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현대 교회와 가정 교회
1. 1950년대 말 남미의 가톨릭 교회 안에서 가정 교회 형태가 강조됐습니다.
- 남 아메리카의 교회가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은 세포 모임이 수천개나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2. 1960년 이후로는 서구 뿐만 아니라 구소련을 포함한 공산주의 나라들,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정 교회 모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 유럽에서는 신세대 기독교인들 사이에 전통적 교회 예배에서 벗어나서 비공식적 만남을 통해 서로 신앙을 북돋는 새로운 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이런 신앙 공동체가 유럽 전역에 2,000 여개에 달합니다.
- 추가로 제가 주석을 달자면, 유럽에서 이성주의 신학, 무신론적 신학, 자유주의 신학이 정통 신학이랍시고, 성도들의 은사와 기적, 믿음에 해악을 끼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자신들의 성경 그대로의 초자연적 믿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가정 교회를 설립합니다.
- 제 주석은 시드로스의 수퍼내추럴을 유튜브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나단 모리스의 이야기에서, 또는 독일 브레멘의 김화경 목사님을 검색해도 알 수 있습니다.
3. 1949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중국에서 종교 핍박을 하므로, 가정 교회로 교회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 그 때까지 170개 교단이 6,5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중국의 기독교인은 75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 등소평의 자유 개방 물결 이후, 공식적으로 등록된 삼자 교회의 성도 수는 수백만명이었습니다.
- 1992년에 7,000 개의 교회, 1996년에 12,000 여 개의 교회, 농촌을 중심으로 25,000 여 개의 가정 교회가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 1997년에는 8천만여 명의 기독교 신자가 중국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III. 가정 교회를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가정 교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 말씀 선포와 권징, 성례전이 개혁 교회의 표지인 동시에 참 / 거짓 교회를 구분하는 표식인데, 가정 교회는 이를 현실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 초대 가정교회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이 많은 차이가 있다.
- 실제 가정 교회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들이 총체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 건물도 없는 가정에서 모이는 것이 어찌 교회가 될 수 있냐는 기성 목회자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앞서 비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자는 구약의 교회 칭호 “카할”과 신약의 교회 칭호 “에클레시아”를 예로 들었습니다. 바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모이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기에, 건물 없는 교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 가정 교회가 될 수 있는가?
현대에서 종교개혁가들이 교회의 표징이라고 주장하는, 말씀 선포, 권징, 성례식이 가정 교회에서 시행되든 말든 상관없이 가정 교회는 교회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그런 기준을 명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아무리 시대가 다르다 한들, 가정 교회는 구약의 족장 시대에, 신약의 초대 교회 시대에 교회 형태입니다. 시대와 문화가 다르다고 교회의 원리나 근본정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신과 역동성을 우리 현실에 맞춰서 되살리는 게 중요하며, 그렇지 못하면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정 교회가 교회의 총체적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 땅에 완전한 교회가 없음으로 답했습니다. 존 스토트가 말했습니다.
“교회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성결함을 입은 존재이지만,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으며, 거룩해지도록 부름 받은 존재이다. 교회는 풍성한 은혜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허물이 많으며,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 완벽한 교회는 없다!”
“교회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성결함을 입은 존재이지만,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으며, 거룩해지도록 부름 받은 존재이다. 교회는 풍성한 은혜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허물이 많으며,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 완벽한 교회는 없다!”
로버트 뱅크스가 말했습니다. “이 땅의 교회 중에, 가정 교회가 최선의 교회 형태” 가정 교회 만큼 평신도 사역자와 구성원들이 함께 자라며 받은 은사대로 사역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뤄가는데 좋은 토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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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성도는 가정 교회 세워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 블로그 사역을 하면서 부패 타락한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로부터 적잖은 상담요청을 받아왔습니다. 더 나아가 탐욕스러운 목사, 별 이상한 신학 사상과 아전인수격 성경 해석, 견강부회같은 설교로 성도들을 괴롭히는 교회들에 지칠 대로 지친 실망한 가나안 성도들을 블로그 사역 전, 30대 때부터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그들을 만나기 전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그들을 만나기 전부터 들었습니다.
“너희가 각자 신학(神學)을 배워서, 직접 가정(家庭) 교회를 세워라!”
그리고 성령님께서 초등학교 때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교회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전교회를 반면교사 삼아서, 자신의 가정부터 보듬고 나아가 상처입은 주변 가나안 성도들과 연합해서 동아리 같은 소그룹의 교회를 이루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기독교 방송에 뉴스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탐욕스런 목사의 배를 채우기 위해 성도를 희생시키고 아예 교회에서 발 길을 돌리게 만드는 것 보다, 목사가 희생할 지언정 하나님의 성도 수를 유지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장면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탐욕스런 목사의 배를 채우기 위해 성도를 희생시키고 아예 교회에서 발 길을 돌리게 만드는 것 보다, 목사가 희생할 지언정 하나님의 성도 수를 유지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장면도 보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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