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전체적 설교 아웃 라인
에스겔이 산문체가 아닌 운문체로 써서 읽는 이로 하여금 운율을 느끼고 재미있게 읽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히브리 인들에게 해당하고 외국인들은 단어의 시적 기능으로 인한 흥미는 느낄 수 없다. 사람 사이에 대화하듯이 글을 썼고, 마치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눈 앞에 나타나서 속 마음을 털어놓듯이 말씀하신다.
이러한 화법은 오늘날 개신교단에서 직통계시 이단으로 몰린다. 게다가 에스겔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모세가 받았던 모세 5경에 있는 말씀들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내용이다. 그래서 현대 개신교단에서 성경에 있는 말씀이 아니면 다 귀신과 악마의 말이거나, 사이비 이단 교주가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녹음기가 아니시기 때문에, 과거에 했던 말씀을 무의미하게 되풀이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인간도 시시각각 다양한 표현과 다른 말을 내뱉고 다른 행동을 한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이시라면, 녹음기 기계처럼 무미건조하게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지 않고, 다양한 표현과 다른 말들을 마음껏 하실 수 있다.
역사적 배경으로는 이미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하여금 유다 왕국의 예루살렘을 파괴하도록 시키신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희망적인 약속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를 사람의 속담으로 표현하면, “병 주고 약 준다” 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살았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이면서도 세속 권력과 결탁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서기관들은 세속적 출세만을 꿈꿨다. 바리새인들은 과격한 율법주의로 사마리아 인들을 내치고, 유다 백성들을 괴롭혔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것을 예언이라고 선동했다.
그들이 그렇게 엇나가는 이유는 한 가지 간과한 게 있기 때문이다. 두들겨 맞을 짓을 한 것은 본인들이라는 것을. 그것을 잊고서 치료해주시는 하나님께 과거에 매로 때렸다고 마음에 앙심을 품고 끝까지 삐뚤어져서 선지자들마다 핍박하고,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
오늘날 펠라기우스, 알미니안, 웨슬리안, 마르시온에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자들이 무조건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좋고 너그럽기만 하신 분이지! 심판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날 뿐이지, 우리 시대에는 심판이란 없다!” 라는 논리가 성경에 비춰보면 착각과 오판이라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말씀이다.
성경에 나오는 전쟁은 거의 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위해서 관여하셨다. 그리고 인간 역사에서 전쟁이 없던 시기가 거의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역사이래 하나님의 심판을 꾸준히 경험하고 살았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약속을 하셨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도의 끝을 놓지 말라고, 37절에 말씀하셨다. 오늘날 하이퍼 칼빈주의자, 구원파 및 적잖은 장로교단 목사들이 부르짖는 기도, 방언 기도, 꾸준한 새벽, 철야, 금식 기도를 혐오한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신다. 그런 건 율법주의, 행위구원론이야!”라는 말을 하면서.
그러나 그들의 말은 성경에서 아무 근거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지전능성을 논리적으로 지탱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기도를 포기해도 좋다는 주장을 허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혜에 속지 않으신다. 인간의 이성, 철학, 변증 논리는 간단하게 무시해버리신다. 그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시크함이다.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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