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
불교로 동화(同化)될 기독교 이성주의(理性主義)
일본은 불교와 신토가 융합된 종교가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일본인들이 기독교에 귀의할 수 있도록, 불교를 건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고교 시절과 1997년 대입후 1998년까지는 불교를 믿어서 기독교를 부정하느라 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과 현실에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악마가 주는 것이라고 치부하고 불순종을 했습니다. 신비주의 배격은 본래 불교의 전매특허이며, 역사가 꽤 오래 됐습니다. 중국 당(唐)말(末)의 고승(高僧)인 임제(臨濟) 의현(義玄) 선사(禪師)의 법어(法語)가 증거합니다.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가 성령님과 나 하나님의 권능 및 그 실존, 기적을 저버리고 이성과 지성만을 추구하면, 결국 유럽 기독교 사회처럼 불교에 동화될 미래가 기독교계에 예정돼있다. 그래서 너희가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너희가 죽은 뒤에 심판대에 끌려갈 것이고, 나 여호와는 내 교회를 이방 종교에 팔아먹은 너희 죄값을 다 묻겠다!”
그 다음에 불지옥 속으로 사역자들이 다 내던져 지는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유럽에서 작은 개척 교회 파산, 그 다음에 대형 교회들이 인적이 드물고 썰렁한 문화 유산으로 전락하며, 마침내 미국과 유럽의 신학교들이 종합대학교로 재빠르게 전환하거나 폐교하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다른 환상으로 미국의 리버 사이드 교회를 보여주셨습니다.
거기서 성령과 예수님, 타 종교에 배타적인 말씀을 저버리니까, 열심히 교회 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던 성도들과 신학생들이 기독교를 버리고 불교로 빠져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현실에서 찾아보니 진제 스님이 그 교회에 가셔서 설법 하셨더군요.
그 밖에 미국 성공회 워싱턴 교회에서는 법륜 스님이 설법하셨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무리 좋게 해줘도 욕 먹는 사역이라, 평소에 모든 사람들에게 높임말을 써드립니다.
“왜? 성령이 너희를 도와준다고 하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고 거부했느냐? 너희의 완악함이 바로 자아(自我) 우상숭배이고, 너희가 그 우상숭배를 좋아하니 너희 스스로 불교를 끌어들인 것이다!” 삼상15:23 불교는 자신을 믿는 종교입니다. 자기가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알미니안 교리의 극치입니다.
“나는 너희가 말빨로만 양들을 상대하지 못하도록 해놨기 때문에, 성경에 나온 논리는 상대적으로 간결하다. 주변에 논리와 철학, 종교들을 잡다하게 끌어 모아서 겉으로 화려하고 시류에 편승하여 불교는 인기를 끈다. 그리고 기독교가 논리와 말빨만으로 불교를 이기지 못 하게 만들어 놨다!”
기독교 입장에서 전혀 말이 안될 거 같은데, 동성애를 예로 들겠습니다. 불교 입장에서는 육도윤회와 전생의 과보로 동성애, 성전환이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지, 교리에 큰 도전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열린 마음으로 시류에 편승해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 모을 수 있습니다.
아래 명언은 매일종교신문 [왜 서양에서 ‘불교 바람’이 불고 있나]에서 발췌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우리 시대의 최고의 사건은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와 기독교를 대체하는 일이다."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 종교가 돼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세계를 부정해 왔다.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종교는 자연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똑같이 존중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둬야 한다. 자연세계와 영적인 부분의 통합이야말로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야말로 이런 내 생각과 부합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현대의 과학적 요구에 상응하는 종교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 속 사도 바울의 선례(先例)
이 문단에 결론을 내리면, 주제 말씀 고전2:1~5처럼 사람의 지혜와 논리, 언변으로는 세속의 인기를 업고 덤비는 세속 철학가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내세워봐야, 그는 헬라철학을 신학에 도입한 혼합주의의 방법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도들이 사실을 캐고 들어서 다음처럼 대답하면 넘어갈 신학자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정벌 뒤에 남겨놓은 서역의 그리스 국가들을 통해서, 우리 불교는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여서 대승 불교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너희 기독교도 헬라철학을 기독교에 섞어서 신학을 만들었으니, 너희 기독교나 우리 불교나 결국 헬라 철학을 조상으로 하는 같은 자손 아니냐?”
그래서 WCC와 다원주의가 이 시대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위시한 교부(敎父)들과 신학자(神學者)들은 지옥에 있습니다.
주제 말씀 고전2:1~5을 쓴 동기를 쓰겠습니다. 그리스 해안 도시의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광장, 환상 기억을 더듬어서 단어를 쓰자면, “아덴” “아크로 폴리스” 와 “아레오바고”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릅니다. 사도 바울이 해안 도시의 높은 언덕 위 광장에서 철학자들을 만나 열띤 토론을 하다가 연패하는 장면을 1984~5년 즈음에 경북 예천 외가댁에서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소 설교를 잘 했던 경험을 너무 믿고 헬라 철학자들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헬라 철학자들은 그들만의 철학적 방식으로 논쟁의 규율을 정하고, 그 들이 유리한 논리적 고지를 선점했습니다.
“아아! 바울 선생, 그렇게 말씀하시지 말고, 3단 논법으로 말씀하세요. 논리가 다룰 수 없는 그런 신비적이고 비이성적인 얘기는 논거에서 빼시고, 분명한 논리로만 교리를 말씀하세요!”
그 아래로 사도 바울을 유인한 뒤에 바울이 지닌 무기를 다 뺐어서 사도 바울을 논쟁에서 완패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쏟아지는 비웃음을 뒤로 하고 총총히 피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엡6:13~17에 영적 무기를 나열하는 심경을, 성령님께서 그 환상을 보여주시며 제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우연찮게 그리스 인들 중에 아프거나 귀신들린 자가 있어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 인들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며 사도 바울을 따르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도시의 거리 전체 그리스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보려고 몰려들었고, 모두 엎드려 사도 바울에게 절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논변과 지혜, 지식으로는 사도 바울조차 개망신만 당하게 만들었다. 오직 성령과 나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역사하는 권능과 지혜로만 전도가 됨을 역사에 아예 흔적으로 남겨놓았다. 후학들에게 분명히 경고와 시범사례로 남겨놨다!”
아마 사람들은 이 글을 가지고 비판하실 겁니다. “어차피 역사책과 주석 보면 다 나와있는 내용인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 이런 얘기 빼고 그냥 담담히 서술하면 되지 않느냐? 결국 네가 환상 봤다고 자랑하는 거 아니냐? 다른 사람들도 역사책 뒤져서 쓴 다음 너처럼 편집해서 자랑을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다!”
맞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쓰는 것은, 어린 날 일찍 발표하거나, 부름 받은 고교시절에라도 간증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은 저의 죄악과 실수를 여러분들에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후학(後學)들이 저와 똑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의 평범으로 바꿔버리는 죄악을 다시는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그 죄악과 실수를 수십년간 아무 생각없이 저질러서, 제 인생이 꼬였습니다. 꼬인 인생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성경을 연구했는데, 2013년에 시편 78장을 깨닫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회개했습니다. 그 뒤부터는 지옥에 가기 싫어 만회하기 위해 분투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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