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9일 수요일

성경단어 해석 오류 모음 2

본론
 
1. 어근의 오류
한 때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했던, 요한복음 마지막 장의 설교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다를 아가파오동사로만 묻는데, 베드로는 필레오로만 대답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아가파오필레오보다 더 높은 종교적 차원의 사랑이라고 목사들이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 둘의 차이점은 전혀 없고, “아가파오는 신조어 이며, “필레오는 본래 그리스 어에 지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가파오는 히브리어 אהבה를 들은 그리스 인들이 받아들인 외래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책에서도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신조어라고 밝혔습니다. 이미 예수님 이전에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을 통해서, 가나안 지방은 그리스인들이 지배를 했습니다. 그 와중에 헬라인들은 히브리, 아람어를 받아들였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아하바음이 된소리로 바뀌어 들리면서, “으로, “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추측을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행적을 좀 더 생생히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도 요한은 히브리어와 가까운 아가파오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쓰지 않았는가 추측을 해봅니다. 예수님과 유다 사람들은 로마 제국 당시에 아람어를 썼다고 하니 말입니다.
 
저자는 낱말의 뜻은 시대에 따라 그 범위가 변하므로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방대하게 쏟아 붓고, 성경해석에서 강요할 필요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2. 의미론적 시대착오
성경 해석을 성경이 쓰여진 당시가 아닌, 우리 시대를 기준으로 제 멋대로 해석하는 실수를 뜻합니다.
 
작가는 여기서 다이너마이트를 예로 들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은 헬라어 두나미스 권능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설교에 자주 써먹는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시대에 다이너마이트는 없었을텐데, ? 파괴적인 다이너마이트를 사도적 권능에 빗대어 쓰냐고 지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치료의 기적인데, 파괴적 권능에 기독교를 대입해서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요즘 현대 신학 사조에서 자주 범하는 오류로써,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우파 정권 시절에, NCCK와 진보 계열 목회자들이 자주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하며 반정부 집회를 주도했습니다.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기독교 성도를 싸움꾼으로 전락시켰습니다.
 
 
3. 의미의 퇴화
성경 속 단어들이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그 뜻이 바뀌거나 완전히 없어진 것 또는 접두사나 접미사의 문법적 기능이 사라져 버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우리가 고대 문법과 성경 어휘 뜻을 과도하게 되살리면서, 접두사와 접미사의 문법적 기능과 낱말의 뜻을 과장, 과대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쓰여진 당시에 성경 저자와 화자부터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뜻과 기능을 우리 시대에 과도하게 중시하면서, 해석이 엉뚱하게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4. 알려지지 않았거나 가능성이 없는 의미에 호소하는 오류
이 책의 저자는 글을 쓸 때 아주 기본적인 절차를 없애버리는 실수를 참으로 많이 합니다. 이 단원에서는 자기가 내세운 소단원의 주제와 정의를 생략하고 바로 사례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독자가 사례를 보고 알아서 추측하라는 뜻이거나, 자기가 알고 있으니 우리도 알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쓴 듯합니다.
 
제가 요점을 잡아서 끌어내면, 성경에 쓰여진 낱말에 있지도 않는 뜻을 해석자가 스스로 지어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신학자 크랜필드와 카이저의 주장을 예로 들었습니다. 바울이 비판했던 성경 속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율법주의, 랍비의 규범, 랍비적 해석이라고 두 신학자가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할 때,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반박을 했습니다. 즉 크랜필드와 카이저가 4번째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단어라는 협소한 범위에서만 생각하는 성경해석학이 얼마나 위험한 지 깨닫습니다. 오히려 저자가 4번째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종류와 유대교 역사를 살펴보면, 크랜필드와 카이저의 주장이 옳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율법의 종류가 있습니다.
 
  1. 먼저 모세가 받은 토라,
  2. 그 토라를 일상생활에 적용할 때 많은 허점을 보충하기 위해서 성문율법으로 집대성한 미쉬나,
  3. 이 미쉬나를 구체적인 사례를 섞어서 사례집을 만든 미크라,
  4. 미슈나에 넣은 주석을 게마라고 부릅니다.
  5. 이상의 경전들에 관련해서 토론하고 편집한 것이 탈무드,
  6. 성경에 대한 교훈과 설교적 주석을 달은 미드라쉬

 
하나님께서 토라 하나를 주셨는데, 유대인들은 나머지 5가지 경전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613가지인데, 5가지 경전을 추가하므로써 수천가지로 늘어났고, 더욱 범위는 넓어지고 적용하는 법률은 세분화 됐으며, 형량은 강화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3에서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훼방하는 것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꾸짖으셨고, 장로들의 유전과 하나님의 계명은 결코 같은 게 아님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고 마 5:17-18에서 밝히셨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신학자들의 신학교리와 성경 말씀은 전혀 같은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자신은 율법을 파괴하는 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성경에 적었습니다. 3:31, 7:7, 7:12, 7:14
 
따라서 두 신학자의 주장은 전혀 틀린 게 아니라,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했습니다. 오히려 저자가 성경해석학의 좁은 범주의 알량한 지식으로 엉뚱한 해석을 해낸다는 것을 반증했을 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해석학에 갇혀서, 낱말의 뜻에만 착념할 게 아니라, 구약학, 유대교 역사를 알았다면, 장로들의 유전도 율법이라고 불리면서 효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시키시고, 사도 바울이 지키려 하셨던 구약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이 신랄하게 비판하셨던 바리새와 서기관들의 자칭 율법=장로의 유전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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