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저의 책을 읽어 보면, 토저가 살았던 100년 전 미국 교회와 현재 미국 및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토저의 책을 전체적으로 꿰뚫는 예언을, 1968년 노르웨이에서 90세의 할머니가 받았습니다. 지금은 매체를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지만, 제게는 1980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노르웨이의 교회 장의자에서 팔을 걸치고 두 손모아 기도하는 할머니를 보여주시면서 설명하셨기에 저는 기회만 있으면 인용합니다. 그 중 이 책과 관련된 예언을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되고 생명력 있는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기독교인은 마음이 강팍해져서 영적으로 각성시키는 메시지를 들으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기독교인들은 죄를 꾸짖는 설교를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와 은혜, 법률 및 복음, 속죄와 회개에 대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다른 종류의 설교 (당신은 성공해야 합니다)의 번영 기독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결코 약속한 적 없는 물질적 성공에 대해 설교하게 됩니다.
교회와 기도원은 점점 더 비어갑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들어왔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메시지나 회개, 부흥을 위한 집회 대신, 오락, 예술, 문화가 교회로 침투해 들어올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아주 뚜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에 초점을 맞춰서, 저는 이 책의 p.120 이후부터의 내용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감리교의 찰스 웨슬리부터, 개인의 감동을 찬양가사로 만들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더 큰 은혜와 감동을 끼쳤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의 많은 찬양들이 성경 말씀과 아무 상관없는, 개인 감정에 치중한 나머지, 이 책의 내용대로 “나는 기뻐요, 복받았어요, 행복해요, 즐거워요.” 의미없는 가사 나열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찬양하자”라는 가사조차도, 너무나 많은 찬송곡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채택을 해서, 한 마디로 이 시대의 찬양을 요약하면, 자신의 뛰어난 작곡 능력을 발산하고자 기독교를 활용하는 것 뿐이지, 성경 말씀과 진리를 알리는 데에 너무나 문외한입니다. 어느새 중독적 곡조만을 강조하고, 가사는 그냥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기회를 주는 정도의 의미없는 후크(갈고리 - 낚시하듯이 사람의 감성과 심리를 낚아채서 유행가로 만든다는 뜻에서 비롯) 송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초대 교회 이후 시대에서도 발생했던 것으로, 교회와 이단, 이방 종교들이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경쟁적으로 음악을 활용했던 오랜 기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적 기교에만 치중하다보니, 교회에 와서 마음이 화평을 얻고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니라, 육욕이 자극되는 일이 많아져서 교회는 시끄럽고 자극적인 곳이 됐습니다. 그래서 동서로마 제국 분열 이후에, 교회 음악과 가사를 함부로 자극적으로 창작하고 개인 마음 대로 창작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오직 시편 가사를 활용하고 정적인 음악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 전통이 칼뱅으로 이어져 내려왔고, 그 덕에 구교와 신교의 음악이 좀 고리타분하다는 비판을 받게 됐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책의 내용과 그간 신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모아서 썼지만, 사실은 제가 1980~89년 사이에 서울시 봉천동&신림11동 집과 경북 예천의 외가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받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후크 송에 대한 설명을 이미 그 때 예수님께서 제게 해주시며, 후크 송을 만드는 법도 알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빠져 들기 쉬운 멜로디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되 극적 효과를 갖고 있으면 된다. 지나치게 짧지만 않은 정도의 짧은 마디(그 당시에 구체적 숫자까지 알려 주셨는데, 까먹었습니다)에 멜로디와 의미없는 가사를 반복시키면, 후크 송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불교, 힌두교의 만트라(주문)을 만드는 방법과 같으며, 현대의 후크 송은 히피에 빠진 미국인들이, 만트라를 노래로 만들어 문화로 본받는데서 출발했다. 유럽과 미국인들이 인도를 같은 아리아인이라며, 역사성을 부여하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아무 여과없이 흡수하고 있다. 특히 문화가 서양 사람들의 낭만적 감정을 자극하며, 앞장선다. 그리고 그 연예인들이 힌두교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면, 사람들은 그 출처를 따지지도 않고, 그저 유명 연예인들이 만들었으니, 좋다는 식으로 교회음악인 줄 알고 불렀다!”
그 대표적 사례가 비틀즈이고, 조지 해리슨이 만든 힌두교 찬양 음악이, 교회 복음성가로 바뀌어 불리는 환상장면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대표적 음악이 My Sweet Lord 로서, 크리슈나를 찬양하는 음악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적잖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찬양하는 줄로 착각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미국 교회에서 많이 불렸습니다. 존 레논의 음악 Imagine또한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는 음악입니다. 이러한 배경이 이 책의 129~162 페이지에 서술된 미국 교회 예배 문화 타락에 원인입니다.
토저는 교회에서 종교적 쇼에는 악취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연예인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성공시켜주시면,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두둑히 내겠다고 약속한 사례를 적었습니다. 그것을 뜨개실 뭉치를 발견하고 가지고 놀다가 실뭉치 속에 갇혀 버린 새끼 고양이와 같은 형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번져가는 연예인, 운동선수, 심지어 감옥에 갇힌 폭력배도 기독교를 퍼뜨리는데 앞장서는 현상을 쓰면서도 안타까워 했습니다. 토저는 부흥의 시대를 살았나 봅니다. 그런데 그 부흥이 지난 날의 죄에 대해서 애통, 회개하는 게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하나의 큰 사업으로 전락해서 안타까워 합니다. 이상의 모든 현상이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게 아니라, 인기를 따라 비성경적인 수단을 무분별하게 교회 부흥에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토저는 기독교 예배 문화가 자극적이고, 유행을 추구하는 게 썩는 내 나는 종교적 쇼라고 말하면서도, 토저는 프로그램의 독재와 진부함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왔다갔다 할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구약에 다음처럼 써놓으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하지만 제가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은, 토저가 비판하는 종교적 쇼와 고루한 형식주의 사이에서, 토저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바입니다. 기독교 목회자들은 성경 말씀에 순종했기에 전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토저가 정답을 써놨습니다. 책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산 [규장] 출판사 책 p.178에 있습니다. “영적 능력없이 영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과거에는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지만, 이제는 저명인사의 명성을 등에 얹기 위해서, 세상적 유명인사를 찾고, 성공 간증의 이름으로 세속적 욕망, 허영, 성공이 복음주의자들의 손에서 기독교화되고 있다고 토저 자신이 서술해놓았습니다. 그리고 P.182에 전도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맞춰주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죄악된 육적 속성들을 지속하게끔 끌어들이는 현대 기독교의 세속화를 비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가르치면서 그게 영성훈련이라고 말하는 훈련원에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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