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문화 13주차
와이미션 1~3단원
1단원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목적이 이뤄지는 과정을 기록해놨다.
모세5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에스겔, 이사야서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하심과 천사가 하나님과 대등하게 되려다가 타락하는 과정이 적혀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으나, 아담과 하와는 타락한 천사인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지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예언을 이뤘다.
이후 유대인만 알았던 하나님을 온 이방 겨레들이 알게 됐고, 구약의 이사야서를 비롯한 수 많은 선지서들이 예언한 대로 온 겨레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리게 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세계에 널려있는데, 그들이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미 믿고 예배하는 우리들이 세계에 선교를 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안에 머물러 고여서 끝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축복이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심은, 세상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실현됐다. 그들이 세상을 모두 떠난 지금은 우리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2단원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그 아들들 사이에 살인, 그 후손들이 겪은 대홍수와 바벨탑 사건 등등의 이야기는 인간의 죄악이 지배하는 사회는 비참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가라”는 명령과 “복이 되리라”는 약속을 주신다. 이로써 선교는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선택되므로써 시작되고 마침내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이 되게 하신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겨레는 이집트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하고, 모여서 예배하는 구심적 선교가 핵심을 이뤘다. 한편 요나 선지자는 이방 민족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는 원심적 선교를 했다.
구심적 선교는 모이는 것이고, 원심적 선교는 퍼져나가는 것이다. 책에서는 요나서만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선지서 작성자들이 열방에 대해서 회개를 선포했다.
선교를 하는 자원, 힘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만이 그 힘의 근원이라고 가르친다. 선교는 돈, 지식으로 할 수 없으며, 계시의 말씀, 지혜, 성령의 권능으로 가능하다.
구약의 장르마다 선교의 핵심 메시지가 있는데, 역사서는 하나님의 강하심을 전파하며, 율법서는 삶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시가서는 열방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이끌고, 선지서는 예수님의 오심을 예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선교를 하시도록 우리를 내어드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3단원
구약시대에 이방인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접촉하고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수가성 여인이 예루살렘과 그리심 산 예배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라는 답변을 하시고 장소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셨다.
AD.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 독립파들을 로마 장군 티투스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파괴됐고, 레위인과 사두개인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사도행전에서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 밖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기록이 적혔다.
신약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는 내용과 이방인들의 믿음있음을 칭찬하는 내용이 자주 대조된다. 이방인은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거부와 수용”이라는 주제가 신약성경 내내 깔려 있다. 이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누리던 구원의 복을 이방인들이 대신 누리게 된다는 구약 선지서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이방인에게 전달해야 한다. 선교의 핵심은 복음이다. 그러나 사역의 우선순위는 성령님께서 마음껏 이끄시고 역사하시도록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전통의 담을 허물어 이방에게 손을 뻗고, 소명의식에 투철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촛대가 우리에게서 옮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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