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6일 목요일

신서 ; 일본 11

4편 일본 본토의 친한親韓 가문
 
이 번에는 일본 본토의 친한파 가문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인 오우치(大內) 가문입니다. 제가 일일이 쓰기 힘드니, 신문 기사를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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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종교개혁이 시작된 16세기(1544)부터, 이미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에는 이 길을 따라 포르투갈 상선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뱃길을 따라 복음도 함께 들어왔다.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 1506-1552)1549년 일본에 입국한 지 2년 만에 열도의 일본인 100여명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들 서양 상선들이 전한 기독교를 가장 먼저 허용한 열도의 권력 집단은 놀랍게도 백제 성왕의 자녀인 임성태자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야마구치(山口) 지역의 지배자 오우치(大內) 가문이었다.
 
오우치 가문은 반도를 늘 자신들의 고향땅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조선 시대에만 무려 70여 차례나 사신을 보냈을 정도로, 반도에 대한 애착이 강한 가문이었다. 오우치 가문이 조선인들이나 조선 조정에 늘 우호적이었던 것은 바로 자신들의 뿌리가 반도에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들의 보호 아래 포르투갈 상선을 따라 들어 온 자비에르 선교사와 그 일행들의 활약으로 복음의 영향력은 규슈 지방으로부터 당시 수도였던 교토 인근에 이르기까지 이르렀다. 일본 속 기독교 신자는 1605년 무렵 75만 여명까지 늘어났고, 121명의 선교사가 일본 땅을 밟았다

일부 개신교도 네덜란드, 영국 상선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열도에 발을 딛게 되었다. 반도에 표류했던 귀화인 박연이나 하멜도 상선을 타고 일본을 오고가던 네덜란드인들이었다. 훗날 일본 엘리트 초--고 대학의 60% 이상이 기독교학교법인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열도 동부의 명문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조치(上智) 대학이 미션스쿨이요, 서부 명문 간사이(關西), 도시샤(同志社) 대학도 기독학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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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백제왕족 후손 日 오우치씨


위에서 보듯이, 한민족(韓民族)의 뿌리를 기억하는 자들은, 기독교를 전하는 세계의 레위지파로 쓰임을 받도록 이끌어집니다. 그 밖에도 우키타 가문, 고마高麗 마을, 심수관 마을을 포함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꽤 많은 마을들이, 과거 한국을 기억하는 곳이 많습니다

일본 오사카 카라쿠니 신사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신사韓國神社인데, 네이버에 있는 [김해시] 블로그 <가야 찾으러 일본에 가자> 일본 오사카 한 복판에 한국(韓國)신사가 있다에도 글이 올려져 있습니다.
 
10년 전 쯤에 일본 왕이 스스로 자신의 조상은 한국인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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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여기서 끝냅니다. 글을 업로드하는 시점에서는, 기도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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