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 #3
본문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설명
1980~2000년대 사이에, 한국에서는 커다란 신학적 센세이션이 있었습니다. 각 개신교단들이 서로 이단 정죄를 하며 분열과 투쟁을 하며 골육상잔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심적 교단이 장로교단인데, 장로교단이 주변 수 많은 교단과 교회들을 향해서 전부 이단이라고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흔적이 천주교와 아르미니우스 주의의 구원론 비판입니다.
장로교는 마르틴 루터가 다시 발견하고 장 칼뱅이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지나치게 확대한 나머지, 행위와 실천을 이단시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마르틴 루터는 카톨릭에서 주최한 수 많은 논변에서 대부분 승리했지만, 야고보서를 들고 나온 사제에게는 대패하므로써, 집에 돌아와 성경책을 집어 던졌습니다.
한 편 아르미니우스는 장 칼뱅의 손자 뻘 격의 제자입니다. 그가 카톨릭과 교리 논쟁을 앞두고 장 칼뱅과 마르틴 루터를 옹호하기 위해, 이 저술한 교리 서적과 성경을 읽고 비교하는 가운데, 선배 종교개혁자들의 논리를 성경말씀이 조목조목 비판하는 것을 목도하고 행위구원론을 주창했습니다.
이신칭의와 행위구원에 관한 문제는 이미 사도 시대에도 골치 아픈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이신칭의를 지나치게 신봉한 나머지,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다 용서받았다며 방종하는 니골라 당과 여선지자 이세벨이 큰 문제였습니다.
얼마나 심한 지 웬간한 사도들이 거의 한 번씩은 자기들의 서신서에서 그들을 인용했고, 요한계시록 2~3장에서는 예수님조차 그들을 싫어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이후 선한 행위를 권장하고, 말씀을 지키는 문제, 비도덕적 행위를 금지, 징계하는 글들을 끊임없이 서신서에 써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장로교의 극단적 구원론과 현재 구원파의 구원론, 초대 교회 시대의 니골라당의 구원론이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그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는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은 불가항력적으로 인도하셔서 결국은 구원받는다. 믿는 자는 지옥에 가고 싶어도 못간다! 하나님께서 결코 선택하신 사람이 어떤 짓을 하든지 버리시지 않는다!”
인용한 성경 구절에서도, 6절에서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고 분명히 명시했습니다. 또 8절에서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9절에서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받을 자격이 됨을 분명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지키는 사람들만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 할 지라도, 실수가 많고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지어낸 신학교리와 구원론을 앞세우기 전에, 유명 신학자와 교리 창시자를 우상숭배하기 전에, 먼저 성경에 뭐가 적혀 있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기본에 충실한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의 주체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증하시지 않습니다.
유병언이 구원파 기독교 복음침례회의 교주입니다. 그 교단은 청해진 해운을 운영하고, 그 해운 회사가 세월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까지, 구원파와 다를 바 없는 구원관이 장로교 안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의 비행과 범죄를 지적하는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행위구원론자 혹은 알미니우스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하고 나서, 구원파의 철면피같은 교리가 세상에 알려져서 한국 사회는 구원파를 비난했습니다. 더 나아가 장로교의 극단적 구원관 또한 구원파와 다를 바 없음이 밝혀지니, 이단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에서 대대적으로 개신교를 공략하는 먹이감이 됐습니다. 이단들은 개신교 내부에서 아르미니우스 주의와 장 칼뱅/마르틴 루터의 교리 양립 상황까지는 모르나 봅니다.
“믿기만 하고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구원관”은 사도 야고보와 베드로, 요한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에도 배격하고, 사도 바울조차 여러 차례 부정했으며,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조차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7:21~27
생각할 문제
인본주의적, 극단적 구원관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 더 초점을 맞추는 살자!
예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삶을 기도하자!
남을 위해 기도하자!
이 시리즈의 글 모음 위치 : https://blog.naver.com/jative/22162170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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