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제가 이 글을 쓰기 최근 한달 동안에 머릿 속에서 트로트 음악이 쨍쨍하게 울려퍼졌습니다. 과거에 들어봤던 곡조도 있고, 그 곡조를 새롭게 재해석 변조한 곡조도 있으며, 다른 장르를 트로트로 편곡한 곡조도 있고, 아예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창작곡도 제 뇌리 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알고보니 세상에서 유행이 돌고돌아 1년 전부터 트로트 음악이 유행하고 있었으며, 과거와 달리 젊은이들이 트로트 가수를 하겠다고 달려들고, 일반 젊은이들도 트로트 음악을 열심히 듣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들조차 TV에 나와 트로트 음악을 부르며 즐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본래 트로트 음악을 대부분의 락 장르, 힙합 음악과 함께 아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린 시절에 차를 운전하시는 분들은 카오디오에 트로트 테이프를 꽂아놓고 열심히 트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자동차는 지금 승용차와 달리 승차감이 나빠서 오래 타면 구토하기 일쑤였는데, 트로트 음악이 조건반사 학습이 되면서 멀미나는 음악으로 제 뇌리에 꽂혀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성장기에 트로트, 발라드, 댄스 음악이 대세였기 때문에 지겹게 들었습니다. 게다가 제 아버지는 밤무대 악기 연주자여서 미국 음악을 많이 들으셨는데, 당시 음악이 포크송, 하드락, 컨트리 락이라서 이런 음악을 저는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싫어합니다. 때문에 글을 이렇게 썼지만 제 옆에 트로트 음악을 좋아하는 동역자가 없으면 트로트 음악을 안 할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아버지와 삼촌 세대들의 음악인 헤비메탈 |
그럼에도 트로트 음악을 제 뇌리 속에 쨍쨍하게 울려 퍼져서, 마치 세상에 트로트 곡조가 덮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들이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현상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고 2005년부터 간간히 체험했으며, 저는 간간히 녹음기에 입으로 녹음을 했습니다. 바로 성도의 눈 높이에 맞춘 대중성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가 목회하시는 성도 대부분이 서울역 근방에 나이드신 노숙자 분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요즘 젊은이들의 음악은 시끄러운 소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음악을 듣는 어르신들도 꽤 많지만, 적응하지 못하신 분들도 많은 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심리적으로 자기가 젊고 화려했으며, 충분히 즐길 시간이 있었던 10~30대의 문화에 익숙하고 가장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부모님과 조부모 세대가 늘상 입에 다시던 말씀인, “요즘 문화와 연예인들은 잘 모른다. 그 사람들은 나한테는 일반인이나 다름없고, 내 옆에 지나가며 알려줘도 나는 모른다!” 가 제게도 적용이 됩니다.
선교와 문화인류학
성도의 눈높이에 맞춰서 문화적 적응을 하라는 것은, 2020년 2학기 최준학 교수님의 선교와 문화에도 나오는 것으로, 해당 교재 [선교와 문화 인류학, 폴 히버트 저, 죠이북스]에서도 다음처럼 요약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당장 선교 현장에서 당대의 문화를 교회 안에 받아들이는 것은, 성도들이 세상과 혼동되므로 도리어 부작용, 반작용이 일어난다. 그러나 외면하면 교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칙칙해져서 성도들의 감성이 메말라진다. 그러므로 교회 예배를 부담스럽거나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현지 성도가 좋아하고 친근한 문화는 성경에 비춰서 세속적 불순물을 걸러서, 한 세대 정도 지나서 교회에 도입하면 좋다. 문화의 형식과 기술적인 면은 내용적 측면과 달리 가치와 이념, 종교적으로 중립적이다!
문화적 산물을 무조건 이방종교와 사탄의 산물로 여기는 것은 자문화 중심주위에 도취된 오판이다!”
실제로 교회 만의 문화와 음악기법이란 것은 없습니다. 본래 서양음악은 게르만 족, 그리스인, 이집트와 오리엔트 음악의 혼합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기독교 유튜버들 중에 세상 음악기법은 악하고 마귀가 준 것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의 내용을 잘 봤는데, 그들이 추천하는 장르는 발라드와 클래식이며, 주로 쓰는 악기는 기타, 드럼, 피아노 등의 밴드 음악입니다.
발라드는 여자 꼬시는 음악이고, 밴드 음악은 보통 블루스와 락을 하는데, 그들도 초창기에는 악마 음악이라고 불렸습니다. 클래식은 부패한 귀족들이 연회할 때 쓰이던 음악이었습니다. 밴드 음악이나 발라드, 포크송 등등도 교회 도입 시기에 목사님과 성도들의 반발이 아주 심했음을 1982년 즈음 경상북도 예천 외가댁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또 그때 보여주셨던 한국 기독교 음악에 최초로 드럼을 도입했다는 권낙주 교수도 2009년에 서울 프레이즈 신학교에서 만났습니다. 이 환상을 보던 시기는 하늘에 매가 날아다녔던 때인데, 그 때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올라간 범죄자를 본 환상을 제게 같이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글에 쓰여 있습니다.
#4 the destruction of the East Roman Empire - Paul the apostle
종합하면 순수음악 주장자들의 논리는 자세히 음악사를 연구하면 다 사기치는 것이고, 결국 세상에서 자기 음악이 안 팔리니까 교회 안에서 독점판매하려고 마케팅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 않으렵니다. 교회와 성도가 사는 세상에 너무나 지나친 벽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성도가 친근히 여기는 문화를 성경 말씀에 걸러서 건전하게 불신자가 교회 안에 친근하게 다가오게 만드는 도구로 삼고자 합니다.
심지어 1984~85년 환상 속에서 요즘 일렉트로니카의 음색과 각종 DJ장비, 믹싱기, 신디사이저, 드럼 패드 등등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음악적 장르가 폭넓게 교회를 위해 쓰임받는다는 예언입니다. 2009년 연세중앙교회 공개기도실에서 기도할 때에는 감은 눈 속에 분홍, 초록, 파란, 빨간 레이저 불빛과 빛의 공들이 남발하며, 신디사이저의 짜릿한 음색들이 들렸고, “너는 일렉트로니카, 컴퓨터 음악을 할 것이다.”라는 음성을 듣고, 글씨를 봤습니다.
EDM 음악은 악기 연주자를 운영할 수 없는 개척교회에 참으로 도움이 되는 장르입니다. 마치 미가엘 찬양 반주기 처럼 목사가 음악과 컴퓨터만 할 줄 알면 혼자 다 할 수 있거든요. 동시에 이는 악기 연주자들이 작은 개척교회를 기피하는 데에 따른 심판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악기 연주를 잘 할 지라도, 교만하며 자기 평안과 보수만 구하는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사역에서 내쫓아버리십니다.
대신에 겸손히 하나님을 전도하기 위해서 자비량 봉사, 헌신하는 자들을 세우십니다. 그래서 2011년 즈음에 제가 전자 기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성령의 음성이 들리며 말씀하셨습니다.
"너 기타 연습하지 마라! 너는 내가 준 말씀을 적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악기연습은 매일 해야되므로 시간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저는 "대학시절에는 왜 기타 배우라고 강요하셨습니까?" 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가상악기들을 보여주시며, 미래에 제가 하나님더러 "왜 기타에 시간 많이 쓰게 했습니까? 컴퓨터 시대에 아무 짝에도 소용없잖아요?" 라고 불평하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기타는 절대로 컴퓨터가 정복하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현재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모두 정복됐습니다. 기타를 복각하는 것을 넘어서, 키보드처럼 미디 입력기로도 활용해서, 미디 기타들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악기연주자는 공연할 때에는 소용있습니다. 기존 악기 음악은 미가엘만 틀어놓고 공연하기에는 머쓱합니다. 진짜로 악기 연주자가 있어서, 공연 분위기에 맞게 변주를 해줘야 공연의 생동감이 살아납니다.
심지어 기타를 포함한 기존 악기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신디사이저를 통해서 전혀 새로운 음색을 찾는 게 미래의 음악임을 보여주셨습니다. 2011년의 환상이 오늘날 현실로 다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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