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시련기의 지침서
카타콤은 그리스어 카타(아래)와 쿰베(경사)가 합쳐서 생긴 어로, 본래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무덤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게다가 로마의 평원은 화산 폭발로 발생한 응회암 지대로서, 사람이 쉽게 파낼 수 있는 바위층 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회제도적으로도, 로마의 귀족, 시민들은 자기 소유의 매장지를 갖도록 보장이 돼있었습니다. 그래서 카타콤은 자연, 사회적 모두 유리하고 합법적으로 전파,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카타콤 안에서 사람들이 집회를 갖고, 모여서 생활을 하므로써, 카타콤 내부에 인테리어들이 발달하게 됐는데, 그 증거로 남아있는 게 내부의 벽화들입니다. 주로 구약 성경의 내용을 하나의 장면처럼 만들어서 벽화를 그려놨습니다. 특히 당시 핍박받는 상황에 맞게 구약 시대에 핍박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카타콤의 기독교인들은, 신앙과 내세에 대한 굳건한 희망을 키워갔습니다.
카타콤에 숨어든 사람들은, 평소에는 지상 도시와 끊이지 않는 접촉과 연락으로 양식을 공급받고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추가하여 카타콤은, 로마시대에 로마 전역 특히 동부지방에서도 발견되는데, 오늘 날 터키의 카파도키아에도 있습니다. 지금 발견된 규모에 따르면 소도시 수준으로, 몇 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에 환풍구까지 설치돼 무척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즉 수도 로마 뿐만 아니라, 로마 전역에서 기독교가 전파된 곳이면, 대부분 카타콤에서 기독교 신앙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카타콤이 로마 사회에 미친 영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 제국의 복음화
- 로마 귀족층의 가정과 여성들의 금욕주의와 부합하여, 그들이 기독교로 통합되도록 했습니다.
- 선교열정과 박해를 견디는 신앙을 길러내는 온상으로 카타콤이 역할을 했습니다.
- 순교 신앙을 전승했습니다.
기독교 문학(변증서)의 발달의 온상
- 앞서서 당시 로마 시대에는, 기독교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낭설들이 떠돌았다고 썼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들이 변증가들입니다.
- 기독교도에 대한 로마 정부의 박해와 헬라, 로마의 이교철학자, 수사학자들의 비판을 반박하고, 기독교를 변증해줬습니다.
- 더 나아가 로마의 노예들에게는, 헬라등지에서 끌려온 수사학자와 교사들도 많았는데, 이 들이 변증서를 읽고 기독교로 개종하도록 촉매제가 됐습니다.
기독교 예술의 발달
- 앞서서 카타콤에는 프레스코 화가 벽화 형식으로 많이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쌓여온 기독교 예술 역량이 훗날 로마 기독교 공인 이후에, 대중적으로 크게 발달하게 됐습니다.
- 이 책에서는 짚어주지 않았지만, 기독교 선교 초창기에, 이방 종교 우상을 만들던 수많은 예술가들이, 로마의 기독교 공인 선포 이후에도 생계에 지장이 없이, 오히려 더욱 호황을 누리게 해서, 기독교 개종이 산업전반에 저변 확대가 되게 하는데에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 훗날 동로마 제국 황제들의 성상숭배 금지령이 내릴 때까지, 기독교 예술 산업은 기독교의 대중화에 첨병 역할을 하며, 서로마 제국에서는 게르만족들이 개종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 더 나아가 동로마 교회와 서로마 카톨릭 분리의 단초가 됩니다.
1984~6년도 즈음에, 경북 예천 외가댁에서 예수님께서 제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아들아!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과 같은 양상의 기독교 핍박 시기에는, 교회를 대형화 시키는데에 목매지 말고, 로마 카타콤처럼 지하로 숨으라고 세계 교회들에게 전하거라! 그러나 미국과 한국 교회들은 대형 교회 재산과 성도 수를 지키기 위해서 네 경고를 듣지 않으리라. 결국에는 세상 속에서 타협하고, 나 하나님을 배도하리라!
또한 중국 교회들은 한국 대형 교회 목사들의 헛된 희망과 꿈을 추구하는 설교를 듣고, 대형교회가 되기 위해서, 삼자교회라는 명목으로 중국 공산당에 굴복하고 혼합되리라! 그러나 그 끝은 배신이다. 공산당은 사탄이 영광받기 위한 하부조직이므로, 기독교를 결국엔 탄압하게 돼있다. 악령들이 사람 마음 속에 깃들여서 조종하기 때문에 사람이 어쩔 수 없다. 공산당 이론 책을 읽고 있으면 악령이 사람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공산당은 학살, 숙청을 할 수 밖에 없단다.”
정말로 2015년도에 주님의 말씀이, 중국 공산당의 중국 삼자 교회 건물 철거로 현실이 됐습니다. 그 다음에 일제 침략기 시대의 조선반도의 교회를 보여주셨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거나 일제의 압박을 피해서 만주와 연해주로 건너가는 장면입니다. 거기로 가서 일제와 싸웠던 성도들은, 조선처럼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반면에, 조선에 남아있던 대형 교회들은 총칼에 굴복해서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조선의 목사님들은 대형 교회 기반을 잃고 홀홀단신으로 떨어져 나가면, 힘든 노동을 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어설프게 남아 있지 말고, 아예 죽을 각오로 싸우러 나간다면, 이처럼 하나님을 배도하지 않아도 된다. 조선 반도 교회들의 목사는 교회 재산과 성도수에 연연하고, 성도는 현지의 생계에 마음이 뺏겨서, 나를 배도했단다! 차라리 독립군들과 함께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웠다면 신사참배를 안했을텐데.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정 싸워이길 수 없으면, 로마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나 예수 그리스도가 잡혀갔을 때 제자들처럼, 숨고 피하거라! 바보같이 순교할 수도 없으면서, 실상은 경제 문제 때문임에도, 자신을 속이고 핑계대며 남아 있다가 변절하지 말라! 살아있을 때와 비교도 안될 만큼 더 큰 고통의 징계를, 죽어서 영원히 받아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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