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즈음에 익명의 교육기관에 제출한 글입니다.
관점 소개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서 분량이 적으므로, 최대한 요약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서 쓰겠습니다. 그럼에도 내용이 너무 많아서 계속 그 상태로 쓰다간 내용 전개가 도중에 끊어져 버리므로, 썼다가 지웠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개척 교회 운영에서 자주 목회 목표를 잊어버리고 좌절하는 함정에 빠지는 데에, 도움을 줄 만한 중심적 내용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1장 - 존재이유가 헷갈린, 교회가 참고할 지침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외침은, “악당을 타도하라”에서, 시작됐으나 마침내는 “하나님도 필요 없고, 군주도 필요없다!” 는 표어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구시대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혁명이, 하나님을 대적해야만 하는 것으로 판에 박혔습니다. 여기까지가 책의 내용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경북 예천 외가댁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이리 된 이유는, 카톨릭 주교와 교황이 옛 왕과 귀족들과 같은 편으로서, 국민들을 착취하는 데에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카톨릭에서 파견한 성직자들은 로마 교황청의 입장을 대변하며, 갖은 저주와 설교로 백성들이 혁명에 반대하도록 이끄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개신교의 루터 또한 자유롭지 못해서, 신분해방을 위한 농민들의 반란을 외면했습니다. 그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영주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지은 칼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대가 말하는 “희망 고문 - 지금 당장은 괴롭지만, 우리가 죽은 뒤에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성경 말씀대로 세상의 주관자에 충성과 복종을 해야 합니다.” 라는 설교를 카톨릭 주교가 했고, 뒤를 이어 개신교 목사들이 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서 종교를 적대시하고, 숙청을 감행하는 혁명 이론은, 자유 민주, 자본주의가 성역화하는 프랑스 대혁명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결국 우리 기독교는 자유-자본 주의와 공산주의 그 어느 제도에서도, 궁극적인 보호와 안정을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성화된 세상은 수량측정이 가능한 세속적 성공과 재산의 규모로, 축복 판단을 정해버립니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성경적 축복을 도외시 했으며, 많은 교회들이 대형화 되면서 세속적 쾌락과 욕망에 부패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신학교와 신학교 졸업자들은 많아지는데, 오히려 한국의 개신교 인구는 줄어들고 있으며, 해외에 예수님이 전해지지 않은 나라와 겨레들에게 나아가는 선교사 수와 그들을 향한 지원,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해결책이 책에 적혀 있는데, 이성의 제국을 뚫고 들어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맛보게 하는 바른 신학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른 신학은 바른 부흥을 맛보게 합니다. 죽은 영혼을 살려내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인도함을 받는 데에 목표를 둬야 합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물건을 팔 듯이 경영학의 마케팅 원리를 짜깁기 해서, 각종 이벤트로 사람의 눈과 귀를 끌어 당깁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약장사처럼 장사하면서 부흥에 갈급한 목회자들에게 강매합니다. 하지만 현대 문화와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교회에 굳이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가서, 교회가 전하는 어설픈 문화력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마케팅과 공연, 각종 프로그램은 세상의 문화산업이 훨씬 전문적이고 자극적이며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언변과 세상적 지식에 대해서, 사람들은 갈망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대학교 졸업장이 흔하며, 다들 돈을 얼마나 더 잘 벌고 즐기나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이성의 제국에 항전하여, 자신들을 보호할 실질적인 힘이 있는 교회임을, 저 자신도 15년 간 세속에서 사람들로부터 크게 체험했습니다. 곧바로 내일 때려 치고 싶은, 개척 교회들의 존재 이유가 이 책에 적혀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라!” 이상의 과정을 위해서,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신학 목표를 “성경의 객관적 사실을 잘 조직해서, 신앙의 목표에 잘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생와 하늘의 복을 얻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따라서 특정 논리적 체계성을 강조하는 환원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성경의 다양한 교리들을, 하나의 신학적 개념을 위해서 조직화 체계화 하는 과정 중에서, 성경이 담고 있는 다양한 교리와 실재성을 제거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성경 말씀을 내 입맛에 따라 취사 선택하면 안된다” 로 이해했습니다. 이성주의와 철학적 사고에 매몰된 현대 신학은, 영적 실재를 이성적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빼버리고, 성경 말씀을 추상적, 관념적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계 상황에 직면할 때, 믿음이 여지없이 깨지게 만듭니다. 즉 지성적 그리스도인은 영적 무력함이 현실의 무력함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게 됐고, 불신자들의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바른 성경 언어를 가지고, 성경의 자연적 실재들과 초자연적 실재들을 포함한 성경의 모든 자료들을 공평하게 다뤄야 한다” 고 책에서 제시했습니다. 사람의 주관적 판단과 믿음의 한계로, 성경의 말씀들을 함부로 취사선택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신학에서 “이성적으로 합리적인가 혹은 과학적으로 증명가능한 것인가”에 초점을 둬선 안되겠습니다. 신학자는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그대로의 그리스도를 말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 썼습니다. 신학은 신앙의 목표에 공헌해야 합니다. 그 결과로 신앙과 구원은, 인식과 앎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 우리 삶에서 역사하시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그 체험은 목회자 자신에게, 포기와 좌절을 뒤로 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전하는 데에 헌신하도록 이끕니다. 더 나아가 주변 다른 사람들은 목회자의 그 모습을 보고 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교회 부흥의 길을 명쾌하게 제시해줍니다.
2장 - 개척 교회 목사의 각오
신구약 성경은, 메시야의 도래와 이 세상의 종말을 동시적인 것으로 적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종말론은 종말을 먼 미래의 일로 미뤄버렸고, 세대주의는 종말론을 내세론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고난, 죽으심, 부활과 승천 모든 사역이 최종적이며, 미완성된 사건이 아닙니다. 종말론을 재림 이후의 시기와 죽음 이후의 문제로 미룰 수 없습니다. 오늘 사는 이 순간 모든 믿음의 삶이 종말론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날 신학이 인문학이 되는 이유는, 신학에 종말론 관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식, 역사적 근거, 도덕만을 탐구하는, 지식적 소양학적 학문 활동으로 끝나서, 신앙의 바른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종말론적 관점은, 요엘 선지자의 말세에 남종과 여종에 성령을 붓겠다는 성경의 말씀을 이루게 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성경의 말씀이 현재화 - 지금도 일어난다, 실재화 - 책 속에 갇혀 있지 않는 하나님, 사건화 - 기적이 일어나는 사건, 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체험은, 우리 개척 교회 사역자들에게, 사명감과 책임감, 자발적 동기를 탄탄히 다지고 키워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무능한 신학을 비판하는데, 저는 이 점에 큰 동감을 느끼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이모님이 목사로 시무하시는 영일 교회에서 시작했는데, 이모부가 영일 병원 이사장으로 재원을 뒷받침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목사님들이 왕래가 잦았습니다. 그 때 공부만 하거나, 어설프게 목회를 해서 어중이 떠중이 목사로 왔다갔다 하기만 하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더 나아가 명문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다 세속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대부분이 생활고를 겪으며 묻혀 지내는 것을 적잖게 보았습니다. 당장 찾아오는 성도들은, 질병, 삶의 문제, 고민을 들고 찾아오는데, 그것을 이름난 신학자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당장 손을 얹어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선포하거나, 예언이 내려와서 그들에게 상담을 해줘야 했습니다. 교회의 운영과 부흥은 오직 성령님만이 주인돼셔서 이끌어 주셔야 함을 15년간 봐왔습니다.
이 책에서 분명히 그 현실을 썼습니다. 전도나 선포는 설득하는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다고 사도바울의 고린도 전서 2:4~5를 인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적 감화력은, 성령님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성령님만이 사도 바울을 증거하셨고, 하나님 앞에 많은 불신자들이 순복하게 하셨습니다. 말과 논리에 빠져서, 세상과 담을 쌓고 공부만을 할 생각을 버려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능력이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된다면, 성경에서 원하는 대로 낮은 자리로 기꺼이 내려가야 겠습니다. 잘난 사람들은 마음을 쉽게 열지 않습니다. 못나고 부족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서 도울 길이 있고, 그 과정에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섬기는 자가 돼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는 삶을 감수해야 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기도를 잘 하고 성령님께 쓰임 받는 삶으로 나아가야 겠다는 각오가 섭니다.
P.66에서 신앙의 확신은, 지식적인 이해를 통해서 쌓이는 게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미래의 복들이 맛보아 짐으로써 얻어진다고 서술했습니다. 믿음의 능력은, 천국이라는 초자연적 실재를 지금 여기서 소유하는 능력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아무리 아무리 굳게 닫혀있어도, 지속적인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 앞에서는, 하나님께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그 통로로 쓰임받는 전도자는, 더욱 강렬한 구원의 확신을 갖고, 꾸준히 목회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부흥시킵니다. 기도함으로 얻는 일용할 양식은, 영생과 미래의 완전한 복에 대해서, 몸으로 체감하는 확신을 안겨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받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해야 할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명령은 사회 구성원 전반에게 선포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 구원이나 개혁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죄사함과 중생, 회개의 사건으로 이뤄집니다. 성령을 힘입어 악한 세력과 악령을 쫓아내는 것은, 죄악과 불신앙과 싸우는 것과 같으며, 교회의 거룩성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그 거룩성에 대해, 로마 교회는 미사, 교의, 도덕적 교훈, 예배와 권징에 의지하지만,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는, 교회의 거룩성을 그리스도의 거룩성에서 찾습니다. 교회의 거룩은, 거룩하신 그리스도와 연결됨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각 성도 안에 계심으로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성령께서 성도들 안에 계심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성령님 때문에 사람의 옛 구습이 깨지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부분에 대해서, 실체적 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술을 배웠고, 군입대 후에 담배를 피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입학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손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셔서, 술병을 여러 번 깨먹었습니다. 병장 말년에는 하루에 한갑을 피울 정도로 꼴초였습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제 뇌리에서는 환상을 보여주시고, 마음 안에서 목소리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네 어미와 이모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므로, 내가 너에게 나타났다!”
그러자 목과 가슴이 간질간질하더니, 새끼 손가락 끝마디의 반정도 되는 살 덩어리같은 반 고체의 가래가 튀어나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한쪽은 연녹색, 한쪽은 검붉은 피, 또 다른 쪽은 시커먼 석유방울이었고, 투명하고 지독히 쓴 맛의 침도 있었습니다. 술, 담배, 마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장면을 보여주시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술, 담배, 마약, 본드에 중독됐다고 지옥에 간다는 말씀은 없다는 것도 지적하시며 보여주셨습니다.
“아들아! 난 성경에 갇혀 있지 않단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준 말씀은, 나의 전부가 아니다.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극히 일부란다. 네가 보는 것은, 내가 네 허파 속에서, 타르, 암에 걸릴 변형된 세포덩어리, 니코틴, 썩어가는 피를 뽑아주는 거란다! 내가 이런 기적은 아무 때나 베풀지 않는단다. 내가 역사할 때 담배를 끊거라! 은혜받을 만한 때에 은혜를 받거라! 기회를 놓치면 힘들단다! 숨을 크게 쉬어봐라! 가슴이 시원하지? 보아라! 니코틴 중독으로부터 너의 뇌가 분리 독립된 것을 느끼지? 어떠냐?”
그래도 저는 사람이 깨달으면 하나님과 맞먹는 존재가 된다는 주장을 하는, 불교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바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군대를 졸업하고 2년 가까이 피워오던 담배를 끊었습니다. 2001년 5월 31일에 제대했는데, 완벽하게 담배를 끊은 것은 2002년 2학기입니다. 그간 간간히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이 들 때마다 담배를 피우며 반항을 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골이 깨지는 고통과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구토가 밤을 새도록 이어지니, 담배와 술을 끊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아! 이렇게 고통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에 이뤄진단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통을 느끼지 않고 무디기 때문에, 평생 끊기 어렵단다! 아들아! 내가 널 목사로 쓰려고, 그리고 널 통해서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여 충분히 옛 습관을 끊고 삶을 바꿈을 널리 전하기 위해, 네게 체험을 시켜준 거란다! 아들아! 이 체험을 기록하여, 널리 전하거라!”
제2차 종교개혁 과제
앞서 문단에 이신칭의를 뒷받침하는, 성령님께서 죄악을 벗겨주시고,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는 간증을 썼습니다. 신학 이론으로 보자면, 구원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 달리고,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장 칼뱅의 이론이 상당히 겸손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심판대에 올라가면 지옥 판결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음처럼 되물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죄악에서 끌어내고자, 성령을 통해서 여러 번 말했고, 수 없이 역사했다! 그런데 너는 왜 내 뜻을 알고서도 고집을 피웠느냐?”
그럼 사람이 되받아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았잖아요. 하나님께서 제게 그 죄악을 뿌리칠 마음을 주시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제가 죄악을 끝낼 삶을 허락하시지 않았어요! 칼뱅 교리에 따르면, 다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구원할 사람을 결정하셨다매요? 제가 지옥에 온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기로, 처음부터 선택하시지 않은 탓입니다!”
위 대화는 저만 본 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시초문일 것입니다. 한편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이 지옥에 가 있다는 덕정 사랑의 교회 간증을, 제게는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부터 보여주셨고, 그 증언을 증참(證參)할 뿐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신칭의以信稱義에 기울어진 이유는, 그가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다가 천사가 귀띔해주고, 영에서 말씀이 떠올라 신비로운 각성 체험을 크게 했기에, 지나치게 경도된 부분이 있음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장 칼뱅은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입니다.
카톨릭이 면죄부와 고해성사에게 인위적으로 부여한 교리적 권한을, 개신교에서는 이신칭의론에 같은 행위로 되풀이 했을 뿐입니다. 빌립보 서로 넘어가면, 사도 바울은 이신칭의론에서 크게 후퇴합니다. 구원은 다 이뤄진 게 아니며, 두렵고 떨림으로 과거에 한 일은 잊어버리고 새롭게 달려가야 한다고 분명히 써놨습니다.
빌립보 2장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예수님 믿었다고 구원이 완성된 게 아닙니다.
빌립보 3장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저는 어린 시절에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썼는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구약 장로의 유전에 얽매인 유대인들 때문에 로마서를 썼을 뿐인데, 니골라 당과 이세벨 같은 사람들이 로마서를 읽고서 방종하게 행동합니다. 사도들이 이에 대해서 항의하며 사람들을 질책했고,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3장에 다음의 글을 남겼습니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사람들이 제게 물을 겁니다. “칼뱅 주의와 알미니안 주의 어떤 것을 따르느냐? 너가 장로교에 와서 배울 거면, 칼뱅 주의를 따라라! 아니면 다른 교파로 옮겨라!”
이 대답을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셨습니다. 유튜브에 hwa bi jung 이라는 사람이, [지옥그림_지옥을 견학하다] 의 동영상을 올려놨습니다. 거기서 12:21 시간대에 자기주관 지옥이 있는데, 신학자들이 자기 교리에 빠져서 고집 피우다 가는 곳이 여기라고 전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이렇게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1983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서, 예수님께서 제 손을 붙잡고 지옥과 미래에 데리고 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사람들이 네게 교리적 질문을 물을 걸 대비해서, 내가 저 딸을 쓰겠다! 그러나 저 딸도 완벽치 않은데, 그 이유는 이성적 음란에 대해서는 죄악시 하고, 동성애의 죄악에 대해서는 빼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이성애=지옥, 동성애=지옥과 상관없는 줄로 착각하게 만든다! 아들아! 내가 전한 말씀을 더하거나 빼면 안된다. 성경 말씀에서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빼버리면 살아서 아무리 쓰임 받아도, 죽어서는 지옥 간다!”
제 기억이 명확치 않아도, 이 그림을 그린 자매는, 남자에게 상처가 있어서 동성애에 기대는 마음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잘 쓰임 받고,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다한들, 자신도 성경 말씀에 비춰서 철저히 죄악을 씻어내지 못하면, 지옥에 갑니다. 이 자매와 덕정 사랑의 교회 사역자들, 그리고 큰 믿음 교회 변승우 목사님과 제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미래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고 글을 이미 길게는 수년 전, 짧게는 작년에 써 드렸습니다.
[불세례] 책으로 유명한, 서인천 주님의 교회가 저와 함께 본 지옥은, 머리가 큰 가분수 목사와 사모들이 관에 갇혀서 고통 받는 지옥입니다. 교계지도자들이 이 길을 피할 길은, 죽기 전에 사람들에게 공개적, 대대적으로 칼뱅과 루터는 신(神)이 아니고, 완벽한 신학 이론을 낸 게 아니라고 분명히 외치고 다녀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신칭의以信稱義에 경도(傾倒)되지 말아야 한다고 외쳐야 합니다.
신명기 5: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알마니안과 칼뱅 이론에 제한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겸손한 칼뱅 교리가, 심판대 앞에서는 사람이 자기가 죄 짓고 지옥에 가는 모든 것을, 모두 하나님께 뒤집어 씌우는데 이용됩니다. 특히 신학자와 많이 배운 목사들이 가장 많이 하나님께 대적하는 교리들을 쏟아내며 불평을 합니다. 그래서 지옥에 장 칼뱅과 마르틴 루터의 추종자들이 기차놀이 하듯이 줄줄이 끌려갑니다. 지옥의 기차놀이를 앞서 과제에서 쓴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성경에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과 땅 끝까지 가서 전도하라는 말씀이 왜 써있느냐? 지옥에 갈 자라도 돌이켜서 천국에 가게끔 너희가 기도하고 전도하면, 나 하나님이 뜻을 바꿔서 구원해주겠다는 말이 아니냐? 처음부터 지옥 갈 운명으로만 박혀있고 바꿀 수 없다면, 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이 박혀야 하겠느냐? 내 아들 예수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으며, 너희가 서로 먼저 용서해주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이 사실을 500년 전에, 노스트라다무스에게 그림으로 남기도록 시키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저를 포함한 이 시대 사람들이 칼뱅 교리를 고쳐나가도록, 다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아들아! 생명책을 보아라! 이름이 적혀 있느냐?
너희가 내 말씀을 듣고, 선하게 산다면 이 생명책에 이름을 올려주겠다.
그러나 너희가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고 아무렇게나 살면, 그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겠다!”
하나님께서 친히 연필같은 것으로, 이름을 쓰시고 책을 펴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지운 뒤에 생명책에서 사라진 모습도 보여주셨습니다.
에스겔 18장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26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이신칭의以信稱義는 엄연히 로마서를 포함하여, 구약 나훔서에도 적혀 있고, 심지어 창세기의 아브라함에도 적혀 있는 성경 교리입니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서 문제일 뿐입니다.
“칼뱅이 아무리 신학을 잘 썼다고 해도, 장기(將棋)에서 차(車) 떼고 포(包) 떼는 것처럼, 나 하나님이 너희 사람을 그 행위에 따라 지옥으로 보내는 판결 권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과 십자가로 이론으로 다 폐지시키면 죄가 된다! 살아있을 때, 회개해라!
성경 말씀은 너희 인간의 논리로 보면, 서로 충돌한다! 왜냐하면 전체적 입장에서 볼 때는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모두 필요한 말씀이다. 그런데 너희 인간의 논리는, 하나를 말해주면 거기에 가지를 치고 살을 붙여서, 그 하나의 논리 방향을 자꾸 확장시킨다. 그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확장된 주장이 다른 말씀과 부딪히는 것이다. 내가 이미 말씀으로 경고했으나, 신학자들이 말씀을 어기고 있다!”
예레미야 5장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결론
제가 장황한 글을 썼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용기 있게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백석 대학교 김준삼 전 이사장의 사돈 조카입니다. 그의 사모 한진수 여사가 제 큰 고모부의 누님입니다. 제 고모의 성함은 장종임입니다. 그리고 김준삼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김준삼 목사님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서 죽기 전에 회개하라는 예언을 시키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동영상의 26:09에 [인식하지 못한 죄로 지옥에 떨어지다]가 김준삼 목사님에게 이뤄질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내 종들을 침상에 내던진 이유는, 죽기 전에 회개하라는 뜻이다. 너희가 알지 못하고 지은 죄가 많다! 그런데 목사들이 교리를 잘못 배워서, 귀찮아서, 회개하지 않는다. 큰 일을 성취한 공적으로 죄악이 상쇄되는 줄로 착각한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이 지옥에 간다.
아들아! 이 사실을 전하라고 그의 혈연관계로 널 창조했단다! 내가 김치선 목사의 욕망을 허락한 것도, 그의 아들이 백석대학교를 말아 먹도록 허락함도, 다 너의 혈연인 김준삼 목사가 백석대학교의 이사장이 되도록 한 나의 계획 아래 이뤄진 것이다. 너희가 서로 혈연으로 이어지게 한 것도 다 나 여호와가 손을 썼기 때문이다.
이단 사냥꾼들이 갈라져서 서로 싸운 것과 백석파가 이긴 것도, 백석대학교가 크게 부흥한 것도, 모두 네 입을 통해 쏟아질 나의 말씀들을, 한국 개신교계가 듣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저는 세상 질서, 눈치 등등을 보느라 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우물쭈물 하니까, 막내 외삼촌 김동록 목사를 백석 신학 대학원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막내 외삼촌은 친척이니 교직원 가족 등록금 할인제도가 있지 않냐고 부탁드려보자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개인의 대학교 생활을 자유롭게 즐기지 못하게 한다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퍼뜩 성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구약의 선지자로, 하나님께서 널 써주심에 감사하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한다!”
저는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백석대학교에 보내주신다고 아까 약속하셨지요?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됐다. 욕심으로 할 거면, 하지마라! 필요 없다! 너희가 아쉬운 거지. 내가 아쉬운 게 아니다. 영원히 후회하리라!”
결국 사돈어른은 예언 환상대로, 다음의 말씀을 남기시고, 2007년 12월 26일 즈음에 미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왜들 슬퍼하느냐? 슬퍼하지 마라! 나는 천국갈 것을 확실히 믿는다! 믿음으로 여기보다 더 좋은 천국 간다!”
예언을 시키심은, 거의 2002~4년부터 입니다. 환상대로 그는 회개가 없이 지옥에 갔고, 저는 백석 대학교에 입학할 특전을 얻지 못했습니다. 세상 눈치보고, ‘틀리면 어쩌지? 날 따돌리면 어쩌지? 매장당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하다가 우물쭈물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안되고, 주어진 기회조차 사라지며, 제 삶이 쪼그라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들이 15년간 삶 속에서 축적되니, 지금은 명령을 들으면, 뒤를 따지지 않고 바로 발표해버립니다. 이 글 또한 같은 성격입니다.
아직 사돈어른이신 미망인 한진수 여사에게는 전하지 못했습니다. 기분 나빠하실까봐요. 2014년 5월에 베뢰아에서 나와서 백석 교회에 명령을 듣고 들어갔다가, 등록금 깎아달라는 들어주기 힘든 핑계 대고 바로 빠져 나왔습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꼭 얘기하길 원합니다. 다시는 과거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길 원합니다.