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입학 이전의 신앙 배경
예수님의 신학교 브리핑
어린 날에 삼위 하나님께서 제게 무척 많이 찾아오셔서 말씀해주셨는데, 그 중 대부분이 성령훼방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기억나는 이야기를 쓴다면, 1982~6년 사이에 경북 예천 외가댁에서 모깃불을 피워놓고 감자와 고구마를 먹는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과 은사를 증거하는 일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개신교단에서 이단을 핑계로 하나님의 은사와 기적을 막아버린다.
아들아! 너는 가서 그들에게 내뜻을 전하고 경고하거라! 내가 너를 신학교에 보내줄테니, 신학교에서도 전하거라!
너는 조직신학을 전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주시고 용서해주시지만, 자꾸 고집부리면 결국 심판 받는다! 두들겨 맞는다!”
이상의 내용이 핵심주제였습니다. 엡4:30
이런 환상이 임할 때마다, 저는 멍하게 서있기 때문에, 가족, 친척, 친구, 동네 사람들이 저더러 늘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왜 자꾸 멍청하게 서있기만 하니? 대체 왜 그래? 다른 애들처럼 빠릿빠릿하게 다녀야지. 주위도 살펴보고! 그러다가 사고나! 오토바이에 부딪히면 어쩌려구? 요즘에 애들 유괴하는 거 몰라?”
희생을 두려워 말자!
지금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신학에서 조직신학 전공은, 20대에 도전했다면 가능했을 겁니다. 20년간을 미뤄온 지금은, 대표적으로 찬양 작곡을 포함해서 해야할 다른 사역들이 밀려있기 때문에 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제가 리포트에 간증을 쓰는 겁니다.
박사까지 받으려면, 신학이란 학문의 형식에 맞춰서 객관적으로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길고 가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굵고 짧게 주님의 속을 시원케 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뭐 대단한 존재도 아닌데, 나 하나를 우상처럼 보존해서 좋을 거 없습니다. 요한복음 12:25 지난 날의 불순종의 경험에 따르면, 저 따위의 삶은 희생해도 됩니다. 눅12:48에 따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게 많은 것은, 제게 요구할 게 많으신 겁니다. 그래서 모든 고민을 접고 단순하게 예수님께 제 삶을 다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른 성령의 종들에게 길을 열어주겠습니다. 그게 오랜 생각과 기도 끝에 얻은 결론입니다.
어쨌든 저는 실천신학과 조직신학, 성경신학 최소한 이 세가지의 존재 유무는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어린 날 4~7살 사이에 예수님께서 제게 먼저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고전2:14에 따라서 세상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가 자랑으로만 들릴 겁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예수의 부활을 알리는 두 제자와 여인들의 증언처럼, 살아계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책 속에만 존재하지 않음을 증거하는 소중한 간증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해준 예언
2009년 이후부터는 제 어머니가 BSW 목사의 큰 믿음 교회(=현 사랑하는 교회)에 간간히 나가서 예언 상담 사역을 받았는데, 거기서 어머니가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기적을 사람들에게 간증하는 사역입니다.”
제 어머니가 그 얘기를 듣기 전에, 2009년 초에 하나님께서 제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일로 바쁘니, 이제 멀리까지 여러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다. 대신 네 어머니가 너에 대해서 상담을 대신 받아줄 것이다.” 실제로 제 어머니보다 제가 간증으로 글 쓰는 사역을 더 많이 합니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인 2001년 겨울 즈음에는 아시아 교회 BCS 목사님이 생면부지(生面不知), 초면(初面)인 제게 예언상담을 해주셨습니다. “형제는, 신학교수와 목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할 사람이며, 신학교수와 목사들을 목양하는 목사가 될 것이라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그 상담 내용을 신학교수가 돼서, 사람들을 가르칠 줄 알았고, 제가 신학교수가 되는 데에 방해되지 않도록 신상관리를 철저히 했습니다. 이단소지가 될 만한 기적 체험과 예언활동을 절대로 말 안하고 입을 다물고 살았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신학교 편입 시험에서는 번번히 떨어졌고,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신학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시간조차 없는 환경에 놓였습니다. 심지어 제 어머니가 푹 빠졌던 KHO 목사의 시온 기도원에서는 “신학교에 가지 말라!” 는 예언 상담 사역만 나왔고 교회 봉사 막노동만을 했습니다.
제가 신학교수 직분에 대해서 완전히 마음이 떠난 이후에, 비로소 시온 기도원을 하나님께서 심판, 평정해주시고, 저를 더 이상 헛되거나 거짓 예언으로 괴롭히지 못하게 하셨으며, 제가 그 기도원을 나가도록 길을 열어줬습니다. 2009년 2월 KHH 전도사
“형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시온 기도원을 전체적으로 정벌했고, 시온 기도원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맞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는 시온 기도원 모두 형제를 두려워합니다. 더 이상 시온 기도원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는 시온 기도원에서 나가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온 기도원에서 행하시려던 뜻이 이뤄졌습니다. 이제 형제는 자유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제게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신학교에 들어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 때부터(2009년)는 제가 음악활동에만 관심이 있어서 미뤘습니다.
다 드리는 게 정답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제 주변에 신학을 전공으로 외국으로 유학까지 갔다왔지만, 변변찮은 벌이가 없는 신학 박사와 목사들을 자주 마주치게 하셨습니다.
JME 교수님의 석사 수업을 듣는 KHD 전도사에게 같이 일하는 신학박사가 있냐고 물어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명문대 졸업후 대기업 본사 전략본부에서 일하시다가 미국 신학교로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따오신 KJS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현재 막노동을 하고 계십니다.
일반인들도 유튜브에서 “두 이방인” 이란 코미디 프로그램 녹화 동영상을 통해서 제가 느끼는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학 학벌 커리어에 대한 비전과 집착이 떨어지니, 제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 복지부동, 보신제일주의 사상이 떨어져 나갔고, 제 삶을 바쳐서 순종하기가 쉬워졌습니다.
2013년 4월 고속터미널 LG 데이터 센터에서 보안 근무 중에,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건물 지붕을 뚫고 온 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 주변에 천사들이 마치 작은 벌레들처럼 날아다녔습니다.
“아들아! 왜 너희 나라 한국에서 자꾸 독(毒)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나는지 아느냐?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누군가 먼저 설파해서 나 하나님이 했다고 예언하고 증언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 하나님을 믿게 해야 한단다.” 아모스3:6~8
- 2012년 구미 가스 누출 사고
- 2013년 당진 가스 누출 사고
- 2013년 9건→2017년 18건…끊이질 않는 대구·경북 화학 사고 - 매일경제
- 끊이지 않는 화학물질·유독가스 누출사고 '국민은 불안하다' - MSN.com
“그런데 이 땅에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을 찾아보니 거의 없구나?
그리고 내가 네게 맡겨준 일을, 네가 하도록 나는 약속을 지키고 참아오고 있다. 나 하나님은 자비롭고 신실하기 때문에, 쓰기로 결정한 사람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보다도 네가 후회하겠지? 그러나 네가 내 뜻에 순종하지 않는구나?
그러니 마치 똥이 마려운 사람이 오랫동안 참는 중에 방귀가 삐져나오듯이, 암탉와 오리가 알이 차서 알을 낳을 곳을 다급히 찾듯이, 나 또한 그런 상황이란다. 어서 네가 나를 증거해야 한다!”
개신교단과 신학교,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초자연적 기적과 은사를 베풀고 계심을 은폐, 이단시, 비방할수록, 우리 한국인 전체가 연대책임을 지고 징벌을 받습니다.
생각이 바뀐 다음부터는 과거와 달리, 죽기 전에 하나님 앞에 후회 없도록, 과거 기억과 경험을 잘 살려서 그 때 하나님께서 제게 시키셨던 일들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리포트로 작성하지만, 신학교 입학 이전에는 제 사비를 한달에 십만원 안팎으로 들여서 여러 곳에 편지를 전했습니다. 개신교단 지도부에 주님의 경고를 전하라는 지시를 어떻게 실현시킬지 모르는데, 자꾸 “신학교에 가라”는 하나님의 뜻이 신학교에서 리포트를 쓸 때마다 들렸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초자연적 기적과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활동인 은사를 숨기지 않고 증거하도록 전세계 개신교단과 한국 사회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바꿔놔야만 한다”는 것이 제 머리 속에 깊이 박힌 의무입니다. 롬15:17~19
그러나 다시 생활이 안정되자, 다시 제 삶을 돌아보려고 하고,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과연 이런 생활 태도로 음악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과연 진정성있게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글 쓰는 이 순간부터는 조심스럽게 표현을 자제했던 사실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은 것을 적기로 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글모음 위치 : https://blog.naver.com/jative/221619455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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