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신학 유산 아래에서의 개혁신학
브라운 총무는 말했다.
“나라를 개방한 이후 처음 25년간의 전형적인 선교사는 퓨리탄형의 사람이었다.”
이는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을 청교도 개혁신학이라는 뜻이다. 청교도 신학의 특징은 회개와 믿음, 회심의 증거, 교회 회원권이다. 박형룡은 청교도 개혁신학의 증거로서, 다음 사항들을 들었다.
1. 성경의 신성한 권위를 믿는 신념
2. 하나님 주권에의 확신
3. 안식일의 성수와 경건생활에 치중
4. 성실한 실천
5. 천년기전재림론
역사적 증거로는 한국 장로 교회의 독노회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채택했다. 그 중에 천년기전 재림설은 청교도 신학과는 거리가 있다. 나머지는 청교도 신학으로부터 왔다.
김인수가 내세운 한국 장로 교회의 신학적 뿌리가 청교도 개혁 신학으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성경 제일 주의 정신
2. 사회개혁의 정신
3. 안식일 성수
4. 결혼의 순수성 강조
5. 금주운동
6. 금연운동
7. 도박 금지
8. 노예 사용 금지
9. 엄격한 세례 교인 자격
10. 국가와 교회의 분립 정신
김인수 |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뿌리를 형성한 선교사들은 미국 장로 교회 역사로 살필 수 있다. 맥코믹 신학교의 교회사 교수 레오나드 트린터루드는 미국 장로 교회가 독노회를 구성할 때 청교도 신학으로 출발했고, 청교도 신학은 영적대각성 당시에 “Los College"와 신파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청교도 신학은 구학파가 계속 이어왔고, 분리된 직후 교단출판부를 구성하고, 교회 필독서를 추천했다. 리차드 박스터의 작품, 조셉 알레인의 작품 등이다. 프린스톤 신학교 출신들은 해외에 나갈 때, 존 오웬, 스테판 촬녹, 존 플라블의 작품들을 들고갔다. 이 작품들은 청교도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네비우스도 이 작품들을 중시했다.
한국 장로교의 신학적 뿌리는 미국 북 장로교회에 있고, 미국 북 장로교회는 청교도 신학의 후예이다. 이 청교도 신학을 구학파가 보존해서,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에게 전수했다.
리처드 백스터 |
결론
근본주의는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뿌리가 되기에는 시간적으로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근본주의는 초기 한국 장로 교회에서 일어난 부흥을 설명할 수 없다.
보수적 복음주의로 한국 장로 교회의 뿌리를 밝히기에는 용어의 정확성이 떨어진다.
한국 장로 교회가 교리적으로 복음을 전한 방법이 적힌 당시의 전도책자들과 그리스도 신문 지상에 실린 신앙고백들은 개혁 및 언약 신학의 특징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또한 신학파와 구학파로 기존학자들이 설명한 점은 구학파와 신학파의 신학 정체성을 정확히 파악,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오히려 부흥에 관한 선교사들의 신학은 외적/내적 증거 모두 구학파로부터 온 것이다. 기존의 피상적 구분은 교정돼야만 한다.
끝으로 브라운 박사가 한국 장로 교회의 신학적 뿌리를 청교도로 본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청교도 신학이 구학파와 어떻게 관련됐고, 청교도 신학과 부흥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는 미약하다.
미국 장로 교회가 청교도 신학으로 출발해서 신파가 청교도 신학의 회심을 강조하면서 부흥을 경험하고, 뉴저지 대학을 세웠다.
1812년 설립된 프린스톤 신학교는 청교도 신학, 신파의 부흥 신학을 전수 받고 구학파의 신학적 전통을 구성했다. 여기서 졸업한 구학파 출신의 선교사들이 청교도 신학과 개혁신학에 근거한 복음전도와 부흥을 한국 장로 교회에 이식했다.
이로써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뿌리는 미국 장로 교회의 구학파이다. 근본주의나 복음주의가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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