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1일 수요일

#2 Lollardism - Y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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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롤라드 운동이 필요하다!
 
위클리프의 롤라드 운동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짤막하고 간략하게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현재 한국 개신교계의 문제점도 떠오릅니다. 현재 한국에서 교회가 매년 3000개씩 문을 닫고 있습니다. 저는 이 원인에 대해서 뼈저리게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목회 사역을 하면, 모든 일을 다 포기하고 교회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미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돈 떨어질때까지 버티면서 사역을 하고, 돈 다 떨어지면, 교회를 깨끗이 접고 세상일을 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레위 지파에게 땅을 독립적으로 물려주지 않았다는 근거를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지파에게는 이스라엘 지파 사이에 여러 도시 성들과 그 주변의 목초지를 물려줘서, 자립할 수 있도록 다 조치를 해놓으셨습니다.


경북 예천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보여주신 환상이 있습니다. 대지주 양반 댁에서 추수를 하고 농민 일꾼들이 수확물을 거둬서 쌓고 타작질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양반은 손가락 까딱 안하고 구경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환상을 김홍도가 실제로 그림으로 그려놨습니다.

 
하나님께서 점차 시간을 지나가는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임진/정유 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고, 수많은 난과 사화, 붕당정쟁 뒤에 신분제가 무너졌습니다.
 
그 양반의 후손은 떵떵거리던 지주에서 가난한 양반이 됐는데, 그 아내는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품을 팔았습니다. 그럼에도 양반남자는 일을 안하고 글만 읽습니다. 이미 조정은 부정부패로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는데도, 그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공부만 해서 가세를 일으키겠다는 환상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밖에서 품을 팔아서 받아온 쌀을 매타작하려고 마당에 널어놓았는데, 아내가 다른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고, 낟알은 비에 휩쓸려 떠내려 갔습니다. 그럼에도 양반의 후손은 눈 껌쩍 안하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돌아와서 사실을 알고 너무 화가 나서 남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무 기약없는 글 공부로 인생만 날리는구료! 당신 때문에 나는 고생해서 일을 하는데, 당신은 그깟 낟알 하나 지키지 못한 말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지금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이 이 양반과 같다! 그들은 순수한 성경 가르침으로 살지 않고, 조선시대 양반정신, 유교를 기독교에 혼합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본인들도 그렇게 산다. 한국 개신교 목사들은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계급이 개신교의 목사로 고스란히 넘어온 줄로 착각하고 있단다!
 
일해라! 목회에 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부부와 가족이, 가정과 가정이 연합해서, 서로 분담해서 일하고 함께 교회를 공동으로 협력해서 키워가며, 전도와 목회를 하면 되지 않느냐? 세상에서 평범한 일은 등한시 하면서, ? 목사들은 세상에서 존경받을 만한 세상 사업의 직함들에는 욕심을 내느냐? ? 너희 한국 목사들은 이율배반적이냐?
 
세상 일이 죄악되고 하지 말아야 한다면, 존경받고 돈 많이 받을 세속의 직책들도 욕심내지 말고, 하지 말아라! 정치에는 왜 기웃거리느냐?
 
목사를 한문으로 쓰면 牧師 뒤에 스승 사자가 붙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목사들에게 물어봐라. 선비 사()로 대답할 사람들이 많다! 이는 그들이 갖고 있는 목사 직업 의식을 조선시대의 선비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성령님께서, 한 목사님이 강연하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신라시대에는 화랑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승려들이 사회를 이끌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사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누가 한국을 이끌겠습니까? 바로 우리 목사들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사()이 듯이, 우리들은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스위스에서 장 칼뱅이 교회 예배가 끝나고 나서, 교회문을 걸어닫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리고 칼뱅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세상과 단절된 도피를 하지 마시고, 세상 밖에서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재물을 맡기신 청지기입니다. 여러분에게 정직, 근면한 대가로 세속적 축복이 내려옴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막스 베버라는 학자가 개신교 영성이 자본주의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대로 제가 중학교 시절에, 교육방송을 통해서 현재의 중동 지역, 정확히 이스라엘 성지에 있는 천년 넘는 수도원들을 보았습니다. 그 수도원들은 로마 제국 시절에 세워진 동방정교회 소속의 수도원들인데, 그 수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는 베두인 족속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동방정교회 수도사들이 직원인 베두인 족속들에게 예수님을 전도하지 않습니다. 서로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완전히 사무적으로 봉사하고 소속된 영지의 소출물로 대금을 지급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불교도였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마음 속에서 음성이 잔잔하게 울려퍼졌습니다.
 
? 저들은 전도하지 않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냉혹하고 잔인한 마귀 사탄의 종교 이슬람 교도들에게 전하지 않는가? 왜 저들은 사탄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가?”
 
저는 당시에 불교도였고, 어린 시절에 간간히 만난 하나님에 대해서는, 환상이 끝나면 꿈처럼 잊혀졌기에, 기독교의 전도 개념을 몰랐습니다. 이슬람이 사탄의 종교라는 것을 학교에서는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래요! 대체 왜 저 사람들은 수도원의 종교를 따라가지 않습니까?”
 
그러자 TV 화면이 바뀌어서, 수도사들이 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장면이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아! 저들은 나 하나님을 만난다고 신비주의를 추구하면서, 사람들과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나 여호와 하나님은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과 동떨어진 곳에 보내지 않았고, 죄악이 가득한 시장 바닥, 세속과 천함이 가득한 사람들 사이를 부대끼게 했다. 나 여호와 하나님은, 죄인과 병자를 찾으려고,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서, 내 아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들아! 내 성도들은 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됐다. 저렇게 고립된 곳에서 어찌 나 하나님을 만날 틈이 있겠느냐? 속세에서 저자거리에서, 죄인들과 부딪히고, 술주정뱅이에게 말동무가 돼주고, 음란한 여인들을 용서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해봐라!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어 봐라! 연약한 이들을 부축해주고 일으켜봐라! 그들에게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봐라!
 

그럼 나 하나님을 만나고자 굳이 희한하고 특이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들 틈 속에 얼마든지 나 하나님을 증거할 빈 틈이 크게 생기므로, 비집고 들어가서, 나 하나님을 직접 증거하마! 너희는 날 만날 수 있다!
 
지식(知識) / 신비(神秘)주의를 추구하지 마라! 영적(靈的) 경지(境地)를 추구하지 마라! 그런 체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시적으로 경험하고 기억 저편으로 흘러갈 뿐이란다! 정말 너희에게 영원토록 남는 것은 영혼들을 내 품으로 전도(傳道)하는 것이란다!

 
아들아! 사람들을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도하면서, 나 하나님을 증거한다면, 현실에서 얼마든지 드높고 강력한 영적 경지와 신비체험을 시켜줄 수 있다. 홀로 고립돼서 경지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너희가 어리석고 들쑥날쑥한 자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죄인들과 섞여 사니 평소에 천하고 낮게 보이다가도, 너희가 나를 전도(傳道)하므로 막강한 권능을 만인들 앞에 보여주므로, 때로는 매우 드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정하다며 핀잔을 줄 뿐이다!
 
저들은 그런 체험을 할 리가 만무하다. 나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은 내 속을 시원케 하지 않는다! 나 하나님이 원하는 삶은 전도(傳道)란다! 나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도 않으면서 나를 찾으려고 하니, 나 하나님이 무척 답답하단다.
 


아들아! 사람들에게 전해다오! 조용기와 김기동, 문준경, 이성봉을 포함한 네 믿음의 조상들처럼, 적극적으로 전도(傳道)하는 삶이 나 여호와가 무척 기뻐하는 삶이라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 나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이 나 여호와의 속을 시원케 하는 삶이란 말이다!”
 

#1 Lollardism - summary of text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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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 글은 2017년 11월 즈음에 작성해서, 어떤 교육기관에 제출한 글입니다.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나서, 아우터레위 사이트에 올려놨습니다.


중세 교회사
 
 
위클리프의 종교개혁과 롤라드 운동
 
  
서론
 
중세는 종교적 신본주의나 세속에서 인본주의 면에서 모두 타락된 암흑시기였습니다. 이 때 중세 교황주의 종교 이데올로기가 사회 모든 분야 뿐만 아니라, 사람 마음 속까지 전횡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인간 가치와 종교관 부실이 사회 전반에 걸쳐 진행됐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교황청이 유럽 여러 나라들에게 막대한 헌금과 세금을 뜯어먹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부패와 잘못된 관행을 지적한 사람들이 여럿 나타났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람은 위클리프입니다. 그는 농민들이 부패한 봉건사회에 대항하여 일으킨, 사회 개혁 운동인 롤라드 운동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본론
 
위클리프 활동시기의 시대적 배경
 
14세기 유럽은 흑사병의 창궐로 인구가 1/3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착취의 봉건사회가 전반적으로 무너지고, 사람의 가치가 올라갔습니다. 더 나아가 13세기 백년 가까이 이뤄진 십자군 운동의 연속적 참패로 로마 카톨릭의 교황권은 무너졌습니다. 그럼에도 세속군주와 카톨릭 교회는 유럽 농노에 대한 가혹한 착취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회 대중은 카톨릭에 대한 멸시, 조롱, 비판을 거세게 일으켰습니다.
 
그 중에서 영국은 프랑스와 백년전쟁에서 패배하여, 왕권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영국은 종교와 정치 세력 모두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상태였고, 국민들은 점차 사회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 시대적 깨달음을 구체적 사상으로 표현해준 사람이 바로 요한 위클리프입니다.
 
그레고리 11세는 영국 국왕 존에게 과도한 조공을 요구했고, 영국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 과도한 내정 간섭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카톨릭 교황이 보낸 자객에 영국인이 암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인들은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이때 위클리프는 [세속통치론][교회론]을 저술하여, 카톨릭 재산을 영국 정부가 몰수하고, 세속적 왕권신수설을 옹호하고 정교분리 원칙을 주장했습니다. 이후에 위클리프는 기존의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서 가난한 국민들조차 성경을 읽도록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위클리프는 농민들의 정신을 일깨웠고 농민들은 롤라드 운동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위클리프는 [고발] 이라는 책을 편찬하여, 카톨릭 사제들의 무위도식을 신랄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사제들이 실질적으로 일도 안 하면서, 가난한 농민들로부터 착취한 고혈같은 세금을, 사치와 향락으로 날려버리거나 로마 교황청으로 상납하는 데에 대한 통렬한 비판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오늘날 개신교를 돌아보게 합니다.
 
 
 
위클리프의 신학과 사상
 
위클리프는 브레드워딘이 일치하는 공로를 비난한 것과 다르게, “일치하는 공로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재(先在) 은총에서 나오는 순수한 은혜로 보상하실 때, 일치하는 공로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끼친 브레드워딘은, 어거스틴과 같은 반펠라기우스 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위클리프에게 예정과 은총이라는 사상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윌리엄 오캄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캄은 프랜시스 수도회의 일원으로서, 스콜라 신학의 실재론 사상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오캄은 교황권이라는 보편적 개념에 대립하는 주민권(공민권)을 지지했고,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위클리프는 이에 대해서는 좀더 온건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권리에 있어서 오캄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파두와의 마르시글리오와 로버트 랭란드도 오캄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르시글리오는 국가의 통치권은 국민에게 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통치자요, 심판관인 왕은 국민의 대표자라고 정의했습니다. 랭란드는 영국 국민을 향한 사랑과 낭만적인 시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조는 옥스퍼드 대학을 중심으로 옥스퍼드의 사조로 자리잡았습니다. 옥스퍼드 사조는 교황이 아닌, 국왕을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교황의 위협을 받았고, 국왕의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위클리프는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종교적 권위의 근원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중세 교회에서는 교황의 권위, 종교회의의 권위까지 중시했었는데, 이 모두를 다 제거하고, 성경만을 종교적 권위로 봤습니다. 동시에 성경을 절대적 권위를 지닌 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법 아래 고용된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상이 농민들로 하여금, 청지기의 기본을 벗어던진 영주와 왕권에 대항한 롤라드 운동을 일으킨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위클리프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은 당시 사람들이 쓰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므로써,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을 복음화 할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결론은 당시 영국인들이 쓰던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도록 그를 움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일반 성도가 성경을 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위클리프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진리를 직접 판별하도록 했습니다. 당시에는 인쇄기가 없었지만, 단기간에 영국 가정에 대량 보급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자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말씀하시므로써, 신학자 라드베르투스는, 성찬식 때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뀐다고 화체설 이론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라트람누스와 버펜가리우스는 이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교황청이 강력한 이단으로 규정한 이후부터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찬용 잔은 평신도는 마시면 안된다는 극단적인 교리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위클리프는 논리적, 과학적으로 부정을 했습니다. 화체설에 아예 반대를 했습니다. 영적 임재설같은 영적 비유와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교황권을 와해시키는 시초가 됐습니다.
 
중세 교회의 교회론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교회를 거룩한 단체로 보았는데, 로마교회는 다른 교회들보다 우월성이 있다고 보았고, 교회가 천국과 같다는 개념을 가졌습니다. 그리스도가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 천국의 열쇠를 건네고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을 근거로 삼아서, 레오 1세 감독은 로마 교회가 다른 교회에 갖는 공적 우월권을 확립시켰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같다는 사상은, 모든 기독교인은 의무와 행위가 교회에 예속돼야만 한다는 주장으로 굳어졌습니다. 교회의 규제에 속하지 않은 모든 생활은 다 세속적으로 천시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 및 은둔 생활을 훌륭한 이상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사상은 교회를 세속적으로 타락시키게 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세상 왕국을 통치하다보니, 교회는 정치세력화 되므로써, 개인 영혼 구제에 관심이 덜했습니다. 그레고리 7세와 이노센트 3, 보니페이스 8세 때에는 이런 사상에 도취돼서, 서유럽의 황제와 교황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에 반하여 위클리프는 [교회론]이라는 저서에서, 교회는 예정의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의 모임, 가톨릭 혹은 사도적 교회는 예정된 자들의 우주적 교회로서 이미 죽은 자들, 살아있는 자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된다으로 써놨습니다. 교회는 어떤 장소나 인간의 선택이, 어떤 사람을 교회의 일원으로 만들지 않으며 오직 신성한 예정으로 인해서, 인내하며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모든 세상적인 유익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교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썼습니다.
 
페이지가 분량을 넘어가므로, 이상으로 위클리프에 관한 요약을 멈추고 책 제목에 맞춰서 롤라드 운동으로 가겠습니다.
 
 
 
롤라드 운동
 
롤라드 운동이 일어난 원인을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14세기에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가 1/3로 줄어버린 상황에서, 노동자의 희소로 임금이 올라가므로, 기존의 농노제가 붕괴되고 임금을 받는 노동계층으로 평민들의 신분과 사회 제도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에 봉건적 반동으로, 영주들이 기존 사회질서로 돌아가고자 해서 농민들은 동요를 했습니다. 이러한 동요 속에서 카톨릭 주교와 수도사들이 부재지주로서, 사회적 모범을 전혀 보이지 않고 세속 영주와 다를 바없는 탐욕에 찌든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위클리프는 백성들에게 균등하게 부의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대지배자이시다. 그는 영적 지배권을 교회에게, 물질적 지배권은 위정자에게 신탁하셨으므로, 그 위임자는 잘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권리를 악용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빼앗으신다. 따라서 기독교회나 성직자가 영지와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 밖에도 여러 사상을 썼는데, 쓸모없고 게으른 성직자들에게서 편안한 삶의 특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카톨릭의 지나친 부의 축재를 견제하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의 사상 이후, 와트 타일러를 주축으로 농민봉기가 영국에서 꾸준히 일어났습니다. 특히 봉건적 수탈이나 영주의 비행이 잦거나, 프랑스 함대가 출몰해서 영국 해안을 약탈한 시대였습니다. 여기서 참으로 놀라운 점은 대륙의 프랑스 함대가 섬나라 영국에서 해적질을 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섬나라에서 대륙으로 해적질을 하는 게 정상입니다. 롤라드 운동을 주로 이끈 지도층은 농촌과 도시의 하급 성직자들이었는데, 이 전에 위클리프는 가난한 설교자들에게 영어로 번역된 말씀을 전파하도록 훈련시켰으므로,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성경 말씀이 라틴어로만 다뤄져서, 로마 카톨릭의 최상층 및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위클리프 시대 이후부터는 영어로 해석전파되므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전국민이 공유하도록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국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점차 사회와 현실로 눈을 돌려서 부와 생산기반에 대하여 점차 민주화 의식이 발전을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 당시에 영주의 보호아래 있었기 때문에, 당시 농민반란에 대해서는 편파적으로 영주 편만을 들어줬고 농민들의 항거를 폭압적으로 진압하는데에 사상적으로 빌미를 제공해줬습니다. 본래 독일 농민들이 항거를 할 때, 마르틴 루터에게 조언을 요청할 수 있었던 배경또한 영국의 위클리프가 영국 농민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를 구현하던 노력을 사람들이 기억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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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살기 위해 참여해야 할 집회 나 단체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이 중에서 덜 부담스러운 곳에 골라서 가셔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내시 십분 김영민의 정치적 보수우파를 위한 음악 연합 활동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