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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론 1000자
사회복지 공부를 하기 전, 인터넷으로 사회복지학과 학생 의견들을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남자에게는 사회복지는 미래가 없다! 여자들은 좀 오랫동안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로 압축이 됐습니다.
근원적 원인은, 무보수성, 이타성을 명시하면서, 전문성, 지속성, 개척성, 교육성, 조직성, 공동체성 등 상당히 높은 자질을 요구하는 점입니다. “주는 것도 없도 없으면서 많이 바란다”는 뜻입니다. 이론의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몇 년 전 국제적 구호단체의 지도부들이 터무니없는 억대 연봉을 받음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도움 받을 사람들이 많은데, 지원이 부족하다고 떠들었다면, 지도부부터 허리띠 졸라매고 더 많은 금액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쓰이도록 솔선수범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 비춰보면,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무보수에 가까운 처우를 받으면서 희생을 하는데, 소수 지도부가 300~500만원 사이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한답니다. 남편에 기댈 수 있는 여자들은 오래 버티고, 불가능한 사람들은 조만간 이직을 합니다. 처음에는 가족에게 손 벌리다가 정신차리고, 사회복지사는 미래없는 직업임을 깨닫습니다. 공장, 건설 노동자, 파트 타임 잡, 정부의 재취업 IT 교육으로 빠져나간답니다. 사회복지는 교수될 것 아니면, 대학교에서 배울 필요없는 학문이니 절대 지원하지 말랍니다.
무보수성과 희생을 극복할 대안은 종교계의 자아실현성에서 비롯되는 이타성과 자발성입니다. 초월적 존재가 주는 영적 보상이 동기를 줍니다. 재정적으론, 정부지원금에 종교기관자체 운영기금을 합산해서, 사회복지시설 직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해왔습니다.
아래는 아직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환상으로 보고 쓴 글입니다.
그러나 정부 보조, 민간 운영에서 종교중립성을 강요한 뒤부터, 종교단체는 발을 뺐고, 기업에서도 유행을 따라 주춤합니다. 취업 무대와 임금이 대폭 축소됐습니다. 사회복지업계와 자원봉사자들이 살 길은 종교기관의 자율성 보장 밖에 없습니다. 정부 보조금과 노동단체의 종교단체를 향한 압력이 한국 사회복지업계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일부 실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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