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vites in the Gentiles united by GOD /
the meaning of church name : Nations! Peoples! praise Jesus Christ! /
Presbyterian Protestant Christian in South Korea /
Genre : Prophecies in English, CCM, Entertainment, Histories
앞서 문단의 해당 주일에, 아내에게 제 어머니가 주일 성수를 강요하시고 생계 유지에 위협을 주는 이야기를 하셔서, 저와 어머니가 논쟁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아래 말씀들을 인용하며, 성도에게 주일성수를 강요하며 생계 위협을 하지 말라고 반박했습니다.로마서 14:4~6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함부로 비판하면 안됩니다. 로마서 14:10
그리고 엉뚱하게 구약의 안식일 제도에 궤변을 더 하여 신약의 주일을 은혜가 아닌 의무, 족쇄로 바꾸는 것도 성경에서는 금지합니다. 로마서 14:13~16
예수님 잘 믿는 거 자랑하고 싶으면 자기 자신이나 잘하면 됩니다. 남에게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서 숨도 못 쉬게 만드는 것은 잘못이며,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자가 잘못입니다. 로마서 14:22~23
골로새2: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갈라디아서 4장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의 비판 환상
제가 이렇게 주일 성수 율법을 궤멸시키는 성경 말씀을 잘 찾아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김용두 목사의 서인천 주님의 교회와 변승우 목사의 사랑하는 교회, 최보라 목사의 덕정 사랑의 교회에서 주일 성수를 율법화 시킬 때, 2012년 강남 대륭 서초 타워에서, 제가 주일 성수를 지킬 수 없는 보안 사원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게 찾아와서 위 말씀들을 보여주시면서 설명하셨습니다.
“주일 성수를 지키지 못해서 구원이 거절된다면, 군인, 철도 공무원, 버스를 비롯한 여객 운송회사 등을 포함한 국가 기간 산업 및 국가 유지를 위한 산업 종사자들은 다 지옥 가겠구나? 그들은 모두 교회를 그만둬야겠네?
좋다! 너희 교회의 논리에 따라서 주일에 돈을 쓰지 말아야 하므로, 너희 개신교인들은 교통수단에 의지해야만 갈 수 있는 멀리 있는 대형 교회를 끊고 아예 가지 말아라! 그냥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개척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리고, 헌금도 거기에만 내라!
너희 교회들의 교리에 따라, 교회에서는 절대로 돈 받지 말고 점심, 저녁 식사를 성도들에게 모두 대접해라! 그래서 성도들이 절대로 돈 쓰지 못하게 해라! 음료수도 자판기에서 돈 주고 뽑아먹지 못하도록 아예 공짜로 개방해라!
교회 청년들이 청년 모임 한답시고, 교회 밖 다른 가게, 주일 성수를 지키지 않으며 주일에도 영업하는 가게(피자, 햄버거, 가족 레스토랑, 분식집, 커피샵 등등)에서 모일 때마다, 주일성수를 지키려고 주일에 문 닫고 교회에 찾아오는 성도들의 가슴에 얼마나 한이 맺히는지 너희는 아느냐? 나는 그들의 눈물섞인 기도를 듣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시험들어서 교회를 그만두는 것도 보아왔다!
너희 교회들이 주일성수를 철저히 감행하고 싶으면, 이상의 모든 사항들을 다 감안해서, 너희 교회들이 다 그 책임과 부담을 전부 지거라!”
예수님께서 저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너는 비록 주일에 일하고 있지만, 보안 사원을 하면서 충분히 마련한 시간에 나를 위해서 예언 서신을 쓰고 있다. 그게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살리는지 아느냐? 너는 쉬는 비번 타임에 회사 근처 한우리 교회(뱅뱅사거리 도곡 푸르지오 아파트 옆)에서 예배를 충실히 드리고 있지 않느냐?”
성령님의 환상
그리고 성령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대항해 시대에 선원들이 표준시간대가 다른 뱃길을 항해하며, 주일이 자꾸 바뀌는 모습입니다. 또 그러한 배들이 서로 한 섬에서 조우했는데, 서로 다른 날짜를 주일이라 규정하고 각기 다른 주일에 따로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목사들이 주일에 헌금을 더 많이 걷고, 자기가 설교하는 시간에 더 많은 성도들이 풍성히 모이는 것을 보며,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서 주력으로 설교를 할 때, 더 큰 교세확장 효과를 누리고 교세 자랑하고 싶어서 주일에 안식일 개념을 덧붙여서 우상화하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논리를 파괴하는 근거 말씀도 보여주셨습니다. 마태12:1~13, 마가3:1~6
예수님께서 안식일 우상화와 사람들에게 씌우는 굴레를 파괴하셨는데, 현대 목사와 신학자들이 도로 주일에 안식일의 굴레를 갖다 붙이는 것은 앞서 사도 바울이 죽 써놓은 말씀에 논박됩니다.
목사님들 자신이 나머지 6일에 시간을 내든지, 아니면 부교역자와 협력 사역자들이 설교하고 예배드릴 시간을 내주면 됩니다. 대형교회나 개척교회나 6일 동안 예배 시간 말고는 늘 교회 문을 굳게 잠가 놓습니다. 그러니 세상 밖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교회에 발 길을 들이다가 도로 돌아갑니다. 저는 간간히 그런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 때마다 제가 평소 비판해왔던 교회에서 기도만 하고 예배당만 지키던 성도와 사역자들이 나름 다 쓸모가 있고, 중요한 존재 이유가 있다는 깨달음을 받습니다. 2014.8 ~ 2017.10까지 우리 교회는 늘 권사님이라도 계시기 때문에, 오는 사람들 마다 커피, 차, 식사 대접을 받고 담소를 나누고, 기도하다가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주일 성수는 목숨값이라며 글을 쓴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해당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평일에 열심히 일한 사람에 해당되지, 스케쥴 근무자에게는 해당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수, 금요 예배, 새벽예배를 포함한 평일예배에 참석하면 됩니다. 히브리 10:25
이상의 글이 2012년에 교황 교체와 통일교 문선명의 죽음 과정, 진중권 교수와 개신교 청년 및 윤정훈 목사의 토론을 예언하려고 했던 때입니다. 그러나 워낙 사랑하는 교회의 변승우 목사가 설교 시간에 자기 말이 맞다며, 우기고 주일성수 안 지키는 사람 말은 믿을 수 없다길래, 제가 깜빡 속고 주일 성수 지키고자 보안사원을 그만뒀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주일성수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시간이 있는 일자리를 주실 줄 알았지만, 전혀 그런 인도는 없었고, 상기 예언 기회를 모두 놓쳤습니다.
이 버전 글에서 추가적으로 쓰면, 2014년에는 변승우 목사님이 주일성수에 대해서 과거와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긍정합니다. 기계적 주일 성수는 아무 쓸데 없습니다.
회개, 인내, 순종, 선행 등으로 표현되는 행위가 없이는 결코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를 증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력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시기 위해서 불 같은 연단을 내려보내신다. 그 연단 속에서 공력이 불 타서 사라지면, 그 사람의 믿음은 헛것이고 공력이 남은 사람만이 그 만한 상급을 받는다고 고전 3:13~16에 쓰여있다.
그렇다고 그 순종을 전부 다 해내기 위해서, 구약 성경까지 들춰내서 구약의 율법을 다 끌고 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안상홍 증인회), 제칠일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메시아닉 쥬 등이다. 이 들의 주장은 너무나 극단적이라서 오히려 성경을 칼 같이 잘라내는 일을 한다.
그들은 현대 개신교의 모든 간략화된 예식과 절차들이 모두 카톨릭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성경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신교인들을 회유한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을 예로 들어서 카톨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종교 개혁자들이 사도보다 높냐? 그들이 성경을 썼냐?”고 따진다.
그래서 사도들이 절기를 폐하고 안식일에서 주일로 옮긴 규정을 찾아주면, “사도가 예수님 보다 높냐?”고 따진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폐하거나, 율법의 규정과 달리 투석형 당할 사람을 막아준 것을 예로 들면, 예수님을 높이는 척 하면서도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이 근본 본체이고 예수님은 마치 부산물인양 말한다.
하나님께서 욥바에서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동물과 음식 환상을 따지면, 말을 잇지 못한다. 심지어 환상, 계시는 혼란한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일반인들조차 구약의 율법에 대한 현재적 실천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2012년에 MBC 100분 토론에서, 개신교 청년들이 성경 말씀에 따라서 동성애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진중권 교수가 유명한 대답을 했다.
“그럼 성경에 적힌 대로 다 지키세요! 동성애자에게 돌 던져서 죽이시지, 왜 안죽이셨어요?”
책 소개
이러한 모든 상황 속 어려움에 대해서 사도와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을 성경에 적어놨다. 그들이 구약 율법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하고 재해석해서, 구약 율법은 신약에서 불연속적 부분, 연속적 부분으로 나눠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신에 사랑과 도덕성, 거룩함 등의 중심적, 원론적 취지를 이어가자고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저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사도들이 결정했고, 그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그 뜻을 계시한 데에 근거가 있음을 밝혔다.
신약에서 순종은 결코 믿음과 분리할 수 없다. 그러면 구약 성경에 적힌 율법에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가? 저자는 구약의 율법에 대한 신약의 관점은 구약에 대한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1. 마태복음
어떤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구약 율법에 대한 보수적 견해를 지지한다고 본다. 안식일에 환난이 닥치지 않게 기도하라는 것(24:20)을 포함하여, 구약의 율법을 준수하는 여러 가지 구절들이 많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약 율법이 신약에서 연속성을 갖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 율법을 성취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9:14~17)과 안식일에 대한 주권과 해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등장시키면서(12:1~14), 새 것이 왔으므로, 옛 것은 이전과 같은 확고부동한 지위를 잃었다. 신자들은 이전처럼 율법 아래 있지 않는다.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는 선언(15:11,17~18)과 아들은 성전세 면제(17:24~27), 성전파괴(24장)를 포함해서 예수님은 유대교 율법의 근간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으셨다.
대신 예수님은 무저항주의와 적극적 선행, 사랑이라는 원론적 주제를 피력하셨다.
따라서 구약 율법 전체가 마태복음에서는 신약의 성도에게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예수님께서 구약 율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수정하셨다. 요약하면 구약의 율법은 신약 성도를 지속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원론적 태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2. 누가복음 - 사도 행전
침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어린시절에 관한 기록은, 철저히 유대교 율법에 충실한 삶이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부자관리의 질문과 대답에서 십계명에 관해서 긍정적 답변을 하셨다.(18:18~20)더 나아가 율법의 한 획이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6:17)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때까지만 유효하다고 말씀하시므로(16:16), 율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도 행전으로 넘어가면, 사도 바울은 할례를 거부하는 갈라디아서를 작성했으나, 그 스스로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줬다.(16:3) 예루살렘으로 와서 결례의 비용도 냈다. (21:20~26, 민6:14~15)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구약 율법에 관한 혼란한 기술의 이유는, 성경의 예언은 나사렛 예수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서 성취됐고, 율법이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기술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사울 시절에 사람들을 부추겨서 돌에 맞아죽은 스데반의 설교가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성전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상대적으로 쇠퇴했고, 율법이 이전과 같은 중심적 역할을 하지 않음을 공회 사람들에게 설파했다.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증거하셨는데, 바로 이방인 고넬료가 성령세례로 방언을 하는 사건과 그 이전에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여기는 동물들을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먹으라는 사건이었다. 이는 구약의 음식법이 폐지됐음을 뜻한다. 또한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 정결례를 따르지 않아도 성령을 받으므로, 구약의 율법은 힘이 사라졌다.
결과적으로는 죄사함은 할례와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칭의와 함께 주어졌다고 요약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우상숭배는 죄악으로 남겨졌다.
3. 바울 서신
바울은 모세 언약은 끝났고, 성도는 더 이상 그 아래 있지 않음을 밝혔는데, 근거로 내세운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다. 거기서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효력이 있으며, 인간은 율법에 순종하기 어려워서 죄의 권세 아래 갇혀 있었음을 설명한다. 옛 언약인 율법은 사망과 정죄로 사람들을 이끌었다면, 새 언약은 삶과 의로 인도했다.
날짜과 절기, 안식일과 유대 명절, 음식법, 할례에서 신약 시대의 성도는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유월절 희생제사 예언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성령의 사역이 마음의 할례가 됐다. 음란을 포함한 각종 구약 율법에서 사형죄에 해당하는 죄악들이, 신약에서는 회개로 바뀌었고, 그 회개조차 안하는 사람들은 출교하면 될 뿐이었다.
그러나 부모 공경 명령, 간음, 살인, 도둑질, 탐냄을 금한 것은 구약의 율법의 맥을 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구약에서부터 시작한 서로 사랑하라는 핵심적 원리를 신약시대에도 꾸준히 이어온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써있다.
4. 히브리서
다른 성경의 저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고 명백하게 요약하는데, 모세의 언약 규정은 더 이상 신약의 성도들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써있다. 오히려 아론의 제사장직과 레위기의 희생제사로 되돌아가는 것을 반대하는 지속적 논증들이 써있다.
제사장직의 변화는 율법의 변화도 이뤘으며, 율법이 죄에 대한 완전하고 최종적인 속죄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더 나아가 시대의 끝이 오므로써, 옛 언약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최종적 파멸로 이끈다. 옛 언약의 규정과 제사로 돌아가는 자들이 저주받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모세 언약을 율법주의라고 비난하지 않지만, 율법의 어떤 규정 자체에 잘못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모세 언약과 율법은 모형론적, 구원 역사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장막은 하늘의 거처를, 구약의 제사와 규정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새 언약을, 안식을 하늘의 안식을 예견한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율법 성취 관계를, 구약 성경 예레미야 31:31~34의 말씀을 인용해서 설명했다. 율법이 성도의 마음에 기록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5. 저자의 결론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한 이후부터는, 율법과 각종 제사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신약 성경들은 주장한다. 더 나아가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재해석됐으며, 율법의 핵심적 규범은 사랑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후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 및 재해석에 따라서,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부분도 있고, 불연속적으로 끊어진 부분도 있게 됐다. 목회에서 구약과 신약 성경의 말씀을 우리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이상의 관점에 따라서 재해석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