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문화 4주차
4장 성육신적 선교사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서 문화충격을 극복한 다음 단계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 차이에서 생기는 신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차례가 왔습니다. 문화에는 인지, 정서, 평가라는 세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인지 차원에서 오해를 불러들입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문화의 미신과 관념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무당만 고양이를 기를 수 있는 원시 부족에 선교사들이 기르던 고양이를 가지고 가면, 사람들의 영혼을 그 고양이가 빼앗아 간다는 원시적 믿음으로 선교사들을 배척합니다. 이러한 문화와 선후진국간의 기술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를 선교사가 일일이 현지인들에게 설명하다보면 진이 빠집니다.
이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원저자는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했지만, 저자가 잠깐 소개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방법이 가장 낫다고 봅니다.
저자는 라틴 유럽만의 방법으로 라틴 아메리카를 만들어낸 것처럼 여기지만, 실제로는 북미 또한 앵글로 아메리카로 바뀌어서 사실상 둘은 같습니다. 앵글로 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을 개인이 요구하는 거리 격차의 차이를 두고서 서로 다른 접근법과 이해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실은 앵글로 아메리카는 서유럽, 중부 유럽인들이 현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정복해서 유럽 문화를 이식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라틴 아메리카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두 남부유럽 사람들이 유럽문화를 이식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북미는 개신교가 강세이고, 남미는 카톨릭이 강세입니다. 결국 강자가 약자의 문화를 뒤집어 엎고, 종교까지 바꿨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어리석었다고 비판한 들, 결국은 무식한 방법이 승리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선교사나 현지인 사이에서 자문화 중심주의의 교만과 고집은 서로 싸움을 벌입니다. 그리고 문화상대주의로 파고들면, 현지인을 전도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그 이론에 따라서 현지인의 기존 종교와 악습또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WCC에서 공인하므로써 외부 종교인에게 전도금지라는 바보같은 결정을 낳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성경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저자는 선교사들이 현지에 가서 대부분 행하는 방법을 먼저 “배척”이라고 소개했고, 이 방법에 따라서 선교사가 자신의 거주지를 현지에서 본국의 문화만을 지키는 지역으로서 외부와 고립된 섬과 성으로 만든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현지인들과 단절돼서 선교가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동시에 현지 정부와 고립되면, 등기 서류가 없으므로 토지를 빼앗기거나 과도한 세금을 내느라 막일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현지를 배척하지 말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현지인들에게는 옹호자이자, 대신 외부 선진 문물을 전파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구가 되라고 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구획화가 있는데, 이미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잘 활용되고 있는 방법입니다. 상당히 서구화된 현지인들은 도시인이나 국제적 사람들을 만날 때는 서구화된 문명으로 접대, 생활을 하지만, 본국의 시골마을로 갈 때는 현지 문화와 문물에 맞춰서 이중적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표리부동하고 이중인격자로 비쳐집니다. 또한 내적 갈등을 완전히 해소시켜주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상의 근본적 해결방식을 통합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문화와 생활 차이를 허무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방법이 좀 무식하기 했지만, 북미와 남미에서 개척한 북서유럽인들과 남부유럽인들이 성공적으로 해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미같은 경우 국민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인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침략자들이 인신공양을 하는 아즈텍과 마야, 잉카 문명의 후예들을 박살냈더니, 오히려 인신공양을 두려워하던 피지배부족들의 환심을 샀고, 남미는 카톨릭 세계가 돼버렸습니다.
동일화에서도 무조건 현지인의 생활문화에 동화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서구 선교사들이 구한말과 한국 전쟁 당시에 한국에 와서 한국의 생활양식에만 동화된 것은 아닙니다. 서구의 선진문물을 전해줬고, 그 수혜를 받은 선각자들이 적극적으로 유럽과 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산업으로 발전시킨 결과 오늘날 한국의 대기업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역할에 대해서 신분적으로 높은 곳만 추구하면 현지인들과 마음을 함께 할 수 없고, 태도는 현지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실천적 모습을 보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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