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2 - 신성(神聖)모독(冒瀆)
지옥(地獄)을 찾아가는 교리(敎理)논쟁(論爭)
복잡다단한 다차원의 세계를 우리 인간이 점, 선, 면 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장 우리의 얼굴조차도 사각형, 구형, 삼각기둥 등 단순한 도형과 입체로 돼있지 않습니다. 수 많은 굴곡이 기하 해석학 관점에서는 불규칙적으로 뭉쳐 있습니다. 그 것을 하나의 수학식에 기댄 그래프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학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작은 잣대로 잴 수 없음을, 바닷가에서 작은 잣대와 바케스와 저울을 들고 나와, 바다를 재겠다는 어린이의 환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칼뱅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과 알미니우스, 카톨릭 모두 다 이단(異端)입니다.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신 바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예정론의 오류
예정론에 빠지면, 예수님을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내뱉은 거짓말쟁이이자, 여호와 하나님의 예정에 반기를 드는 반골(叛骨)로 만들고, WCC의 전도 금지를 합리화 시킵니다. 아래 말씀을 예정론의 관점에서 보시면,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예정(豫定)을 어기고 다 전도(傳道)하라는 지키지도 못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대신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부터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시겠다는 예정은 이미 구약 성경들로부터 다 예언돼있어! 이제 이게 예정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럼 또 신학(神學)은 난제(難題)에 부딪힙니다.
시편 69장 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처음에 생명책에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신다면, 하나님의 예정은 불변성을 갖고 있다는 신학의 명제가 또 틀리게 되며, 그 명제의 기반이 하나님께서 완전하시니 불변하신다는 명제 또한 같이 틀리게 됩니다.
일치하는 공로의 오류
반면 알미니우스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과 질서를 다 인간의 욕망으로 부정해버리고, 그 때의 시류에 따라서 살아도 되게 말씀을 자꾸 변개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적하셨습니다.
“이 들과 카톨릭, 진보 개신교도들은, 자신들의 방종과 말씀 변개를 인간의 선행으로 무마시키거나, 화폐, 물물 교환하듯이, 죄악과 선행을 대가 교환으로 서로 상계해서, 그 계산이 (+)가 많아지면 천국에, (-)가 되면 지옥에 가는 것처럼 이론이 발전하게 된단다. 다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서 착각할 뿐이다. 그런 거 아무 소용없다.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이 천국 입성의 입장권이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어떤 이론을 선택하던지, 결국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숙명을 지니고 있고, 지옥에 다녀온 간증자들이 한국과 전세계를 막론하고 신학자들은 지옥에 있다고 증언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지옥을 간증하는 사람들이, 신학적, 논리적으로 신학자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를 논증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머리만 크고 교만하며, 성령을 훼방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점을 보완하셔서 신학적 논리 전개로 인해서, 사람의 눈에는 맞는 듯해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완전히 틀려버린 신학 논리 전개를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신학적 결정은 결국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틀리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합니다. 많은 이들을 지옥으로 가도록, 잘못 가르친 죄값으로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잠언 14:12 사람의 눈에는 바른길 같이 보이나,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
잠언 16:25 사람의 눈에는 바른길 같이 보이나,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
신학자(神學者)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質問)
하나님께서 신학자(神學者)들에게 전하라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신학자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를 전해 주거라!
왜? 창조주 하님이 너희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신학 교리(敎理)에 구속이 되고, 너희 신학 교리의 족쇄에 매여야겠느냐? 그럼 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족쇄가 채워진 종(從)이냐? 너희가 서커스 주인이고, 나 하나님이 족쇄가 채워진 채, 너희 주머니를 채우려고, 재주를 부리는 곰이냐?”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성령님께서 사진 같은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환상 속에서는 기다란 모자를 쓴 남자라는 점만 다릅니다.
“실제로 너희는 신학 교리를 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신학으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답변하면서, 나 하나님의 행동방향을 너희 계산대로 유도, 예측 하고 있다. 한편 내 성령의 종들이 자유롭게 사역을 하면, 너희 교리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머리 위에 올라앉아서 조종과 간섭, 정죄판단을 하지 않느냐?”
성경 말씀들이 교리적으로 분쟁을 끊임없이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설명도 말씀하셨습니다.
“불신자들과 기독교 비판자들의 말대로, 성경이 논리적으로 안 맞고 서로 충돌되는 말씀들이 많다! 왜 그런지 아느냐?
너희 인간들은 마귀가 너희 마음을 조종하는 줄도 모르고, 신학 이론을 세워서 나 하나님을 규정하고 얽매여서, 창조주의 전지전능을 훼손시키는 중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너희 인간들의 논리와 이성, 판단으로는 서로 충돌하는 모순이 많도록 성경 말씀을 써놨다! 그러나 세상을 통치하는 데에는 꼭 필요한 말씀이다.”
성령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양돈장 주인이 군대 짬밥을 사료로 준 감사로, 명절마다 우리 부대에 커다란 돼지 한 마리씩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그 분은 걸어서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십니다. 그런데 돼지는 자기 길 좌우에 풀들과 웅덩이가 있어서 거기서 노닥 거리려고, 좌로 가기도 하고, 우로 가기도 합니다. 왼편으로 갈 때는 왼 쪽에서 회초리를 대고, 오른편으로 갈 때는 오른편에서 회초리를 댑니다. 그럼 참으로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하나의 자극으로 통일해서 꾸준히 이어가야 하므로, 왼 방향이든, 오른 방향이든 한 손으로만 제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양쪽에서 회초리를 댈까요? 그래야 돼지가 길을 똑바로 가기 때문입니다.
“너희 신학은 주객전도(主客顚倒)를 해서, 마치 나 하나님이 종(從)이 되고, 너희 신학자(神學者)가 주인(主人)이 되는구나? 그래서 내 성령의 종들이, 기적을 베풀면 그거 성경(聖經)적이지 않다고 이단(異端)으로 몰아붙이지! 그게 성경 시대에 바리새와 사두개인들이, 안식일(安息日)에 병자를 고쳤다고 예수를 비난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 그래서 너희 신학자들은 지옥(地獄)으로 들어간다!”
야고보가 아래처럼 말씀을 써놨는데, 그 말씀에서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야고보서 4장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경예언대로 이스마엘 후손에서 무하마드를 악마가 쓰도록 허락하셔서, 이슬람이 단성론 기독교도들의 씨를 말려 버리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슬람이 차지한 땅은 과거 단성론 기독교도들이 맹위를 떨치던 동로마 지역입니다. 여러 번의 삼위일체에 관한 공의회 결정을 다 무시하고 단성론이 끊어지지 않던 곳입니다.
창세기 16장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그 무하마드의 스승들이 단성론 기독교도들이라서, 이슬람 교리가 “신은 오직 하나, 따라서 성자, 성령은 없다! 예수는 선지자 중 하나일 뿐이다!”입니다. 단성론은 이슬람을 부른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린 시절 외가댁에서 계시를 보여주셨는데, 그 과정에서 본 환상이 최근에 중동의 기독교 국가 레바논이 무슬림 나라로 탈바꿈 했고,
이디오피아 또한 이슬람이 에리트리아로 나라를 쪼갠 것도 모자라서, 이디오피아 내부에도 이슬람이 급속히 퍼졌습니다.
그런 동일한 심판 맥락 선상에서, 교리 논쟁을 즐긴 한국 장로교는 200여개로 쪼개졌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다 섞여 있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유럽은 이슬람화 시킨다고 예고하셨습니다. 유럽이 별의별 희한한 교리를 내세우면서, 교리 잔치, 화려한 말잔치로 신학교들이 난리법석을 떨며 수백년간 어지럽혀진 점을 더 잘 아실 겁니다.
“함부로 교리갖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말아라! 그러면 멸절시키겠다! 나 여호와가 역사를 주관한다!”
제가 근 10년간 여러 교회와 신학교에 편지를 써왔는데, 거기서 강조한 내용이 있습니다. 유럽은 지나치게 신학이 발달해서, 결국 유럽 기독교가 망해버렸음을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심지 않으신 것은 뽑아버리신다는 성경 말씀대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학자들에게 심각하게 물으신 의문점이 있습니다.
“나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이 성경에 적히지 않은 게 나오면 다 마귀 거라면, 하나 더 물어보자! 나 하나님은 무한(無限)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어찌 그 무한한 능력이 유한(有限)한 성경에 다 적힐 수 있겠느냐? 유한한 성경 쪽수 안에 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정의(定義)가 다 적힐 수 있다면, 나 하나님은 무한하다는 명제(命題)가 틀린 게 아니냐?”
그리고 성령님께서 성경구절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현대 신학자들은, 사도(師徒)조차 하지 않았던 행위를, 신학을 핑계로 마음 껏 저지르고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너희 신학자들이 나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다 안다며, 네 오누이들과 내 성도들에게 칼을 난도질 하는 활동 결과는, 신성(神聖)모독(冒瀆)에 지나지 않는다! 공허한 논쟁을 끝내고, 성경에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