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터레위 블로그의 관리자 입니다.
2016년에 글을 써서 정치 정당, 개신교단에게 돌리려던 글이었는데, 그 당시에 다른 더 급한 글들을 먼저 돌리느라고, 지금까지 공개하지 못한 글입니다.
지금의 이 글을 올려놓고 보니, 여기 적힌 주인공들이 모두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바로 광화문, 서울 시청 등등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우파 목사님들과 우파 유튜버들입니다.
이 들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길거리로 나가서 대정부 투쟁과 진보좌파 세력 척결을 위해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계십니다.
제1편 카나리아 사람
1980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제 부모님께서 만화가게를 운영하실 때, TV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유럽의 광부들이 광산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 새를 새장에 넣어서 가져간다고 합니다.
그 새장을 바닥에 놓거나 광부들이 일할 때의 머리 높이 수준에 올려 놓는데, 유독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서 바닥에 가라앉고, 아주 적은 양의 유독가스를 맡아도 새는 죽습니다. 그 죽은 새를 보고 광부들은 광산 안에 유독가스가 차오르기 시작해서 위험함을 알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 과정을 TV보다 더 많은 부연 설명을 성령님께서 제게 해주셨습니다.
보조 광부가 새장을 아예 바닥에 놓으니까, 선배 광부가 “너 일 안할 거야? 가스가 무릎 높이도 안 찼는데, 새가 바로 죽으면 어떻게 해? 더 일할 수 있는데!”
그래서 보조광부가 어디 얹을 때 찾다 보니, 어디 걸쳐 놓을 데를 못 찾아서 헤매다가, 아주 높은 곳에 대충 얹어놨습니다. 그러자 선배 광부가 말했습니다. “아유, 이 등신아! 이렇게 높은 데 걸쳐놔봐라! 우리가 가스 다 마시고 죽어도, 저 새는 살아있겠다!”
실제로 그렇게 됐을 경우도 보여주셨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고, 어떤 사람은 숨이 너무 가쁘다고, 새 좀 보고 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새는 여전히 살아있으니, 당연히 살아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동료들이 좀 일하다가 픽픽 쓰러지면서,
“좀 이상해! 새 좀 다시 봐바!”
“새가 어디 있는데? 나도 보자!”
“야이, 자식아! 우리 머리보다 한참 높은 데 다가 새장을 놓으면 어떻게 해!”
“그럼 어따 걸어요? 걸 데가 없잖아요!”
그러자 선배 광부는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으므로, 가지고 있던 연장을 이용해서 길다란 정을 망치로 땅땅 치며 가슴 높이의 벽에 박고 거기에 새장을 걸었습니다.
잠시 뒤에 살펴보니, 새가 죽었습니다.
“야! 나가자! 이봐! 다 나가! 위험하다! 가스가 벌써 많이 찼네! 연장 챙겨!”
광부들이 연장을 급히 챙기고 도저히 챙길 시간이 안되면, 연장을 포기하고 위로 올라갔습니다. 저도 그 광부들 중에 한명으로 같이 석탄도 캐고, 흘린 땀을 닦고 함께 걸어서 올라가는 체험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에 깃들이시고 온 세상에 충만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바로 너희가 카나리아 사람이다! 앞으로 세상의 영적 변화에 따라서, 남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성령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세상이 음란해지면, 음란함을 남보다 더 빨리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이 폭력적이면, 남보다 더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세상이 무속, 마귀, 귀신을 추구하면 남보다 더 그런 쪽으로 영감이 발달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이 무신론(無神論)으로 바뀌면, 남보다 더 삼위 하나님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동성애를 다루니 동성애 쪽을 말하겠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너도 그 중에 하나란다! 너는 내 교회들과 종들에게 나의 말씀을 다 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세상의 타락에 남보다 더 민감하게 작용해서 너부터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단다.
아들아! 아버지 하나님께서 카나리아 사람들을 만드신 이유는, 광부들이 카나리아를 보고 유독가스를 피할 수 있도록,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자들을 보고 사회 악을 제거하라는 뜻이란다. 음란죄와 성폭력, 성범죄가 많아지면, 풍기문란한 문화와 제도를 고쳐야 하며, 폭력이 많아지면, 폭력적인 문화와 사상을 고쳐야 한단다!
카나리아 사람들은 남보다 영적 민감도가 강하지만, 한편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보호막을 남보다 덜 주셨기에, 타락의 속도가 남보다 몇 배가 빠르고 눈에 현저히 나타난단다!
나의 선지자들도 마찬가지로 카나리아 사람들이라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일들을 남보다 빨리 감지해낼 수 있단다. 너는 위험을 감지하면 바로 내 말씀을 내 종들과 교회들에게 알려주거라! 전세계에 다 알려줘야 한다!
어떻게 전세계에 알려 줄 수 있냐고? 내가 너의 생각을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 교회를 부흥시켜서 전국에 퍼져 나가게 했으며, 한민족을 전세계에 퍼뜨려서,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만들었단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각종 협회를 만들었다. 그러니 너는 그 들에게 내 말씀을 전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에, 내 종들이 네가 전한 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로 간구하고 순종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길을 다 열어주실 것이며, 성령이 부어지고 그 능력과 지혜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나도 다 안다! 무척 아까울 거야! 네가 높임 받고 싶겠지. 아들아! 나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거라! 십자가를 지고 죽기 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했던 삶을 본 받아라! 이 땅의 인정을 기대하지 마라!
세상 사람은 물론이요! 심지어 내 종들까지도 너를 인정하지 않고 헐뜯으려고 할게야! 사람은 그런 거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 남을 짓밟는다!
상급은 하늘에서 다 계수된다! 그리고 아들아! 신비한 말, 특이한 말로 사람들을 낚으려고 해봐야 이단 밖에 더 되겠느냐? 네가 나에게 순종하면, 성령님께서 때가 되면 너를 도우실 거다! 사람을 끌어 모으려면, 신유(神癒)와 축사(逐邪), 능력행함, 믿음의 은사가 더 효과적이란다. 고통 받는 성도들이 정말 많단다! 성도들은 직접적으로 문제와 고통, 병마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단다!
예언의 말씀을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지가 더 중요 하단다. 하나님께 강력히 쓰임받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1980년 뿐만 아니라, 2008년 즈음에도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 1동에서도 보여주신 것으로, 성령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교계 연합 집회를 한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는데, 단순히 목사님들이 줄줄이 단상에 나와서 설교하고 별 일이 없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피곤했고 머리와 다리만 아팠습니다.
반면 무명의 사역자가 전혀 다른 날, 다른 곳에서 특별한 목적 없이, 성령의 감동 때문에 집회를 했습니다. 사역자라고 한 이유는, 그가 목사, 전도사, 성도 누가 될지 모른다는 성령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사람이 한 말이 어렴풋이 기억 납니다.
“다른 목사님들은 아주 거창한 목적의 명령을 받고 연합집회를 하시는데, 사실 제가 왜 이 길거리에 나와서, 떠드는지 잘 모릅니다. 단지 성령님께서 요즘 집회를 하라고 자꾸 음성이 들립니다. 성령님께서 뭔가 보여주실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갑자기 들린 말씀이라 저도 믿음이 부족 하지만, 무시할 수 없어서 선포합니다. 저는 교회에 성도도 없고, 딱히 모일 사람이 없어서 그냥 밖에 나와서 외칩니다.”
길거리 행인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집회는 아니지만, 진심으로 회개하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니, 성령의 기적과 역사가 크게 나타나고 행인들을 휘어잡는 장면이었습니다.
일찍이 연세중앙교회를 다니면서, 윤석전 목사님을 통해서 많이 봤던 거라 잘 알던 것으로, 사람들은 다시 부흥이 일어난다면, 오순절 부흥, 아주사 부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는 불신자들도 몰려 옵니다.
무슨 집회에서 타이틀과 강단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마시고, 그게 믿음의 척도로 착각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많은 목사님들이 명예와 인기, 인정받음을 위해 나서기만 하는 걸 좋아하셔서, 성령님께서 보란 듯이, 길 거리에서 이름없이 사람들의 비웃음과 훼방을 견뎌가며 전도하는 사역자들을 들어 쓰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진정 회개, 성결, 겸손, 거룩, 순종, 실천, 금식, 방언, 새벽과 철야 기도 등을 가벼이 보시지 말길 부탁드립니다. 말씀 백날 봐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은 라면 봉지에 쓰인 조리법 보고 배부르십니까? 조리법을 안보고도 라면을 끓여서 먹으면 비록 맛은 없을 지라도 배가 부릅니다.
말씀도 그와 같습니다. 말씀만 백날 읽기만 하고, 그것을 신학으로 갈아타고 공부에 공부만 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 멀어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을 알았으면 그대로 믿고 실천하며 순종하고, 삶으로 살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말씀은 부적이 아니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제가 이전의 신서(神書)에 써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