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P.183 이후부터의 내용들은 세상의 즐거움을 교회의 전도 방법으로 전락시킨 현대 교회를 비판했습니다. 현대 교회는 세속화되거나 냉담한 분위기거나, 아니며 아예 갈 길을 잃은 것으로 비판을 했습니다. 그리고 토저는 이 해법을 성령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고 해답을 제시하고 책을 마쳤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사족과 같고 오히려 점수를 위해서 안 쓰는 게 나은 글이나, 한국과 한국 교회가 매맞을 운명과 기독교가 심판 받을 미래를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제게 예전에 전하라고 시키셨던 말씀을 씁니다. 제 어머니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제가 받은 말씀을 안 믿고, 하나님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주장하지요. 왜냐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할 거라는 예언처럼, 자신이 듣기 싫어하는 예언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4년 이후부터 언젠가는 토저에 대해서 글을 쓰고 발표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너무 바쁘고 기회가 없어서 못했을 뿐입니다.
A.W. 토저는 책의 내용에서는 참으로 완벽하게 잘 말해줬지만, 저는 토저를 비판할 말씀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강서구 가양동에서 새생활 영성훈련원에 다닐 당시에, 눈을 크게 뜨고 겁에 질린 채, 토저가 두 손에 수갑을 차고 지옥으로 끌려다니는 장면을 봤기 때문입니다. 정말 갔는지 살아있는 동안 토저에게 경고하시려고 데려가주셨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영성훈련원 사람들 대부분 토저를 신봉했으며, 당시 훈련원장님이 토저와 영적 색깔이 비슷한, R.A.토레이가 한국에서 운영하는 예수원에 자주 다녀오신 분이었습니다.
토저가 글은 잘 썼지만, 왜 비판받아야 하는 지 이유를 쓰겠습니다. 토저는 묵상(黙想)을 무척 많이 강조합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읽고서 의문이 떠오르면, 일단 밀치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토저는 묵상의 근본적인 뜻이 뭔지도 모릅니다. 한자와 영어의 묵상(meditation)은 “조용히 생각한다”는 뜻이지만, 히브리어에서 묵상은 본어로 “하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내어 읽는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본래 묵상은 혼자 명상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성경말씀을 외우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현대적 의미에서 공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묵상은 성경 말씀을 읽고 외우는 것이며, 이해가 안되면 정확한 주석책을 찾고, 성경에 적힌 역사적 사료를 찾아서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제 생각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환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배운 것입니다. 지금은 너도나도 인터넷에 올리더군요.
한 가지 더 나아가, 토저 자신이 임재를 체험하라며 말하는 방식은, 인도 요가와 동양의 참선, 단전호흡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토저가 하나님의 임재를 다른 하나님의 은사와 역사보다도 더 높이 올려놓으면, 이방 종교의 명상가들이 우리는 그것보다 더 한 게 있다고 내놓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찾다가, 기독교에서 불교와 힌두교의 명상센터로 옮긴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에서 불교 인구가 솟구친 기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토저의 행악과 토저가 인기 있는 이유를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규장] p.26에서 토저가 영적 고원(高原)현상을 써놨는데, 쉽게 말해서 고산병(高山病) 증세 같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영적 정체기에 빠진 것같고 더 올라갈 수 없으며, 수용성의 한계를 자주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도 보여주셨지만,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의 입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드러내어 비판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는 신앙생활을 도 닦 듯이 한다! 밖에 나가서 전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문제 해결과 병 치료, 귀신쫓기 위해서 기도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토저는 집필 주간으로 사무실에 쳐박혀서, 세상에서 병자, 귀신들린 자, 사업이 망한 자,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아내 등등 문제 있는 사람들과 만날 일없이 온실 속에 화초처럼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교회에서 은혜 받고, 동네 아줌마들을 전도하는 아줌마 성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아줌마들에게 자랑을 하니, 아줌마들이 그럼 내 문제도 해결해보라며, 자기들의 문제, 병마를 하나 둘 씩 말합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중보기도해주면서 담임 목사님께도 말해줬습니다. 담임 목사님도 잘 했다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있다고 자기도 금식하면서 새벽마다 기도해줄테니, 일단은 그 아줌마들을 교회로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일단 예배에 나와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줌마들이 안 오지요. 그래서 목사님과 성도 아줌마는 집집마다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심방”이란 제도가 교회에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사업이 풀리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지 않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력하게 역사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나 토저는 진짜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대가를 지불함이 없이, 대가를 지불하는 척하고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신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학벌 없이 주간을 맡았다고는 하나, 토저가 일생을 바쳐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전도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글로서는 하나님의 권능, 성령 사역, 하나님의 방법을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내 하나님의 임재가 더 크다’는 주장만 할 뿐입니다. 자기는 아예 하나님 자체가 임하여 내려 오셨다는 미사여구와 장황한, 한마디로 쓸데없이 긴 글을 문학적으로 포장해서 올려놓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목회자들이 편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체험했다는 주장에 호응했습니다. 대부흥의 시기에 다른 사람들은, 강력한 병 고침과 귀신 쫓음, 초자연적 능력이 나타나는데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변명을 커버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저가 신학자들과 목사들에게 인기가 있을 뿐이지, 정작 그 자신을 돌아보면, 구체적인 영혼구원의 열매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그의 말은, 성령에 대해서 크게 강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병 고침을 위해서 성령을 구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함이다!” 와 같이, 하나님을 높이고 능력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경쟁적인 다른 사람들을 깎아 내리는 교묘한 심리가 담겨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지면이 짧아서 제가 더 쓸 수 없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직설적으로 기억나는 대로 쓰겠습니다. “아들아! 나는 자비롭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므로, 누구든 나 여호와를 찾는다면, 나의 임재를 체험하도록 열어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토저가 쓴 것은 그런 체험이다.
아들아! 일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임재의 옷자락을 맛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가만히 임재 정도는 누구에게나 허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우주적 차원의 하나님인 나 여호와가, 기도하는 한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를 위해서 우주를 움직이고 자연법칙을 거슬러 역사함은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이다.
너희 사람의 관계에서 생각해봐라. 가볍게 얼굴만 알고 같이 서있는 정도의 관계와, 어렵고 힘든 부탁을 요청할 때,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힘쓰며 문제를 해결해주는 관계 중에, 어느 것이 더 가깝고 친밀하겠느냐? 병을 고치고, 문제가 해결되고, 귀신을 쫓아낸, 동네의 이름없는 복음 전도자가 토저보다 더 월등히 나 하나님과 관계가 가깝다!”
토저의 허영심과 순위경쟁으로, 사탄이 틈을 얻고 이방종교 명상가들이 득세해서 토저의 신자들을 다 뺏어갔던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 마하리쉬, 오쇼라즈니쉬, 한국의 이승헌, 일본의 스즈끼 다이세쯔 등 힌두교, 일본 선불교, 단학선원 등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히피들은 종교적 엑스터시 체험을 위해 마약복용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아시아 교회도 그 때문에, 무식한 아줌마 김OO 목사가 이끄는 시온기도원에 사명과 권능을 뺏겼고, 주님께서 제게 그 예언을 시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