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소망하시는 예수님
중국 본토 공산화에 대한 대답
윗 문단에서 신학자의 물음은, 중국 개신교인들이 적잖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시아에서 대국(大國)인 중국이 예수님을 믿어야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소국(小國) 한국이 예수님 잘 믿어서 뭐합니까?
왜? 한국을 아시아에서 기독교 선교 리더로 세우셨나요?
중국을 쓰셔야 아시아에 기독교가 더 빠르게 잘 전파되지 않을까요?
왜 중국은 공산화가 돼서 기독교가 핍박을 받고, 대만은 지지부진하지요?
반대로 왜, 한국은 예수님을 잘 믿고, 아시아의 리더가 돼서 뭘 하든지 잘 나가지요?”
이상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2010년도에 싱가폴의 콩히 목사가 있는 하베스트 교회에 쓰도록 돼있었습니다. 그 때 여의도 순복음 교회 성동 교회에서 비전트립으로 싱가폴 하비스트 교회로 간다고 했을 때, 전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너무 바빠서 미처 글을 써주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이 환상과 대답은 2010년도에 받은 게 아니라, 1981~84년 사이에 받은 것이며, 그 과정은 2013년에 업로드한 유튜브 [아우터레위] - [너 한국 교회들에게]라는 뮤직 비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싱가폴의 목사에게 대답해주라고 남긴 여운이 그 때문입니다. 제가 그 때 너무 빠듯한 시간 속에서 서신을 쓰지 못하니까, HSD 교수님을 통해서 다시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말하기 훨씬 전부터 먼저 그 질문을 더 잘아시고, 중국에 열심을 내셨으나, 중국인은 자신이 큰 나라, 오랜 역사임을 자랑하며, 교만하니까 안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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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정식 기독교 파송 역사는 명(明)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심지어 개신교조차도 한국은 중국을 통해서 처음 받아들였고, 초창기 성경은 한자 성경과 영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에 우선권을 줘도 중국이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안 믿잖아요.
예수님을 중국화한 태평천국 운동과 기독교를 철저히 파괴한 의화단 운동을 잘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출23:2). 그런데 현재 중국 본토에서 백년 전의 잘못을 또 되풀이 합니다. 삼자三自교회가 그렇습니다. 중국인은 워낙 교만해서 회개와 감사를 모르므로, 하나님의 오래 참음과 기회를 많이 줘도 자기들이 걷어차 놓고서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반대로 한국은 작고 전란과 힘든 시기를 겪고 있으니 겸손해서 잘 믿습니다 (신7:7).
정말 중국이 예수님을 잘 믿기를 바랍니까? 해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중국이 수십개의 나라로 쪼개져서 약화되면 됩니다. 그들이 믿고 버티는 세상의 자랑을 잃어버리고, 중화사상에 대해서 스스로 혐오감을 느끼도록 싫어하면 예수님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빌 3:7~9). 그럼 선교사를 파견하는 족족 믿습니다. 중국의 세속적, 사회적, 국제적 잘남이 예수님을 우습게 여기도록 중국인을 부추기고(겔28:12~19), 중국인 대다수 스스로가 예수님보다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전2:14
세계 선교를 촉구하시는 예수님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위에 중국 공산화를 다룬 문단이 마치 국수주의(國粹主義)적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계 만민을 누구보다 더 구원하시고 싶어하십니다.
누가15:1~10에 관한 꿈을 어린 시절에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순서가 바뀌어서 여인이 드라크마를 찾는 꿈이 먼저 시작되고, 그 다음에 목자가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다니는 꿈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기 전까지 드라크마 비유가 먼저 기록된 줄로 알았습니다. 그 목자는 산 구석구석에 길을 잃고 헤매는 양들과 두려워서 바위 구석과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양들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혼자 다 하려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 때 어느 비탈진 계곡의 벼랑 아래 갇힌 새끼양을 건져 올리며 벼랑에 달려 계신 예수님이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추수할 곡물이 많고, 데려와야 할 어린 양들이 너무 많으니 내 종들 좀 불러줄 수 없겠니? 너무 시간이 지체해서 양들이 내가 미쳐 손을 쓰기 전에 죽어버릴까 걱정된다!”
그 얘기를 듣자 마자, 저는 공간이동을 해서 어느 새 하나님의 종들이 잔뜩 있는 신학교 안으로 왔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전하자 신학교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 중 상당 수는 전혀 엉뚱한 야망과 대형 교회의 성공 스토리를 꿈꾸었고, ‘신학교 졸업 후에 어느 대형 교회에 줄을 대서 취직할까? / 어디로 유학가서 신학교 교수를 할까?’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당연히 제 얘기가 먹혀들지 않았고, 신학교를 혼란스럽게 한다면서 저는 신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대신에 그 신학생들에게는 영원히 방황과 걱정, 근심이 걷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졸업해서 들어갈 대형교회의 문과 유학이후 취직할 신학교 교수직은 한없이 줄어들었고, 도대체 한국 땅에서 사명을 어떻게 실현해야할지,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 지가 늘 의문으로 남게 됐습니다.
쫓겨난 뒤에는 어느새 한국의 어느 도시에 제가 와있었습니다. 길거리에는 건물 하나 마다 개척교회가 하나씩 빼곡이 들어섰습니다. 너무나 교회가 많아서 오히려 전도가 안되고, 교회 활동에 혼선이 빚어집니다.
교회 안에는 성도가 별로 없었으며, 얼마 안되는 기독교 성도조차 가까운 개척교회보다는 좀 멀더라고 유명한 대형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개척교회 목사님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보내시는 곳은 세계 각지의 오지이고, 핍박과 박해, 멸시가 극심해서 목숨 보장이 안되는 곳이라고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대답은 모두 거부였습니다.
“외국에 나갈 돈이 없다 / 외국어를 못한다 / 외국 선교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 한국 복지가 좋은데 굳이 외국에 가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 / 외국에서 뭘로 돈 벌어서 먹고 살지 모르겠다 / 외국은 한국만큼 기독교에 호의적이지 않아서 죽을 수도 있다는데, 무서워서 싫다 / ........”
외국 선교지를 가봐도, 안전한 곳, 사람 많은 도시 몇 군데로 한정이 돼서, 외국이나 한국이나 한국 교회들끼리 서로 피 튀기며 경쟁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 종들아! 너희가 목회가 안된다고 느껴지는 것은 지지부진하고 지리멸렬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냐? 막상 교회를 차리고나서,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냐?
너희가 네 목숨을 아끼기를 나 하나님보다 더 높이기 때문에, 내 초자연적 공급을 받지 못하는 거란다! 내가 너희를 필요로 하고 아쉬워하는 곳에 와봐라! 내가 너희의 마음 속에 부어준 소명과 사랑에 귀 기울여봐라!
할 수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자가 되고, 네 삶의 목적을 찾게 되리라! 단순히 교세의 외형적 성장만 추구하면 마음이 공허하고 중심이 서질 않는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하고, 어떻게 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사람들을 구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면, 눈 앞의 교세에 연연않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너희도 모르게 교회 부흥을 선물로 받는 거란다!”
제가 잊어먹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서 간단하게 생각나는 중심내용만 썼습니다. 원 말씀은 정말 가슴이 뜨거웠는데, 지금은 구체적 기억이 잘 안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막연히 무기와 보급품, 준비없이 내모는 분도 아니십니다.
더욱이 우리 시대 한국에서 교회가 많기만 한 것은 우리 종들이 세계 만민을 구원하는데 관심 없이 자기의 안일한 삶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또 외국에서 내쫓기기만 하는 것도 오지 선교에 관심없이 도시에서 편하게 교세확장만 관심을 갖고 있거나, 성령을 위시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기 보다 인본주의 학문, 사상과 별 차이없는 가르침을 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 5:13).
이 시리즈의 글 모음 위치 : https://blog.naver.com/jative/221609317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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