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6일 일요일

지옥의 교주 장 칼뱅 본론 5 - 성경무오설 반박

3단원 예언 계시는 혼란한가?
 

1편 아담, 하와가 변개한 말씀

우리가 사도와 선지자 직책에 연연하면 이단 밖에 안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마태24:24에서 직접 예언하셨고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1)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고후11:13에 거짓 사도에 대해서 써놨습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실제로 한국은 구한말부터 지금까지 직책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이단 종교를 세우고 물의를 일으켜왔습니다. 재세례파가 장 칼뱅에게 지고 유럽인들에게 버림받은 이유도,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서 이미 말씀하신 예언들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짜로 이단이다. 나 하나님이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서 전한 말씀을 무시하므로, 멸절시켰다!”
 
저도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한 글은 창세기2:17 과 창세기3:3의 와전(訛傳)처럼, 완벽치 않습니다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하와와 뱀의 대화를 자주 써먹는데, 본래 하나님께서 제 사역에 대해서 경고하시며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담은 글을 다른 목사님이 가져가셔서 여기저기 돌리다보니, 사람들이 원뜻을 모르지만 참신한 내용이라 막 쓰니까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제 글이 하나님으로부터 보고들은 내용에서, 기억의 한계로 원형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왜곡된다는 단점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기 위해서 제게 예언하신 것입니다. 2005년도 강서구 가양동 아시아 교회 리더쉽 트레이닝 회의 시간에 성령이 임하여 말씀을 죽 적었는데, 그 때 쓴 내용 입니다. 그 이후에 이 글이 인기를 얻어서 너도 나도 써먹더라구요.
 
창세기2:17 과 창세기3:3에서 명령 내용이 차이가 난 이유는, 직통계시의 불완전성과 위험성을 뜻합니다.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직통계시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기억의 한계 때문에 중심내용만 알고 내용을 재창조 합니다. 강조할 점은 덧붙이고, 당장 기억나지 않는 내용은 빼기 때문에 왜곡이 일어납니다. 거기서 사소한 이유로 죄에 길을 열어줍니다. 제가 환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을 정확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것을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로 말을 바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은 말씀인 만지지 말라는 말씀이 추가됐고, 본래 명령인 먹는 것 과 아담이 덧붙인 만지는 것이 동등한 자격을 얻었습니다. 죽을까하노라로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식으로, 본래의 엄중한 경고 명령을 희석, 완화시킵니다. 설명에 제 상상이 들어갔습니다. 성경대로라면 하와가 덧붙인 말일 가능성이 높고, 너무 오래돼서 환상 기억이 정확치 않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만지지도 말라며 그 명령의 말씀을 전했으나,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는 게 하나님의 본 말씀인 줄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도 않은 만지지도 말라는 명령이 실효가 없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봤는데 죽지 않지요. 게다가 자기 스스로의 욕심으로 죽을까하노라로 하나님의 명령을 변개 합니다. 결국 하와 자신이 안 죽을 수도 있다 라고 먼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속이면서, 뱀의 거짓말에 문을 열어 줍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부연 설명을 더 했던 아담의 말이, 하와에게서는 전부 하나님의 말씀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하시지 않은 말씀에 책임을 지시지 않으므로 만지는 것에 대해서는 죽지 않습니다. 즉 거짓명령이 실효성이 없는 것을 체험하니, 사람은 진짜 금지 명령에 과감히 죄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2편 기독교 역사에서 반복되는 왜곡과 혼동

이게 유대인의 율법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이 막상 현실에서 볼 때는 기준이 애매모호합니다. 예컨대 안식일 성수도, 도대체 어디까지가 일의 범위인지 알 수 없어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불도 안 끄고, 집에 있는 가전기구조차 금요일에 있던 상태 그대로 둡니다. 왜냐하면 일의 범위 논쟁이 있어서 유대 장로들이 각종 연구를 통해서 보다 더 세분화된 율법 해석서를 내놓았고, 이를 지키라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로들의 유전을 비판하셨고, 사도 바울은 유대의 율법을 비판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도 않으신 말씀을 장로들이 더 추가해서 사람들만 괴롭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1:48 장로들의 유전이 본디 하나님의 율법을 덮어 보이지 않게 하고 율법의 존재이유와 목적까지 가려버리는 효과까지 냅니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마태15:3,6~9 요약하면 하와의 실수를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또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유전 사이에 혼동이 당시 초대교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폐하는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과 사도 바울의 율법 반대 의견이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하신 말씀, 천지가 끝나도 사라지지 않을 말씀과 장로들이 율법에 추가한 유전이 섞이고 구분없이 헷갈리는 개념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들은 니골라 당, 이세벨 파를 이뤄서 아주 무분별하게 정욕대로 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많이 욕 먹었고,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의 글은 어려우니 함부로 해석하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또 이게 중세 카톨릭과 현대 개신교에도 그대로 적용이 돼서, 카톨릭은 다시 율법주의 비슷하게 돌아가되, 유대 성전중심, 제사 미사 중심으로 바뀝니다. 개신교는 다 폐지하고 말씀을 추구한다지만, 실질적으로 니골라당과 교리는 같습니다. 전적 타락” “믿음으로 구원” “율법에서 해방 은 니골라당이 개신교보다 먼저 초대 교회 시대에 내세웠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개념도 마음 잘못 먹고 잘못 쓰면 그만이며, 장 칼뱅 교리의 원조는 니골라당 입니다
 
니골라당의 사상 (출처 headstone924.net)
 
1. 인간의 육신은 근본적으로 악하다.
2. 인간의 영혼은 육신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3. 인간의 구원에 육체는 중요치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육체가 짓는 죄는 정죄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4.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살전4:1,7~8으로 분명히 경고하며 행위의 실천을 강요했습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3편 사람의 한계와 하나님의 관용

그럼에도 아담은 처음에 하와랑 대화를 하던 당시에 대해서 아무 책망을 받지 않고 기록조차 없습니다. 아담한테 아쉬운 말씀을 단 한마디도 하나님께서 안하셨어요. 마찬가지로 예언은사 받은 사람들이 글을 쓸 때 분명히 오류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최선을 다해 임무수행을 하므로 그 한계를 용인하십니다.


그 때문에 성경에 수 많은 오류들이 발견돼서 요즘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지라도, 성경 기자들을 예수님께서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태가 14대 씩 써놓은 예수님 족보도 세보면 몇 개 빼먹어서 실제로 14개가 아닌 코스도 있습니다. 마태 자기가 14개라고 써놓고도 실제로 세어보면 그 수가 다릅니다. 복음서에 나온 족보들이 기록자 마다 다 다르고 숫자도 다릅니다. 그것을 신학자들은 전달 목적에 따른 취사선택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따지면 역사왜곡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일언반구도 비판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용인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를 포함하여 요즘에 선지자, 예언은사자, 일반 성도들이 예언과 간증을 쏟아놓지만, 결국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단지 중심메시지를 듣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심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순종하면 됩니다. 불확실에 따른 위험성이 있으므로, 더 기도해보고 여러 사람들이 검증해서, 살릴 것은 살리고 자를 것은 잘라내면 될 뿐입니다

이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창세기 하와와 뱀의 대화에 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넋 놓고 사람들이 불순종하고 애초에 예언을 들어먹지 않으려고 하면, 유럽처럼 개신교를 초토화시키고, 미국처럼 개신교가 엎어지고, 한국처럼 국내 전도와 해외 선교가 막혀 버리는 등 하나님의 징계가 떨어집니다. 이 부분은 앞서 쓴 내용에 자세히 설명돼있습니다.
 
그냥 제 글은 ! 사람의 한계로 완벽하지 않으니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볼 게 아니라, 성경에 비춰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여기서 짚어주는 중요 내용에 대해서 개신교 지도부에서 심도있게 논의하고 실천해보면 되겠다!” 정도로만 보면 되는 겁니다

사소한 내용가지고 상대방을 죽일 듯이 몰아버리면, 진짜로 하나님께서 철권으로 내려쳐버리십니다. 그리고 저도 그 전에 이미 쓴 같은 내용의 글이 있음에도, 참고 안하고 생각나는 대로 씁니다. 그래야 그 때 생각지 못해서 생략된 내용을 넣고, 동시에 조금씩 틀린 내용을 통해서 기억의 한계성에 대해서 분명히 알려주고, 저 자신에 대해서 우상화와 이단화를 애초부터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저 완벽한 사람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한국에 위험과 죄악을 경고하시고 회개를 독촉하시는데, 그 지시를 받고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4편 부정확한 예언에 관한 환상들

이 내용은 덕정 사랑의 교회에도 써드렸습니다

얘야, 네가 완벽한 예언만 해서, 아무도 너를 터치할 수 없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돼서, 마주오는 기관차랑 부딪혀서 사고날래? 아니면 네 영적 한계를 반영한 예언을 해서, 네 자신을 돌아보고 사람들에게 소화시킬 여유를 주면서, 브레이크로 제동을 걸고 제어가 될래? 그게 영원한 지옥과 천국을 결정한단다. 뭐할래?”
 
저는 불완전해도 천국가는 길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경고를 듣고 성경을 상고하고, 직접 기도하고 응답받고 토론해서 하나님께 순종실천만 하면 됩니다. 이 거 갖고 길길이 날뛰면서 마녀사냥은 금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래 년도는 제 기억의 한계로 정확치 않습니다.
 
개신교단이 1970~2010년대에 이단 마녀사냥을 극렬히 한 이유는, 그 전에 별의 별 이단들이 설쳐대며 한국을 난도질 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죄값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부터 정통 개신교 지도자들이 패륜적인 범죄를 대량 터뜨렸는데, 나 하나님이 그들 속 부패함을 다 드러냈기 때문이다

세계에 무신론이 득세하고, 기독교인을 상대로 전세계인들이 마녀사냥을 하도록 세계질서가 바뀌었다. 이단사냥을 할 때 성령의 종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펼쳤기 때문에, 기독교단이 심판 받는 것이다

유럽 가 봐라. 거기 이단사냥꾼이 있느냐? 원래 거기가 이단사냥으로 유명하고 화형과 고문이 횡행하던 곳 이다. 그 죄값으로 나 하나님이 유럽에서 기독교 기반 자체를 뿌리 뽑아놔서, 이단 사냥꾼들이 비빌 언덕이 없어서 멸절했다.”
 
분명히 멸종하지 않고 소수는 남아있을 듯 한데도, 관련 단어가 없는 관계로 멸절이라고 썼습니다. 제가 불완전한 기억을 추정해서 쓴 것이라 모두 맞는 말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2009년도에 성령님께서 제게 환상을 부으셨습니다. 고랭지 채소 농업을 하는 강원도 산골에서 제가 무밭에서 일하는 꼬마로 등장합니다. 거기에 각종 기형적인 무우와 벌레먹은 무우, 썩은 무 등이 섞여 있었습니다.
 
아들아! 오병이어를 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친 소년처럼, 옷이 남루하고 지저분해도, 자신의 한계와 오점, 더러움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너 자신을 바쳐라. 한 달란트 남긴 자처럼 주인이 준 달란트를 썩히지 말아라! 그래서 글을 꼭 써서 내 종들에게 전달하라!”고 지시 하셨습니다

이 내용이 담긴 편지를 여의도 순복음 성동 교회에 2009년에 이미 드렸습니다. 관련된 내용은 네이버 블로그 [아우터레위] - [사역 정체성 4 - 오병이어의 꼬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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