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정리하시도록!
성령님께서 고린도전서 11:2~16과 고린도전서 14:34~37의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천주교는 이 말씀에 충실해서 절대로 여자는 성당에서 머리에 천을 두르고, 수녀 이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머리에 천도 두르지 않고 여자 목사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신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개신교에서는 이 말씀을 가지고 여자 목사를 반대하는 남자 목사들이 엄청나게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령님께서 모세의 누나 미리암, 사사기의 바락과 함께한 드보라를 포함한 수많은 여걸들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들을 들어쓰시는데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르륵 보여주시며, 대답하셨습니다.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단지 사도 바울의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교회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교기관에서 여자들이 말이 많고 조직에서 분란을 잘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남아나기 힘들었고, 사도 바울이 말씀과 기도, 가르침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를 역사 시대의 사람에 비유하면 티무르 제국의 티무르와 같습니다. 그는 제국의 영토 확장과 제국 내부의 반란 및 인접국가들의 도발 때문에 평생을 어느 한 곳에 붙어 있지를 못하고 전쟁터에서 살다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스탈린은 왜 티무르의 무덤을 열었나? |
사도 바울이 그런 처지에 놓이니까 말수 적은 남자 가장들에게 여자들을 위탁한 것이었습니다. 항구에서 바삐 떠나가는 사도 바울, 편지쓰기 바쁜 사도 바울, 지도자 성도들과 장로들을 만나서 일일이 문제 해결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성령님께서 보여주셨는데, 일상이 너무나 바빠서 몸이 수천갈래 쪼개질 것 같았습니다.
그 성경 말씀은 오늘날에는 안맞을 수 있지만, 사도 바울의 사역을 위해서 그 당시에는 꼭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저라도 그 상황에 닥치면 그렇게 똑같이 쓸겁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여자들의 소모적 교회분란 때문에 우리가 읽을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남겨놓지 못했습니다.
“아들아! 나 하나님이 결코 쉬지 않고, 꾸준히 초자연적 기적을 베풀며 역사하여서 환경을 바꿔놓겠다. 그 과정에서 초창기 순종자들이 순교적 삶을 감당해야 한단다!”
안이숙, 최자실, 문준경을 포함한 구한말부터 한국 경제 성장기 까지의 위대한 여종들을 성령님께서 주르륵 보여주셨습니다. 그녀들이 한국 기독교사에서 외부에서는 일제와 불신자, 공산당의 핍박과 내부에서는 총신대 합동을 중심으로 남자 목사들의 멸시와 경멸, 이단시비를 꿋꿋이 버텨가며 크나큰 사역들을 일궈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생각이 바뀌었고, 점차 여자 목사를 세우시는 게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제가 현재 들어온 안양대학교의 대신교단이 남자 목사를 고집해서 그 남자들이 신학교리에만 매달리고 교단의 정치적 활동에만 몰두하니 분열되고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안양대학교를 위해서 통성기도를 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적고, 심지어 그런 통성 기도와 방언 기도를 대신교단에서 반대하고 핀잔을 주는 목사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니 대신교단과 안양대에 중보기도가 대폭 줄어들어서 하나님의 공급을 뜻하는 하늘에서 안양대로 내려오는 빛 기둥이 점점 가늘어 졌습니다. 그래서 대신교단이 4개 이상으로 쪼개지고, 학교가 사이비 종교에게 헐값으로 넘어가기 직전입니다.
대신교단 자체가 사탄에게 영적으로 무방비 상태이니까, 안양대 이사장한테 현란한 눈속임 쇼를 보여주니 겁이 덜컥 나서, 신학교를 종합대학교로 바꿔서 정부에게 코가 꿰입니다. 또 미끼를 던지니까 부동산에 덜컥 투자했다가 아주 큰 손실을 봐서 학교를 덜컥 사이비 종교에 팔아버립니다.
반면 제 큰 고모부의 매형인 김준삼 목사가 전이사장으로 몸을 담았던 백석 교단이 여자들에게 목사 안수를 주니까, 그 여자들의 특성상 새벽과 철야에 통성기도, 은사사역을 통한 활발한 전도에 몰두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백석교단과 백석신학교를 위해서 중보기도가 끊이지 않고 넘쳐났습니다.
곧바로 백석교단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입신환상, 성령 하나님의 다양한 은사와 말씀의 기적이 쏟아지면서, 급격히 교회들이 부흥성장하여 교세가 확장되고, 백석신학교는 엎어져도 넘어져도 잘되기만 하는 대축복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대신교단을 집어 삼키어 나중 난 뿔이 더 우뚝한 모습이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주시므로, 현재의 우리에겐 안맞아도 말씀을 받는 당시의 기준에는 가장 합리적이었다.
- 성경 말씀은 고정된 문자이기 때문에, 시대적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성경 말씀이 안 맞을 수 있다.
- 성경 말씀과 현실 속의 괴리는, 우리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초자연적 방법과 은사, 기적으로 제시하신다.
- 성경 말씀은 삼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다!
- 삼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현실의 신학적 문제와 성경적 괴리감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를 하라!
- 은사/계시/기적이 중지, 중단됐다는 궤변적 학설을 남발 하면서 하나님을 성경책 속에 가둬버리면, 하나님께서 개신교단과 신학교, 교회 모두 박살내고 뒤엎어버리고 성도와 사역자들이 믿음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한다!
현재 저도 민주당과 투쟁을 하고 있지만, 저는 문재인 정권의 민주당이 한국을 중국 공산당의 속국으로 바꾸고 나라가 북한에게 거덜날 것을 이명박 시대부터 교회들과 신학교, 영성훈련원, 인터넷 등등 여기저기에 글을 돌려서 경고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위 6번입니다.
4번 설명을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때문에 하나님을 말씀이라고 하는데, 실상 헬라어 원문에는 로고스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런데 로고스라는 단어는 근본적으로 헬라 철학에서 쓰이는데, Oxford Languages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 만물의 변화 유전하는 동안에 존재하는 조화·질서의 근본 원리로서의 이법(理法).”
판단을 인도하는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비(比)·비율의 뜻도 있었다.그리스 철학을 일관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나 스토아 철학에서는 이법(理法)이란 뜻으로 쓰였다.
즉 로고스는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는 로고스를 우주의 통치자, 운행자로서의 개념을 받아들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헬라인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 것이지,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과 단어라는 피조물로 전락시킨 현대 기독교의 단순한 “언어”라는 개념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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