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학 - 논리적 오류
2018.11.25.일 outerlevi@gmail.com
서론
“D.A 카슨”의 [성경 해석의 오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성경 해석의 오류는, 평범한 목사들 뿐만 아니라, 주로 신학자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신학교리와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엉뚱한 이단교리를 만들어내는 메카니즘을 간파하고, 이를 깨뜨리고 방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본론
1. 잘못된 이접 명제 : 중립성 배제의 법칙에 부당하게 호소한 오류
성경 말씀을 해석하고 그 중심사상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분석의 작용이 필요합니다. 분석은 대상을 나누고 관찰하는 과정인데, 이 때 들어갈 수 있는 오류가 이 단원에서 다뤄집니다. 의미론적 분리를 하다가 서로 상보적으로 분리해서는 안되는데도, 그릇되게 나눠서 양자 택일로 몰고가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많은 예를 들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쉽고 뚜렷한 사례는, 호세아 서의 6:6입니다.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여기서 잘못 해석하면, 희생 제물로 드리는 동물들에 대한 인애를 위해서, 제사 제도를 폐지하자는 극단적 해석이 나올 수 있음을 예시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제도는 진짜로 기독교 이후 폐지됐습니다.
2. 구분을 인식하지 못한 오류
성경에서 어떤 말씀을 써놓으면, 그 말씀을 과장 해석해서 다 같다는 식으로 구분을 없애버리는 오류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갈 3:28, 행2:17 등 비교적 양성질서가 평등했던 초대 교회와 구약의 예언을 갖고, 남녀 구분이 아예 없다는 식으로 주장했던 데이비드 스테인메츠의 논문을 예로 들었습니다. 요즘 좌파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이 자주 써먹는 오류입니다.
고전 14:33~36, 딤전 2:11~15에서 성경은 분명히 남녀 성역할 구분을 짓고 있다고 썼습니다.
3. 선택적 증거에 호소하는 오류
증거를 아주 선택적으로 사용해서 다른 증거를 불합리하게 배제하는 오류입니다. 이슈가 복잡하고 감정적일수록 그 증거의 일부만 선택하고, 조급하게 망을 만들어 그 망을 통해서 나머지 증거들을 걸러냄으로써 본질적인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여기서도 스테인메츠의 사례를 썼습니다. 이 책에 나오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국에서 일어난 다른 사례를 쓴다면, 현재 향린 교회와 기독교 내부 좌파 NCCK가 주장하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 예수는 동성애를 권장했다, 예수는 게이이다
- 사랑으로 무슬림 난민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 단 인권의 절대성을 위해서 기독교로 개종과 전도는 절대로 안된다.
이 들의 주장은 무조건 자기들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성경 구절은, 다 금지목록으로 올려놓고 읽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심지어 폐기,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소수의 구절만 크게 확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수긍하도록 강압할 뿐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공산주의 기만전술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나치의 괴벨스가 썼던 방법이자 유명한 명언인, “거짓말도 자꾸 반복하면 사람들이 진실로 착각한다” 는 내용과 같습니다.
4. 부적절한 삼단논법 사용의 오류
가장 많은 표지를 할애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류를 범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삼단논법에서 오류를 벌이는 이유가 쓰여 있습니다.
- 중심주제에서 벗어난 가치없는 주제를 전제로 삼을 때
- 필요 조건, 충분 조건, 필요충분 조건 등의 개념 및 수학적 도식에서 집합 관계와 연산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삼단논법을 전개할 때
- 위 두 가지의 잘못된 출발 선상에서 시작한 논리를, 잘못된 전개방법으로 진전시키고, 그렇게 나온 잘못된 결론을 다시 일반화시켜 적용할 때
- 논리 비약
여기서 사용된 예시또한 오늘날에 많이 다뤄지고 있는 소재들입니다. 교회에서 여자의 역할과 직분의 범위, 그리스도인의 정의, 구원 조건, 다원주의, 성경에서 신학 도출 등등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전제와 주제, 틀린 논리전개와 논리비약으로, 신학을 세속철학과 이방종교의 범람 속에 던져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지럽게 만드는 세태를 정확히 잘 꼬집었습니다.
5. 부정추론
이 부분은 책 설명을 그대로 쓰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도식으로 달리 설명하겠습니다.
부정추론 또한 신학자들이 논리학과 수학의 집합 및 명제 연산에 대해서 무지, 간과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A는 “A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전체 집합의 원소에 A, B, C, D 가 있다면, B, C, D를 뜻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당장 눈에 띄는 대립되는 두 주제만 생각해서, A와 B만 있는 줄 착각하고, A가 아니면 B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머지 C, D를 간과합니다.
이게 원소를 넘어 무리의 다양한 포함 관계를 설명한 집합 연산으로 넘어가면,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해서, 단순히 삼단논법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사례에서 모세와 정통유대인의 삼단논법의 결론은 틀릴 수 있습니다.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도 모세를 믿는 우리 개신교인들과 다른 편에 무슬림도 있습니다. 예수와 구원의 조건에서 명쾌한 해답은 책이 잘 설명했기 때문에 넘어 가겠습니다.
더 나아가 개혁주의자들의 구원에 관한 편협한 단정에 대해서 책이 잘 설명을 했습니다. 실제로 개신교에서 구원받거나 하나님을 만나기 어렵다고 단정하는 교리를 지닌 카톨릭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역사적으로 참 많고, 천국에 갔다는 간증들이 꽤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신교에서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신학 형성에 크나 큰 영향을 끼쳤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동시에 카톨릭 교리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카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의 교리에서 율법으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으로 간다고 말하므로, 유대교는 구원받을 수 없는 종교로 단정지어 집니다. 그러나 유대교를 지도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기독교 전체의 논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무능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그 유대교 조차도 레위인이 나오기 전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이 이방인임에 대해서 전혀 설명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여부스 인이며, 이 들은 다윗이 예루살렘성을 정복할 때 다윗을 비웃었던 종족이고 더 나아가 유다의 바벨론 유수와 복귀 때까지도 남아서 유다인들을 이방 종교에 섞었던 사람들입니다. 이 부분을 히브리서 7:1~17에서 잘 꼬집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당장은 주어진 하나님 말씀에 따라 명제를 뽑아내지만, 우리 사람들이 그 명제를 논리로 전개하기엔 현실에서 많은 오류를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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