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유대교와 기독교가 다른 종교의 원조이다!
1편 기독교
기독교는 수천년 전부터 구약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십자가형이 예언돼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는 구약 성경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 나라의 역사들에도 기록이 돼있습니다.
1896년 겨울, 영국정부가 파견한 고고학자 플랜더스 피트리는 고대 이집트 19왕조, 메르넵타 왕(BC.1212~1202)의 공적비를 발견합니다. 거기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발견됩니다. 그 내용을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아홉 오랑캐 중 고개를 드는 자는 아무도 없다. 리비아는 폐허가 됐고 히타이트는 평정됐으며, 가나안은 약탈당했다. 아스글론은 정복됐고, 가자는 사로잡혔으며, 야노암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 후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호리족 여인은 이집트로 인해 모두 과부가 됐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창세기32:28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다가 받은 이름이므로, 메르넵타 왕은 야곱이 씨름한 이후 시대 사람입니다. 이집트가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기록은 왕상14:25가 가장 처음 나옵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상황은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렸고, 남 유다 르호보암 왕이 공격을 당한 것입니다. 게다가 성경에 적힌 이집트 왕은 22왕조(BC945~730) 시삭입니다. 므깃도에 이집트의 파라오 셰숑크 1세가 BC. 925년에 유다와 이스라엘을 침공한 기록이 적힌 비석이 발견됐습니다. 이집트 남쪽 테베에서 아문 대신전의 한 벽에도 같은 내용이 조각돼 있습니다. 성경과 똑같이 적혀 있으므로 시삭이 세숑크 1세이고, 메르넵타 왕은 시삭왕이 아닙니다.
현존하는 시삭왕의 비문을 통해서, 유다 왕조의 르호보암 왕은 더 이상 전설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참고로 더 말한다면, 기원전 9세기의 텔 단 비문과 모압 비석에는 이스라엘 2대 왕, 다윗의 이름이 분명히 적혀 있어서, 다윗은 전설과 성경 속만의 인물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비문에서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후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봐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사라진 때가 바로 요셉이 총리로 올랐을 때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요셉과 같은 신화를 지닌 총리는 임호텝 총리가 있으며, 이집트 제3왕조 조세르왕(기원전 2668~2649년)의 신하입니다.
임호텝의 무덤은 이집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출애굽기13:19내용대로 요셉의 유골을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겜 지역에 요셉의 무덤이 남아있습니다. 3왕조 시대의 임호텝에 관련된 기록이 꽤 발견됐는데, 그 기록이 성경의 잠언, 전도서와 비슷한 구절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구절들이 유일신을 표현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다신교의 이집트 종교체제가 아닌 유대교에서 비롯됐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임호텝과 요셉은 이름이 비슷하지 않는데 어떻게 꿈 이야기 하나로 같냐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세르 왕조차도 네체리케트라는 종교식 이름이 따로 있었고, 그리스인들은 그의 이름을 토스르토스라고 불렀습니다. 즉 한 사람의 이름을 다른 민족이 다른 언어로 부를 때는 이름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름의 작은 차이를 두고 요셉과 임호텝은 다른 인물이라고 말할 근거를 댈 수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 역사 속 요셉, 론 와이어트의 연구에 따라 메리 넬 와이어트가 지음]에 따르면, 임호텝의 임은 영어와 비슷하게 “나는 누구이다.=I am” 이란 뜻, 또는 “음성, 입”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어와 이집트 어가 “입=임” 받침 빼고 비슷합니다. 그래서 임호텝이라는 말이 “나는 호텝이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임을 빼면, 호텝=요셉에 더욱 가까워 집니다.
1890년 찰스 윌보우가 이집트의 나일강에 있는 사할(sahal)섬에서, 이집트 파라오 조세르의 총리인 이모텝이 기록된 거대한 돌판을 발견했습니다. 거기 석판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집트 사할 석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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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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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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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형제중 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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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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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풍년 기에 곡식을 저장하고, 7년의 흉년에 백성을 구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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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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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피라밋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위대한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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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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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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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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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잘 해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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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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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철학, 천문학에 능통했으며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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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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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을 세금으로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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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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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르 다음가는 재상, 이집트의 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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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다음의 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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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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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제사장의 가문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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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비교하면, 2개 빼고 임호텝과 요셉에 관한 인적 사항은 모두 일치 하므로,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요셉이 역사적으로 헷갈리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역사적 유물과 기록이 1천년의 격차가 있는 이집트 13왕조에도 나타난다는 발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3왕조가 성경상 연대가 들어맞기도 합니다. 단지 13왕조의 요셉과 비슷한 기록은 3왕조 시대의 기록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13왕조 때로 추정(확정은 아님)되는 유물을 찾아본다면, 2009년에 이집트 일간지 알 아흐람에서 뉴스 기사를 발표했습니다. 사이드 무하마드 타베트라는 학자가 요셉의 7 암소, 7 이삭 조각이 박혀있는 동전을 발견했습니다. “요셉” / “사바 사비니” 라고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 역사 속 요셉, 론 와이어트의 연구에 따라 메리 넬 와이어트가 지음]에 따르면, 성경에 나온 요셉의 이집트 이름 사브낫 바네아는 “사브낫= ~라고 불리다” 와 “바네아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가 합쳐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요셉 이름의 본 뜻은 “하나님께서 더 하신다” 라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꿈 해석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이집트 사회에 각인된 것을 본다면 그다지 큰 차이는 아니라고 봅니다.
종합하면 메르넵타 왕을 통해서 기원전 1200년경에 이스라엘이 이집트 비석에 분명하게 기록돼 있고, 메르넵타 왕을 찾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다윗왕가 또한 기원전 9세기 암몬의 비석에 적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다윗 왕은 주변 나라도 실체를 인정하는 왕입니다.
- 이집트 왕조 비교 : 제3왕조 조세르왕(BC. 2668~2649년) > 19왕조, 메르넵타 왕(BC.1212~1202) > 22왕조 셰숑크 1세 (BC.943~922)
- 성경 인물 : 요셉 > 이 사이가 1437년정도의 시간차로서, 430년 이집트 생활 + 40년 광야 + 400년 가량의 사사기를 빼고도 567년이 남습니다. >메르넵타 왕은 이스라엘 왕정 이전시대 사람으로 추정 > 남 유다의 르호보암 왕
제 추측으로는 모세나 그 후손이 창세기를 짓거나 첨삭할 당시에, 정확한 기록의 부재와 기억력의 한계로 1430년이 넘어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430년으로 잘못 적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집트의 유물 연대, 70명의 이스라엘 민족이 군대구성이 가능한 남자들만으로도 60만 대군으로 늘어난 점을 따질 때, 그 정도 시기는 거쳐야 할 듯 합니다.
또한 4대만에 다시 돌아온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 또한 430년 기간을 산입할 때 안 맞습니다. 당시 결혼 나이 20세로 쳐서, 1세대를 20년으로 잡으면, 21.5대입니다. 4대만에 돌아온다는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 이후, 이삭, 야곱을 거쳐 유골이 된 요셉의 4대로 봐야 계산이 맞습니다. 이는 구약신학에서는 정설입니다.
따라서 이집트의 유물과 기록으로 봐서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실제로 체류한 기록을 500~1000년 정도 빼먹고 430년으로 축소해서 기록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성경무오설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가 아니라서, 성경기록자가 사람으로서 실수를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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