수 있는 서랍이 많은 서랍장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서랍들 마다 은사가 들어있는데, 열어서 꺼내 제가 갖기만 하면 됨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꺼내려고 서랍에 손을 대는 순간 들었습니다.
 
은사와 권능은 너희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 걸 다 갖고 너희가 관리나 할 수 있겠느냐? 필요에 따라서 나 하나님이 너희 기도를 듣고 역사해주면 된다. 너희가 나로부터 내 마음을 얻어내고, 내 인정을 받으면 된다.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그러니 성경 말씀에서 내가 요구하는 말씀들을 지켜라! 네가 그 마음 상태만 된다면, 영성훈련원에서 더 이상 배울 거 없다! 당장 떠나도 된다!” 14:15, 21

Importance of worship Scholarship - Introduction ~ Main subject 1

예배학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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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저 번 편에는 하나님의 실체를 증거하기 위해서 다소 신비주의적인 설교를 썼습니다. 이 번에는 제가 몸 담고 있는 신비주의 교회의 치명적인 결함과 위험성을 쓰고자 합니다.
 
총회나 당회, 노회 등등 목사님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세상사람들 만큼 지저분하고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럼 상당 수의 성도와 신비주의 목사들은 지식적 목사들은 성령을 거부해서, 마음/머리 속에 마귀가 가득차서 저래! 저것들은 목사의 탈을 쓴 마귀 자식들이야!”라고 말하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현장에서 이런 말들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워낙 유행해서 일반인들도 비슷하게 말합니다. 지 들이 목사야? 마귀 새끼들이지! 입만 열면 사기치고. 설교는 맨날 돈 달라는 얘기. 뒷구멍으로는 여자들이랑 바람나지. 하나님께서 그러라고 가르치시디? 그래서 난 교회 안간다. 차라리 등산/클럽/동호회에 가는 게 낫다!”
 
1990년대에는 일반인들이 목사 비난을 자제했습니다. 마치 선비처럼 꼴 보기 싫은 게 있어도 말을 참고 아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당시 불교도였던 저조차 그랬습니다. 2000년대 되니까 남자들이 서서히 교회 비판을 대놓고 시작하더니, 2010년대에는 여자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기독교 비판을 듣습니다. 페미니즘 시대가 된 오늘 날은 여자들이 더 적나라하게 까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와 목사, 전도사, 교회 사역자들을 스트레스 풀이용 조롱거리와 술안주용 대화거리로 삼습니다. 제가 막노동과 알바로 먹고 살아서 워낙 많이 듣는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왕년에 교회, 미션스쿨, 군대 교회, 기독교 유치원, 기독교 회사, 기독교계열 봉사활동을 안 다녀본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 경험적 느낌으로 이 들이 그 때 교회에 꾸준히 정착해도 기독교인구 비율이 80%를 상회할 걸로 봅니다. 그들은 기독교회를 나온 것에 자책감이 들긴 하지만 타당한 이유에 대해서 변명을 제게 고해성사를 쏟아놓듯이 늘어놓습니다. 10년 가까이 지금도 일터에 가면 이런 고해성사를 듣습니다. 그리고 다 듣고 나서 그들을 위해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기도해주는 게 제 일상입니다.
 
하지만 막상 연합 사역에 돌입하면 신비주의 목사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공허한 이유는 하나님과 말씀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리와 지식 및 신비주의 은사에만 치중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리(1:18)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구심점 없이 세상에서 막 살고 자기들이 욕하는 지식주의 목사들과 똑같이 타락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다른 글들에서는 성령, 기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강조하며 간증을 끼워 넣었는데, 이 번 편은 예배 속에 설교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본론
1장 신비주의자
1편 은사주의자 입장

한국에서 부흥하고 있는 교회들에 적잖은 수가 외국 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학교 출신의 목사님들이 담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중대형 교회들은 평균 30년을 목회했습니다. 30년 전에는 대부분 다 개척교회였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역사하셔서 성도들을 모으시고 교회를 키우셨습니다. 그럼에도 장신, 총신, 연세, 감신, 성공회대를 포함한 명문 기독교 대학교들이 훨씬 많은 졸업생들을 매년 압도적으로 쏟아내고 있는데, 이 들 중 대부분은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주의 목회자들이 중소형 교회들을 잘 이끌면서, 이 들을 지켜보니 영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녀들한테 신학교 좋은 데 가서 신학 많이 배워봐야 시간, 돈만 낭비 한다고 말하며, 신학교에 자녀를 잘 안보내고 계십니다

요즘 세상에 비유하겠습니다. 워낙 명문대라도 취업률이 낮고, 좋은 대학교 가봐야 등록금만 비쌉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전문대라도 관련 학과만 졸업한 뒤에, 가업이나 이으라고 자식에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삶의 현장에 가면, 서민계층에서는 교육열이 사그라지고 부모님 가업을 잇거나 기술을 배우거나 생산직에 들어가라는 유행이 솔솔 불고 있습니다.
 
 
2편 은사주의자들의 설교와 삶

서론에서 밝혔듯이 신비주의자들도 생활과 사역이 낫거나 본 받을 점이 없습니다. 저는 그 원인을 설교에 있다고 봅니다. 그 분들의 설교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개 뜬금없는 자기 신비 체험만 합니다. 아무리 간증이 자기 자랑이라도 말씀을 현실에서 증거하므로써 성도들에게 도전이 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다면 고후10:17~18 대로 하나님 앞에 칭찬 받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간증 설교가 성도에게 믿음을 심어줘야 하는데, 이들의 설교는 성도를 양육하려는 핵심주제가 없이 단순히 자기가 살아오면서 쌓여 왔던 감정과 한을 푸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목사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거라서 아주 지루합니다. 설교자의 아픔을 푸는 것에 치중하고 있어서 오랜 기간 설교를 듣고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고, 듣는 성도는 일주일 내내 기분이 축 쳐집니다.
 
신학 경시의 신비주의자들이 자기들의 설교는 현대 신설교의 장르인 이야기 설교라고 항변하지만, 이야기 설교 답게 청중에게 재미와 흥미를 제공해서 관심을 끌려는 노력도 부족하고, 청중에 거부감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체계적 기술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설교 1~2달 들어보고 시간과 돈이 아깝고, 신비주의자의 두서없는 설교처럼 자기 삶도 정리가 안되고 엉망진창이 되니까 교회를 관둡니다.
 
마태 9:27 말씀대로, 신비주의자들의 삶도 자신들의 설교처럼 엉망진창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설교에 비전이 없는 것처럼 자신의 삶 속에도 사명과 소명, 비전 및 이들을 삶 속에서 구현해 낼 계획이 겨자씨 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맨날 여기 저기 무리를 지어서 세미나 청강 하러 다니고, 행사와 부흥회를 찾아 다닙니다. 시간이 없어서 전도를 아예 내팽개쳤습니다. 더 나아가 이미 들어온 성도조차 제대로 양육하지 않아서 성도들이 도로 나가버립니다.
 
이 모든 게 신비주의자들이 신학 정규 교육을 무시하고, 설교학과 예배학을 충실히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배학을 제대로 배웠다면 설교가 예배의 꽃이자 중심인 것을 알고 혼신의 노력을 쏟았을 것입니다.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 설교학을 심도있게 연구했다면, 하나님 뜻을 받들어 성도에게 뚜렷한 목적이 담긴 말씀을 체계적인 논리와 구성으로 분명하게, 재미있는 간증을 곁들여서 전달했을 겁니다.
 

연예계는 시한부 인생 14 - 연예인들이 제대로 잘 살려면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