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문화 2주차
2장 복음과 문화
선교사는 인류 문화와 복음의 관계를 다루는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문화는 관념, 감정, 가치가 거의 통합된 체계인데, 인지, 정서, 평가적 3가지 차원이 있다. 지식-논리와 지혜 또는 감정, 심미 혹은 가치, 충성의 3가지 면을 말한다.
선교사들은 인지적 측면만을 강조하지만, 보통 사람은 이성과 논리에만 갖혀 있는 동물이 아니라 감정도 풍부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재미없고 칙칙한 수업으로 다가간 서구의 기독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기존 종교와 비교할 때 기쁘지도 않고 재미없으니까 인기를 끌지 못했다.
물론 기독교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려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부르는 것은 사실이다.
각자의 문화 속에서 통용되는 규율에 따라 언행을 달리 하며, 문화에 따라 발명품 및 일상용품등의 산물이 각각 다르다. 상징체계 안에 형태와 의미도 다르다. 그 형태를 결합하여 그 안의 의미를 문화 구성원 간에 소통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치, 경제, 사회질서적 특별한 제도와 규율 속에서 행해질 예의와 상징이 각자 다르고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같은 상황 속에서 대처하는 법이 다르다. 예컨대 서구인들은 바닥을 무척 꺼려해서 바닥을 피할 의자와 침대를 찾지만, 인도인들은 바닥에 앉거나 눕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이상의 관념들이 모여서 각 문화마다 나름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주변 세상을 이해하는 틀로서 작용하며, 동시에 주변 환경을 그 세계관에 맞춰서 변형하고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 세계관에 사람들이 안주하면서 정서적 안정을 얻는다.
세계관은 각자가 처한 환경과 거주하는 사람들이 해석하고 나름대로 역사적으로 정립한 가치관들인데, 오랫동안 서로 떨어진 지구촌 각지의 사람들은 세계관이 전혀 딴판일 수 있다.
전쟁과 사냥, 험한 노동으로 남자들이 빨리 죽는 곳은 과부들을 살아남은 남자들이 거둬들여야 하고, 갖은 쓰레기가 빨리 부패하는 지역에는 늘 청소를 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와서 일부일처제를 강요하고, 귀신을 물리치는 하나님을 강조하며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그 결과 수 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고, 과거에 쓰레기에 귀신이 깃들인다며 열심히 청소하던 마을은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
“비참한 아프간 과부와 고아들의 삶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복음과 문화가 대립하는 가운데 상당한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특별히 서구인들이 서구의 문화를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강요하는데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기독교를 창시한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 성경을 작성하고 이방인들을 전도한 사도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 유대교의 율법과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날에 서구인들은 그 사실을 망각한 채, 고대 바리새인들의 선민의식을 답습해서 비서구인들에게 서구적 문화와 문명, 서구의 신학을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원주민들의 전통과 관습을 무조건 비난해서 자괴감을 주고 복음전도의 벽이 세워지게 했다. 또 식민시대에는 서구 제국주의를 정당화해서 기독교 군국주의를 낳았다.
미군 군수품을 숭배 |
인간이 문화 안에서 의사소통과 이해가능 하듯이, 복음은 문화 형태 안에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복음은 문화에 변화를 요구한다. 인간의 죄성이 반영된 문화는 악습도 담고 있다. 노예제, 인종과 성 차별, 착취와 억압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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