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10장 믿음과 순종
인간은 하나님을 우리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의 통치를 받기 보다는 자치를 갈망한다. 이러한 상황 아래, 죄와 사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믿음과 순종이라는 주제가 떠오른다.
1. 공관복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깨달음은 믿음에서 오며, 그 믿음이 병든 인간 자신을 깨닫고 치료해주는 의사를 필요함을 알게 해준다.
믿음은 최고의 선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인데, 백부장 이야기(마8:10, 눅7:9), 혈루증의 여인의 이야기(마9:22), 중풍병자 치유 이야기(마9:2~8)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칭찬하셨음이 적혀 있다. 그 믿음으로부터 육체의 치유도 받았지만, 더 나아가 영혼의 구원까지 약속을 받았다.
반대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음으로 책망하셨다.(눅17:17) 그리고 믿지 않음에 따라 죄사함을 탕감받는 양에 따라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이야기를 베드로와 나누셨다. (눅7:47~50) 더 나아가 바리새와 세리 이야기 (눅18:9~14)에서 인간의 율법적 행위에 의존한 바리새인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받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간청한 세리는 하나님의 죄용서와 칭의를 받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기술에서 사람들은 행위를 필요로 하는 순종과 믿음 사이에서 헷갈린다. 그에 대해서 마태복음에서 순종을 강조하는 예수님의 발언들이 적혀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가족이다 (마태12:46~50), 밭의 비유에서 열매 맺는 자들만이 하나님께 속한다 (마13:18~23)를 포함한 수 많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성경에 적혀 있으며, 이 책에도 나열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로 나타나는 순종은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의 복음과 결코 대립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며, 천국에 들어가는 근거이다.
2. 요한 문헌
요한복음은 “믿다”라는 동사를 98번 사용해서, 수동적 믿음의 관념을 배제하고,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했다. 요한 복음에서 강조하는 믿음의 내용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이심을 인정하고, 그 결과로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말씀들을 책 311쪽 하단부터 312쪽 상단까지 죽 나열했다.
더 나아가 “듣다, 보다” 등의 육체가 정보를 얻는 오감 행위를 나타나는 실질적 단어를 많이 사용하므로써, 예수님께서 행하신 초자연적 기적을 믿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편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만 영생과 구원을 누릴 수 있음”을 여러 번 가르치므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우리가 섭취함을 확고하게 강조했다.
또 “온다”의 동사를 사용하여, 악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빛을 멀리하고 오기를 거부함을 드러냈고, 선을 행하는 자들은 빛으로 옴을 강조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끄시지 않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가오지 않음을 기술했다. 그 밖에도 “들어간다, 거한다” 등의 동사로 예수님을 참되게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들어와서 그 안에 머무는 것과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고 거들먹거린 자들은 도로 나가는 양태를 서술하므로써, 믿음이 바로 삶에 나타나는 행위의 원인임을 서술했다.
즉 동사를 활용해서 믿음이 바로 삶의 행위로 나타남을 서술했으며, 믿음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믿음은 역동적으로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게 요한 복음의 핵심내용이다.
3. 사도행전
믿음과 순종은 누가 복음에 이미 서술된 대로, 동전의 양면으로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 믿음과 회개 또한 궁극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잠깐 설명을 덧붙이면, 과도한 칼뱅주의자들과 박옥수, 유병언을 포함하는 구원파 사이에서는 한 가지 공통적인 주장을 하는 게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으니, 더 이상 정죄함이 없으므로 회개할 필요가 없다. 자꾸 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이단이고, 행위구원론자이다.”
이 말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게, 이 때문에 최보라 목사의 덕정 사랑의 교회와 변승우 목사의 사랑하는 교회, 김용두 목사의 서인천 주님의 교회를 포함한 상당 수의 교회들이 행위구원론 이단으로 몰렸고, 심지어 고신대에서 최근에 교수가 쫓겨나기 까지 했다. 목사와 성도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갈 수 있겠다고 시인했기 때문이다.
즉 회개가 순종, 행위를 대표하는 하나의 행위로 이해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과도한 칼뱅주의자들의 주장을 깨는 얘기를 하고 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했고, 그에 따른 자들은 믿는 자들이라고 바울이 인정을 해줬다 (행17:30~34). 고넬료 회심 사건 또한 회개를 통한 성령세례와 입교를 예시하며, 회개가 믿음으로 연결됨을 저자는 서술했다. 누가는 결국 진정한 믿음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한다라고 서술했다고 한다 (행26:20).
4. 바울 서신
사도 바울은 이신칭의 교리를 뚜렷하고 자세하게 성경에 적었다. 그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공적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을 구체적으로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의지하고 믿는 것이다. 율법에 충실하므로써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불필요한 것이 된다.
이 믿음은 열매를 맺으며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바울은 인내와 열매를 강조하므로써, 칭의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다는 주장과 순종이 모순되지 않음을 설명했다. 선행은 언제나 믿음의 열매라고 볼 수 있으며, 선행은 그 믿음이 진짜임을 증거하는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육적 욕망에 함몰된 신자들은 죽을 것이며, 영생을 경험하지 못할 것을 로마서 8:13과 골 3:5~6, 고전 6:9~11에 썼다. 고전 9:23~27에 적힌 구원을 위한 경주는 영생을 얻는 인간의 행위를 표현한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행위로 심판을 받는다. 고전11:17~34에 나타난 징계를 받는 자, 배교한 자들은 진정한 믿음이 없음이 그 행위에서 드러났을 뿐이다.
바울은 이신칭의 뿐만 아니라 행위에 따른 심판을 분명히 적어놨다 갈6:8. 현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주님도 그들을 부인한다 딤후2:12. 오늘 날 개신교 목사들이 뻔뻔하게 죄악을 저지르고, 이들을 뒷받침해주는 신학자들, 행위 구원론이라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자들에게도 분명히 저자와 사도 바울은 그들이 거짓 믿음, 믿음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딛1:16. 악에서 떠난 자들만 주님의 집에서 살 것이고, 진리에서 떨어진 행위를 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께 속한 게 아니다 딤후2:18~19!
선한 행위가 믿음의 열매이고, 믿음은 행위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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