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Importance of worship Scholarship - Main subject 2 -3~4

3편 예배의 초점과 특성

프린트 [예배의 초점]에서, 예배는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며, 임마누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대화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라보길 원하시는 곳에 우리의 눈이 초점을 맞춰야 겠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10:25~37에서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성령의 9가지 열매에 대해서 써놨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도덕관념과 믿음은 아무 상관없다며 막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성경에 근거없는 것임을 깨닫겠지요? 따라서 예배에서 도덕적 단계는 중요 합니다.
 
[예배의 다섯가지 움직임]을 풀어쓴다면, 성경 안에 시편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 쏟으라고 시편과 선지서들이 고백 하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긍정적 믿음을 선포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분께 애원하여 간구하라고 신구약을 통틀어 적어놨습니다. 신약에서 헌신을 얼마나 강조합니까?
 
거꾸로 말하면 찬양을 하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피조물임을 깨닫고, 사람들 앞에 하나님인척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므로,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긍정적 믿음을 선포할 때, 우리의 유익만을 구하겠습니까? 공동체의 유익과 더 어려운 사람의 유익을 위해 더욱 애원하여 간구하지 않겠습니까? 그에 따라서 헌신하지 않겠습니까?
 
프린트 [예배의 특성]에서 예배는 개인적, 실제적 반응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겸손, , 인내, 공의, 사랑 등등 각종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요구들이 적혀 있는 성경 말씀에 따라 예배를 드린다면, 기도할수록 교만하고 거친 신비주의자들이 나타나는 현실이 잘못됨을 더욱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예배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예배에 대한 참 뜻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자기 정욕대로 기도하니까 삶이 흐지부지하고 삶에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2006년 산본 시온 기도원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에, 저는 하나님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나님, 예언 사역에서는 저 영안 열어주신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 영안훈련 안 시켜주시나이까?”
아들아! 너 지금 누구랑 말하는 거냐?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냐? 나 하나님 아니냐? 사람들이 널 인정해주지 않고, 영안사역 훈련을 안시켜준다고 화가 났느냐?”
아들아! 봐라! 네가 열렬히 기도했으나 현실에서 이렇다할 응답과 변화가 없으니, 너도 화가 나고 답답하지? 나 성령 하나님도 그렇단다. 너희가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문제가 생길때마다 해결해주면 어떻게 살겠다고 말하면서, 지키지 않으니 나도 참으로 답답하단다. 아들아! 사람들에게 전하거라. 나도 너희가 내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지 않아서 참으로 답답하다고!”
저 그런데, .......... 하나님! 그래두.....”
아들아! 이미 열린 거란다. 더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이만 마치자!”
 
이 얘기는 시온 기도원에 전해줬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전심으로 꾸준히 기도하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특이한 영성훈련 말고 일반교회 다녀도 충분합니다. 우리 윗대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새벽기도와 철야기도, 금식만으로 하나님을 다 만나고 예언하고 병 치료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니까 영적으로 안된 것 같을 뿐입니다. 교주와 조직을 놔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면서, 삶 속에서 말씀에 대한 순종을 마음껏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배학에서 말한 반응 교리를 하나님께서 지지하십니다.
 
신비주의자들이야말로 무지하고 하나님과 거리가 멉니다. 그들은 남이 영안이 열렸는지,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판별하고, 누가 더 센가 비교하며, 감시 통제 놀이하는 데에만 정신 팔려 있을 뿐입니다. 정작 본인들은 예배를 개판치고, 설교를 잡담으로 추락시키니, 삶을 막장으로 삽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마음에 상처 입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 신학을 우습게 알고 다 제대로 안 배워서 그렇습니다. 정규 신학교 들어가기 어려우면, 하나님께서 군소신학교라도 열어놓으셨으니 거기 들어가서 제대로 예배와 설교를 배워서 주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면접만으로 국가 공인 정규 신학을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주의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 앞에 합격 점수 때문에 정규 신학을 못 배운 거라고 핑계 댈 수 가 없습니다.
 
신비주의를 앞세워서 무식을 포장하고 반말 찍찍 내뱉으며, 허세 떨고 욕망만을 쫓아가니, 하나님 얼굴에 먹칠을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떠오른 잡념들을 영적 해석이라고 갖다 붙여봐야, 원어 성경으로 족족 깨지고 망신당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단들은 헬라어,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절대로 못 보게 합니다.
 
 
4편 예배의 신학
프린트 [예배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본성을, , , 사랑, 거룩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각종 제사를 폐지하므로써, 속죄 제사는 예배 속에서 이루어지며,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중심은 은혜와 언약을 베푸시는 하나님과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예배의 원동력을 부으시는 성령 안에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말씀이시니, 그 말씀을 전하는 설교를 정확히 알고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준비를 해야 겠습니다. 맨날 설교 할 거 없다고, 설교 방향을 못 잡겠다고 불평하는 신비주의자들은 예배학 안에서 길을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설교는 당대의 대화이므로, 성경 말씀 속 교훈과 가치관, 하나님의 명령을 이 시대에 생활상에 적용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 설교는 세상을 향한 증언이므로, 세상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개인 증언이므로, 자신의 죄를 돌아봐서 이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하고 이 내용을 가지고 설교하면 됩니다.
  • 설교와 예배요소는 상부상조 하므로, 기도, 찬송, 헌금, 성만찬 등등 다른 예배 형식을 망치면 안됩니다.
  • 본질적으로 설교는 예배의 한 행위이니, 설교 귀찮다고 빼먹고 찬송만 주구장창 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합리화 하면 안됩니다.

 
신비주의자들은 병만 잘 고치고, 예언 잘 하면 됐지, 도통 설교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 분들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병 잘 고치는 거 좋아하면 의사하시면 됩니다. 성도들이 병원가지 교회에 남아있겠습니까? 예언 잘 하는 거 좋아하면 통계 리서치 회사나 자산 상담가, 투자 상담가가 더 인기 많겠지요. 교회에서 하나님과 성도를 이어서, 초자연적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 보호를 받게 하고 마침내 성도가 구원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거면 교회가 뭐 하러 있습니까? 친목 단체하려면 세상 동호회가 더 재미있습니다.
 
  • 대화로서의 설교로서, 청중인 성도와 깊은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교류할 수 있습니다.
  • 선포로서의 설교는, 주님의 능력으로 성도의 어려움을 돕게 합니다.
  • 전도로서의 설교를 통해, 교회 돈 없다고 불평 마시고, 불신자들에게 예수 전해서 밥값을 하십시오. 그럼 성도가 점차 들어와서 교회에 헌금도 모아집니다.
  • 가르침으로서의 설교는, 전하는 나와 듣는 성도에게 큰 가르침이 돼서 방황하지 않고 갈 길을 알게 해줍니다.
  • 권면으로서의 설교는,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고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해주며, 교회를 강건히 해줍니다.
  • 증인으로서의 설교는, 예수님의 행적으로 우리가 증언하다보면 그 말씀의 권능이 이 시대에도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 예언으로서의 설교는, 우리가 기도하며 설교 말씀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그 선포된 말씀이 성도 누군가에게는 예언으로 작용합니다.

 
진리를, 뜨거운 열정을 갖고,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설교한다면, 말하는 나와 듣는 성도 모두에게 진정으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감동을 줍니다. 좌절한 삶을 다시 박차고 일어나게 해줍니다. 일생동안 증거하려는 마음 자세로, 빈약하고 누추하더라도 꾸준히 사역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적으로 전했으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십니다. 이단에게 속지 마십시오. 성경 그 어디에도 특수한 누구에게만 하나님께서 갇혀있다고 적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전하는 삶 가운데에서 산 증거는 반드시 따라오게 돼있습니다. 결국 솔선수범하는 사역자와 진솔한 설교를 지켜본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임을 깨닫게 되며, 결단하게 됩니다. 저는 윤석전 목사님의 연세중앙교회에서 적잖은 동성애자들이 정상인이 되는 사건들을 목격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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