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정치와 헌법 기말 과제
교회법에 따른 목회 계획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주는 찬양 사역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해야 기회를 잡는다!
저는 기본적으로 찬양 작곡과 전도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교회 전도 목적 특성상 교회가 위치한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일대에서 장소를 정하고 거리에서 불신자에 초점을 두고 전도 공연을 해야 합니다. 이는 [1. 교회 선언 -> 二. 본 교단의 사명 -> 3.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 한다 & 4. 하나님 중심의 문화 건설에 이바지 한다.] 에 부합합니다.
저는 어떤 사역을 하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신비한 체험을 시켜주시고 그 체험이 늘 현실로 이뤄집니다. 저는 그것을 잘 붙잡아서 사역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엎어 버리시는 체험을 20년 가까이 했습니다.
제가 19살 때 신학대학교 원서 접수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니까, 홍익대학교 입학 후에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유머 감각을 줬다. 너는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이 되거라! 방송국에 가서 응시해라! 네가 유명해지면 나 하나님에 대한 원한과 네 아버지에 대한 상처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제가 동아리로 소속돼있던 단학선원이 대학가에 만든 “바른 숨쉬기”에 미대 누나가 MBC 방송국에 원서를 넣어서 방송국 관계자들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가 거부하니 방송국은 다른 학교로 떠나갔습니다. 수년이 지난 뒤부터 제가 거의 최초로 개발해서 퍼뜨린 개그 코드인, 언어유희, 아재개그, 허언증 개그, 탈룰라급 태세변환 개그, 이름을 합성하는 개그, 생활코드 토크 개그 등등을 다른 사람들이 다 써먹는 경험을 했습니다. 더 이상 저는 다른 사람을 웃길 기발함이 없습니다.
2001년 군 제대 후에 코미디언 제안이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당시 저는 막내이모 가족과 함께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 1동에서 살았는데, 동대문 초등학교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동대문 초등학교는 체조부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기 코치가 외부인들에게도 기계체조 수업을 오후에 개방한다고 광고 글이 길거리 여기저기 붙여있었습니다. 저는 본래 초중학교 때 중국무술인 우슈를 했던 터라 흥미가 당겨서 거기 갔습니다.
이미 그 수업에는 TV에서 태권소년으로 유명한 독일 청년 브루노와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개그맨 지망생 김시덕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연예계에 입문하라는 문이 열렸습니다. 그 때 김시덕은 충남대학교 행정학과를 자퇴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학교를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으나, 훗날 그가 뜨고 저는 졸업후 방황하니까 그와 같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전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2001년에 이미 이 부분을 성령님께서 귀띔 해주셨습니다. “아들아!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명문대학교를 중퇴했단다. 그리고 수많은 첨단 기술 기업가들이 명문대학교를 중퇴 또는 진학 포기를 하고 사업을 시작했단다."
"왜 그런지 아니? 바로 타이밍 때문이란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보다도, 당장 세상에서 유행하고, 전도유망한 사업의 기회가 더 중요하단다. 지식은 나중에도 배울 수 있지만, 기회는 나중에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란다. 아들아! 나 하나님이 네게 기회를 줄 때 잘 받아라!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한다. 물 들어 올 때 노 저어라!” 요즘 유행하는 속담도 저는 이 때 먼저 성령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 때 그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노인요양원을 운영하시는 이모부의 병원에 동네 노인들이 물리치료를 받으러 많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들이 제대로 걷지를 못해서 지팡이를 짚거나, 목발 비슷한 철 구조물로 다녔는데, 그런 것들은 땅을 짚고나서 이동할 때는 노인이 다시 들어서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고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에서 ‘바퀴가 달린 것을 짚고서 그것을 밀고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이어 곧 디자인 등록, 아이디어 발명 등록하고 공장을 섭외해서 만드는 것, 홍보하는 것, 후발 경쟁자들과 싸우는 장면이 이어지자 포기했습니다. "그냥 공부나 하자"
그 다음에는 이어폰이 하도 엉켜서, 이어폰이 진공청소기 코드처럼 자동으로 말려서 보관되는 장치를 생각해냈는데, 그마저도 상품화하는 자체가 귀찮아서 묵혀 버렸습니다. 그러니 10년 쯤 지나자 다른 사람들이 상품화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학위에 목을 매서 좋은 기회를 다 놓친 것이었습니다. 공부와 학벌 우상화가 이런 경험을 겪고 나니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하니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너 음악을 좋아하니, 음악해라! 기타를 배워라!” 그러나 제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기타를 가르쳐주겠다고 말씀하셨어도 저는 그 얘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겨놓으신 거의 모든 악기를 어머니는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다 파셨습니다. 이모부가 운영하시는 영일 병원에 부속된 영일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이모 목사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기타 배워라. 우리가 돈 대줄게.” 이렇게 환경이 열렸고, 제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때 환상이 보였습니다. 제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이었고, 음악을 무척 어렵게 배우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에서 음악이론을 아주 쉽게 가르치는 책들이 시중에 나올 것이고,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음악이론을 쉽게 컴퓨터가 대신 해결해 줄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20대에 당장에 음악을 하면 그런 거는 없을 거라는 환상을 연달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기타부터 착실히 배우라고 하시며 제가 기타를 메고 어두운 밤을 방황하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심지어 처음에는 제가 해놓은 작곡을 다른 사람이 가로채는 장면도 보였습니다.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그 바닥에서 커가며 자리를 잡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음악을 다시 하기까지 20년이 흘렀고 지금도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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