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성령과 교회
칼뱅은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교회를 이해했습니다.
-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 그리스도의 몸
- 성령의 성전이자 피조물
이 중에서 장 칼뱅은 3번째를 강조했습니다.
1.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
칼뱅에게 교회는 본질적으로 성령의 실재입니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 및 성도 상호 간의 연합은 성령에 의해서 이뤄지며, 성령은 교회를 세우고 보호, 완성시키기 위해서 외적 은혜와 수단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이 수직적, 개별적 차원의 연합이라면, 성도 사이의 연합은 수평적, 공동체적 차원의 연합입니다. 더 나아가 전자는 후자의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후자가 전자의 관계를 지켜줍니다. 장 칼뱅이 말했습니다.
“교회와 분리된 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떨어져 나가 영생을 가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의 몸의 지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지체인 우리와 함께 연합되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외적 수단을 사용하심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장 칼뱅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열광주의자들 사이에서 중간의 길을 택했다고 밝혔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성례전주의와 사효론에 빠져서 복음 선포를 무시했고, 열광주의자들은 성령의 능력만을 주관주의의 잘못을 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장 칼뱅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성례전 집례에 교회의 표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말씀 선포에서 성령의 사역은 사람의 마음을 내적 조명, 감동시키시는 하나님으로, 성찬식할 때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성령님으로 제한을 시켜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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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칼뱅 = 바리새인과 서기관, 사두개인
장 칼뱅과 그 후배 신학자들이 성령의 종들에게 열광주의자라고 내몰면서 내뱉는 말은, 귀신을 내쫓는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가복음 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누가복음 11장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이 결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사와 기적 비판자들을 향하여 성령훼방죄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3장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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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례전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
이 책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날 때 직접 만나지 않고 설교나 가시적 표징이라 불리는 은총의 수단을 통해서 만난다” 라고 합니다. 칼뱅에 따르면 순서가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지시
- 말씀을 성례로 확인
- 성령으로 조명하셔서 말씀과 성례가 역사
여기서 성례는 세례와 성찬식인데, 세례는 우리가 깨끗하게 씻겨졌음을 확증하며, 성찬은 우리가 구속을 얻었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그 중 성찬은 가장 공동체적이고 교회론적이라고 합니다. 성찬을 먹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이 우리 안에 나타나게 되며, 떡과 포도주가 우리 몸에 유익을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에게 영적 유익을 가져다 준다고 써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칼뱅은 루터를 따라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 집례로 보았고, 그 성례전조차 세례와 성찬으로 축소했습니다. 성례의 효력은 성령에 근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령의 역할은 이 게 다입니다.
장 칼뱅의 교리에 따르면, 객관타당하게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장 칼뱅 마음 속에 상상과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를 나열했을 뿐입니다. 그 논리와 교리들은 성경 말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 칼뱅 개인의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대중에게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펼치시는 은사와 기적을 처음부터 배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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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본 자들에 관한 기록
상기 교리에 대해서 성경 말씀과 실증적 사례로 반박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직접 만나주시지 않는다고 하는데,
-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을 만나주신 하나님,
- 얍복강에서 야곱과 씨름하신 하나님,
- 모세, 엘리야를 만나주신 하나님에 대한 기록,
-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승천 뒤에 꾸준히 사도 바울을 만나주신 예수님,
- 사도 베드로에게 환상을 부어주시며 만나주신 하나님,
- 요한계시록을 작성하도록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성경 기록을 전면적으로 대적합니다.
역사 속에서는 초대 교회 수 많은 교회 감독들과 성도들이 순교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 것도, 꿈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십자가로 승리할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역사 기록에 적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시대에 이슬람 지역에서 꿈과 환상, 현실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 천사들을 봤다는 무슬림이 속출하며, 자발적으로 개신교로 개종하는 일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이슬람 이맘이 목사로, 이슬람 사원이 교회로 바뀌고, 무슬림 신자들이 개신교 성도로 바뀌는 이 시대에서, 장 칼뱅과 그 후배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상상과 추론으로 만들어낸 개신교 교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업수이 여기고 있습니다.
은사반대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다음 말씀으로 대처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도 바울은 성경에 분명히 은사와 기적을 가장 중시했으며, 신학자들의 인본주의 지혜를 경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칼뱅과 그의 추종자들이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멸시하는 이유까지 사도 바울이 다 밝혀놨습니다. 그들은 영(靈)의 사람이 아니라, 육(肉)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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