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수 목사님의 성령설교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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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반(反)지식 주의 목사님은 대개 은사 추구 기도원만 다니시고, 신학교를 자격증 따듯이 공부하며 성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설교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구를 소홀히 합니다. 그분들은 설교의 문학적 구조의 중요성을 전혀 생각지 않으십니다.
그 영향을 받아서 저도 설교의 중요성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설교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할 중요성과 방법을 다시금 되새기게 됐습니다. 제 간증 얘기는 4쪽 아래 부분 부터 나옵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제 개인적으로는 모든 은사주의자들에게 은사만 믿고 설교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2004.12 ~ 2009.2까지 제가 시온기도원에 다녔습니다. 그 곳 원장 목사님의 설교 특징은 늘상 똑같은 성경 본문을 몇 줄 읽고는, 강단에 올라가서 자기 속에 있는 일상적인 속마음을 쏟아내는 얘기만 했습니다. 처음 가는 사람들은 ‘서론이 1시간을 넘어가네?’ 생각하다가 어느새 설교가 끝나버리는 황당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2005년 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임했습니다.
“내 설교단상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고 내 여종에게 전해주거라!
설교 단상에서는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 안된다. 성경에 적힌 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너는 그 때문에 이 기도원에 왔다! ...
이 여종이 내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간 화요 성령 대망회에서 선포했던 모든 축복과 사명을 다 뺏어서, 그녀가 우습게 여기는 남자 목사가 이끄는 영성훈련 교회로 면류관을 옮겨 놓겠다!”
이상의 말씀을 제가 오랫동안 꾹 참고 있다가 2006년 초여름에 글을 써서 드렸습니다.
예언 사역자에게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니 그분들이 코웃음을 쳤고, 저는 또 전부터 들어왔던 경고를 들었습니다.
“형제는 혼란스럽다! 양신兩神역사다! 사탄의 음성을 들었다!
함부로 하나님의 예언을 듣는다고 하지마라! 우리도 하나님 음성을 듣는데, 왜?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떠나 네게 말하느냐? 우리에게 말하지도 않으신 말씀을 왜? 네게 말하느냐? 여기서 예언하지 마라!
남자들은 예언 감각이 여자보다 둔해! 사역자 여러분, 이 형제한테는 예언훈련을 절대로 시키지 마세요!”
그러나 2012년 강남구청역에 B 목사의 GF 교회에 직접 가서 예언이 현실로 이뤄짐을 확인했고, 그 교회에도 면류관 이동의 예언 글을 써드렸습니다. 그때는 수도권에 4개 교회, 충남 대천에 1개 대형 기도원, 미국에 지교회를 보유했던 시온 기도원은 이미 공중분해 됐습니다.
성령사역의 저변확대(底邊擴大)
면류관 이동은 예언대로 새생활 영성훈련원에서 시온 기도원, 그 다음에 GF 교회로 이동해왔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영성훈련제도를 지는 해가 되고, 모든 한국 교회(특별히 개척교회)들이 뜨는 해가 됩니다. 마침내는 성령 사역이 낮은 곳에서부터 널리 퍼지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지령을 1985년 경북 예천 외가댁을 중심으로 일평생 간간히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계에 성령사역을 집요하게 강조하고 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독교계 숙청(肅淸)과 한반도 위기도 마다않고 계십니다.
저는 칼뱅주의자와 은사중단론, 계시중지론, 기적중지론자 앞에 가면, 신랄하게 지옥에 떨어진 장 칼뱅을 증언하고, 폭격기가 폭탄을 퍼붓듯이 성경 말씀으로 은사중단론, 계시중지론, 기적중지론을 깨부쉬는 일을 합니다.
반면 은사주의자 앞에 가면 성경 말씀을 우습게 알고 무분별하게 살며, 말씀에 뿌리두지 않고 내키는 대로 설교, 상담하는 죄값에 대한, 처절하고 참혹한 심판 예언 및 지적 경고를 갈구듯이 쏟아 붓습니다.
10년 가까이 이렇게 살다보니, 2014 ~ 2016년 개척 초기에는 성도들한테까지 너무 혹독하게 얘기해서 성도들이 줄줄이 떠납니다. 그래서 저야 말로 이 책이 필요합니다. 성도 앞에서는 할 말, 못할 말을 잘 가려서 잘 짜여진 체계 아래에서 설교와 상담을 해야 겠습니다.
본론 1
1부 설교의 동향과 방향
1~2장 신설교학~시대적인 흐름
전통적인 설교는 합리적인 청중 설득에 목표를 두고 있어서, 분명한 명제를 연역적으로 발전시키며 대중에게 전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기초를 뒀습니다. 그러나 신설교학은 성경 본문의 장르를 살려서 청중이 성경 속 여정을 능동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속 이야기를 귀납식으로 전달해서 마지막에 결론을 청중 스스로 도출하도록 합니다. 문학적 장치를 중시합니다.
3~4장 신설교학 평가 / 바울의 설교
신설교학은 세속의 후현대주의 물결에 휘둘린 결과입니다. 신설교학의 약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신설교학은 후기독교 청중에게는 연역적 설교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
- 신설교학은 설교의 목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기교에만 집중
- 설화체 설교만 주된 방식으로 제시해서, 성경 속 다른 장르를 무시
-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신앙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설교
- 청중에게 구체적 삶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 귀납적 설교는 신앙 공동체를 세울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 신설교학이 구설교학을 설교의 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신설교학의 장점도 있습니다.
- 기존 기독교가 변해야 할 것을 지적
- 청중이 진리를 체험해야 함을 지적
- 설교자가 참된 권위를 지니도록 도전
- 감성도 중시해야 함을 알려 줌.
- 성경의 설화에 관심을 갖게 함.
- 다양한 전달 방식의 길을 터줌.
- 설교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함을 알려줌.
그러나 바울의 설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응용한 전통적 설교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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