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3일 수요일

The preaching of the Holy Spirit - Main subject 1 - 3 A

3부 책에서 예시된 설교자

OK 목사

이 부분은 책 내용 그대로 쓰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OK 목사님은 제 평생의 한이기 때문입니다. OK 목사님은 1989~91년도 사이 여름방학 때, 서울시 관악구 신림 11동 반지하 집에서 받은 환상입니다. 제가 불순종으로 오랫동안 발표하지 않아서, 2012년 즈음 덕정 사랑의 교회 최보라 목사님이 OK 목사님께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먼저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 기념 설교에서, OK 목사님이 마치 최보라 목사의 지옥 간증을 예고라도 한 듯이, 자신이 성령을 무시해서 지옥에 간다는 말을 설교에서 내뱉으며 통회 자복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쓰겠습니다. 제가 200510월 즈음에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아시아 교회의 리더십 트레이닝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밤 리더 회의를 하고 있을 때, 제게 성령님께서 내려오셔서 저는 회의 시간 내내 회의에 집중 안하고, 성령님께서 하신 말씀들과 악마가 하는 말들을 회의 프린트 뒤편에 죽 적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OK 목사는 성령을 무시해서 지옥간다!” 라고 제가 성령님으로부터 글을 받아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낮에 형제들은 나가서 같이 족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전날 밤 썼던 여러 쪽에 달하는 기록물들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전날 저녁에 하나님께서 그 기록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서 교계에 알릴 것이라고 환상으로 미리 예언하셨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그 글의 내용이 OK 목사님의 손에 들어갔는지 그 글 내용대로 많은 설교를 하셨습니다.
 
455쪽에 가말리엘도 그 때 프린트에 받아적은 내용인데, OK 목사님이 제 글을 보시고 써먹으셨는지, 아니면 OK 목사님이 먼저 써먹으신 내용을 성령님께서 제게 가르쳐주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내용이 몇 개 더 있는데 일일이 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설교에서 애매하게 쓰여진 부분을 제가 밝히겠습니다.
 
 

OK 목사님 설교의 난해점 교정

455쪽 윗 부분에 OK 목사님께서 우리는 성경을 분석하고 대지를 만들어서는 말씀을 죽입니다. 이제 우리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하여금 그것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 강력한 일을 하도록 풀어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뜻 읽으면 그럴 듯하지만, 막상 [성령설교]에서 지금껏 가르친 것과 상당히 위배됩니다. 성경본문을 분석해서 또렷한 대지를 작성하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상당히 모순되는 설교입니다. 그 결과 상당히 난해한 설교로 비춰지게 됐는데, 이 어려운 부분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그 설교는 제가 먼저 프린트에 써놓은 글이라서 잘 압니다.
 
2000년대 까지도 한국 자생 이단들과 외국 유학파들이 들여온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경을 구절을 넘어 단어 단위로 쪼개서 아전인수(我田引水), 견강부회(牽强附會)격으로 해석하는 게 유행을 했습니다. 성경의 단어를 원어 참고없이 단순히 한국역본만 보고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비유를 갖다 붙였습니다. 역사적, 문맥적, 통합적, 문법적인 정상적 문장 해석을 안 하는 게, 바로 영적(靈的) 해석이라고 무식한 목사들이 자랑 했습니다. 공부 많이 한 자유주의 신학자도 별반 차이는 없어서 말씀에 현대의 유행하는 철학을 억지로 구겨 넣어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문장 하나 갖고도 엉뚱한 해석이 무한대로 쏟아지는 괴이한 설교가 난무했습니다.
 
지금도 신천지, 통일교에서는 비유풀이로, 페미니즘, 동성애자, 공산주의자들은 여성신학, 민중신학, 퀴어신학, 해방신학을 만들어서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칼뱅주의자들도 장 칼뱅과 저명한 신학자들의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오류를 숨기기 위해서, 성경을 그렇게 아작내서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일반교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목사들이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교묘하게 짜깁기하고 변칙적으로 해석해서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아직도 적잖은 이단과 기도원들은 자신들의 엉터리 해석이 들통날까봐 원어 성경을 못 보게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점을 비판하시며, 성령님께서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기적중지론과 은사중단론을 포함한 각자의 궤변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대로 받아 적었습니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성경말씀을 주석과 역사 자료 및 각종 성경 시대 자료, 원어 성경을 찾아서 성경 본문을 분석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쓴 글을 통해서, OK 목사님이 제 글을 도용해서 설교를 한 것이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실상 도용한 것이 아니라, OK 목사님더러 지옥가기 싫으면, 참고해서 설교하시라고 제가 그 서류에 써놨습니다.
 
 


200510월 하나님을 만난 증거

지금도 신학을 잘 모르는데, 2005년도에 제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생각합니까

방언기도를 빡시게 하면, 부흥 설교는 성령님께서 부어주신다고 어린 시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곧이곧대로 믿고 대형교회 목사가 되고 싶어서 매일 하루 몇시간씩 방언기도를 한 거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삼위 하나님께서 진짜로 나타나셨습니다. 증거를 대겠습니다

요한1:18에 하나님을 지금까지 본자가 없었다고 썼는데, 창세기18:1~15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서 사라는 웃기 까지 했습니다. 창세기32:30에서 야곱이, 출애굽기33:11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했다고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에스겔1:1, 이사야6:1에서 두 선지자 모두 하나님을 봤습니다. 이 거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요한1:18대로라면 예수님 탄생 전까지는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됩니다. 이렇듯 신약성경을 들이대며 지금까지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람을 박살내라고, 제게 방법을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요한1:18에서 말씀이 서로 부딪히는 오류를 해명하자면, 성령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유대와 이방인들 모두 살아계신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왔다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극소수 선택받은 이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하나님을 볼 수 없었고, 극심한 불안감과 외로움, 공허감에 떨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안위 받고자 주변 환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물과 사람을 결합해서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내고 하나님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그 안타까움을 오랜 세월 지켜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셨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오감으로 마주할 수 있는 참된 신을 맞이하게 됐고 더 이상 거짓 우상에 의지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성령님께서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긴 글을 한 문장에 구겨 넣었는데, 사도 요한은 사람의 이성과 언어의 한계로 구약과 모순되는 표현을 쓰게 됐습니다. 실제로 사도 요한은 구약 성경을 자세히 몰랐습니다. 보수신학자들이 무턱대고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데, 성경말씀과 완전히 딴판의 얘기입니다. 고전13:2고전14:32에 따라서 사람에게 내려오는 계시가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제한되고 완벽치 않고 부분적이라고 분명히 썼습니다. 그래서 구약부터 신약 성경까지 성경을 자세히 뜯어보면 오류와 모순점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유대교 때 투석형이 유행을 했고, 중세시대 성경 가지고 마녀 사냥하고, 신구교간에 화형시키고, 기독교에서 파생된 이슬람은 코란으로 살인을 신성시 합니다. 지금도 보수신학자들이 이단판정을 남발합니다. 이런 악행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경의 오류를 설계하신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을 후세 사람들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성경 속 오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입니다.
 
"교만, 정죄, 경직, 잔인을 저지르려고 성경을 악용하지 말고, 사랑, 이해, 겸손, 헌신, 섬김으로 사람들을 대하라고 성경에 오류를 넣어놨다",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과 1984년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대주의 철학자들이 영원한 진리는 없다고 공격할 것을 대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기적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제 어머니가 동성애 반대 운동을 할 때, 하나님께서 자연재해와 각종 기적, 정세 변화와 무슬림의 유럽침입으로 동성애 탄압으로 증거하고 계십니다.

The preaching of the Holy Spirit - Main subject 1 - 2

2부 자유 요약

1장 설교 개관

앞의 1부에서는 신설교학에 대해서, 정확한 소개를 하기 위해서 각자 썼지만, 여기서부터는 간단하게 전체적으로 훑겠습니다. 설교자가 전할 복음은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윤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는 기록된 성경 구절을 로고스로 정의하고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후현대주의에 영향을 받은 신설교학에서 기교를 본 받을만하지만, 주도, 성육, 영감, 조명을 포괄하는 전통적 계시를 전달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설교 하나만 잘 한다고 그 설교가 청중에게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먼저 말씀에 따라 윤리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설교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전해야 합니다.
 
설교를 작성할 때, 성경 본문을 충실히 설명하는 강해 설교 방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길이에 따라 주제 / 본문 / 강해 설교로 분류할 수 있으며, 성경 순서에 따라 연속적인 설교를 할 수 있어서, 매번 설교 본문을 고르는 부담을 덜어냅니다. 대지와 소지까지도 본문에서 따올 수 있습니다. 주석을 가지고 설교를 해도 됩니다.


 
2장 설교 작성 요령

먼저 설교의 출처인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레임 골즈워디의 11단계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먼저 문학적 방식으로 설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다음에는 성령의 초자연적 도움을 간구해서 더 깊은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쓰여졌던 원어 본과 당시 문화, 역사적 배경 지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설교를 작성할 때는 문학에서 글 쓰는 방법을 도입해야 합니다

도널드 수눅지안이 쓴 방법은 기독교 어휘로 표현했지만, 결국 말할 주제를 연구해서 개요를 작성하고, 청중이 기억해야 할 중심 주제를 설정합니다. 청중들이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 메시지를 확정합니다. 서론, 결론, 제목을 작성하고, 전체적으로 문장을 구어체로 씁니다.
 
설교가 세상 웅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설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믿는 점입니다. 파토스를 열정, 큰 확신으로 설명을 했는데, 청중이 연설을 믿으려면 연설자의 확신이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 설교자는 20:9처럼 그 확신을 성령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설교자에게서 청중으로 전달돼서, 삶 속에서 뚜렷이 변화하는 체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으로 서신서들을 썼던 점을 감안한다면, 설교의 중심 내용을 일반 청중에게 전함에 있어서 세상의 논리학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사람들에게 뚜렷이 중심 주제를 전해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3장 설교 태도

후현대주의는 기본적으로 진리에 대한 불신에 가득차 있는데, 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신설교학은, 설교자의 확신, 열정, 청중을 향한 진지하고도 절박한 심정에 있어서 정통 설교학에 크게 뒤지므로, 불신자들을 제대로 교회로 이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죽도록 공부하되, 기도로 살아나라는 아담 클라크의 명언을 되새겨야 겠습니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령의 조명을 의지해야 합니다. 조명으로 깨달아진 진리는 성숙한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초심을 잃지 말고 이권, 인기 등 세속 정욕을 자극하는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바로 그 모든 도움을 얻기 위해서 설교자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성경 말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때 주석서나 다른 해설 서적 및 원어 성경을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도 참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 다음에 문학적 구성 기법에 따라서, ,,결론의 내용을 잘 분배하고, 분량과 내용의 발전을 깊이 연구해서 청중들의 사고와 감정 순서와 변화를 배려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에게 먼저 설교 본문을 읽어주고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설교 구성에 대한 사람의 준비를 다 했다면, 이제 청중에게 하나님의 실체를 전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존하시고 자신의 말씀에 책임을 반드시 지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청중에게 전하기 위해서, 설교자가 할 일은 억지로 청중 앞에서 쇼맨쉽을 과장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전달할 성경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하면서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을 설교자가 먼저 갖는게 중요합니다. 설교할 때는 오히려 자연스런 표정과 음성이 청중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자세는 자연 스럽되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특정하거나 특이한 자세와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4장 성령충만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복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말씀이 실제로 열매를 맺도록 해주십니다. 보슬비처럼 지속적인 변화를 주시는 통상충만과 소낙비처럼 기적을 쏟아부어주시는 비상충만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격자이시기 때문에, 근심과 소멸을 하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수한 동기로 성령님을 갈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강청하는 기도로 성령을 구해야 하며, 뜻 밖의 실망을 잘 견뎌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되, 지정의 모든 차원에서 참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하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5장 설교자의 삶

설교에서 로고스=, 파토스=마음, 에토스=삶 세 가지 분야가 갖춰져야 사람들이 설교를 받아들이는데, 여기서 세 번째 삶의 분야를 다루겠습니다. 보통 이렇게 쓰면 많은 이들이 인격에 분야를 한정하는데, 권성수 목사는 건강관리도 삶의 영역에 간단히 집어넣었습니다. 그 다음에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바에 따라 설교자가 하나님과 사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으로 넘어갑니다. 결국 인격이 받혀줘야 설교가 힘 있게 대중을 설득합니다. 필립스 브룩스는 이 모든 부분을 모아서 설교자의 자질에 대해서 열거했습니다. 경건, 인격, 건강, 신중, 적극, 용기, 열정, 이타, 타인존대, 사역흥미입니다.
 
이상의 자질은 고난 속 연단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같은 상황의 전달자가 필요하고, 상처받은 가슴을 지닌 설교자가 상처받은 가슴을 지닌 청중의 공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단은 평생에 걸쳐서 이뤄지며, 권성수 목사님은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부터 정죄받는 신학생 시절까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신학교의 머리 훈련을 넘어, 영혼을 훈련시키는 고난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방해하는 자아를 버리기 위해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성경에 다윗의 간음, 모세의 불순종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종들이 늘상 자기 관리를 해야 함을 반증하는 사례입니다. 필립스 브룩스는 목회자가 조심해야 할 것들을 나열했습니다. 허영, 방종, 편협입니다. 그리고 스펄젼은 설교자가 좌절하는 이유와 좌절하는 시기도 열거했는데, 이 모든 것을 종합 요약하면 너무 영적인 분야만 추구한답시고 육과 혼의 분야를 소홀히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속의 눈에 빠져서 섣부른 판단과 기대를 가져서도 안됩니다. 쉬기도 해야 합니다.
 
 
6장 변화

이상의 모든 과정이 모여서 결국 설교자부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바꿔집니다. 그리고 그 변화된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이 청중들을 바꾸는데, 이 책에서는 바울을 통해서 변화된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표면적인 부분보다 내면적인 부분을 바꾸라고 설교자가 전하기는 어렵지만, 성령님은 이 불가능을 다 이루십니다. 로이드 존스는 그 예시로 우연처럼 삶이 바뀐 기독교인이 된 심령술사를 예로 들었습니다. 죄를 사람 스스로 고칠 수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십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진보주의 교단의 쇠퇴와 보수주의 교단의 성장이 숫자로써,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신설교학과 기독교 내부 진보주의자들이 권위적이라고 비판을 할지라도, 세속 문화에 동화되지 말고 분명히 성경 말씀을 뚜렷이 전하고 권면을 해야 합니다

하우드 패티슨은 설교는 설득을 목표로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말로 전하는 커뮤니케이션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설교자부터 가슴의 열정과 머리에 복음에 관한 분명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이 받혀줘야 청중으로 하여금 전인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청중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설교자는 청중의 눈 높이에 맞추고 그들의 귀가 멀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중을 깊이 분석하고, 설교의 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으며, 대지를 잡을 때 추상적이고 모호한 범위가 아니라, 작은 범위로 줄여놓고 구체적 문장으로 표현을 해야 합니다. 또한 감성, 기술, 장소, 사람과의 관계 등등 현대의 조류에도 적응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인보다 전도대상인 불신자들에게 나아가 잦은 접촉을 하고 관찰해야 합니다. 또한 청중 집단의 성격에 맞춰서 설교 양식과 순서도 융통성있게 구현해야 합니다.

The preaching of the Holy Spirit - Exordium ~ Main Subject 1 - 1

권성수 목사님의 성령설교 독후감

outerlevi@gmail.com

서론

()지식 주의 목사님은 대개 은사 추구 기도원만 다니시고, 신학교를 자격증 따듯이 공부하며 성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설교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구를 소홀히 합니다. 그분들은 설교의 문학적 구조의 중요성을 전혀 생각지 않으십니다

그 영향을 받아서 저도 설교의 중요성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설교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할 중요성과 방법을 다시금 되새기게 됐습니다. 제 간증 얘기는 4쪽 아래 부분 부터 나옵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제 개인적으로는 모든 은사주의자들에게 은사만 믿고 설교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2004.12 ~ 2009.2까지 제가 시온기도원에 다녔습니다. 그 곳 원장 목사님의 설교 특징은 늘상 똑같은 성경 본문을 몇 줄 읽고는, 강단에 올라가서 자기 속에 있는 일상적인 속마음을 쏟아내는 얘기만 했습니다. 처음 가는 사람들은 서론이 1시간을 넘어가네?’ 생각하다가 어느새 설교가 끝나버리는 황당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2005년 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임했습니다.
 
내 설교단상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고 내 여종에게 전해주거라

설교 단상에서는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 안된다. 성경에 적힌 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너는 그 때문에 이 기도원에 왔다! ... 

이 여종이 내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간 화요 성령 대망회에서 선포했던 모든 축복과 사명을 다 뺏어서, 그녀가 우습게 여기는 남자 목사가 이끄는 영성훈련 교회로 면류관을 옮겨 놓겠다!” 

이상의 말씀을 제가 오랫동안 꾹 참고 있다가 2006년 초여름에 글을 써서 드렸습니다.
 
예언 사역자에게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니 그분들이 코웃음을 쳤고, 저는 또 전부터 들어왔던 경고를 들었습니다.

형제는 혼란스럽다! 양신兩神역사다! 사탄의 음성을 들었다

함부로 하나님의 예언을 듣는다고 하지마라! 우리도 하나님 음성을 듣는데, ?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떠나 네게 말하느냐? 우리에게 말하지도 않으신 말씀을 왜? 네게 말하느냐? 여기서 예언하지 마라

남자들은 예언 감각이 여자보다 둔해! 사역자 여러분, 이 형제한테는 예언훈련을 절대로 시키지 마세요!” 

그러나 2012년 강남구청역에 B 목사의 GF 교회에 직접 가서 예언이 현실로 이뤄짐을 확인했고, 그 교회에도 면류관 이동의 예언 글을 써드렸습니다. 그때는 수도권에 4개 교회, 충남 대천에 1개 대형 기도원, 미국에 지교회를 보유했던 시온 기도원은 이미 공중분해 됐습니다.
 
 

성령사역의 저변확대(底邊擴大)

면류관 이동은 예언대로 새생활 영성훈련원에서 시온 기도원, 그 다음에 GF 교회로 이동해왔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영성훈련제도를 지는 해가 되고, 모든 한국 교회(특별히 개척교회)들이 뜨는 해가 됩니다. 마침내는 성령 사역이 낮은 곳에서부터 널리 퍼지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지령을 1985년 경북 예천 외가댁을 중심으로 일평생 간간히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계에 성령사역을 집요하게 강조하고 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독교계 숙청(肅淸)과 한반도 위기도 마다않고 계십니다.
 
저는 칼뱅주의자와 은사중단론, 계시중지론, 기적중지론자 앞에 가면, 신랄하게 지옥에 떨어진 장 칼뱅을 증언하고, 폭격기가 폭탄을 퍼붓듯이 성경 말씀으로 은사중단론, 계시중지론, 기적중지론을 깨부쉬는 일을 합니다

반면 은사주의자 앞에 가면 성경 말씀을 우습게 알고 무분별하게 살며, 말씀에 뿌리두지 않고 내키는 대로 설교, 상담하는 죄값에 대한, 처절하고 참혹한 심판 예언 및 지적 경고를 갈구듯이 쏟아 붓습니다

10년 가까이 이렇게 살다보니, 2014 ~ 2016년 개척 초기에는 성도들한테까지 너무 혹독하게 얘기해서 성도들이 줄줄이 떠납니다. 그래서 저야 말로 이 책이 필요합니다. 성도 앞에서는 할 말, 못할 말을 잘 가려서 잘 짜여진 체계 아래에서 설교와 상담을 해야 겠습니다.



 
본론 1

1부 설교의 동향과 방향

1~2장 신설교학~시대적인 흐름

전통적인 설교는 합리적인 청중 설득에 목표를 두고 있어서, 분명한 명제를 연역적으로 발전시키며 대중에게 전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기초를 뒀습니다. 그러나 신설교학은 성경 본문의 장르를 살려서 청중이 성경 속 여정을 능동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속 이야기를 귀납식으로 전달해서 마지막에 결론을 청중 스스로 도출하도록 합니다. 문학적 장치를 중시합니다.
 
 
3~4장 신설교학 평가 / 바울의 설교

신설교학은 세속의 후현대주의 물결에 휘둘린 결과입니다. 신설교학의 약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설교학은 후기독교 청중에게는 연역적 설교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
  2. 신설교학은 설교의 목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기교에만 집중
  3. 설화체 설교만 주된 방식으로 제시해서, 성경 속 다른 장르를 무시
  4.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신앙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설교
  5. 청중에게 구체적 삶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6. 귀납적 설교는 신앙 공동체를 세울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7. 신설교학이 구설교학을 설교의 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신설교학의 장점도 있습니다.
  1. 기존 기독교가 변해야 할 것을 지적
  2. 청중이 진리를 체험해야 함을 지적
  3. 설교자가 참된 권위를 지니도록 도전
  4. 감성도 중시해야 함을 알려 줌.
  5. 성경의 설화에 관심을 갖게 함.
  6. 다양한 전달 방식의 길을 터줌.
  7. 설교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함을 알려줌.

 
그러나 바울의 설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응용한 전통적 설교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연예계는 시한부 인생 14 - 연예인들이 제대로 잘 살려면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