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출애굽기 기록 증거
앞 단원의 관점으로 세상 역사를 바라본다면, 이스라엘이 방랑, 전쟁을 통해서 외부 나라와 겨레들과 끊임없이 부딪힌 그 모든 역사가 다 구속사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수 많은 불신자들은 성경을 허구로 봅니다. 뚜렷한 역사적 증거와 유물이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시키신 것부터 결국에는 이스라엘 밖의 다른 나라와 겨레들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역사를 기록하고 유물을 남겨놓도록 손을 써놓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 건너가게 해서, 요셉=임호텝(이름 뜻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불립니다)의 역사와 유물들을 이집트 고왕국 제3왕조 조세르 왕(기원전 2668~2649년)에 남겨놓으셨습니다. 1890년 영국의 찰스 윌보우가 나일강 사할 섬에서 임호텝에 대한 인적사항이 적힌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적사항은 성경의 요셉의 인적사항과 완벽히 일치하여, 요셉은 기원전 2668년의 시대에 존재하던 실존 인물임을 증거했습니다.
기존 역사학자들은 성경 출애굽기1:11에서 람세스라는 도시 이름 때문에, 기원전 1250년대 즈음에 출애굽을 했을 거라고 추측을 합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이스라엘 유물을 찾아보면 이집트 땅에서 나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유대교 랍비조차도 출애굽을 믿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북쪽 고센 지역에서, 비엔나 대학교 맨프레드 비택 박사가 기원전 1870년을 넘어가는 훨씬 오래된 이스라엘 유적지를 발견했습니다. 중왕국 시대에 고센 지역에서 이스라엘 겨레들이 오랫동안 살았다는 유물들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학설보다 요셉과 야곱의 연대가 천년 이상 위로 끌어올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살았던 기간도 430년이 아니라 1500년 정도로 길어집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출애굽기12:40~41에서 애굽에서 거주한 지, 430년이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세기15:13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몇 년을 이집트에 살지 말씀하시지 않았고, 종살이 하는 기간만 400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성경 전반에 걸친 인간의 실수로 용인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신 게 아닙니다. 다음 예를 보면, 아하시야 왕의 즉위 나이가 성경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구약총론 교과서 191쪽에 실린 내용을 예로 들겠습니다.
-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딸 아달랴더라(왕하8:26).
-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 역시 오므리의 딸 아달랴더라(대하22:2).
이 밖에도 성경은 인간의 오류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에 따라서, 성경 무오설이 깨진지 아주 오래됐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실수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종살이 400년과 모세의 430년 이집트 거주, 실제 역사에서 드러난 1400년이 넘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거주 역사가 전혀 문제 없이 해결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설은, 모세가 역사를 기억의 한계로 축소해서 적었을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신 게 아니라, 모세의 실수입니다. 야곱과 요셉의 역사는 기존 학설보다 천년 이상 오래됐다고 유물과 이집트 역사 기록이 증언합니다.
실제로 이집트의 람세스 2세 때 출애굽이 이뤄진 게 아니라는 유물이 1896년에 발견됐습니다. 13번째 아들로써 람세스 2세 뒤를 이었던 메르넵타 왕이 전승비를 세웠는데, 메르넵타 왕이 이미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침공한 내용이 나옵니다. 기존 학설에서 출애굽 시대로 알고 있는 시기가 실제 유물에서는 사사기 시대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유물이 증거하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존 학설보다 몇백년에서 천년 더 오래 된 것입니다.
이상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 많은 외침과 유랑을 겪게 하시니, 외부 겨레와 나라들이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이스라엘인들이 유물을 현지에 남겨놓을 수 있었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도 바로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모두 최신 발견이라 아직 반영이 안됐을 뿐입니다.
3편 종교개혁
40에 대한 유래를 찾다가, 뜬금없이 이스라엘 역사를 유물로 바로 잡아가는 하나님의 역사를 서술했습니다. 이게 왜 40과 연결되는지 쓰겠습니다.
모든 문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그 역사가 오래되면 원조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고조선의 홍산문명이 중국, 한국 누구의 것이냐고 현시대에 혼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성경이 이집트, 수메르, 페르시아를 베꼈다고 논란이 일어납니다.
더 나아가 외부문화에 너무 오랫동안 잠식된 나머지, 이스라엘 민족은 성경에서 기록된 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신 신앙보다는 기존부터 다른 민족들이 믿어왔던 주변 다신교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하나님께서 확실히 개혁하도록, 구습 타파와 하나님의 실존 증거, 이방신의 허구성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기존 신앙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시는 일들을 출애굽기 10가지 재앙처럼 꾸준히 해오셨던 것입니다.
그게 숫자 사용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수메르 12진법, 60진법에서 최고신인 안(하늘신)은 숫자 60으로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6보다 하나 더 많은 7로 완전수를 정하셔서, 안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셨습니다. 그리고 수학적 완전수 6을 세 번 겹쳐서 마귀 숫자로 전락시켰습니다. 물론 대하9:13과 왕상10:14에서 세속물욕으로 솔로몬을 타락한 숫자이기도 합니다. 중근동 전역에서 수천년 간 회복, 치료, 희망을 위한 주술에 사용됐던 40을 고난의 수로 바꿔버리셨습니다.
40일 금식, 40일 정탐, 40년 광야생활은 이스라엘 민족이나 외부 나라와 겨레 모두에게 고통의 시간으로 각인됐으며, 동시에 그들이 수천년간 믿어왔던 구원자 엔키 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력한 존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바로 이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중근동 모든 나라와 겨레에 대해서 종교개혁을 하신 것입니다.
4편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영향력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한 기적의 역사로 인해서, 이집트는 18왕조 아멘호테프 4세=이크나톤 때에 이스라엘을 따라 모방하여 다신교를 버리고 유일신 교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이집트 창세 신화가 바뀌어버립니다. 이집트에는 창세 신화가 같은 신을 두고도, 다른 여러 개가 전해져 옵니다. 즉 주변의 유력한 민족의 영향을 받아서 그 민족의 창세신화를 베끼는 것입니다. 이집트 다른 지역의 창세 신화는 아툼 신이 자위를 해서 나온 정액을 스스로 먹고 하위 신들을 나아서 세상을 창조했다는 내용을 포함해서 여러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살았다는 고센 땅 가까운 멤피스에서는 프타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프타 신이 다른 방법으로 창조했다고 나옵니다. 오직 이스라엘이 살았던 지역에서만 프타 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창세기를 베꼈다는 결론이 맺어집니다.
이를 통해서 모세가 창세기를 적기 전부터 그 조상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세 이야기를 전해줬고, 모세는 조상들의 구전을 받아 적었다는 가설이 확립됩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수 많은 기적과 이적이 역사적으로 실존했기에, 주변의 수많은 민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싶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형편에 맞게 현지화 편집한 것 까지 확인가능합니다.
이와 비슷한 역사로 따지면, 조로아스터 교와 미트라 교, 불교도 있습니다.
조로아스터 교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이주정책으로 이란 고원으로 쫓겨난 후 약 백년 뒤에야 비로소 조금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조로아스터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페르시아 버전인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에 대한 기원전 5세기 석조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로아스터 교는 기원후 4세기 페르시아 사산왕조가 될 때, 기독교 교리를 대거 받아들여서 체계가 잡히고 확립됩니다. 심지어 성경 내용을 고스란히 베낍니다.
미트라 교에 대한 기록은 페르시아에서 기원전 3세기에 부조로 조각됩니다. 미트라 종교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비문에 이름만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활동한 뒤에는 4복음서를 대거 베껴서 로마군인들 사이에서 미트라교는 페르시아와 전혀 동떨어진 종교로 재창조됩니다. 로마인들은 미트라가 페르시아에서 전해져 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동시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미트라 교를 로마인의 창작물로 여겼습니다.
미륵불은 기원후 4세기가 돼서야 미륵육부경에서 등장합니다. 불교의 공식적 기록으로 미륵불은 석가모니 사후 900년이 지나서 사람들에게 존재를 알렸다고 합니다. 불교에 대한 기록은 [불광 미디어 - 경전의 세계] 미륵경전 의 구조와 중심사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메떼야, 마이트레야, 미트라, 미륵불 뭐든 간에, 다 구약 성경의 메시야를 베껴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현지화 시킨 것들입니다.
심지어 불교와 힌두교는 기독교 성경 신구약 가리지 않고 베껴대기 시작했습니다. 불교 경전에 기독교 성경과 비슷한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 그 것을 가지고 불교계에서 민희식 박사는 “기독교가 불교를 베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초창기 경전은 수타니파타 한권 뿐이었습니다. 그 경전이 최초 쓰여진 시기는 기원전 280년이라고 보는데, 아소카왕의 솟대에 적힌 글귀가 수타니파타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현재 8만4천 대장경들은 죄다 기원후 3~4세기 이후부터 등장합니다. 즉 기독교가 인도와 서역에 전해진 지 3~4백년 돼서야 불경들이 조금씩 발표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후대에는 서역, 중국, 신라, 고려에서도 불경이 창작됩니다. 결국 불교 경전 대부분이 기독교 경전을 베낀 것입니다.
이렇듯 주변 모든 겨레와 나라들이 구약과 신약 성경을 베껴서 자기들 방식으로 종교를 만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실체적으로 드러내신 수 많은 기적을 이방 민족들과 나라들이 목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들은 구약의 역사서와 사도행전을 보시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종교개혁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수 차례 이루셨으며, 여러 나라와 겨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서 수 많은 고등종교들이 발생하게 됐습니다. 그런다고 종교다원주의와 보편구원론을 내세우면 안됩니다. 이사야 42:8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뜻을 분명히 밝히셨기 때문에, 짝퉁들은 다 심판받습니다.
종교다원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논리를 직설적으로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이슬람교, 통일교, 신천지, 천부교, 하나님의 교회 = 안상홍 증인회, JMS, 류광수의 다락방,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기독교를 베껴서 인간의 영광을 구하는 이단을, 수백년 뒤에는 이단해제 시켜주겠다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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