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일 금요일

장 칼뱅의 성령론 비판 - 본론 2~3

II. 성령과 성경

칼뱅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여기고, [기독교 강요] 초판부터 최종판까지 이중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모든 신앙지식은 하나님 인식에 근거한다고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참 지식과 거짓 지식으로 구별되는데, 하나님에 관한 모든 사상이 하나님에 관한 참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참 지식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장 칼뱅은 일반(자연)계시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일반 계시로써 하나님은 먼저 인간 안에 자신을 나타내시고, 다음으로 자연(우주) 안에 자신을 나타내시고, 마지막으로 인류 역사 안에 자신을 드러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과 우주, 인간 역사 안에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계속적으로 계시하실 것이라고 썼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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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중단론 비판

여기서 워필드가 말하는 계시중단론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주관적으로 열매 맺을 수 없는 일반 계시는 계속적으로 작용하신다고 말하고, 신구약 성경 속에서 족장, 선지자, 사도, 성도에게 부어주신 환상과 예언에 대해서는 중단됐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조차 에베소 1:17에서 일반 성도에게 계시의 영이 부어지길 간구했습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럼에도 장 칼뱅 이후에 나타나는 신학자들은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성경에 적히지도 않은 어휘로 마음대로 규정짓고, 우리 시대에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 짓고 있으니, 성령훼방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훼방죄는 바리새인들이 귀신을 내쫓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사사역을 마귀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 음해한 데에서 나왔으므로, 결국 은사 비판이 성령훼방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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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인류 전체가 아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특별히 전해지는 계시라서 특별계시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성경은 인류가 조작했던 모든 우상 무리와 참 하나님을 구별해주는 유일한 진리의 길이라고 합니다.
 
장 칼뱅은 성경이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상당히 인본주의적입니다. 성경의 신적권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사람들이 인정해야,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신적 권위를 상정(想定 상상으로 정하다)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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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무능의 폐단 : 통일교의 문선명

마치 이단 통일교 문선명처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권위를 호소하는 식입니다


문선명은 자기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기가 북한 땅만 밟으면, 김일성이 굴복하고 남북통일이 이뤄질 거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이 북한 땅을 밟자마자, 아무도 자신을 하나님으로 인정해주지도 않고, 총칼로 위협하니 무력한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나이어린 김일성을 형님으로 모시며 의형제를 맺고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간 해왔던 반공노선이 꺾이자 수 많은 이탈자가 통일교에서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존중하든 말든, 스스로 역사하셔서 자신을 기적과 권능으로 증거하시고 그 대적들을 깨뜨리십니다. 삼상5:3~4 성경의 신적권위는 장 칼뱅의 생각과 달리 사람들의 인정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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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칼뱅도 사람 사이에서 얻는 성경의 신적권위를 설명할 때, 로마 카톨릭에게 만큼은 반인본주의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가 성경을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에베소 2:20의 말씀에 근거한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받쳐주는 하나님의 인격과 성령의 내적 증거에 대해서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단지 성경 말씀을 듣는 자 안에서 성령께서 내적으로 역사하는 곳에서 세워진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라고만 썼습니다

이 서술만 봐도 장 칼뱅은 자신이 부정해왔던 성령의 내적 음성, 예언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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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과 기적으로만 전도된 기독교 역사

한편 기독교 전도 역사를 볼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던 이유는 내적 역사보다 외적 역사가 더 컸습니다. 예컨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를 가서 요한 계시록을 쓴 이유는, 사도 요한을 끓는 기름 속에 집어넣었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아서 죽일 방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많은 로마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17~19에 표적, 기사와 이적으로 복음이 전해졌으며 오직 그것만을 자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불교의 오도송(悟道頌)

불교에서는 2500년 전부터 깨달음의 노래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성철, 탄허, 경허를 포함한 상당 수의 고승들이 깨달았다고 말하며 증거하는데, 그 깨달음이 무엇이냐면 내적 확증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노래, 시로 만들어 발표하는데, 이를 오도송(悟道頌)이라고 부릅니다.
 


일반 불교 신자도 다 따라할 수 있는 내적 조명은, 장 칼뱅의 주장과 달리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개인의 감정적 착각이자, 뇌내망상일 수 있습니다


종교적 경험, 신비인가? 망상인가?


장 칼뱅이 내적 조명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이유는 불교의 깊은 학문 경지를 모르는 무식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글 깨나 읽은 불교 승려들은 기독교 성경 뿐만 아니라 신학교리서와 심리학도 탐독해서 비교 및 대조와 기독교의 공격을 미리 예상하고 방어하는 전략도 짤 줄 압니다. 제가 비교종교학을 처음 접한 때도 초등학교 때 신대방동에서 현오 스님이 지도하던 대지포교원에서였습니다.
 
저는 내적 조명, 정신적 기쁨과 환희의 경지를 불교 믿던 시절에 아주 오랜 기간 자주 체험했습니다. 불교 경전과 과학서적을 비교 탐독하면서 뭔가 들어맞는 것 같고, 지식의 가지가 연결되며 우주적 자아에 통달되며 머리가 상쾌해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거는 불교 신자들이 적잖게 체험합니다. 특히 참선할 때! 그래서 수 많은 불교의 고승들이 장 칼뱅을 불교에서 1~2 수 아래로 접어보고 목사들을 깔보는 것입니다

목사들, 쟤네들은 학문의 깊이가 없어! 그래서 우리 스님들이랑 말싸움하면 맨날 지고 얼굴 뻘개져서 돌아가잖아! 아예 이젠 우리랑 의형제 맺고, 절에서 예불드리고 참선하고 간다니까? 마음이 편해진대나?” 

실제로 기독교 장로회를 비롯한, 성공회 및 진보 개신교 단체는 불교에게 저자세로 왕래, 교류 합니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OT는 가라,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템플

 

성경 말씀 앞에서 교리우상화를 버려라!

오직 성경에 적힌 대로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외적, 대중적으로 역사하시는 은사와 기적으로 복음이 대중에게 객관적으로 전해진다고 저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불신자들이 홀로 성경 읽으면서 기쁨을 만끽하고 예수를 영접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당시 성경에 정통했던 바리새, 사두개, 서기관들이 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는 데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신학자들이 은사사역을 훼방하고, 개신교 교세를 추락시키고, 이방 종교와 사상에 기독교를 혼합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이사야 서를 보고 고민할 때, 빌립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기사와 이적을 설명해주고 이사야 서에 나온 주인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니, 예수를 영접해줬다는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성령께서 펼치시는 초자연적 이적과 기사 앞에서, 교만한 내적 조명과 수 많은 반론은 물 같이 녹아지고 예수 그리스도 발 아래에 무릎 꿇게 됩니다. 저는 연세중앙교회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 기적을 통해서 저의 불교적 교만과 내적 조명을 우세하게 여기는 기세가 꺾였습니다. 불교도 내적 조명을 엄청 좋아합니다. 깨달음, 관조, 명상, 참선의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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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성령과 삼위일체론

성령은 자신의 고유성을 가지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계시는 제 3의 인격 이고, 비인격적 힘이나 승귀된 그리스도를 뜻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힘, 능력, 작용이지만, 도구적, 수단화 된 방식에서 힘과 작용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장 칼뱅은 신적 본질에 대한 물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오히려 우리를 멀어지게 하며, 신적인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간접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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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성주의 신학이 죽여놓은 삼위 하나님의 초자연적 기적

그런데 그 사역을 자연과학과 창조에 관여한 우주론적 사역, 사람이 만들어가는 과학기술, 학문, 문화를 총칭하는 인간론적 사역, 구원론적 사역으로 형이상학적 탁상공론으로 구분했을 뿐이지, 일상에서 대중에게 일어나는 살아계신 성령님의 은사사역을 도외시했습니다.
 
그나마 구원론적 사역을 성도들에게 역사하는 배타적 영적 생명과 관련된 사역으로서 설명을 덧붙였지만,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수없이 적힌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성도들이 벌인 은사, 기적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살아계신 성령님의 활동을 장 칼뱅이 의도적으로 폄훼, 무시하며 죽여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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