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使徒)보다 높은 체 하는 신학자(神學者)들에게
31쪽에 중요한 문구들을 인용하겠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약속 중에 가장 감동적인 약속이, 마7:7 이다. 우리가 찾지 않는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 탕자의 아버지 비유) ... 우리는 왜 그보다 덜하려 하는가?
하나님은 발견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분을 찾는 자들에게만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 ...... 우리는 본연의 게으름과 냉담함을 반드시 극복하고 진지하게 이 일에 전념해야 한다. 하나님은 실없는 사람들에게 인내를 보이지 않으신다. 게으른 자들을 동정하지 않으신다. 히11:6
하나님은 발견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분을 찾는 자들에게만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 ...... 우리는 본연의 게으름과 냉담함을 반드시 극복하고 진지하게 이 일에 전념해야 한다. 하나님은 실없는 사람들에게 인내를 보이지 않으신다. 게으른 자들을 동정하지 않으신다. 히11:6
우리는 겸손하게 찾아야 한다. 무관심이 일부 사람들에게 장애물이라면 교만은 더욱 크고 흔한 장애물이다. 우리는 생각, 지성에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의 생각 자체로는 영적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마11:25”
존 스토트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을 만나서 보고 들었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정(認定)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시드로스의 슈퍼내츄럴]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심지어 한국 우리 나라의 일반교회에도 그런 성도들이 상당수 분포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게으름, 냉담, 인내없음, 무관심, 교만에 휩싸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거나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들을 비판, 이단정죄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를 해꼬지하는 사탄의 종 노릇하는 것이며, 이는 스가랴3:1~2에 나오는 제사장을 정죄하는 사탄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렇게 해봐야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저주와 책망을 받을 뿐입니다. 사무엘 상 2:25
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게으름, 냉담, 인내없음, 무관심, 교만에 휩싸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거나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들을 비판, 이단정죄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를 해꼬지하는 사탄의 종 노릇하는 것이며, 이는 스가랴3:1~2에 나오는 제사장을 정죄하는 사탄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렇게 해봐야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저주와 책망을 받을 뿐입니다. 사무엘 상 2:25
그런데 이 시대에 개신교단과 신학교에서 너무나 이성(理性)과 지성(知性)을 성령 하나님보다 우상화하며 섬기는 나머지, 이성과 지성으로 성령님을 판단, 재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 스토트가 “우리의 생각 자체로는 영적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라고 주장한 바를 신학교, 신학교수들이 먼저 스스로 깨뜨리고 있습니다.
이성과 지성으로 성령의 종들을 다 판단해서, 함부로 그들을 통해서 나타난 은사와 기적들을 신학적으로 불가능, 이단 판정을 내립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성령의 종들에게 변함없이 지금도 계시를 부어주시는데, 이에 대해서 “성경을 다시 쓰는 것”이라고 정죄하면서 이단으로 몰아붙입니다.
성경은 계시를 받아서 적혔다는 로마서16:26의 말씀에 따라서, 이 시대에 다시 성경을 쓰면 혼란스러우니 계시는 성경 66권의 완성으로 끝났다고 신학자들이 주장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새로 만들어지면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그 논리를 성경 말씀으로 되묻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26, 30 ; 갈라디아서 3:23 ; 에베소서 1:17, 3:3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일반 성도에게 계시가 당연히 임한다고 밝혔고, 본인 스스로도 계시를 받아서 전합니다(고린도후서12:1, 7 ; 고린도전서 14:6 ; 갈라디아서 1:12, 2:2).
사도 바울이 직통 계시를 받고 성도에게 조장, 방조하며, 본인 스스로도 자꾸 새롭게 성경을 써왔고, 성도에게도 계시를 해석, 발표하도록 시켰으므로, 그럼 개신교단과 신학자들은 사도바울까지 이단의 괴수이고, 초대 교회 성도는 이단의 무리라고 몰아붙일 겁니까?
고린도전서 14:26, 30 ; 갈라디아서 3:23 ; 에베소서 1:17, 3:3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일반 성도에게 계시가 당연히 임한다고 밝혔고, 본인 스스로도 계시를 받아서 전합니다(고린도후서12:1, 7 ; 고린도전서 14:6 ; 갈라디아서 1:12, 2:2).
사도 바울이 직통 계시를 받고 성도에게 조장, 방조하며, 본인 스스로도 자꾸 새롭게 성경을 써왔고, 성도에게도 계시를 해석, 발표하도록 시켰으므로, 그럼 개신교단과 신학자들은 사도바울까지 이단의 괴수이고, 초대 교회 성도는 이단의 무리라고 몰아붙일 겁니까?
신학자들의 논리로 따지면, 모든 개신교단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말도 함부로 사용하면 안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6, 벧후1:21에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적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조명이라는 말은 더더욱 쓰면 안되겠습니다. 벧후1:19에서 한자 조명(照明)을 풀어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감동, 조명이라는 단어를 쓴 사람들은, 장 칼뱅을 포함해서 모두 성경을 새로 쓰려는 이단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대로만 하자면, 특별히 성령의 계시를 부정하는 자들은 더더욱 성경 말씀에 따라서 성경을 연구하면 안됩니다. 벧후1:20, 3:16~17에서 성령의 지도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금지됐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에게만 허용됐기 때문입니다. 요일 2:27
성령의 계시, 예언을 금지, 훼방하는 모든 행위가, 살아계셔서 역사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머리 위에 신학자들이 올라서서, 하나님을 사람이 판단하고 통제, 지휘하려는 악행입니다. ‘신학자들이 삼위 하나님을 무의식적으로 자기 소원과 야망, 성공을 위해서 이용해먹는 도구와 수단의 존재로만 생각해왔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단(祭壇)을 쌓을 때, 돌로 다듬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린 시절에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하나님이 구약 성경(출애굽기 20:25)에 이 말씀을 하지 않았으면, 신학자들은 뜨인돌, 모퉁이 돌로 표현되는 예수와 건축물로 표현되는 성경, 선지자의 구약 성경과 사도의 신약성경에 자꾸 세상 철학과 자기 생각을 섞으면서, ‘성경에서 금지한 적 없다’고 억지를 부릴 것이다!
신학자들이 자기 머리 좋은 거 자랑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해서 인기를 얻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런 죄악을 저지른다!”
신학자들이 자기 머리 좋은 거 자랑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해서 인기를 얻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런 죄악을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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