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학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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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저 번 편에는 하나님의 실체를 증거하기 위해서 다소 신비주의적인 설교를 썼습니다. 이 번에는 제가 몸 담고 있는 신비주의 교회의 치명적인 결함과 위험성을 쓰고자 합니다.
총회나 당회, 노회 등등 목사님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세상사람들 만큼 지저분하고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럼 상당 수의 성도와 신비주의 목사들은 “지식적 목사들은 성령을 거부해서, 마음/머리 속에 마귀가 가득차서 저래! 저것들은 목사의 탈을 쓴 마귀 자식들이야!”라고 말하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현장에서 이런 말들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워낙 유행해서 일반인들도 비슷하게 말합니다. “지 들이 목사야? 마귀 새끼들이지! 입만 열면 사기치고. 설교는 맨날 돈 달라는 얘기. 뒷구멍으로는 여자들이랑 바람나지. 하나님께서 그러라고 가르치시디? 그래서 난 교회 안간다. 차라리 등산/클럽/동호회에 가는 게 낫다!”
1990년대에는 일반인들이 목사 비난을 자제했습니다. 마치 선비처럼 꼴 보기 싫은 게 있어도 말을 참고 아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당시 불교도였던 저조차 그랬습니다. 2000년대 되니까 남자들이 서서히 교회 비판을 대놓고 시작하더니, 2010년대에는 여자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기독교 비판을 듣습니다. 페미니즘 시대가 된 오늘 날은 여자들이 더 적나라하게 까는 것을 넘어서 기독교와 목사, 전도사, 교회 사역자들을 스트레스 풀이용 조롱거리와 술안주용 대화거리로 삼습니다. 제가 막노동과 알바로 먹고 살아서 워낙 많이 듣는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왕년에 교회, 미션스쿨, 군대 교회, 기독교 유치원, 기독교 회사, 기독교계열 봉사활동을 안 다녀본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 경험적 느낌으로 이 들이 그 때 교회에 꾸준히 정착해도 기독교인구 비율이 80%를 상회할 걸로 봅니다. 그들은 기독교회를 나온 것에 자책감이 들긴 하지만 타당한 이유에 대해서 변명을 제게 고해성사를 쏟아놓듯이 늘어놓습니다. 10년 가까이 지금도 일터에 가면 이런 고해성사를 듣습니다. 그리고 다 듣고 나서 그들을 위해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기도해주는 게 제 일상입니다.
하지만 막상 연합 사역에 돌입하면 신비주의 목사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공허한 이유는 하나님과 말씀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리와 지식 및 신비주의 은사에만 치중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리(골1:18)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구심점 없이 세상에서 막 살고 자기들이 욕하는 지식주의 목사들과 똑같이 타락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다른 글들에서는 성령, 기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강조하며 간증을 끼워 넣었는데, 이 번 편은 예배 속에 설교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본론
1장 신비주의자
1편 은사주의자 입장
한국에서 부흥하고 있는 교회들에 적잖은 수가 외국 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학교 출신의 목사님들이 담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중대형 교회들은 평균 30년을 목회했습니다. 즉 30년 전에는 대부분 다 개척교회였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역사하셔서 성도들을 모으시고 교회를 키우셨습니다. 그럼에도 장신, 총신, 연세, 감신, 성공회대를 포함한 명문 기독교 대학교들이 훨씬 많은 졸업생들을 매년 압도적으로 쏟아내고 있는데, 이 들 중 대부분은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주의 목회자들이 중소형 교회들을 잘 이끌면서, 이 들을 지켜보니 영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녀들한테 “신학교 좋은 데 가서 신학 많이 배워봐야 시간, 돈만 낭비 한다”고 말하며, 신학교에 자녀를 잘 안보내고 계십니다.
요즘 세상에 비유하겠습니다. 워낙 명문대라도 취업률이 낮고, 좋은 대학교 가봐야 등록금만 비쌉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전문대라도 관련 학과만 졸업한 뒤에, 가업이나 이으라고 자식에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삶의 현장에 가면, 서민계층에서는 교육열이 사그라지고 부모님 가업을 잇거나 기술을 배우거나 생산직에 들어가라는 유행이 솔솔 불고 있습니다.
2편 은사주의자들의 설교와 삶
서론에서 밝혔듯이 신비주의자들도 생활과 사역이 낫거나 본 받을 점이 없습니다. 저는 그 원인을 설교에 있다고 봅니다. 그 분들의 설교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개 뜬금없는 자기 신비 체험만 합니다. 아무리 간증이 자기 자랑이라도 말씀을 현실에서 증거하므로써 성도들에게 도전이 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다면 고후10:17~18 대로 하나님 앞에 칭찬 받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간증 설교가 성도에게 믿음을 심어줘야 하는데, 이들의 설교는 성도를 양육하려는 핵심주제가 없이 단순히 자기가 살아오면서 쌓여 왔던 감정과 한을 푸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목사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거라서 아주 지루합니다. 설교자의 아픔을 푸는 것에 치중하고 있어서 오랜 기간 설교를 듣고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고, 듣는 성도는 일주일 내내 기분이 축 쳐집니다.
신학 경시의 신비주의자들이 자기들의 설교는 현대 신설교의 장르인 이야기 설교라고 항변하지만, 이야기 설교 답게 청중에게 재미와 흥미를 제공해서 관심을 끌려는 노력도 부족하고, 청중에 거부감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체계적 기술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설교 1~2달 들어보고 시간과 돈이 아깝고, 신비주의자의 두서없는 설교처럼 자기 삶도 정리가 안되고 엉망진창이 되니까 교회를 관둡니다.
마태 9:27 말씀대로, 신비주의자들의 삶도 자신들의 설교처럼 엉망진창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설교에 비전이 없는 것처럼 자신의 삶 속에도 사명과 소명, 비전 및 이들을 삶 속에서 구현해 낼 계획이 겨자씨 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맨날 여기 저기 무리를 지어서 세미나 청강 하러 다니고, 행사와 부흥회를 찾아 다닙니다. 시간이 없어서 전도를 아예 내팽개쳤습니다. 더 나아가 이미 들어온 성도조차 제대로 양육하지 않아서 성도들이 도로 나가버립니다.
이 모든 게 신비주의자들이 신학 정규 교육을 무시하고, 설교학과 예배학을 충실히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배학을 제대로 배웠다면 설교가 예배의 꽃이자 중심인 것을 알고 혼신의 노력을 쏟았을 것입니다.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 설교학을 심도있게 연구했다면, 하나님 뜻을 받들어 성도에게 뚜렷한 목적이 담긴 말씀을 체계적인 논리와 구성으로 분명하게, 재미있는 간증을 곁들여서 전달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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