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십자군 전쟁
제1편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여러분, 십자군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세속적 이유는 아까 위에서 다 적었으므로, 영적인 이유를 아시는 지 한번 물어봤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일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이뤄집니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영적원인은, 지금의 한국과 똑같습니다. 기독교 세계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모두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서, 이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슬람은 중국 당나라와 탈라스 전투를 하고나서 더 이상 동쪽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기독교 세계만을 공격했습니다. 이슬람이 당나라에게 져서 싸움을 끝낸 게 아닙니다. 이슬람이 다 이겨 놓고 중국을 무릎 꿇렸으면서도, 더 이상 관심을 갖지를 않습니다. 당나라도 투르크, 발해, 티벳을 포함한 주변 나라와 내분에 신경쓰느라 더 이상 서쪽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서쪽 영토를 포기하고 주저 앉습니다. 그 사이를 투르크인들이 기존의 스키타이인들이 메꿉니다. 하나님께서 무슬림들의 마음을 서쪽으로 돌려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이 사회, 정치, 문화, 경제, 종교적인 부분에서 회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동서 기독교 나라들 모두 귀족과 왕의 착취가 심했습니다. 동로마 황제의 선정이 여러 번 역사에 기록이 됐지만, 선한 왕은 잠깐만 나타나고 악한 왕과 귀족들의 학정이 더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동로마의 황제는 교회를 교회답게 하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 교회를 통치해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았습니다.
서유럽은 더더욱 학정이 심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한국 대형 교회들이 권력자와 부자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과 세속적 축복만을 바라고 교회가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더욱 심한 타락이 교황을 위시한 로마 카톨릭 안에서 자행됐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는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회개를 외치는 자도, 회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제2편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 4세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임한 환상입니다. 이 것을 자세히 쓰기에는 너무 길므로, 그냥 위키 지식 백과를 그대로 넣겠습니다.
간략한 소개
보두앵 4세(프랑스어: Baudouin IV, 1161년 - 1185년 3월 16일)는 예루살렘의 아모리 1세와 그의 첫 번째 아내 쿠르트네의 아그네스의 아들로 1174년부터 1185년까지의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이다. 그의 친누이로는 예루살렘의 여왕 시빌라가 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예루살렘의 보두앵 5세가 시빌라의 아들이다. 그의 배다른 누이로는 예루살렘의 이사벨라 1세가 있으며, 어린 남동생도 있었으나 유년기에 일찍 죽었다. 나왕 보두앵(Baudouin le Lépreux)이라는 별명이 있다.
나병, 문둥병
보두앵이 아직 어렸을 때, 예루살렘 궁정에 있던 그의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인 야파와 아스칼론의 백작부인이나 나중에는 시돈의 영주가 된 쿠르트네의 아녜스는 짧은 교제를 한 후 강제로 헤어졌다. 보두앵의 나이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고전학자이자 언어학자이면서 동시에 역사학자인 티레의 기욤(나중에 티레의 대주교와 왕의 비서를 겸임하게 됨)이 가정교사로 배치되어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하루는 보두앵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그만 서로의 손을 할퀴어 부상을 입게 되었는데, 보두앵만이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기욤이 즉시 보두앵을 의사에게 데려갔다. 의사가 진찰한 결과, 보두앵은 심각한 피부병인 나병에 걸렸으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보두앵의 나병은 급속도로 확산되어 몸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통치 약사(略史)
아모리 1세가 1174년 사망하자 보두앵은 7월 15일 왕위를 이어받았다. 예루살렘 왕국은 귀족들이 서로 파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으며 최대의 적인 살라딘의 지도 아래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에서 시리아까지 그 영향권을 넓혀가면서 다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기에 존망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런 시기에 왕이 된 보두앵은 국정을 맡기에는 나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그의 오촌 아저씨인 트리폴리의 레몽 3세와 플랑시의 밀 등 두 명의 섭정을 계속적으로 두었다. 1175년 레몽 3세는 예루살렘 왕의 대행자로서 살라딘과 조약을 맺었다.
이 후 예루살렘 왕국의 존속을 위해 지속적으로 살라딘과 끝없는 분쟁을 치루면서 한편으로는 협정도 맺기도 하는 등 아슬아슬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개혁적인 성향도 있어서 허례허식이나 이유없는 탄압, 폭정은 최대한 자제하려 하였고 예루살렘 왕국 내부의 아랍인들에게도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려 하였다.
제3편 하나님께서 수세기(世紀)를 기다리셨던 종
요한복음 1장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동로마와 서유럽의 기독교 타락에 따른, 징벌 이슬람 세력 앞에서도, 유럽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 했습니다. 유럽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한 몸에 그 시대적 징계를 담당하고 모든 유럽인들이 보고 정신차리라고 한 상징적 인물이 나병환자 왕 보두앵 4세입니다. 환상 속에서 사람들은,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가 나병에 걸린 것을 두고, 저주가 임했다는 둥, 죄악이 크다는 둥 많은 말을 내뱉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몽기사르 전투
1177년 11월 살라딘은 수비군이 적은 예루살렘 왕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아스칼론 요새를 노려 이집트 방면에서 2만 6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급습하려 하였다. 보두앵은 이 정보를 입수하고 아스칼론을 도우러 약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살라딘보다 먼저 요새에 도착하였으나 곧 살라딘의 군대에 포위당하였다. 이때 보두앵은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예수가 못박혀 매달렸다고 전해지는 성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구원의 기도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본 모든 병사가 고무되어 끝까지 항전할 것을 맹세했다. 사기가 충전된 보두앵 4세의 군대는 살라딘의 대군을 맞아 승리를 거머쥐고 이를 몽기사르 전투라고 부른다. 왕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개선하였다.
하나님의 대답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저는 갑옷을 입었으나, 온 몸이 허약해서 말 위를 간신히 가누는 왕을 보러 가나안 지방에 갔습니다. 거기서 앞서 몽기사르 전투 문단에 적힌 무릎꿇고 울며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보느냐? 내 종이 회개하는 모습을!
나 여호와 하나님이, 이 장면 하나를 보기 위해서, 수세기를 기다렸다. 지금까지 교황, 동로마 황제, 서로마 제국 황제, 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아무도 타락 가운데에서 나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를 하지 않았다. 모두들 정략과 이익을 좇을 뿐이었다. 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 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회개하고 기대기를 원했다.
이 종은 시대적인 죄를 담당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년 시대부터 문둥병을 앓았지만, 천성이 지극히 착하여 나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순종하는 자이니라.
내가 승리를 이 아들에게 줄 것이며, 내가 이 아들의 고통을 빨리 끝낼 것이다.”
그래서 앞서 문단 내용대로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병왕 보두앵 4세는 24살의 나이에 죽습니다. 그 후 얼마 안돼서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점령합니다. 그럼에도 이 승리의 간증은 유럽 왕들의 심장을 자극하여, 가장 화려한 왕들의 연합체인 십자군 3차 전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끝납니다. 이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서유럽 왕들이 모두 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를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 보두앵 4세는 나 하나님이 지혜를 주고, 빠른 정보를 받게 하며 살라딘을 이기도록 했다. 그 이유는, 군사의 수보다는 나 하나님께 의지하는 겸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는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찾는다.”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대신에 동방의 징키스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중동을 초토화 시키고 아예 주저 앉아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리고 몽골의 부대는 십자군 운동에 소극적이었던 러시아와 신성로마제국, 불가리아, 헝가리를 다 침략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군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서유럽을 치는 주력부대인 바투가 서유럽을 본격적으로 정벌하려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칭키스칸의 아들 오고타이를 죽이시고 바투가 서유럽 원정에서 철수 시키는 것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바투가 서유럽 원정에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아들아! 몽골 본국으로 가라! 동방으로 가야한다! 너와 네 아비가 영토를 넓히는데 가장 큰 공로를 세웠고, 가장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논공행상을 따지지 않으면, 네 공로가 묻히고, 너보다 못한 이가 대칸의 자리에 올라서, 네 위에 올라서면 되겠느냐?”
성령께서 그의 귀 옆에서 속삭이시니, 그의 머리와 마음이 흔들려서 전쟁에 도저히 집중이 안됐습니다.
“얘들아! 병력을 소집해라! 가자! 동방으로!”
바투가 외치고 말머리를 돌려 동방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때 서유럽의 성당과 왕들, 국민들이 한숨을 돌리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장면으로 환상은 끝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