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사기
사사기의 역사는 퇴보의 역사입니다. 마치 고대 로마에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암흑의 천년기가 도래한 것과 같습니다. 여러 민족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승리의 역사가 사사기 1장에서 끝나고, 내리 주변 민족들에게 휘둘리고 패배하는 역사로 이어지는데, 우상숭배와 부도덕, 이방 민족과 혼합이 원인이 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단절되고 약화되게 만듭니다. 이는 여호수아24:20의 예언이 실현된 결과입니다.
사사기에 관련된 이집트 측의 기록은 메르넵타 왕(BC1213~1203)의 석비로써, 이집트가 가나안을 정벌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씨가 사라질 것이다!” 라고 써놨습니다. 하지만 사사기에는 이집트의 침공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6:11~16의 기드온처럼 숨어 살았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사사기 시대가 워낙 혼란한 시대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역사 기록을 유실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밖에 이집트, 우가릿, 히타이트에서 고급 철기를 사용하는 해양민족의 대규모 침입 기록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리스에서는 흑해 지방의 야만인, 그리스를 침공한 야만 민족과 토착 그리스 민족과 지중해 일대의 식민지가 연합하여 위대한 영도자 아래, 이집트와 아나톨리야, 레반트를 침공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 자기들끼리 공격한 역사도 있습니다.
이 게 블레셋 인에 대한 사사기 기록과 맞아떨어짐으로써 역사적 실체성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갑돌에서 불러왔다는 암9:7은 크레타=갑돌의 그리스인들이 바로 블레셋 사람임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8. 룻기
1절에 사사기 시대라고 적어놨습니다.
흉년이 들어서 가족들이 굶어죽을 정도라면, 사사기에 쓴 그리스 식민지와 흑해 일대 및 북유럽 일대의 바다 철기 민족이 지중해를 유린한 시대로 생각됩니다. 이집트 19~20왕조 람세스3세 재위 8년까지의 시기로 추정됩니다.
헤로도토스가 쓴 아나톨리아의 기근 때 리디아 왕국의 이주 기록, 메르넵타 석비에서 히타이트의 대기근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어느 정도 부합합니다. 바다 민족이 유린했던 이유는 대기근 때문이었습니다.
9. 사무엘상
사무엘 상의 시작은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민족의 충돌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이집트의 기록에서 해양 민족들이 중근동에 대규모로 침입해서 노략을 했고, 필리스틴 사람들이 가나안에 정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팔레스틴 유물은 미케네 문명의 토기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동진한 그리스 인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갑돌에서 불러오셨다고 했는데, 그 곳은 오늘날 그리스 령 크레타 섬이므로 미노아 인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사사 사무엘의 성장과 활동, 사울이 왕으로 뽑혀서 활동한 이야기와 다윗이 다음 왕으로 지명돼서 사울로부터 공격당하고 피하는 이야기로 구성돼있습니다.
10. 사무엘하
사울의 죽음 이후 다윗의 활약상을 서술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왕조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사울의 왕조가 스스로 굴복하게 만듦으로써,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이뤄가신다는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한편 다윗은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성폭행했는데, 진실한 회개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선지자 나단에게서 듣습니다. 그럼에도 밧세바의 첫 아들이 죽고, 다윗의 딸 다말이 아들 암논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다말의 오빠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반역을 합니다.
이를 통해서 현대 개신교에서 과신하는 믿음 만능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솔한 처리방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심은 영원히 버림받는 것을 면하는 것 이지, 우리가 져야 할 징벌과 책임은 고스란히 남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교리에 연연하며 죄 짓고 뻔뻔하게 영화 밀양의 성폭행범처럼 살면 안되겠습니다.
11. 열왕기 상
유대인의 탈무드에서 열왕기 서의 저자는 예레미야로서, 바벨론 포로 이전에 지은 글이라고 합니다.
기울어져가는 이스라엘 잔당과 유대인을 대상으로 썼는데, 역대 왕들의 타락으로 바벨론에게 망할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히스기야 이후, 특히 요시아 시대에 재통일한 유다왕국은 잠깐의 중흥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악을 버리지 않았고, 거짓 선지자들의 마약과 같은 긍정적 메시지 선포로 국민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역대왕들의 죄악을 실증적으로 증거하며, 근거없이 떠드는 거짓 선지자들과 싸우고, 국민들에게 자신의 예언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텔단 비문과 암몬 석비에 나온 “다윗의 집”이 나온 시대 이기도 합니다.
12. 열왕기 하
왕상의 엘리야의 활약을 엘리사가 뒤를 잇는 것으로 내용이 시작합니다.
그리고 왕상에 나열한 북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엘리야를 통해서 이룰 심판이 이뤄집니다. 예후가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하사엘 이후 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힙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심판을 하시고 사람들이 겪어도 그 죄악을 고치지 않고 옛 풍습을 답습하니, 북 이스라엘은 지속되는 반란과 왕위찬탈로 피바람이 자꾸 일어납니다.
남유다에 있는 종교적 우위권에 대항하고자 북 이스라엘은 이방 종교를 끌어들여 혼합했는데, 그 죄 값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갚으셨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은 본토에서 쫓겨나거나 외부에서 들어온 민족과 융합하여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 인이 탄생합니다.
반면 유다는 바벨론 시대에 혼합정책이 적용되지 않고 권력자, 부유층, 기술자들만 끌려가고 가난한 자만 남습니다. 그 이유는 힘 있는 자들이 약자를 착취한 데에 대한 예레미야의 심판 예언이 그대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열왕기 하에서 성경무오설이 깨지는 기록이 꽤 나오는데, 그 중에서 한가지를 쓰겠습니다.
같은 장 31~32절에 이스라엘 왕과 엘리사의 반목과 갈등이 발생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21~23절에서 사로잡은 아람 군대를 엘리사의 말대로 바로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를 보전한 아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에게 화가 났던 것입니다.
무턱대고 성경무오설을 내세울 수 없을 정도로, 성경에는 기록자가 오류를 많이 남겨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영감을 부어주셨다 한들, 받아적는 사람이 사람일진대 실수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열왕기를 기록한 사람은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아무리 선지자라도 실수하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 속에 실수와 오류를 넣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인간들은 완악하므로, 내 말씀의 권위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악용한다. 그래서 나 여호와가 성경에 오류가 나도록 이끌었다! 오류도 영감이다! 너희 인간들의 잔악함을 막기 위해서 성경 속에 넣어놓은 안전장치이다! 내가 미숙한 애들에게 칼을 맡길 순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와 수많은 환난을 허락해서 문서의 정확도에 100% 완전할 수 없게 해놨단다.”
성경을 경전으로 쓰는 종교는 구약에서는 유대교, 신구약 모두 쓰는 종교는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 그 밖에 이단종파들입니다. 이 들이 성경가지고 종교재판, 고문, 대량학살, 이단정죄, 투석형, 화형 들을 아주 밥 먹듯이 저지르는 장면을 어린 시절에 자주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에 같은 사건을 두고도 상충되는 기록이 존재하는 이유 또한 원 기록자가 기록환경의 한계와 어려움 속에서 각자 다르게 쓴 것을 취합하다보니 발생한 것이며, 그렇게 이끄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 들에 써놨습니다.
제가 쓴 하나님의 말씀조차 중심내용만 같지, 세부 내용은 글 쓸 때마다 달라집니다. 그걸 시간만 나면 일부러 사람들에게 밝힙니다. 그게 미묘한 하나님의 음성을 당장 기억나는 대로, 여유 없으면 대폭 줄여서 짧게 씁니다. 여유 있으면 깊이 기도하며 환상과 응답 받아가며 좀 길게 쓰기 때문입니다. 또 제 글이 다 맞다고 고집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판단을 온전히 맡겨서 그분께서 역사하시도록 내버려둡니다.
저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완벽히 주셔도, 건네 받은 사람은 아주 작은 실수라도 섞일 수 있고, 틀릴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아예 깔아놓고 제 사역을 합니다. 그래서 주로 소모적 논쟁을 안 하고 정보 전달 목적으로만 글을 씁니다. 실제로 제가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 와서 글을 과격하게 쓴다 할지라도, 눈 앞에서 사람 만날 때는 논쟁을 안하고 피하거나 침묵을 합니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하고, 자칫 영원한 지옥문을 열어놓기 때문입니다. 그 뒤는 하나님께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제 반박자들이 제가 쓴 글을 무작정 감정만 앞세워서 압박하고 못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 앞에 목숨 값과 사명을 다해야 하며, 주님의 뜻이 굽어지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없는 시간 쪼개서 논증반박을 전개합니다.
실제로는 제 삶이 너무 바빠서 놓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논리적이고 분명한 실증을 가지고 제 글을 반박하면 별 일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내가 선지자랍시고 장 칼뱅과 마르틴 루터, 교부들처럼 우상이 될 뻔한 기회를 피했다. 내가 천국 가는데 지장 없다!’ 라는 생각을 하고, “당신 말이 옳습니다. 제가 이 부분은 잘못 받았습니다. 알려주셔서 제가 천국 가게 하시고, 제가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고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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